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07)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08화(107/125)
* * *
“흐흠.”
갑자기 아침 식사 자리에 달려 들어와 허리춤에 손을 턱 얹은 버니가 한층 으쓱한 낯으로 키리엘을 바라보았다.
상석에 앉아 있던 키리엘이 와인 잔을 기울이다 말고 멈칫하며 버니를 보았다.
버니가 이렇게 나올 때면 자신이 어떤지 평가해 달라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키리엘은 빠르게 버니를 스캔하곤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을 몇 군데 찾아냈다.
다행히 오늘의 버니는 평소와 아주 많이 달랐다.
“일전에 산 드레스를 입었구나. 머리 장식은 황후께서 선물해 주신 거니?”
버니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조금 더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못 찾은 게 있는 모양이군.’
눈을 가늘게 뜬 키리엘이 버니를 다시 한번 훑었다.
쑤욱 튀어나온 가슴께 위에 영롱한 은빛 목걸이가 보였다. 붉은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다.
“이런. 아빠는 처음 보는 목걸이인데 누구에게 선물 받았니?”
흐흥.
코웃음을 친 버니의 가슴이 어느새 다시 원래대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정답을 제대로 다 맞힌 모양이다.
키리엘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맞추지 못하면 버니의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키리엘은 종종 버니의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로엘이 줬어여. 로엘이 편지 썼는데 버니가 로엘이 준 드레스는 못 입는다고 했거든여.”
“아아, 예쁘구나.”
노골적이기도 하고.
굳이 제 눈동자 색이랑 똑 닮은 루비를 박아서 보낼 건 또 뭐란 말인가.
‘황족 놈들이란 정말…….’
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리지 않고 음흉한 구석이 있었다.
버니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키리엘이 허리를 숙여 버니를 달랑 들어 올렸다.
“그나저나 정말로 약혼할 생각이니? 버니.”
“네엥. 로엘이 편지에서 말했는데 약혼하면 버니는 이제 왕왕 커다란 보호자가 생겨서 최강이라 덤빌 사람이 없대여.”
이미 뒤에서 로엘이 살살 꼬셔 둔 모양이었다.
언제 편지에 그런 내용을 적었던 것인지. 키리엘이 골치 아픈 표정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어야 하는 일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제로 정말 서로 좋아하게 돼서 결혼까지 가든, 중간에 서로 마음이 잘 맞지 않아 헤어지게 되든 그건 전부 버니의 선택이니까.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나이 먹고 그 어린애가 열심히 노력하는 걸 방해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한편으론 잠시 잠깐의 장난이 아닐까 싶었는데, 의외로 로엘은 몇 년간 꾸준하게 굴었다.
“…그래. 그러면 오늘 약혼 발표를 한다고 하니까 그것만 생각하렴.”
“발표하면 버니가 뭐 해야 해요?”
당장에 음성증폭기라도 가져올 것만 같은 버니의 모습에 키리엘이 고개를 젓곤 버니를 식탁 의자에 앉혀 주었다.
“아무것도. 그냥 발표만 할 거니까.”
“로엘, 버니 거라고 도장 쾅쾅이에여?”
“그런 거지. 아마 그러면 또 많은 사람들이 버니한테 말 걸고 싶어서 난리를 칠 거다. 그러니까…….”
키리엘이 버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버니가 뺨을 발그레 물들이더니, 냉큼 머리에 힘을 주곤 더 비비적거렸다.
버니는 항상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이렇게 즐기곤 했다.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아빠한테 달려와서 이상한 사람이 말 걸었다고 해요.”
“아빠가 없을 땐?”
“음… 일단 주변을 휙휙 둘러보고, 아빠가 없으면 주변에 있는 무기를 들고 물 빵야빵야 자세를 준비한 뒤에 물건 뒤에 숨어여. 그래서 누군가 다가오면 물을 빵야빵야… 아얏!”
키리엘이 망상에 빠져 혼자서 첩보물을 찍고 있는 버니의 이마를 검지로 아프지 않게 톡 치곤 한숨을 내쉬었다.
“버니…….”
나른함 속에 듬뿍 담긴 피곤함에 버니가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버니 눈치 백 단.’
아빠 머리 지끈지끈하기 직전이다. 여기서 더 아빠를 지끈지끈하게 하면 아빠의 머리에 뿔이 날지도 모른다.
인간 아빠가 마족 아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어쩌면 좋을지도.’
아빠, 버니랑 똑같은 마족?
생각하던 버니가 고개를 열심히 좌우로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얼마 전에 산처럼 쌓여 있는 육아 서적을 보았지.’
아무래도 아빠는 버니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은 것이 분명하다.
《아이, 어떻게 키울까?》
《어린이의 성장 발달에 관하여》
《우리 아이가 자꾸 요정이 되고 싶대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의 양육법》
《8살, 감당할 수 없는 나이? 아뇨,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분명 그러한 제목의 서적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버니가 다리를 동동 구르며 입을 열었다.
“통신구로 아빠한테 연락한 다음, 주변에 있는 아는 어른에게 가요. 아는 어른도 없으면 경비대가 있는 곳으로 튑니다!”
“그래, 연회장에서는 웬만하면 아빠 옆에서 떨어지지 말렴. 내가 아니면 네 오빠들이나 황태자 옆에 붙어 있고.”
버니의 대답에 키리엘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버니와 공방을 벌이는 사이, 어느새 식탁에 자리가 꽉 찼다. 오늘도 버니와 티격태격하는 것을 구경하는 자식들을 보며 그가 입을 열었다.
“웬만하면 곁에 있겠지만, 한 번은 황제에게 불려 갈 테니 그동안은 너희가 버니랑 샬로네를 잘 챙겨 줘야 한다. 앨런, 칼바드.”
버니의 옆에 앉아 있던 샬로네가 그 말에 멈칫했다.
힐긋 옆을 보니 버니가 생글생글 웃으며 샬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샬로네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요즘 버니만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마족인데…….’
샬로네가 마녀에게 줄곧 듣고, 온갖 책을 통해 학습한 마족들과 버니는 너무나도 달랐다.
악의와 불신으로 점철된 존재가 바로 마족이라고 배웠는데, 웃기게도 가끔 샬로네는 버니의 그 웃는 얼굴에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곤 했다.
“…….”
도대체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저렇게 천진하게 자라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걸까?
물론, 저 애가 마족임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고 위협 따위는 없는 배부른 환경에서 자라난 행운아이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버니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모든 이들이 같은 모습으로 자라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샬로네는 스스럼없이 손을 잡아 오는 제법 따뜻한 손길이, 저보다 훨씬 커다란 사람들 앞을 당당히 가로막아 설 수 있는 그 용기가, 새로운 것에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들 수 있는 그 무모함이…….
‘부러워…….’
그래, 자신도 모르게 부럽다고 생각할 때가…….
흠칫.
문득 든 생각에 샬로네는 다급히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이 애를 무사히 쫓아내고, 이 집안에 유일한 소공녀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마녀가 크게 실망할 것이다. 더는 도와주지도 않겠지.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찾기 전에는 마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심장이 생겨나지 않는 이상, 마녀가 언제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인형을 만들어 낼지 모르니까.
“샤로롱, 어디 아파?”
툭.
이마에 닿아 오는 작은 손바닥에, 샬로네가 슬쩍 몸을 뒤로 물리며 버니의 손을 피했다.
“…별로.”
샬로네의 말에 버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떻게든 날 좋아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톡.
또다시 버니의 손이 샬로네의 손등에 닿았다. 울컥한 샬로네가 미간을 찡그리며 손을 빼려던 때였다.
“괜찮아.”
문득 들려온 말에 샬로네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버니는 평소처럼 웃지 않고 있었다. 그저 말없이 샬로네를 바라보며 재차 입을 열뿐이다.
“샤로롱, 나쁜 마녀한테서 버니가 지켜.”
흠칫.
샬로네는 잘게 떨리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버니를 보았다.
‘뭐야, 마치 전부 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