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16)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17화(116/125)
“흐음……. 어디에 숨겨 두셨을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버니의 방에 들어온 벨리알이 느긋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소환한 불사조라는 것은 아이가 자리를 비우면 보통은 가문의 가주가 데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버니는 마왕의 씨앗으로서 제대로 자라고 있었다.
문제는 각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무언가가 각성을 막고 있는 것처럼.
‘아니면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거라면 마왕으로서의 자리는 내려 두어야 하지 않겠나.
그간 벨리알은 버니의 행적을 유심히 살피곤 했다. 그리고 버니의 행적에는 기묘한 것이 있었다.
‘예언…….’
특히나 그 능력이 그러했다.
예언이라는 것은 마왕에게는 없는 능력이다. 그리고 벨리알은 그런 능력을 전면에 두고 사용하던, 이름 없던 하급 마족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소중한 씨앗에게 또 뭘 남기고 간 거지?”
하급 마족인 주제에 고위 마족들의 눈에 들었고, 마침내 차기 마왕의 유모로 발탁되기까지 했던…….
“루리엘.”
루리엘은 누구보다 약했다. 하지만 동시에 오로지 힘과 타고난 혈통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마족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존재이기도 했다.
마족이 인간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는 그 마음 한 조각을 찾아내, 마계에 마치 인간계와 같은 질서와 법을 만든 대담했던 여자.
“하지만 더는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그녀가 남기고 간 잔재에 휘둘리는 것도 여기까지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던 벨리알은 침대에 곱게 눕혀져 있는 회색 토끼 인형을 발견하곤, 천천히 침대로 걸어가 인형의 머리통을 잡아 덜렁 들어 올렸다.
그는 토끼의 배에 난 작은 마력의 어긋남을 발견하곤, 피식 웃으며 그 안에 손을 밀어 넣었다.
작은 마력의 균열은 마치 배처럼 보이지만, 실제 토끼에게 있는 주머니는 아니었다. 단지, 이 인형을 만든 자가 그렇게 보이도록 했을 뿐이다.
손을 집어넣으니, 안쪽으로 광활한 아공간이 느껴졌다.
그는 손을 휘저어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턱.
이윽고 무언가가 그의 손끝에 걸렸다.
“찾았다.”
파지지직—!!
손을 태울 정도로 끔찍한 스파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낡은 가죽으로 된 수첩을 잡아 꺼낸 벨리알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여기에 이런 걸 숨겨 놨었군.”
벨리알이 아랫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파지직, 파지지직—!
사납게 터지는 스파크에 손이 거뭇거뭇하게 변하고 있음에도 벨리알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첩을 활짝 펼치려고 했다.
파지직! 파지지직!
그러나 그가 손을 더 댈수록 스파크 역시 점점 사나워지기만 했다.
벨리알의 눈이 가늘어졌다.
벨리알은 제 마력을 사용해서 그 기운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그보다 수첩의 거부가 더욱 격렬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알기로 루리엘은 이 정도의 역량을 가진 마족이 아니었다.
이만한 마법을 쓰고 구축할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이 정도를 구축하려면 최소한 마계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였던 벨리알을 이길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하위 마술과 예언인지 뭔지 하는 그 기괴한 능력 정도였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저항하고 거부할 수가 있는 거지?
눈을 가늘게 뜬 벨리알이 손을 툭, 놓았다. 그러자 수첩이 침대 위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그의 손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풀풀 솟아오르는 열기에 가볍게 손을 털어 낸 벨리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하나 방법이 있긴 하지.’
하급 마족도 마왕을 제외한 모든 마족의 위에 서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방법.
생명.
세상에 창조된 것 중에 그보다 위대한 것은 없다.
창조된 생명은 그 자체만으로 끝없는 힘을 가진다.
즉, 태생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바로 생명을 대가로 바치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창조한 마법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힘을 가진다. 같은 생명을 갈아 넣은 힘이 아니라면 대응할 수단이 마땅하지 않을 정도로.
오로지 그들의 신이자 창조주의 후예인 마왕만이 그 힘에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다.
“너…… 생명을 대가로 삼은 건가?”
벨리알의 얇고 긴 손가락이 수첩을 툭 건드렸다.
파지직!
이번에도 거부 섞인 스파크가 튀었다.
‘그래, 그랬군.’
해답을 내고 나서야 수첩에서 미약하게 여자의 마력이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리곤 사납게 웃어 보였다.
“대체 어디에 갔나 했더니 코앞에 있었어.”
다시 손을 뻗은 벨리알이 수첩을 콰득 붙잡았다.
파지지지직!
수첩에서 또다시 격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으득, 이를 간 벨리알의 눈매가 한층 가늘어졌다.
“나를 기만했듯… 이번에는 네 주인마저 기만하는 건가? 우리의 왕께서 아시면 참 즐거워하시겠군.”
파지직…….
나직하게 속삭이는 요사스러운 목소리에 스파크가 조금 줄어들었다.
“그저 선물로 남기고 간 수첩인 줄 알았더니, 그게 사실은… 생명을 갈아서 만들어 낸 유물일 줄이야.”
파지직…….
“대체 뭐라고 속살거리고 있기에 왕께서 아직도 소꿉놀이에 취한 채 인간의 품에 안주해 계시는 거지?”
수첩을 코앞까지 가져온 벨리알이 은근하게 말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파지직, 파지직!
스파크가 다시 격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벨리알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이미 왕께서는 마왕으로서의 그릇을 제대로 완성했다. 더는 마기에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약하지 않아. 처음엔 조금 고통스러울 순 있겠지만 필요한 일이고. 그것은… 아니, 그분께서는 위대한 군주가 되실 테지.”
파지지지직!
격렬한 스파크에도 불구하고 벨리알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툭 튀어나왔다.
남자가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황홀경에 젖은 사람처럼 돌연 두 팔을 활짝 벌려 보이며 고개를 한껏 젖혔다.
“마침내 세상을 평화로 물들인 영웅의 발자취를 우리들의 신께서 짓밟으실 차례인 거지. 하찮고 같잖은 인간계를 발밑에 두고, 우리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가 된 거야. 하늘에는 밤이 내려앉고, 지하로 기어들어 가는 것은 인간들이 되겠지.”
벨리알이 수첩을 든 손을 쫙 펼치며 말했다.
허공으로 둥둥 떠오른 수첩을 물끄러미 보며 그는 마저 입을 열었다.
“구역질 나는 가짜 평화는 이제 끝이야.”
방 안은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벨리알의 말소리를 제외하면 조용했다.
“그 옛날, 우리의 힘을 훔쳐 간 인간은 나라를 세우고 마족을 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마족과 마족의 피가 섞인 것을 규탄했지.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마족의 품에서 그 후예가 태어났다.”
마족과 인간의 혼혈.
태어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그 기적과 같은 존재는 인간도 마족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태어나곤 한다.
인간의 계산으로 셈하자면 아득히 오래전, 세상이 아직 평화에 절어 균형을 유지하던 어느 날.
그 혼혈은 제 어머니를 죽인 마족을 증오해 나라를 세운 영웅이 되어 마족을 쫓아냈다. 그 시절 마왕은 어미 잃은 자식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여 지하 세계로 몸을 감추었고.
“네가 왕을 감추고 지키려고 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나? 루리엘.”
둥둥 떠 있는 수첩을 향해 벨리알이 은근하게 물었다.
파지직, 터져 나오는 스파크가 또다시 조금 줄어든다.
벨리알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니, 넌 아무것도 지키지 못할 거야. 마왕으로서의 각성을 위해서 필요한 건 결국 커다란 절망이지. 저대로 마기를 억눌러 봐야 나중에 더 커다랗게 폭발할 뿐이야.”
파지직……. 파직!
벨리알의 말에 스파크가 더 줄어들었다.
“넌 모르겠지만, 아기님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절을 보내게 되실 거야.”
“…그래서, 떠나겠다는 건가?”
“너는 내가 아니어도 살겠지만, 아기님은 내가 아니면 안 돼. 미안해.”
벨리알은 줄어드는 스파크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언젠가 말했었지. 우리들의 왕께서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죽이게 되실 거라고. 그 절망 속에 네 소중한 ‘아기님’을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도 했고.”
입가에 떠오른 아름답고도 잔혹한 미소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말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가득했다.
“만약 진심으로 네가 그걸 바랐다면 너는 내게 이곳으로 오라고 해서는 안 됐어. 왕을 이곳에 보내지 말았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