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8
100화〉
발록 2
전쟁과 번개를 관장하는 무신.
[타케미카즈치 : 稲妻の根(번개의 뿌리)]팔찌에서부터 발한 샛노란 섬광이 시우의 몸을 쏜살같이 휘돌고 부근에 저릿저릿한 전격을 방사했다.
땅에 떨어진 낙뢰가 그대로 지반에 박혀 버린 듯, 그의 모습은 타오르는 번개 그 자체였다.
『죽··· 어··· 라···.』
커다란 혓바닥을 내밀며 괴물이 흉측한 음성으로 말했다.
왼발이 헌터들을 차 버릴 것처럼 격하게 움직였다.
“요즘 게이트엔 별게 다 나오네.”
시우의 몸이 사라지더니 금빛 섬광 한 줄기가 적을 향해 달려갔다.
파스스스스즛ㅡ.
천 분의 일 초.
노련한 황정구조차 그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편각의 흐름.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조차 뒤늦게 떨어졌을 섬전의 속도.
그 눈부심이 지나간 자리로 새까만 잿더미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ㅡ어?”
눈 깜빡이는 순간에 사라진 괴물들의 모습에 헌터들은 꿈이라도 꾼 얼굴이었다.
시우가 없앤 게 아니라, 놈들이 사라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선··· 배님?”
황정구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불렀다.
【저 좁밥. 또 자빠져 있다.】
프레가 혀를 차며 황정구를 내려다봤다.
“설마 지금 저놈들 단번에 죽이신 건···?”
시우는 그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내가 이런 놈들 믿고 미국을 가다니. 이래서 어디 마음 편하게 여행이라도 다니겠어?”
“하··· 여기 동네 놀이터 아니고 S급 게이트거든요.”
“너 같은 허접한테나 S급이겠지.”
“······.”
어이가 없어진 황정구가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시우는 중상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정말 목숨이 위태위태한 사람들에게 스킬을 발동해 상처를 회복해 줬다.
“나머지는 나가서 고치도록.”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 좋지만, 지금부터는 마력을 아껴 사용해야 했다.
“선배님, 여기 S급 게이트 진짜 위험합니다. 미노타우로스 해치우고 중상자 모아서 바로 출발한 건데··· 정말 괴물 같은 놈의 기운이 날아가더라고요.”
“얼마나 괴물인데?”
“제가 지금껏 보아 온 ‘모든 걸’ 통틀어서였습니다.”
“흐음.”
시우는 흥미가 돋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농담 아닙니다. 몸조심하십쇼.”
“그래, 그래. 얼른 나가라.”
황정구는 부상자들을 데리고 게이트 밖으로 향했다.
시우는 목을 우두둑 꺾고는 황정구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을 박찼다.
***
헌터들은 사방으로 찢어졌다.
발록이 한 번 더 형태를 갖추려는 찰나 필릭스의 폭발이 놈의 몸을 가루로 만들었고, 그 틈에 다들 도망치게 된 것.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열을 갖추거나 팀별로 찢어질 생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그저 길드장급 헌터들이 마지막까지 공격을 펼치다가 뒤늦게 몸을 피신한 게 전부.
“저 괴물은··· 대체 뭡니까?”
라일라가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미국 보고서가 맞다면··· 발록으로 추정됩니다.”
“발록? 힘의 악마라는 그 발록 말이오?”
강여화의 대답에 필릭스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유럽의 몇몇 나라에선 미국에서 작성한 S급 게이트 기록에 회의적이었다.
직접 목격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악마’라는 존재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필릭스도 같은 맥락이었다.
가고일 같은 몬스터나 인간형 마수를 잘못 기록한 것일 거라고.
괴물이나 마족은 존재할지언정 악마는 상상력의 영역일 것이라며 말이다.
‘만약 악마가 있다면 그건··· 신의 영역이 아닌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사실이 두려웠다.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게이트 너머에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발록이 확실한 것이오?”
“확실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니까요.”
필릭스는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인상을 구겼다.
강여화의 말에 따르면 괴물은 목을 베고 심장을 꿰뚫어도 살아났다고 한다.
심지어 필릭스 본인도 [폭발점]으로 녀석의 몸을 가루로 만들지 않았었나.
“대체 무슨 능력으로 죽여야 하는 거지···. 약점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건가.”
“일단 심장이랑 목은 아니겠네요.”
강여화의 씁쓸한 농담.
대체 스승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려 했을까.
‘무작정 패 버릴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시우를 떠올리면 그가 질 것 같은 상황이나 패배한다는 상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승리의 상징 같은 사람.
만약 스승님이 한국에 계셨다면 같이 들어오려 하셨을까?
아냐, 위험하니까 차라리 미국에 계신 게 훨씬 나을 거야.
최대수, 민시우와 함께 삼존이라 일컫던 도경후의 강격마저 흘려보낸 적이었다.
저 재앙은 단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연합해 물리쳐야 할 것이다.
국보급 아티팩트를 모아다가 싸우면 이길 수도 있을 터.
물론 스승님 같은 사람이 들고 싸워야 하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마지막으로 좋아한다는 말이라도 하고 들어올걸. 뭐라고 반응하셨으려나. 미쳤냐, 깡화. 이러지 않을까.’
“강 헌터님.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강여화가 픽픽 웃자 옆에서 머리를 식히던 라일라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 아뇨.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서요.”
강여화는 당황한 듯 붉어진 볼을 감추며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사실 저도 일이 꼬여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생각을 정리하면서 원래 들어온 목적이 생각났습니다.”
“들어온 목적이라쇼?”
“라일라 길드장은 좋아하는 남자 때문에 들어왔습니다.”
“피, 필릭스 부회장님! 조, 좋아하다니요!”
필릭스가 끼어들며 대답하자 라일라는 황급히 그를 말렸다.
“와ㅡ 라일라 헌터님 멋있으세요.”
“아, 아닙니다! 강여화 헌터님,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라일라의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 모습에 쉬고 있던 다른 헌터들도 킥킥대며 분위기가 잠시 환기되었다.
“그런데 놈은 어디로 갔을까요?”
“제발 좀 멀리 갔으면··· 아, 그렇다고 다른 헌터들이랑 맞닥뜨리길 바란 건 아닙니다.”
강여화의 질문에 필릭스가 대답하다 황급히 말을 정정했다.
“부회장님, 조용한 것 같은데 출발할까요?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럽시다. 한시라도 빨리 라일라 길드장 남자 친구를 찾아야 하니까요.”
“나, 남자 친구 아니라니까요!”
라일라는 소리를 빽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허리춤에 찬 검을 조심히 한번 쓰다듬더니 숨을 골랐다.
“혹시 놈을 마주치면··· 일단 서포터 헌터들은 버프랑 디버프 바로 써 주시고, 탱커 분들은 단 3초만 버텨 주시길 바랍니다. 그 안에 제가 모든 마력을 다 쏟아서 스킬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필릭스의 말에 다른 헌터들이 제각각 대답했다.
“우선 아군을 먼저 찾으면 좋겠는데···.”
『아군이 뭔데에에에.』
필릭스의 양쪽 팔이 종이짝처럼 뜯겨 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악!!”
『나도 많이 아팠는데에에에.』
발록은 뜯어낸 두 팔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먼저 강여화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며 놈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렸다.
그러나 발록은 가뿐하게 손가락으로 공격을 막아 냈다.
“크윽!!”
그 틈에 라일라가 필릭스의 몸을 잡아당겼다.
그는 고통에 이미 기절한 상태.
“빌어먹을 자식!”
그녀의 발아래로 수백 개의 문자와 술식이 새겨지더니 회로를 따라 마력이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나무 창성 : 속박의 궤]생생한 초록 섬전이 일렁거리며 굵고 단단한 덩굴이 순식간에 발록의 몸을 감쌌다.
까드드드···.
더 조여질 수 없을 때까지 조여진 덩굴 더미에서 무언가를 짜부라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아픈데에에.』
굵은 덩굴 사이에 얼굴이 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발록이 이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사이 힐러들은 필릭스에게 포션을 먹이고 그의 팔을 붙이는 데 열중했고, 버퍼와 디버퍼들은 각자 가진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강여화와 라일라에게 중첩되는 버프만큼, 발록에게 건 디버프도 중첩되어 갔다.
“넌 대체 뭐야, 이 개같은 자식아!”
라일라는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필릭스를 일별하며 녀석에게 소리쳤다.
발록은 칠흑같이 새까만 눈동자를 깜빡이지도 않은 채 라일라를 마주했다.
“대체 정체가 뭐냐고!”
『그럼 너는 뭔데에에에.』
발록은 양쪽 눈알을 따로 굴리며 헌터들을 관찰했다.
그때 헌터 중 하나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놈의 지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종족으로···.”
『그게 뭔데에에. 내가 볼 때 고블린이나 너희나 다를 게 없는데에에.』
“뭐?!”
『너희가 내 펫 죽였으니 나도 죽이는 건데에에.』
라일라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녀석이 사람과 대등하게 언어로 소통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이놈의 논리가 1차원적이며 절대 대화가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이었다.
발록은 새까만 눈동자로 라일라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녀는 난생처음 보는 마물에게서 끝도 없는 적의와 욕망을 알아챘다.
이놈은, 악마다.
“다들 피해!!!”
그녀의 갑작스러운 외침과 동시에 대지에서 나무 방패 십수 개가 튀어나왔다.
[나무 창성 : 대지의 수호]탱커를 비롯한 방어 스킬이 있는 헌터들이 잇따라 스킬을 구현했고.
쾨ㅡㅡㅡㅡㅡㅡㅡ가가가가!!
그와 동시에 [속박의 궤]를 찢어 내고 나온 발록이 허공을 향해 울부짖듯 소리쳤다.
『이제부터 사냥 시작인데에에에에에에에!! 또 개미처럼 도망쳐야 내가 찾는데에에에!!』
가까이서 외침을 들었던 헌터들은 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몇몇은 실제로 고막이 터져 피가 나오기도 했다.
“얼른 도망가아아!!”
강여화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주변에 목소리를 높였다.
인정하겠다.
놈은 괴물이고 악마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
약점이 무엇인지 알려면 한 번씩은 공격을 가해 봐야 아는데, 그런 걸 기다려 줄 상대가 아니었다.
『아ㅡ 어둠의 주인이 내게 명령하네에에에.』
발록의 새까만 동공이 흰자위를 천천히 물들였다.
그는 마치 새로운 시야라도 얻은 것처럼 황홀경에 젖은 표정이었다.
이질적이고 소름이 쫙 끼치는 모습에 헌터들은 입술을 덜덜 떨고야 말았다.
처음 나타났을 때 느꼈던 그 숨 막히는 압박감이 그들을 감쌌고, 이어서 심장마저 짓누를 것처럼 흉흉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나는 힘의 악마, 발록.』
그에게서 새까맣고 흉측한 마기가 가시처럼 솟아 사방을 찔렀다.
『너희를 죽일 자라네에에에.』
발록의 몸이 사라졌다가 강여화와 라일라 앞에 나타났다.
휘두르는 손짓에 실드가 깨지고, 화살처럼 날아오는 꼬리에 모든 버프가 헛된 일이 되고 만다.
푸슈우우우욱!!
강여화의 어깨에 박힌 꼬리가 피를 마시듯이 꿀렁거렸다.
“크흡···.”
“강 헌터!!”
라일라는 다시 [나무 창성] 스킬을 쓰려 했다.
하지만 발록의 속도는 그 모든 행동들을 압도하고도 남았으니.
빠ㅡㅡㅡ악!!
복부를 걷어차인 라일라가 십여 미터를 날아갔다.
그녀는 각혈하며 자리에서 비틀비틀 일어났다.
독일의 영웅인 한스 슈뢰더, 그녀의 삼촌은 말했다.
절대 동료를 놔두고 등을 돌리지 마라.
‘그럼요, 삼촌.’
라일라는 삼촌의 말을 헌터 강령처럼 여기고 또 새기며 살아왔다.
지금 내가 죽는다면 아쉬운 게 몇 가지가 있다.
삼촌의 병원비와 시우에게 전할 감사 인사.
그녀는 허리춤에 찬 검을 손으로 꽉 쥐었다.
『너 질기네에에. 너부터 죽이면 되겠네에에에.』
발록은 꼬리로 꿰었던 강여화를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라일라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가 어떤 실력이든, 얼마나 강하든. 다른 헌터가 찾아와 널 반드시 죽일 것이다.”
『벌레는 그런 힘이 없는데에에에에.』
발록은 라일라의 어깨를 잡아 필릭스처럼 찢어 내려 했다.
그녀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ㅡㅡㅡㅡㅡㅡㅡㅡ빠아아아아!!!
그때 빛살과도 같은 형체가 나타나더니 발록을 걷어차 저 숲 끝으로 날려 버렸다.
라일라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대··· 시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