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18)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19화(118/125)
곧장 옷자락을 밟고 넘어지거나, 우스꽝스럽게 스텝도 따라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버니가 박자에 맞춰서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자에 맞춰서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것뿐이긴 했지만.
코앞에서 같이 춤을 추고 있는 안드레에게는 확 느껴졌다. 버니의 눈동자가 도르륵 도르륵 바쁘게 굴러가는 것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멀리서 볼 때는 티가 크게 나지 않을 정도였다.
“버니, 겁쟁이는 딱 질색. 너 겁쟁이야?”
“거, 겁쟁이 아닌…….”
“하지만 아까부터 쟤네 눈치 보잖아. 쟤네가 괴롭혀?”
“저 애는 테리어드 후작가의 적자야. 더군다나 외동이고. 후작 부부가 엄청나게 아낀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말을 안 들으면 큰일 나. 집안이 망할 수도 있어. 특히 우리 집같이 한미한 남작 가문은 더더욱.”
버니의 눈이 쭉 가늘어졌다.
솔직히 어려운 얘기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쟤가 하는 말을 안 들으면 안 된다는 말인 모양이었다.
버니는 열심히 주변을 훔쳐보며 발을 연신 움직였다.
‘재미없는 춤.’
빙글빙글 돌며 총총총 발을 움직이기만 하는 게 대체 뭐가 재밌는지 역시 잘 모르겠다.
언제 끝나려나 생각하며 버니는 입을 열었다.
“그럼 있지, 쟤가 죽으라면 죽어?”
“어… 어? 아, 아니, 그건……. 하지만 밉보이면 사교계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거야. 그렇게 되면 평생 놀림감이 될 거고… 그럼 난 끝이야.”
작게 중얼거리는 사이 노래가 끝났다.
창백하게 질려 있던 얼굴도, 긴장했던 몸도 어느새 풀려 있다는 걸 깨달은 안드레의 눈이 커졌다.
주변에서 비웃음도 들리지 않았다. 그냥 언제나와 같은 박수 소리만 들렸을 뿐이다.
“네 세상은 요기가 전부야? 여기서 미움받으면 끝이구낭. 밖에는 재밌는 거 짱 많은데, 넌 재미없겠다.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건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도 좋아.”
“다른 사람……?”
“아빠나… 쟤들보다 짱 힘센 사람?”
거기까지 말한 버니가 마주 인사를 하는 과정도 건너뛰곤 그냥 손을 휘휘 젓더니 폴짝폴짝 멀어졌다.
“아, 그리구 춤 재미없었엉!”
엄청나게 큰 소리로 소리치며 말이다.
상큼하고 발랄하기 짝이 없는 버니의 통쾌하며 솔직한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실상 사교계 댄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그걸 입 밖으로 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어린아이의 솔직하다면 솔직하고, 황당하다면 황당한 그 행동에 안드레가 입을 떡 벌렸다.
춤을 무사히 끝내면 뭐 하나. 이미 여기저기서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큽…….”
소년의 잇새 사이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핫. 아하하하!!”
그러나 이상하게 두렵거나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웃음거리가 되면 분명히 엄청나게 무섭고, 세상이 무너지고, 모든 게 다 끝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웃음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어도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안드레 필리프, 내 약혼녀와 추는 춤은 재밌었나?”
뒤쪽에서 들려온 서늘한 목소리에 그가 바짝 굳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심기가 대단히 불편해 보이는 소년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웃고 있었다.
“…화, 황태자 전하.”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그게… 죄송합니다.”
어쩌면 조만간 세상이 무너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안드레는 긴장한 채 고개를 숙였다.
주먹을 꽉 쥔 채 고개를 돌리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버니가 짓궂은 낯으로 웃으며 검지로 황태자 로엘을 가리키고 있었다.
안드레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건 해결할 수 있는 다른 사람한테 말하는 것도 좋아.”
“다른 사람……?”
“아빠나… 쟤들보다 짱 힘센 사람?”
문득 떠오른 버니의 말에 안드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테리어드 후작가의 영식이…….”
안드레가 조용히 설명을 시작하자, 로엘의 얼굴이 한층 화사해졌다.
“그래, 그랬군.”
로엘이 가볍게 어깨를 툭 치곤 안드레를 스쳐 지났다.
그날 황태자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간 테리어드 후작 영식이 울음을 터뜨리며 연회장을 뛰쳐나간 것은 사교계에 길이길이 남을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 * *
“버니, 완전 푹 삶아진 채소…….”
온몸에서 기력이 쭉쭉 빠지는 느낌에 버니가 흐물거리며 방에 돌아와 작게 중얼거렸다.
뒤따라오던 멜리사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많이 지치셨어요? 아가씨.”
“웅. 흐물흐물해영…….”
“오늘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처음인데 괜찮으셨나요?”
“움, 아닝. 별로 재미없었엉.”
결국 친구는 못 사귀고, 이상한 마녀 같은 사람만 만났다.
로엘은 버니에게 세 번이나 춤을 추자고 청했다.
재미없는 춤을 세 번이나 더 추느라 버니는 온몸이 흐물흐물해졌다.
한숨을 푹 내쉰 버니가 멜리사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풍덩거리다가 머리를 감고, 마지막으로 치카치카를 마친 후 흐물거리며 침대에 쏙 들어가자, 멜리사가 이불을 덮어 주었다.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넹.”
버니가 이불 속에 얼굴만 빼꼼 내밀고 손을 붕붕 흔들자, 멜리사가 웃음기 섞인 낯으로 버니의 뺨을 한 차례 쓰다듬어 주곤 입을 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가씨.”
“네엥.”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버니가 다시 눈을 땡그랗게 떴다.
슬쩍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던 버니가 침대에서 꼬물꼬물 나와 폴짝 뛰어내렸다.
문을 살짝 열어 빼꼼 고개를 내밀어 멜리사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버니는 문을 조용히 닫은 뒤 잠갔다.
“루리엘, 루리엘~!”
폴짝폴짝 뛴 버니가 이불 위로 몸을 날려 토토를 손에 쥔 순간이었다.
“…토토 배 찢어졌네.”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토토의 배가 찢어졌다.
크게 찢어진 건 아니고, 조금 터진 정도기는 했다. 꿰맨다면 분명히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수준의 작은 터짐이었다.
‘왜?’
하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찢어지거나 흠이 생긴 적은 없었다.
함께 세상을 탐험해도 한 번도 더러워지거나 지저분해지지 않았던 무적의 토토였단 말이다.
“…수첩.”
작게 중얼거린 버니가 급히 토토의 배 속에 손을 밀어 넣었다.
수첩을 붙잡아 꺼내 이리저리 살핀 버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상처 생겼어.”
누군가 날카로운 것으로 죽 긁은 듯한 자국이 수첩의 표지에 길게 남아 있었다.
버니가 급히 수첩을 열었다.
팔랑팔랑 넘긴 수첩의 마지막 장에 마치 누군가 찢어 간 듯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루리?”
주먹을 꽉 쥔 버니가 눈에 힘을 주었다.
마치 짐승처럼 동공이 세로로 쭉 찢어지더니, 이윽고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이 저택에서 한 명밖에 없다.
마왕이 된 자신을 모시고 가겠다며 이곳에 남아 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마족.
“벨리알.”
벨리알이 토토에게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
“루리, 괜찮아?”
버니가 묻자, 수첩의 페이지가 팔랑팔랑 앞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수첩이 넘어갈 때마다 한 번씩 수첩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버니에게는 아주 살짝 따끔한 정도였지만, 평소와 다른 것은 분명했다.
사각사각.
버니는 팔랑거리며 넘어가던 흰 종이 위에 글씨가 쓰이는 것을 보았다.
아기님, 누굴 만나신 거예요?
루리엘의 말에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잘 다녀왔냐는 인사도, 어땠냐는 물음도, 오늘도 예뻤을 거라는 말도. 평소라면 했을 법한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차가운 한 줄이 딱 적혔을 뿐이다.
“…루리?”
버니의 물음에 또다시 글씨가 쓰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수첩 위에 쓰이는 글씨는 익숙하면서도 오늘따라 어쩐지 낯설었다.
버니는 살짝 굳은 채 말없이 수첩을 바라보았다.
아기님. ‘빙의’라는 단어를 알려 준 사람이 무슨 말을 했어요? 쓸데없는 말을 했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저한테 전부 말… 아니, 떠올려 주세요. 제가 읽어 볼게요.
버니는 어딘가 차갑게 제 할 말만을 하는 루리엘의 수첩을 바라보았다.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