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P character in my novel RAW novel - Chapter 3
제3화
3화. 황실무고(1)
덜컥―!
“저하! 무슨 일이십니까?! 괜찮으신 겁니까?!”
이번엔 중년 여자보다 중년 남자가 먼저 들어왔다.
아벨의 집사였는데, 집사 옆에 작은 파란 창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작가가 준 능력 ‘천혜안’을 쓴다면 그 파란 창에 적힌 내용을 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아벨의 기억 속에 있는, 일주일간 아벨로 살며 잘 알게 된 인물이었지만 시험 삼아 천혜안을 시전한다.
『이름 – 그렉 발렌타인
정보 – 하베츠 황태자의 첩자이자 암살자. 8성 검사.』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중년 여자도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역시 시험 삼아 천혜안을 시전해본다.
『이름 – 제시 아올라
정보 – 크리스피 백작가 소속의 무인. 아벨의 가드 역할. 9성 검사.』
대단히 자애롭게 생긴, 아벨을 대단히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렉 발렌타인은 황태자 하베츠 아이테르너스의 첩자이자 암살자였고, 그런 그보다 한발 늦게 들어온, 그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차가운 외모의 시녀 제시 아올라는 아벨의 숨겨진 가드였었다.
‘그렉만이 아니었지.’
아벨이 기거하는 동쪽 별관은 황후와 2, 3 황비들이 보낸 첩자들과 암살자들로 넘쳐나고 있던 상황이었다.
사실 황궁은 부지 전체가 마법진으로 보호받고 있어, 신원이 파악되어 등록된 자가 아니라면 황궁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암살자들이 버젓이 함께 거주하며 아벨을 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벨을 죽이려는 황실의 인원들이 암살자들을 사용인으로 정식 채용해 황궁으로 들였기 때문이었다.
‘제시, 정말 고생이 많구나.’
그 많은 암살자들이 쉽게 행동하지 못했던 건, 바로 어머니 수잔 황비가 보낸 제시와 제니 자매 덕분이었다.
두 자매의 능력은 결코 시녀 따위를 할 하찮은 것이 아니었지만, 생명의 은인인 수잔 황비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아벨이 성인이 될 때까지만 옆에서 지켜주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가드 생활은 곧 있으면 끝나게 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기로 한 약속은 얼마 안 있으면 끝이 나게 된다.
‘6년 뒤쯤에 다시 만났었지.’
훗날 아벨이 마족 멸살을 위해 마멸단魔滅團을 만들어 활동할 때에, 그때 다시 만나긴 했었다.
‘아무튼.’
아무튼 두 사람이 수잔 황비에게 한 약속과는 달리 아벨의 가드 역할이 도중에 끝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벨이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에 입학하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그래도 양심은 있군. 루드스에 입학하기 직전으로 보내주다니.’
현재 아벨은 ‘지워진 황자’라고 불리며, 10살 이후 6년이나 동쪽 별관에 갇혀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아벨이 너무나 뛰어나 보였기에 황후와 2, 3 황비들이 아벨을 견제차 가둬둔 것이었다.
게다가 철가면을 씌워가면서까지.
그렇게 가둬놓고도 불안했는지 언젠가부터는 암살을 시도하고 있었고.
‘그것도 안 통하자 아벨을 확실하게 죽이려고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에 보내려고 한 거였어.’
아벨이 주신 아그네스의 가호와 성녀 다프네의 끝없어 보이는 신성력 때문에 어떠한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게 되자, 황후와 황비들은 다프네만이라도 떨어트리고자 아벨을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이었지.’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아벨은 제국 아카데미 루드스에 들어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금이 1월 28일이었다.
‘아직 한 달이나 남았군.’
루드스에 입학하기 전인 지금도 엄청나게 강해질 방법이 하나 있었다.
아벨은 하지 못했었던, 소설의 내용을 알던 주원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좋아.’
철저하게 준비해 최대한 빨리 강해질 생각이었다.
그것만이 작가가 만든 아벨처럼 바보같이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마족 멸살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소설의 아벨처럼 병신처럼 살 순 없잖아?’
그래서 뭐든 가능하다면 이용해야 했다.
‘기억나는 것들은 모두 이용해야 해.’
다시 말하지만 일주일 내내 진짜 아벨이 된다면 하고 망상을 해왔었다.
시간 지체할 필요 없었다.
‘바로 시작하자.’
씨익―
“그렉.”
아벨이 이상한 소릴 해서 급히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 아벨이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그렉도 멍청한 소리를 냈다.
“네? 저하?”
“어마마마께 내가 곧 찾아갈 거라고 전해라.”
“네?”
반문하며 의아하게 바라보는 그렉에게 아벨은 다시 한 번 친절히 말해준다.
“급한 일이니 어서 가 봐. 그리고 제시. 정복 좀 부탁해요.”
제시 또한 의아하게 바라본다.
두 사람이 아벨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아벨의 이상한 행동 때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벨의 달라진 말투 때문이었다.
아벨은 이때껏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하대를 한 적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토록 언짢은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었고.
철가면 때문에 표정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말투에서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멍청히 서 있는 그렉에게 싸늘한 말투로 말한다.
“그렉. 멍청히 서 있지만 말고 어서 가봐.”
먼저 정신을 차린 쪽은 제시였다.
허리를 굽혀 예를 갖췄다.
“네. 황자 저하.”
그렉은 그럼에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었는데, 그의 입가는 자애로웠지만, 그 외눈 안경으로 비치는 눈빛은 결코 자애롭지 않았었다.
아벨의 말투에 기분이 상했는지, 잠시 살기를 드러냈었고, 아벨은 그 살기 어린 눈빛을 놓치지 않는다.
천천히 허리를 굽히며 대답한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황자 저하.”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서둘러라.”
앞으로는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 지을 생각이었다.
날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 마음 써줄 정도로 착한 편이 아니었다.
그렉은 반말하는 아벨을 지긋이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나갔다.
그의 괘씸한 등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렇게 두고 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신 저딴 짓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를 만나야 해.’
친부인 파우스 황제는 다른 황실의 인원들만큼이나 아벨을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설정이었다.
단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수잔 황비가 자신보다 아들을 더 사랑한다는 그 질투심 때문에.
‘하지만 지금은 가능할 거야.’
그런 그에게 받아낼 수 있다면 꼭 받아내야 하는 게 있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황제는 아벨을 미워하고 있겠지만, 4년 뒤 있을 ‘1차 마족 침공’ 이후에 비하면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었다.
‘그리고 황제는 아벨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분명 황제는 지금의 아벨을 대단히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아벨이 황실무고를 다녀와도 분명 루드스에서 죽을 거라고 확신할 것이었다.
‘무엇보다 수잔 황비께서 도와주신다면.’
무엇보다 황제가 끔찍이 사랑하는 아벨의 친모인 수잔 황비가 아벨을 적극 도와준다면, 지금이라면 분명 얻을 수 있었다.
‘무조건 얻어야 해.’
“아벨 저하. 정복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시가 능숙하게 정복을 입혀주었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이젠 주원도 능숙하게 입혀주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똑똑―
“저하. 수잔 황비 마마께서 오셨습니다.”
수잔 황비는 아벨과 같은 동쪽 별관에서 기거했었다.
알리자마자 바로 온 듯했다.
“어마마마께서? 들어오시라고 해요.”
덜컥―
문이 열리고 아벨과 똑 닮은 여인이 들어왔다.
에브니아 대륙 최고의 미녀라는 명성답게 그녀는 아이를 낳았음에도, 나이가 들어감에도 여전히 예전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울먹이며 아벨에게 뛰어간다.
그리고 아벨을 안으려고 했다.
“아벨!”
자신을 안으려는 수잔 황비를 도리어 아벨이 조심스럽게 안아 주었다.
아벨의 덩치가 훨씬 컸기에 어쩔 수 없던 것이었다.
처음엔 수잔 황비의 적극적인 스킨십에 매우 당황스러워했었지만, 지금은 적응도 했을뿐더러,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그저 슬플 뿐이었다.
‘언제 죽을지 몰라서였지…….’
아벨이 갖은 암살에 시달리다 보니,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아들과 스킨십을 하려 한 것이었다.
특히 이번처럼 아들이 사경을 헤맸을 때는 더욱 그랬다.
하나뿐인 아들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그 불길한 생각에.
‘이젠 걱정하지 마세요…….’
수잔 황비를 볼 때마다, 바람난 남편에게 버러진 후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고생만 하다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아벨의 기억이 주원에게 영향을 미쳤기에, 안쓰러운 수잔 황비를 볼 때마다 심장을 도려내듯 가슴이 아려왔다.
‘불쌍하신 분…….’
수잔 황비는 아벨의 품에 안긴 채로 물었다.
“몸은 좀 어떠니……? 아직도 아픈 거니……?”
“……아니에요. 어마마마. 이젠 정말 괜찮습니다.”
“정말이지……? 정말 또 아픈 건 아니겠지……?”
오돌오돌 떨고 있는 수잔 황비의 등을 쓰다듬으며 안심시켰다.
“네.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이럴 일 없을 겁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제발…… 앞으로는 제발…….”
신을 신뢰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안심시키려면 신을 이용해야 할 듯했다.
“주신 아그네스께서 분명 우릴 지켜주실 겁니다. 제가 숱한 위험에서도 살아남은 것이 바로 그 증거 아니겠습니까.”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는지 흐느끼기 시작했다.
“……왜 우리한테만 이런 일이…….”
작가는 수잔 황비 또한 평생을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갔다고 묘사했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이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갔으니…….’
매일매일을 주신 아그네스께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드릴 테니 아들의 목숨만큼은 지켜달라며 울며 기도해온 그녀였었다.
‘이젠 그만하실 때도 되셨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자격이 있어.’
그래서라도 이번 기회에 반드시 황제에게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마마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응……?”
“폐하를 뵙게 해주십시오.”
“폐하를……?”
“네. 저와 어마마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폐하를 만나야만 합니다. 최대한 빨리.”
* * *
파우스 황제는 수잔 황비가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혼자 식사했었다.
그는 극도로 남을 불신했으며, 기피하는 성격의 소유자였었다.
지금도 아벨이 있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했고, 그 기색을 얼굴에 숨기지 않고 내비치고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참기 힘들었는지 스테이크를 썰던 포크와 나이프를 식탁에 탁! 하고 내려놓으며 묻는다.
“그래. 넌 도대체 어쩐 일이더냐?”
그의 병색이 짙은 창백한 얼굴과 나약함의 상징과도 같은 썩은 나뭇가지 같은 몸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폐하. 황실무고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십시오.”
소설에서 아벨은 황실무고에 들어가지 못했었다.
물론 작가가 더 큰 기연들을 주긴 했었지만 말이다.
‘그건 나중에 또 얻으면 되고.’
당연히 그건 또 그것대로 얻을 생각이었다.
“황실무고?”
티레시아스 제국은 에브니아 대륙에서 가장 크고 강대한 나라였다.
그런 나라의 황실무고이다 보니, 당연히 기상천외한 것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황태자부터 시작해 나머지 황자들 모두 들어갔었지만, 아벨만이 들어가지 못했었다.
‘원래는 황제만 들어가는 게 원칙이긴 했지만.’
사실 황실무고는 제국의 주인인 황제만이 출입이 가능한 곳이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했었는데, 그 예외도 황제의 자식들에게만 허락이 되었었고 자식이라도 제국을 위해 엄청난 공을 세워야만 허락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대에는 ‘자식이 아버지께 크나큰 효도를 하고 있기에 허락한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아벨을 제외한 모든 형제는 이미 황실무고에 다녀온 후였었다.
‘개소리.’
그들이 했다던 그 크나큰 효도는 바로 황제의 가장 귀한 보물인 수잔 황비의 안전을 ‘맹세의 마법’으로 보장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쓰레기 같은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해주지. 그 효도.’
소설에서 아벨에게 실질적으로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수잔 황비 한 사람밖에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수잔 황비를 지키기 위해선, 수잔 황비에게 더는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선, 그러니 주원은 기회가 있을 때 황실무고에서 자신을 도울 것들을 반드시 가져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