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06)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07화(106/125)
무사히 호뭉이를 위협하는 나쁜 악당들을 해치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돌린 버니가 한껏 가슴을 앞으로 내민 채 샬로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샤로롱. 버니 예뻐?”
“…….”
한참의 침묵 끝에 샬로네가 입을 열었다.
“…아니. 옷은 내가 다시 골라 줄 테니까 옷도 벗고 화장도 지우고 올래? 조금 부끄러워.”
쿠웅!
커다란 돌덩어리가 또다시 버니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흐잉…….”
버니가 울상을 지었다.
오늘 있었던 일 중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다.
* * *
“애들이 안 나오네요, 아버지.”
“음.”
앨런의 말에 키리엘이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살피곤 미간을 좁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샬로네와 버니만 보낸 게 영 신경 쓰였던 터라, 적당히 쇼핑을 끝내고 가게 앞에서 대기한 지 벌써 30분째였다.
안쪽 상황을 물어보니 아직 쇼핑 중이라는 얘기만 돌아왔다.
다행히 즐겁게 쇼핑하고 있는 건가 싶기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영 불안했다.
눈에 띄지 않으면 사건에 휘말리거나, 사건을 만들고 있거나, 사고를 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너희는 더 구경했어도 됐는데, 괜찮겠니……?”
마차에 기대선 채 여느 때처럼 나른하게 늘어지는 목소리를 내는 키리엘의 말에, 옆에 기대어 서 있던 칼바드가 흥, 코웃음을 치더니 심드렁한 낯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볼 것도 없었는데요, 뭘.”
“그런 것치곤 네가 제일 많이 샀잖아.”
“그… 그건 내가 키가 너무 커서 맞는 옷이 없으니까 새로 산 것뿐이거든?!”
“응, 그러시겠지.”
앨런이 칼바드를 힐긋 보곤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앨런의 심드렁하면서도 무심한 태도에 칼바드가 울컥한 듯 뺨을 씰룩거렸다.
“진짜거든?!”
“알겠다니까?”
“그러니까 너는 형에 대한 존경심을 좀……!”
딸랑—.
주먹을 꽉 쥐며 칼바드가 소리를 지르는 사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가게 문으로 향했다.
“어? 아빠아앙!!”
문이 열리자마자 모습을 드러낸 버니가 키리엘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곤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토도도도 달려와 키리엘의 다리에 덥석 원숭이처럼 매달렸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왜 다리에 매달리는 걸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를 일이다.
“버니, 쇼핑은 잘했니?”
“네엥. 버니, 엄청나게 옷 부자 됐어여. 무려 공짜.”
엄지를 척 들어 보인 버니가 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키리엘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공짜? 그게 무슨…….”
“내가 사 줬네. 가게에는 제대로 돈을 지불했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키리엘 공자.”
문득 들려온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리엘 유디아가 눈매를 좁히며 살짝 고개를 숙이자 옆에 서 있던 앨런과 칼바드도 키리엘을 따라 엉거주춤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후 폐하.”
키리엘 유디아의 인사에 황후, 로잘린이 설핏 웃는 낯으로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됐네. 머잖아 사돈 될 사이에 이렇게 격식 차린 인사를 받고 싶진 않아.”
로잘린의 말에 키리엘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순간 떨떠름함을 채 감추지 못한 상태로 고개를 들자, 황후가 퍽 짓궂은 낯으로 웃고 있었다.
“…아직 어린애들인데 이른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그나저나 자네는 못 본 새 표정이 풍부해졌군. 예전에는 만들어진 인형이라도 보는 느낌이었는데 말이야.”
“인상 쓸 일이 많아지더군요.”
“웃는 일도 많아지지.”
키리엘의 말에 황후가 공감한다는 듯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키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실상 황후도 황태자를 낳고서 꽤 많이 바뀐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아이가 참 솔직하고 귀엽더군.”
황후가 키리엘의 다리에 잘도 매달려 있는 버니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쓰담쓰담에 버니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이 정도 나이가 됐으니, 약혼 날짜는 빠르게 잡아도 괜찮겠어.”
“그러니까 그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겨우 약혼뿐이잖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게. 나는 얼른 침을 발라 두고 싶은 것뿐이니까.”
“침…….”
키리엘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뭐, 귀여운 딸이 생긴 것 같아 좋았단 말일세.”
조금 사고뭉치긴 하지만.
황후가 작은 목소리로 슬쩍 한마디를 덧붙였다.
키리엘이 알 만하다는 낯으로 시선을 내려 버니를 보자, 고개를 젖히고 있던 버니가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실상 이 넓은 매장을 지치지도 않고 수 바퀴는 뱅글뱅글 돌아다니며 폴짝거리는 통에, 나중에는 황후 역시 따라다니는 것을 포기했을 정도였다.
“아빠, 버니 아까 화장했어여. 빨간 드레스 입구 치렁치렁해져서 왕왕 큰 어른 됐었는데 샤로롱이 이상하다고 지우랬어.”
버니가 지친 낯으로 가게에서 나오는 샬로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쟤가 결국은 나를 물먹이려고……!’
돌연 주목받은 샬로네가 순간 굳은 채 당혹스러운 낯으로 멈칫하며 입을 떡 벌렸다.
“그게 아니라……!”
버니가 자신이 한 일을 이른다고 생각한 샬로네가 변명하기 위해서 급히 입을 연 순간이었다.
“그럼 이상했겠지.”
키리엘이 흐물흐물 녹초가 되어서 나온 샬로네를 한 차례 눈에 담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
샬로네가 멈칫하며 놀란 눈으로 키리엘을 보았다. 반대로 버니는 입을 떡 벌리며 충격받은 눈으로 키리엘을 보았다.
“아닝데! 로엘이 엄마는 저 예쁘댔어여.”
키리엘이 황후를 보자, 황후는 그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겠네.’를 시전하는 중이라는 게 확실히 보였다는 말이다.
“세상엔 하얀 거짓말이라는 게 있단다…, 버니.”
목소리만은 한없이 다정한 키리엘의 말에 버니의 고개가 툭 기울어졌다.
“하얀 거짓말……?”
“그래.”
하양이 거짓말……?
“그럼 까망이 거짓말도 있어여?”
“그렇지.”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버니의 눈동자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사이, 키리엘이 빠르게 아이를 다리에서 떼어내 마차에 올려 주었다.
“샬로네, 괜찮았니?”
“…아.”
좋은 언니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괜찮았다는 말이 튀어나와야 하는데, 빈말로라도 그 말이 튀어나오질 않았다.
입술을 뻐끔거리던 샬로네가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아뇨.”
“그랬겠지. 고생했다. 고맙구나.”
“그래도 강단 있는데? 쟤를 데리고 몇 시간이나 같은 건물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틴 거잖아.”
칼바드가 코 밑을 쓱쓱 문지르더니 샬로네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뭐, 첫째 오빠인 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훌륭하네.”
샬로네는 칼바드를 한 차례 흘겨보고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진심으로 쉬고 싶을 뿐이었다.
옷을 다 벗기고, 싫다고 고집을 부리는 걸 설득해서 화장도 지우게 하고, 이상한 옷을 고를 때마다 막아 주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무튼 조만간 약혼식 관련해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네. 황실과 공작가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얘기가 나왔는데… 그냥 두는 것도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말이야.”
“선택은 버니에게 맡기겠습니다.”
“그건 걱정 없을 것 같군.”
황후가 웃으며 어느새 다시 마차에서 내려와 키리엘의 옆에 오도카니 서 있는 버니의 앞에 쪼그려 앉더니, 시선을 맞추곤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로엘과 결혼하자는 약속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렇지? 버니.”
“네엥. 로엘, 다른 어린이가 훔쳐 가지 않게 하려고 침 발라 둬여.”
결국, 또 이상한 걸 배웠구나.
키리엘은 마뜩잖게 이미 선수를 쳐 버린 황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내 주시면 논의는 해 보겠습니다.”
“로엘이 항상 버니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그럴 만하군. 아이가 귀여워.”
“압니다.”
키리엘의 단호한 대답에, 황후가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외출이었지만 아주 흡족했네. 나오길 잘했어. 조만간 또 보도록 하지.”
“…들어가십시오.”
“아이 넷을 데리고 있는 키리엘 유디아라니,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야. 긍정적인 쪽으로 변화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황후의 말에 순간 멈칫했던 키리엘은 이내 무표정한 낯으로 한 차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버니를 다시 달랑 들어 마차에 넣었다.
“이만 가자꾸나.”
‘호뭉이 진짜로 흐물흐물.’
툭, 마차에 타자마자 꾸벅꾸벅 졸던 샬로네는 결국 그대로 마차에 이마를 기댄 채 잠들고 말았다.
“어, 잔다.”
칼바드가 말했다.
지친 낯으로 잠에 빠진 샬로네를 보던 앨런이 말없이 손을 뻗어 머리를 제 어깨 쪽으로 살짝 당겨 기대게 했다.
“샤로롱 자여?”
“그래, 피곤했나 보구나.”
샬로네를 물끄러미 보던 버니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꾸물꾸물 키리엘의 무릎에 올라 그의 품을 냉큼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버니두 잘래영.”
피곤이가 몰려와.
자그마하게 덧붙인 버니가 이윽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잘도 자네.”
칼바드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무척이나 평화로운 한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