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0)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0화(10/125)
“엄마아아! 보고 싶었어요!”
뛰어간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누군가의 품에 달려들어 안겨들며 의연했던 낯을 구기곤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런, 아들. 위험하게 그렇게 뛰면 어떡하니?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치잖아.”
“헤헤.”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버니가 눈을 한 차례 깜빡거렸다.
“흐어엉, 아빠아아…… 나 멋진 거 못 뽑았어……. 허엉.”
“아이고, 우리 딸. 왜 울어? 아빠가 보기에는 우리 딸이 소환한 게 최곤데? 우리 공주님한테 잘 어울리는 멋진 팔찌야. 소환한 성물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이따 엄마 아빠랑 같이 알아보자.”
“흐잉… 그치마안.”
“뚝. 아빠랑 내일 드레스 사러 갈까? 훌륭하게 소환 의식을 마쳤으니까.”
“정말? 그러면! 나 로델리 부티크에서 파는 푸른 요정 엘라 드레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버니는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제 부모로 보이는 이들에게 안겨 재잘재잘 떠드느라 바빠 보였다. 부모의 얼굴에선 한없이 기특함과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는 것은 버니와 근처에 있던 뱀을 소환한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소년, 앨런뿐이었다.
“엄마!! 봤어? 나 멋진 거 소환했어!!”
“잘 봤지. 소리까지 녹음되는 최고급 영상구로 영상도 찍었어. 아빠는 바빠서 못 왔지만, 아빠한테도 꼭 보여 줄게.”
“응!”
“아무튼 기특해, 우리 아들. 안 울고 칭얼거리지도 않고 훌륭하게 소환 의식 잘 마쳤으니까, 가주님께서도 분명 우리 아들을 눈여겨보셨을 거야.”
버니는 마곰이를 조금 더 품에 바투 끌어안다가 머리 위에서부터 느껴지는 시선에 멈칫했다.
‘찌이잉!’
—한 느낌의 시선!
번쩍 고개를 들자 혼자서 아직 상석에 남아 있던 남자와 또 눈이 마주쳤다. 버니가 점찍어 둔 후보였다.
‘버니 아빠… 아니 보호자 후보!’
눈이 마주친 버니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또다시 머리가 바닥에 닿을 기세였다.
숙였던 머리를 일으키기 위해 두 팔을 허공에 파닥거리는 버니를 본 남자가 순간 멈칫하더니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참으로 거창한 인사를 마친 버니는 휙 몸을 돌려 어딘가로 뛰어갔다.
저도 모르는 새에 버니에게 간택당한 남자.
유디아의 기적.
불세출의 천재.
잘못 태어난 신의 사도.
악마에게 저주받은 괴물.
탄생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갖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키리엘 유디아는 인사성 밝게 제게 인사를 꾸벅 건네고 후다닥 멀어지는 토끼같이 작은 아이를 눈에 담았다.
보기 드문 물빛 머리카락에 반짝거리는 분홍색 눈동자.
이 방에 들어올 때부터 등에 곰 인형을 메고 있어서 눈에 띄던 아이였다.
솔직한 말로 귀족으로서의 예의라곤 밀알만큼도 없었으나,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눈에 띄던 180도의 인사를 떠올린 그가 설핏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버지까지 쫓아낼 줄이야.’
남들이야 잔뜩 화가 나서 떠난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키리엘 유디아는 제 아버지가 아이에게서 터져 나온 설움과 ‘개폭망’이라는 난생 들어본 적도 없는 망측한 단어에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숨기지 못해서 도망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실, 시험의 저택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각자 집안에서 귀족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범절 교육을 받고 들어오는 아이들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머리가 커서, 돈과 권력, 명예를 알기에 잘 보여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아이들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귀여운 애들이 없다고.
그러나 버니라는 아이는 어땠나.
바닥에 덥석덥석 주저앉고 그 작은 몸으로 뽀짝뽀짝 용케도 잘 걸었다. 저만큼 순수한 아이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이 어릴 때 귀여웠던 것도 아니니 아버지가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참아내지 못한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공작의 자식들이 어릴 때 귀여웠던 것도 아니니… 도망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의외로 귀여운 걸 좋아하시고.’
물론, 그를 제외하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버니라는 아이는 유디아 공작가의 두 개의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아버지의 신수가 찾아낸 아이였지.’
신수가 찾아냈으니, 공작가의 피를 이은 것은 분명하지만, 누구의 아인지는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사생아.
그렇게 생각한 키리엘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키리엘 유디아는 마족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에게서는 아주 미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족을 증오하는 그를 아주 거슬리게 하는 기운이.
아이가 그에게 인사를 하고 쪼르르 달려간 곳은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 앨런이었다.
굳은 표정을 한 채 서 있다가 고고한 늑대처럼 나가려는 앨런을 붙잡은 아이는 그의 소맷자락을 쭉쭉 잡아당겼다.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데 이곳까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앨런은 인상을 쓰면서도 슬쩍 아이의 앞에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대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구기면서도 무척이나 순종적이게.
반인반수, 앨런.
수인족과 유디아 가문의 방계 여자 중 한 명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일족의 수치라며 수인족이 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인간일 수도 없는 아이.
형형한 황금색 눈동자는 수인족 특유의 것이었다.
심지어 앨런은 추운 겨울날, 유디아 공작가 앞에 편지 한 장과 함께 버려져 있었던 탓에, 유디아 공작가가 거두어 말도 하지 못하던 갓난아기 시절부터 시험의 저택에서 자라난 아이였다.
소년의 부모는 아이만 버린 채 야반도주를 해 버려서 어디에 있는지 생사도, 소재지도 불분명했다.
‘별로 흥미는 없지만…….’
다만, 앨런이라는 아이가 뽑은 뱀은 상당히 높은 둥급의 신수인 듯 보였다. 아마 아버지가 면담을 할 때 설명하고 다루는 법을 알려 주겠지.
“…….”
거기까지 생각한 키리엘 유디아가 막 몸을 돌리려는 때였다.
그는 눈앞에서 펼쳐진 풍경에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말았다.
어린 소녀가, 시선을 맞추느라 몸을 숙이고 앉은 소년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었던 탓이다.
“자래써! 머찐 왕뱀이 하느라 수고해써. 기특해! 차카다!”
“…….”
조금 과장해서 고사리만 한 작은 손을 쫙 펼쳐 때리는 건지 쓰다듬는 건지 모를 서툴기 짝이 없는 손길로 머리를 도닥거리는 버니의 행동에 앨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뭐, 뭐, 뭐 하는 거야?!”
마치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란 앨런이 언성을 높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얘는 대체 왜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거야?’
모두가 자신을 괴물이라고 꺼리는데.
밀려오는 당혹스러움에 앨런은 저도 모르게 뻗어 오는 손을 툭, 불쾌하다는 듯 밀치기까지 했다.
손이 내쳐진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자래써요, 쓰담쓰담! 버니랑 왕뱀이는 아빠랑 엄마 업써. 그러니까 같이…….”
버니의 말에 앨런의 눈이 훅 커졌다. 이런 어린애한테 동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하아?! 그딴 거 필요 없거든. 애초에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꼬맹이 주제에, 저리 꺼져! 이 못난아!”
으르렁거린 앨런이 휙 몸을 돌리더니 성큼성큼 축복의 방을 나가 버렸다.
우르릉.
콰광!
번쩍!
오늘도 버니의 주변에는 먹구름이 끼고 천둥과 번개가 쳤다. 버니가 입술을 툭 내밀었다.
“버니 안 몬나니인데…….”
루리엘은 매일매일 버니한테 귀엽다고 했었는데.
“버니 차례인데…….”
한 번씩 서로 쓰다듬어 주자고 하려고 했는데.
휴.
버니는 들끓는 아쉬움을 한숨 한 번으로 포옥 내보냈다.
“사해생할이는 어렵꾸나.”
버니, 어른 언제 되지?
수많은 시련과 사해생할이라는 걸 거쳐야만 어른이 될 수 있고, 어른이 되어야만 왕 큰 대마왕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힐긋 고개를 돌린 버니는 아까보단 조금 조용해진 주변을 돌아보았다.
아직 몇몇 이들은 남아서 제 자식을 품에 끌어안은 채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버니가 마곰이를 옆구리에 끼곤 한쪽 팔을 슬쩍 들더니 자신의 머리를 두어 차례 쓰담쓰담 했다.
‘버니의 달걀이두 기특해.’
어쩌면 이 작은 달걀에서 아기 드래곤이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
버니는 메추리알처럼 작은 달걀 속에서 아기 드래곤이 태어나는 상상을 하며 히죽 웃었다.
“버니가 키워 주께. 흐겸룡아.”
짧은 팔을 들어 연신 제 머리를 쓰다듬던 버니가 만족했다는 듯 손을 툭 내리곤 몸을 돌렸다.
“…….”
그리고 그 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시선이 있었다.
버니가 축복의 방을 나가자, 시선의 주인도 곧이어 건물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