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20)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21화(120/125)
…알아요. 하지만 말씀드렸잖아요. 동화 속 주인공에게는 언제나 작은 시련 여러 개와 엄청나게 큰 시련이 있다고요. 그리고 언제나 악당이 있으니까 나쁜 악당까지 쓰러뜨려야 해피 엔딩이 찾아온다고 말이에요.
염려가 가득한 글자에 버니가 코 밑을 쓱쓱 문지르곤 가슴을 쭉 내밀었다.
훗.
검지를 좌우로 쯧쯧쯧 흔든다.
“루리는 모르겠지만, 버니는 왕 큰 어린이라서 마녀 금방 쓰러뜨려.”
다른 악당은 어쩌면 아기님에게 간단하겠지만, 마녀는 분명 간단하지 않을 거예요. 그쪽도 필사적일 테니까요. 그리고 마녀를 물리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넘어야 할 산?”
몇 가지가 있는데… 개중에서 제일 커다란 산은 몇 년 뒤, 신전에 새로운 대신관이 오는 거예요.
앗, 또 정보다.
‘미래의 정보!’
버니가 눈을 반짝이며 다시 수첩을 쥔 채 엎드려 쭉쭉 적히는 글자를 눈에 담았다.
현재 성녀와 성기사단장은 유디아 공작가의 직계들이 잇고 있죠?
“응.”
본래라면 대신관도 유디아 공작가에서 나와야만 해요. 하지만, 이례적으로 평민 중에 엄청난 신성력의 소유자가 한 명 나타나서… 대신관으로 부임할 거예요.
버니의 망태기에 들어올 또 다른 흐물흐물 후보인가?
별다른 걱정 없이 언제나처럼 방싯방싯 웃으며 흐뭇하게 상상의 나래 속에 빠져 있던 버니의 상상을 깨부수듯 또다시 새로운 글자가 스윽 떠올랐다.
수년 전, 키리엘 유디아의 활약으로 끝난 성마 전쟁이지만, 한창 성마 전쟁이 진행되던 도중에 가족과 마을 전체를 잃어서 마족에 대한 증오심이 엄청나요.
“…음.”
얘도 마족을 싫어하는구나.
‘마족도 나쁜 마족만 있는 건 아닌데.’
그리고 성마 전쟁에 대해서도 많이 많이 공부를 했었다. 전쟁에서는 인간만 죽은 게 아니라 마족들도 많이 많이 죽었다.
‘근데 마족만 미워하는 건 너무해.’
그렇게 생각하던 버니가 고개를 좌우로 휘휘 저었다.
‘버니, 아직은 인간의 마음을 가진 어린이 버니야.’
분명 엄청나게 슬펐을 것이다.
사실 유디아 공작가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마족을 싫어한다. 아빠만 빼고……. 아니, 아빠는 버니만 좋아하고 버니 외의 다른 마족은 싫어했다.
‘로엘도 싫어하고…….’
언젠가 버니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밝혀야 하는데 그때… 모두가 버니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때를 위해서 루리엘의 조언을 받아서 미리미리 열심히 흐물흐물 작전을 실천 중이기는 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바뀌어서…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그자는 아기님이 마족이라는 걸 바로 알아볼 거예요. 그리고…….
루리엘은 어딘가 심각해 보였다.
버니의 둥글게 말려 올라갔던 입꼬리도 세모꼴로 쭈욱 내려왔다.
그리고… 아마 아기님이 마왕의 씨앗이라는 것도 알아볼 거예요.
글자를 읽는 버니의 눈이 그야말로 동그랗게 커졌다.
“…들키면 어떡해?”
들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아빠도 그랬다. 같이 있을 수 없게 된다고.
수첩을 쥔 버니의 손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사실 본래라면 여주… 그러니까 호뭉이에 의해서 아기님의 정체가 유디아 공작가 내에 먼저 밝혀지거든요. 그리고 대신관이 거기에 쐐기를 박는 이야… 아니, 그런 미래였어요.
“…호뭉이가.”
그래도 지금은 아기님이 흐물흐물 작전에 성공하셨잖아요. 그래서 일단…… 호뭉이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제가 정확히 상황을 본 건 아니라서요. 그러니까 항상 조심해 주세요.
루리엘의 말에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버니가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버니 호뭉이 흐물흐물 성공했어.’
버니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 대신관이는 흐물흐물 안 돼?”
…아마 어려울 거예요. 증오심이 엄청나거든요. 그런데 신성력도 강해서 아기님이 차기 마왕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서 그걸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표해 버려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모두가 아기님을 미워하고, 쫓아내라고 하게 돼요.
글자를 읽던 버니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런 말을 볼 때마다 버니는 조금 우울하고 슬퍼지고는 했다. 지금은 버니에게 흐물흐물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아빠도 들키면 안 된다고 했어.’
그 말은, 들키면 아빠도 어떻게 할 수 없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는 하양이 가문이니까.’
검은색을 싫어하고 빨간색을 불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새하얀 옷을 입고 다니는 가문.
“…버니가 진짜 아빠 형의 딸인데도?“
그건 잘 모르겠네요. 밝혀졌던 때가 없진 않았는데…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쪽이긴 했어요. 용사가 마족과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작게 중얼거린 버니가 입술을 툭 내밀었다.
“하지만… 버니는 태어났어. 여기 있어.”
그것만이 사실이었다.
아빠와 엄마가 서로 좋아해서 손을 꼭 잡고 침대에서 함께 자서 버니가 태어난 것이다.
요정님이 엄마와 아빠에게 버니를 선물해 주고 간 거다.
“아빠한테 말해도 아빠가 싫어해?”
…그런 적은 없어서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면 마왕의 아이라는 사실과 용사의 아이라는 사실이 동시에 밝혀진 적은 없네요.
루리엘의 이야기를 보며 버니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럼 버니, 아빠한테 얘기할래.”
네? 안 돼요!
엄청나게 커다란 글씨가 수첩을 꽉 채웠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버니가 멈칫하며 자리에 다시 다소곳하게 앉았다.
“왜? 아빠는 진짜 아빠랑 엄마가 서로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버니를 요정님이 선물해 줬다고 하면 믿어 줄 거야.”
애초에 버니는 아가 버니였을 때, 아빠와 약속을 한 가지 했었다.
“앞으로 아빠한텐 숨기는 일 없는 거야.”
버니 아빠한테 숨기는 거 없는 훌륭한 아가 하기로 했었어.
‘하지만, 어른의 계단을 하나 오른 버니……. 비밀이 많은 어린이가 되었지.’
이러면 분명히 아빠가 실망을 크게 할 것이다.
“그러니까 아빠한테 전부 얘기하면……!”
다른 건 몰라도 마왕의 후계자라는 사실은 밝혀지면 안 돼요.
“왜?”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버니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글자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이윽고 새로운 글자가 수첩 위에 떠 오르기 시작했다.
아기님. 잊으셨어요? 전 마왕을 죽인 건… 키리엘 유디아예요.
글자를 바라보는 버니의 눈이 확 커졌다가 이윽고 천천히 작아졌다.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러니까 키리엘 유디아에게 그 사실을 말하는 건 너무나도 큰 도박이에요.
“아빠는 버니한테 다정한 데……. 흐물흐물해. 버니 사랑한대.”
알아요. 아기님이 만들어 내신 지금은 제가 알던 어떤 미래와도 다르다는 걸……. 하지만, 대신관이 마왕의 후예임을 밝히는 미래가 몇 번 있었어요. 그때마다…….
글씨가 조금씩 흐려졌다.
루리엘이 말하는 것을 저어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때마다 악녀, 아니, 아기님을 죽이는 사람은 키리엘 유디아였어요.
“…….”
그리고… 아기님은 그때마다 마왕으로 각성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