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2)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2화(12/125)
“달걀? 아, 어제 소환한 메추리알…….”
“메추… 넹? 아녀. 애기 달걀이에여. 흐겸룡이가 태어나여.”
코를 쓱 문지른 버니가 비밀 이야기를 해 준다는 듯 작게 속삭이자, 키리엘 유디아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이만한 알에서 용이 태어나긴 힘들 것 같은데…….”
우르릉 쾅쾅!
번쩍!
오늘도 버니의 머리 위에서 질리지도 않고 천둥 번개가 쳤다. 버니가 축 처진 눈으로 울먹거리며 키리엘 유디아를 바라봤다.
“흐잉…….”
울먹거리는 얼굴로 ‘애기 달걀……’, ‘흐겸룡……’을 중얼거리는 버니를 바라보던 키리엘 유디아는 살짝 고개를 돌려 버니의 양손에 소중하게 쥐인 메추리알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태어날 수도 있으려나…….”
그 되먹지도 않은 중얼거림에 여기저기서 또다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대놓고 거짓말을 한 키리엘 유디아의 행위에 경악한 것이다.
왜냐하면 키리엘 유디아는 신성함을 상징하는 유디아 공작가의 덕목은 솔직함이라며, 지나가는 어린애가 ‘저도 키리엘 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다시 태어나도 무리겠는데…….’라는 말을 내뱉곤 제 갈 길을 가기로 유명했으니까!
“그치여?”
천만분의 일이 뭔지도 모르는 버니는 그저 태어날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기뻐 다시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키리엘 유디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잘 웃네.’
키리엘 유디아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래서 나한테 왜 괴병이 발생하는 걸 알려준 건데?”
“아!”
엣헴.
키리엘 유디아가 헛기침하는 버니를 물끄러미 보았다.
“버니 똑똑해여! 그리구 훈륭한 달걀두 이써여.”
“그래……?”
“넹! 그리구 왕큰 대마…법싸두 댈 거예여!”
버니의 말이 이어질수록 키리엘 유디아의 머리통이 아주 느리게 기울어졌다.
실상 유디아 공작가의 피를 이은 사람은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신성력과 마력은 완전히 상극이기 때문이다.
“네엥! 그래서 버니 있으면 킹 왕창 이득!”
버니가 엄지를 척 내밀었다.
그리고 가방에 달걀을 다시 집어넣더니, 꼬물꼬물 뭔가를 꺼내 슬쩍 다가가 키리엘 유디아의 손바닥에 올려 두었다.
제법 묵직한 천 주머니였다.
짤랑거리는 걸 보아하니 돈이 든 주머니인 듯했다.
“혼자서 다 하니까 전혀 기찮지두 않구, 용돈두 줘여!”
“그렇구나……?”
그래서 이 장황하고 기나긴 서론의 결론은 뭘까?
키리엘 유디아는 아이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꼬질꼬질한 낡은 천 주머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찌여, 잘생긴 아저씨.”
아저씨……?
키리엘 유디아는 그 신선하기 짝이 없는 호칭에 저도 모르게 눈을 끔뻑였다.
“버니! 키울래여?”
“…뭐?”
“지금이라면 떠리 판매!”
시장에 가서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줄을 섰던 것을 떠올리며 버니가 힘주어 말했다.
“버니, 미래의 왕 큰 대마……!”
왕……!
“보호자 구해여!”
제 뒤에 아무도 줄 서지 않았단 걸 깨달은 버니는 똘똘하게도 루리엘의 가르침을 따라 제일 잘생긴 사람의 뒤에 첫 번째로 줄을 섰다.
싸아아아――
버니의 말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휘잉, 실내에 바람까지 세차게 지나간 느낌이었다.
쪼그려 앉아 턱을 괸 채 버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키리엘 유디아가 피식 웃었다.
“보호자가 필요해?”
“네엥. 버니가여, 어른이 대구 시픈데여…… 어른이 대려면 보호자가 이써야 한대여.”
“그래?”
“넹.”
“근데 왜 나야? 다른 사람도 많은데.”
“까망 머리! 빨강 눈!”
버니의 말에 키리엘 유디아가 뚝 굳었다.
“킹왕짱 멋져여!! 예쁘구! 버니가 제일 조아해여.”
이윽고 반짝거리는 시선의 아이가 덧붙이는 말에 키리엘 유디아의 눈이 확 커졌다.
징그럽다거나 재수 없다거나 불길하다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멋지고 예쁘단 소리는 처음이었다.
“그리구…….”
버니가 바짝 고개를 들이밀더니 비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처럼 작게 속삭였다.
“아저씨가 제일 잘생겨써여. 어…… 중요가 달라진다에여.”
“내 눈이 예뻐?”
키리엘 유디아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말을 내뱉는 버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덧붙여지는 대답에 키리엘 유디아의 동공이 순간 크게 벌어졌다가 이윽고 천천히 줄어들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살짝 늘어지는 목소리가 웃음기를 담은 채 느릿하게 돌아왔다.
“버니 보호자 할까……?”
키리엘 유디아의 말에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이여?”
“응. 할 일도 없었고, 자식도 없으니까.”
그리고 이질적이고도 미묘하게 느껴지는 마족의 기운이 신경 쓰이기도 하니 곁에 두는 편이 좋겠지.
‘그래야 여차할 때 바로 처분할 수 있을 테니.’
애초에 마족의 아이라면 굳이 살려둘 필요 없이 빠르게 싹을 뽑아버리는 게 좋을 테고.
“아저씨, 이제 버니 보호자?!”
키리엘 유디아가 느긋한 낯으로 한 차례 더 고개를 끄덕이자, 버니의 얼굴이 그야말로 화악 밝아졌다.
그에 키리엘 유디아의 눈이 또다시 크기를 키웠다.
‘루리, 역씨 천재!’
루리엘이 말한 대로 했더니 정말로 보호자가 생겼다. 방금까지는 한 명도 없었는데!
“감삼미다! 버니가 왕 크구 짱 대박으루 모시께여!”
버니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물론, 키리엘은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
‘버니가 왕 큰 대마왕 되면 꼭 부자로 해 줘야지.’
생각을 끝으로 볼일을 다 끝낸 버니는 또다시 허리를 반으로 접는 인사를 건네곤 몸을 휙 돌리다가 멈칫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거리를 둔 채 덩그러니 서 있는 앨런과 눈이 마주친 탓이다.
어딘가 충격에 젖은 것 같기도 하고, 배신감에 파묻힌 것 같기도 한 눈동자였다.
“아!”
왕뱀이두 엄마, 아빠 없어!
‘훌륭한 어른이 되려면 엄마 아빠 필요해.’
왕뱀이도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구나!
멋대로 결론을 내린 버니가 눈을 깜빡이더니 단상에서 폴짝 뛰어내려 앨런의 손을 붙잡았다.
“왕뱀이 이리 와 바!”
“하? 뭐 하는……!”
작은 손으로 쭉쭉 끌어당기는 탓에 앨런은 멈칫했다가 결국 아이의 손에 엉거주춤 끌려 걸음을 옮겼다.
“이찌여, 아저…….”
말하던 버니가 순간 멈칫했다.
‘아저씨… 먼가 멀어.’
보호자랑은 특별히 친해져야 한댔는데.
“키리엘. 키리엘 유디아야…….”
말을 멈춘 버니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키리엘 유디아가 슬쩍 제 이름을 말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그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식이 될 녀석에게 아저씨 소리를 듣고 싶진 않을 것이다.
“루드브리드 유디아 공작 각하와 클라인 유디아 제1 성기사 단장, 살라메 유디아 성녀님, 키리엘 유디아 공자님께서 들어오십니다.”
똘똘하게도 기억을 떠올린 버니의 눈이 반짝했다.
“공자님!”
“…….”
“요기 왕뱀… 아닝, 앨러니두 어른이 대야 하는데 앨러니두 가치 키워두 대여? 안 기차나여! 그치?”
“하?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이거 놓고… 읍.”
텁!
까치발을 든 버니가 단풍잎 같은 작은 손으로 앨런의 입을 막았다.
“쉬잇. 못댄 말 안 대.”
앨런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 버니가 휙 몸을 돌려 다시 키리엘 유디아를 보았다.
“갠차나여. 버니가 예뿐 말 하게 잘 돌보께여! 버니 고구마랑 감자두 잘 돌바여!”
졸지에 고구마, 감자와 동급이 된 앨런이 입을 떡 벌렸다.
‘상관없겠지.’
키리엘 유디아는 버니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돌려 앨런을 보더니, 나른한 낯으로 여전히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키리엘 유디아의 말에 앨런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동그래진 앨런의 눈을 잠시 보던 키리엘 유디아가 쪼그려 앉아 있던 몸을 느릿하게 쭉 폈다.
여기저기서 경악한 시선들이 느껴졌으나, 정작 당사자인 키리엘과 버니는 무관심 그 자체였다.
놀란 건 파티에 참석한 방계뿐만이 아니었다.
공작인 루드브리드 유디아와 키리엘 유디아의 형제들도 경악스러워 보이긴 마찬가지였으니까.
최소한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 감사함미다. 담에 또 올게여! 안냥히 오세여!”
꾸벅 고개를 숙인 버니가 앨런의 손을 붙잡고 총총거리며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머리통 하나가 훨씬 큰 앨런이 엉거주춤 버니의 손에 붙들린 채 아이의 뒤를 따랐다.
저번과는 달리 든 게 없어 축 늘어진 토끼 가방의 팔다리가 버니가 씰룩거리며 걸을 때마다 흔들거린다.
“…아.”
필요한 게 있는지, 새 방을 줄 테니 저택에서 나오는 게 어떤지, 용돈은 얼마나 필요한지 같은 것들을 물어보기 위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려던 키리엘 유디아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이는 정말로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는 듯,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깔끔하게 파티장을 떠나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키리엘 유디아는 한참이나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