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10)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11화(110/125)
뚝.
순간 잔잔하게 흐르던 음악이 끊겼다.
사람들이 조용해지고, 문이 활짝 열리더니, 병사가 바짝 긴장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로엘 라브디아 로티스 황태자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호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에 익은 소년이 무표정한 낯으로 성큼성큼 카펫을 밟으며 연회장에 발을 디뎠다.
무심하게 들어오면서 눈동자만 굴려 천천히 주변을 훑던 로엘의 표정이 버니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화악 밝아졌다.
“……!”
환하게 밝아진 황태자의 표정에 좌중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서글서글하고 능글거리는 성격의 황제와는 다르게, 황태자인 로엘은 과묵하고 오만하며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황태자가 병상에서 일어났다는 소문이 돈 후, 사람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걸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대답은커녕, 경멸 가득한 시선을 마주한 이들이 수두룩 빽빽이라는 것은 사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모두가 하나같이 생일 연회에 두 손 두둑하게 참가한 것이었다.
물론, 나이대가 맞는 자신의 딸들을 함께 대동해서 말이다.
“버니—!”
로엘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순식간에 키리엘 유디아의 앞에 섰다. 버니의 얼굴이 살짝 밝아지더니 이윽고 눈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안뇽.”
키리엘의 품에 안겨 있던 버니가 바동바동 손을 흔들며 마주 인사를 건넸다.
“아빠, 나 내릴래여.”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 버니.”
“버니는 제가 책임지고 챙기겠습니다, 아버님.”
로엘의 말에 키리엘이 살짝 피곤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아버님……?”
“아버님이라니. 황태자께서 유디아 공자의 양자로 들어가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아니면 무슨 부자의 연을 맺었다거나…….”
“아니, 그렇게 되면 유디아 공자는 결혼도 하지 않고 애만 다섯이 되는 게 아닙니까?”
“아뇨! 그 이전에 상황이 그렇게 되면 황태자 전하께서는 황태자 전하로 계실 수 없는 거 아닙니까.”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헛소리에 키리엘이 긴 한숨을 내쉬며 버니를 로엘의 앞에 내려 주었다.
로엘이 냉큼 버니의 손을 붙잡더니, 잘 지냈냐며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이거 아니에요?”
“이거라니요?”
“왜, 그 소문 있었잖아요. 불사조를 소환한 유디아 공작가의 소공녀랑 황태자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요. 황태자께서 유디아 공작가에 방문하는 일도 잦으셨고…….”
“보세요, 저기 손잡은 거.”
해사하게 웃는 로엘을 바라보던 버니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로엘, 혼자야?”
“응, 너 보려고 먼저 왔어. 왜?”
“시뭉… 아니, 로엘 사촌이 동생은 어딨어?”
“내 사촌 동생? 아아… 설마 시먼을 말하는 거야?”
눈을 가늘게 뜬 로엘의 말에 버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엘이 버니의 손을 조금 더 힘주어 잡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시먼은 이따 오지 않을까? 걔는 왜 찾아?”
“으응, 버니 시뭉이한테 볼일 있어서.”
“무슨 볼일?”
“비밀.”
버니가 히죽 웃으며 코 밑을 쓱쓱 문지르곤 작게 속닥이며 몸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로엘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로엘은 툭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꾹 누르며 눈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나한테도 비밀이야?”
“웅.”
“그으래…….”
버니의 손을 잡은 로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버니의 일이니 사실 엉뚱한 생각일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할 때면 조금 속이 상하기도 했다.
“뭔가 위험한 건 아니지?”
“웅.”
“내가 도와줄 순 없는 거야?”
로엘이 버니의 손을 붙잡고 슬쩍 고개를 숙여 얼굴을 들이밀었다.
‘헉, 번쩍번쩍.’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황제만큼이나 번쩍번쩍해지는 로엘의 얼굴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오자, 버니가 다른 손으로 로엘의 뺨을 꾹 뒤로 밀었다.
“로엘, 얼굴 너무 가까워.”
“…….”
졸지에 고양이 발에 밀려나듯 얼굴이 쭉 밀려난 로엘이 발갛게 자국난 뺨을 손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키리엘 공자님.”
“황태자 전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버니가 떨어져 나가자마자 여기저기서 몰려들기 시작한 사람들이 키리엘의 주변을 둘러싸자, 이번엔 버니가 인파에 의해 뒤로 쭉쭉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뿐이랴.
키리엘 유디아 때문에 여기저기서 눈치만 보던 이들 역시 황태자가 키리엘 유디아에게서 멀어짐과 동시에 그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으에엥?!”
“버니……!”
당황한 로엘이 버니에게 손을 뻗었다.
“로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쭉쭉 밀려난 끝에, 버니는 텅 빈 연회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였다.
버니가 주변을 휘휘 돌아봤다.
훗.
‘자유.’
드디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었다.
어른의 계단 두 번째를 올랐을지도 모른다.
꼬르륵.
몸을 들썩거린 버니가 좌우를 슬쩍 둘러보더니 먹을 것들이 가득 쌓인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맞아요, 요즘 트윈즈 부티크의 옷이 엄청난 인기죠. 요즘은 대기도 최소한 1년이래요. 맞춤 제작 드레스를 받으려면 3년, 4년까지도 꽉 찼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어머, 거기가 그 정도예요? 거기서 옷을 주문하셨다니 대단하시네요, 샬로네 영애. 너무 부러워요.”
“그러게요, 저도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거든요.”
“아니에요. 숙부께서 좋은 기회를 주신 거예요.”
“다음에 저희도 한번 소개 부탁드릴게요.”
“아, 그건 확답은 어렵지만… 그래도 키리엘 숙부께 한번 말씀드려 볼게요.”
웃으며 말한 샬로네가 시선을 느리게 내리깔았다.
‘트윈즈 부티크에 예약 없이 갑자기 갈 수 있었던 게 그 애 덕분인 줄은 몰랐지…….’
유디아 공작가가 트윈즈 부티크의 사업 지원을 해 준 출자자인 줄도 몰랐고 말이다.
그 덕분에 샬로네도 버니도 마담 로벨리아에게 분에 넘치는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뿐이랴, 드레스도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넘겨주었다고 황후 폐하가 말하는 것도 들었다.
‘…버니가 부탁하면 바로 들어주겠지만.’
글쎄.
자신이 부탁해도 과연 그 사람이 제 말을 들어줄까?
‘마녀는 키리엘 유디아가 형을 무척 잘 따라서 내게도 잘해 줄 거라고 했는데…….’
못 해 주는 건 아니지만, 항상 버니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이유는 알겠다.
버니는…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눈을 떼면 항상 이상한 일을 벌이기 일쑤였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유디아 공작가의 일원이라고 밝히니, 이미 무리가 있던 영애들이 생각보다 간단하게 그녀를 대화에 끼워 주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유디아 공작가의 분들은 모두 성물이나 성수가 있다고 하던데 영애께서도 그러신가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샬로네는 상념에서 벗어나 냉큼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또래의 영애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말을 맞춰 주니,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최근 이맘때 영애들의 뜨거운 감자는 새로운 드레스나 신상품 같은 것,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또래들의 약혼 소식이었다.
그리고 폐쇄적인 유디아 공작가에 대해서도 꽤 궁금한 모양이고.
“저는 아직 소환 의식을 치르지 않았어요. 한 달 뒤가 의식 날이거든요.”
“아아, 맞아요. 1년에 한 번씩만 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영웅이셨던 디오스 소공작 각하의 따님이라니……. 분명 엄청난 걸 소환하실 게 분명해요!”
“그러고 보니 방계의 사생아가 불사조를 소환했다던데 정말인가요?”
웃음기를 머금은 누군가가 입을 열자 샬로네가 멈칫했다. 버니의 이야기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만월만 되면 앨런과 함께 버니가 던진 공을 물어 오는 놀이를 하는 그 새가 불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디아 공작가의 사람들 모두가 그 붉은 새를 불사조라고 불렀다.
샬로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자세히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불쾌하시겠어요. 사생아 주제에 겨우 불사조 하나만 믿고 키리엘 공자님을 독차지하곤 주제넘게 나대잖아요.”
“어머,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저기 보세요. 사생아의 천한 냄새는 지울 수가 없는 모양이네요?”
영애들이 키득거리며 웃는 것을 본 샬로네가 고개를 돌려 버니를 보곤 속으로 탄식했다.
키리엘 유디아의 주변에 인파가 몰린 것을 보니, 그사이 버니가 떨어져 자유가 된 모양이었다.
‘쟤는…… 대체 저기서 뭘 하는 거야?’
샬로네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