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13)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14화(113/125)
닫히는 테라스 문을 바라보던 버니가 슬금슬금 게걸음으로 다가가 테라스의 유리 부분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얼굴을 바짝 붙인 탓에 찌부러진 시야 사이로 희미하게 안이 보였다.
샬로네와 여자가 마주 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살짝 죽어서 생기가 없는 것 같은 눈. 분명히 눈은 나쁜 사람의 눈인데… 목소리는 아빠만큼이나 다정했다.
‘호뭉이를 구해 오는 게 맞을까?’
아니면 그냥 둬야 하나?
버니가 고민하며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유리창에 짙게 난 자신의 얼굴 자국을 손끝으로 문지르던 버니는 결국 슬쩍 몸으로 문을 밀었다.
‘버니, 실수로 들어온 걸로.’
몸으로 문을 연 버니가 돌연 갑자기 휘청휘청 테라스를 걷더니, 곧 바닥에 털썩 무너지듯 주저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앗~ 버니 발이 미끄러져서 그만 실수로 문을 열구 말았어…….”
아얏.
아픈 듯한 소리를 낸 버니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
“…….”
샬로네가 더할 나위 없이 차갑게 식은 눈으로 버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당함과 어이가 없음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눈이었다.
“후후.”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하얀 머리의 여자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의미심장한 낯을 한 채 또각또각 걸어와 버니의 앞에 섰다.
“진짜 이상하네.”
그녀가 느긋하게 쪼그려 앉더니 엎어진 버니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주며 고개를 기울였다.
“얘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창백한 낯의 여자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빙긋 웃어 보이더니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너 대체 뭐니? 혹시…….”
여자의 입술이 버니의 귓가에 바싹 다가왔다.
온몸을 파고드는 찌릿찌릿한 감각에 버니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빙의자니?”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버니의 귓가에 속삭였다.
두어 차례 눈을 깜빡인 버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빙의자?”
어딘가 낯익으면서도 무척이나 낯선 단어에 버니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때였다.
“아니라고? 아닌데……. 원래 네가 이런 캐릭터일 리가 없거든. 너는 음침하고 어둡고, 그러면서도 또 인간의 온기를 원하며 사랑받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캐릭터란 말이야.”
“버니 그런 애 아닌뎅.”
“아니, 넌 그런 애야. 그렇게 정해졌지.”
여자의 말에 버니가 미간을 찡그렸다.
역시 찌릿찌릿 기분이 좋지 않다.
버니가 입술을 툭 내밀곤 팔다리를 열심히 바동거렸다.
“흠…….”
그러거나 말거나 버니의 뒷덜미를 잡아 든 여자는 한참이나 턱을 문지르며 버니를 느긋하게 살폈다.
“아니면 주변에 뭐라 조언을 해 주는 어른이나 다른 사람이라도 있었니?”
“이거 놔아앙, 아줌마아!”
“어머.”
버니가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니 여자가 결국 버니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바닥에 착지한 버니가 후다닥 샬로네에게 달려갔다.
“마족이라 그런가? 역시 무식하게 힘이 세네.”
흠칫!
버니의 몸이 크게 떨렸다.
‘이 사람 버니가 마족이라는 거 알아?!’
아무리 봐도 악당인데 버니가 마족이라는 거 알면 어떡하지?
다만 항상 주의해 주세요. 마족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된다는 걸요. 들키면 키리엘 유디아도 눈감아줄 수 없을 거예요.
버니가 고개를 돌렸다.
여기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들키면 버니 아빠랑도 더 같이 못 있고 쫓겨날 게 분명했다.
로엘도 마족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또 다른 참가자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여자는 영 알 수 없는 말을 혼자서 중얼거렸다.
버니가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 혹시 황태자를 살린 것도 너니? 아니면 누가 살리는 방법에 대해서 네게 알려 줬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혹시 널 도와준 누군가가 있었니? 응?”
“…샤로롱 괴롭히지 마.”
여자의 말에 버니는 대답 대신 표정이 어두운 샬로네를 힐긋 보곤 냉큼 입을 열었다.
버니의 말에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낄낄 웃음을 터뜨리곤 두 팔을 활짝 벌려 보였다.
“세상에, 내가 괴롭혀? 샬로네를 말이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니. 샬로네는 내가 키운 소중한 딸이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그저 조언해 주고 있던 것뿐이란다.”
여자가 예쁘게 웃으며 샬로네의 어깨에 제 팔을 느긋하게 얹었다. 그러더니 손가락 끝으로 샬로네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샬로네가 목을 살짝 움츠렸다.
“그저 고민 중인 거야. 널 어떻게 하면 집에서 쫓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여자의 말에 샬로네의 눈이 확 커졌다. 소녀가 당황한 듯 시선을 옮겨 버니를 보았다.
“…버니 쫓아내려고?”
“그래. 우리 애랑 사이가 꽤 좋아 보이던데… 불쌍한 녀석. 얘는 그냥 널 쫓아내기 위해서 그 집에 들어간 것뿐이야.”
여자의 확언에 버니가 말없이 여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눈조차 깜빡거리지 않는 모습이 어딘가 조금 섬찟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네가 지금 가진 것들, 네가 지금 받는 사랑, 네가 지금 독차지한 관심까지 전부 우리 샬로네의 것이거든.”
“왜?”
“왜? 그렇게 정해졌으니까. 그런데 넌 샬로네의 것을 전부 빼앗아서 네 것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구나. 뻔뻔하게도.”
버니가 고개를 툭 기울였다.
아이가 고개를 돌려 샬로네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버니가 그랬어?”
샬로네가 입술만 뻐끔거리며 대답하지 못하자 여자가 대신 입을 열었다.
“그랬단다. 불쌍한 샬로네, 너 때문에 샬로네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채 심장도 만들지 못하고 죽겠지.”
여자의 말에 버니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샬로네를 보았다.
그러더니 시선을 내려 샬로네의 심장을 본다. 버니의 동공이 순식간에 세로로 쭉 찢어지더니 이윽고 붉게 물들었다.
“안 죽어.”
버니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자를 보았다.
고요한 눈동자.
버석버석하게 메마른, 피 냄새가 풍길 것만 같은 핏빛 눈동자가 여자를 느릿하게 훑는다.
‘분위기가 변했어…….’
샬로네가 꿀꺽 침을 삼켰다.
마녀는 샬로네에게 늘 버니는 두렵고 무서운, 끔찍한 마족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샬로네는 그 말이 진짜일까 싶었던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버니가 영악하고 얄밉고 또 장난기가 흘러넘치기는 하지만, 샬로네가 그간 들어 온 마족이 하는 행동과 아이가 하는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었으니까.
방금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어루만지던 손으로, 대화를 나누던 웃는 얼굴로 사람을 현혹해 순식간에 심장을 뽑아 씹어 삼킨다는 마족.
그 상상 속의 살기등등한 괴물과 버니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마족.’
지금은 확실히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고, 붉게 물든 눈동자엔 잔혹한 천진함만이 맴돈다.
“너…….”
버니가 히죽 웃으며 여자를 향해 손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위험하게 번뜩인 눈동자를 본 샬로네가 급히 팔을 뻗어 버니의 허리춤을 낚아채 옆구리에 끼웠다.
“버니!”
“으앙?!”
“너 내가 구석에 박혀 있으랬잖아. 여기 왜 왔어?!”
짐짓 매섭게 눈매를 굳힌 샬로네가 소리쳤다.
옆구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바르르—
버니를 옆구리에 낀 샬로네의 팔이 잘게 떨렸다. 그리고 그 진동은 고스란히 버니에게도 느껴졌다.
버니는 말없이 샬로네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꼬리를 휘며 히힝 웃었다.
한 차례 깜빡인 눈동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반짝거리는 분홍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행히 평소와 다름없는 버니의 모습에 샬로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버니, 샤로롱한테 소개해 줄 사람 있어.”
“나한테 소개해 줄 사람……?”
“응, 괜찮아. 샤로롱 안 죽어.”
버니가 샬로네의 옆구리에 끼워진 채 팔다리를 바동바동하며 말했다.
“심장이도 쑥쑥 크구 있어. 버니가 왕왕 큰 대빵이로 만들어 줄게.”
버니의 말에 샬로네가 물끄러미 소녀를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의심 사기 전에 슬슬 연회장으로 돌아가 볼게요, 어머니.”
“아, 그러렴. 너무 오래 사라져도 좋지 않으니까 말이야. 아까 한 말은 잘 기억하고 있지?”
“…네.”
“그래, 어미 없이도 잘하고 있으렴. 곧 나도… 공작가로 갈 테니까.”
여자의 눈매가 초승달 모양으로 예쁘게 접히는 것을 보며, 샬로네는 꿀꺽 침을 삼키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렴. 넌 행복해질 거야.”
“…….”
“그래……. 그 누구보다 가장 행복해지겠지. 이 세계의 주인공은 너니까.”
마녀가 말했다.
늘 언제나 샬로네에게 하던 말이었다.
샬로네는 대답 대신 조용히 침묵했다.
다행히 그녀는 대답을 바랐던 게 아니었다는 듯 개의치 않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혹시 일이 어긋나도 가만히 있으렴. 내가…….”
버니가 여전히 샬로네의 옆구리에 끼인 채 고개를 들어 여자를 보았다.
때마침 여자도 버니를 보고 있었던 탓에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버니를 똑바로 바라보며 생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다 원래대로 만들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