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24)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25화(124/125)
“있지여, 샤로롱의 엄마도 여기 와여?”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버니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멈칫한 키리엘 유디아가 설핏 웃더니, 곧 덤덤한 낯으로 느릿느릿한 대답을 돌려 주었다.
“얼마 전에 친자 검사 결과가 나왔고, 샬로네가 내 형의 아이라는 게 확실해졌으니까…….”
말끝을 늘이며 대답을 마친 키리엘은 언제나처럼 버니의 머리를 토닥토닥 쓰다듬었다.
“신수 소환 의식도 머잖아 있을 테고… 완전히 유디아 공작가의 아이로 인정받게 되면 공작가 장남의 아이를 낳은 이를 그냥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키리엘의 말에 버니가 고개를 한 차례 주억이곤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으음…….”
“왜?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니?”
“아녀, 있지여, 샤로롱 엄마는 언제 와요?”
“글쎄… 지금 생활을 정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한 1~2년 정도 더 필요하다고 했던 것 같구나.”
버니가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위아래로 힘차게 끄덕거렸다. 2년이라는 시간이 남았다면 버니는 이제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아빠, 역시 버니는 빠르게 엄청나게 강해지구 싶어여.”
“그래, 밥 잘 먹고 잘 자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천 밤쯤 자면 짱 세고 똑똑한 왕 큰 어른이 되는 두 번째 계단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버니의 화법에 많이 익숙해진 키리엘이 자연스럽게 아이를 다독였다.
“천 밤이여……?”
키리엘의 말에 버니가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 천 밤. 할 수 있지?”
“네엥!”
“좋아. 그럼 일단 머리 말리고 아빠랑 조금 더 잘까?”
자연스럽게 수건을 가져와 버니의 머리 위에 툭 떨어뜨린 키리엘이 말했다.
버니가 몸을 들썩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랑 같이요?”
“그래. 아빠랑 같이는 싫니?”
“아녀, 킹왕짱 좋아요!”
버니가 펄쩍 자리에서 뛰더니 두 팔을 양옆으로 쫙 벌려 보이며 말했다.
눈을 꾹 감은 버니를 보며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린 키리엘 유디아가 버니의 머리카락을 살살 말려 주었다.
평화로운 키득거림이 흘러넘치는 방 안에 이윽고 두 사람의 고른 숨소리가 퍼지게 될 때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 * *
화아악-
머리 위로 어둑한 빛이 새어드는 것에 느긋하게 손톱을 다듬으며 찻잔을 기울이던 여자가 멈칫했다.
새하얀 머리카락의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긴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오, 무사히 도착했군요.”
“……마족?”
여자의 주홍빛 홍채가 한층 가늘어졌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는군요.”
박쥐 같은 커다랗고 시커먼 날개.
머리 위로 솟은 뿔.
붉은 눈동자.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띄고 있는 남자는 퍽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왔다. 마치 연극처럼.
눈을 가늘게 뜬 여자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마족이 여기까진 무슨 일인가요?”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으며 느긋하게 거리를 좁힌 남자, 벨리알이 주변을 한 차례 훑어보더니 빙긋 웃었다.
“확실히 그녀와 꽤 비슷한 기척을 풍기는군요.”
제 가슴께에나 오는 작은 여자를 바라보며 불쑥 허리를 굽혀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벨리알이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녀?”
“저도 한 명, 아는 사람이 있거든. 미래를 알고 있는…… 너 같은 사람을.”
벨리알의 말에 여자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한층 확장된 동공을 가만히 바라보던 벨리알이 숙였던 고개를 느긋하게 들었다.
“그녀는 자신 같은 사람이 몇 있다더군. 그래서 조금 알아봤어. 큰 사건이 터지거나 혹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업에 투자한 사람은 없었는지.”
벨리알은 마력이 모이고 있는 마법 지팡이의 보석 부분을 콰득 붙잡으며 웃으며 여자의 멱살을 붙잡아 제 코앞까지 끌어당겼다.
“어때, 나랑 손잡아 보는 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너희가 하는 게임, 나는 네가 이겼으면 좋겠거든.”
이런 실례. 흥분해서 그만.
말을 덧붙인 벨리알이 여자의 멱살을 가볍게 놓곤 옷을 정돈해 주더니 검지 끝으로 턱을 툭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게 손을 보태 주겠다는 뜻이야. 나와 계약하지.”
“……뭘 목표하는 거죠?”
여자의 하얀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벨리알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바라는 건 우리들의 왕께서 가장 절망스러워질 상황에서 각성하는 거야.”
벨리알의 말에 여자의 눈이 한층 커졌다.
그녀가 조금 당혹스러운 듯, 믿기 어렵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벨리알을 살폈다.
‘이건 원래는 없던 전개야.’
분명히 원래는 악녀 포지션이어야 했을 버니의 곁에 붙은 것은 이 남자가 알고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나한텐 호조인가?’
아니면 날 속이려는 거?
여자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생각에 잠긴 것을 내려다보며 벨리알이 느리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빙의자라. 꽤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군. 루리엘.”
그래, 그러니까 부탁할게. 방해하지 말아 줘.
“네겐 이 모든 게 게임이었다는 거지.”
아기님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야. 행복해지길 바라는 것도 진짜고. 그러니까 날 방해하지 마. 벨리알.
“……글쎄.”
……벨리알, 난 단지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부탁할게.
“부탁? 네가 감히 내게 부탁을 읊는 건가?”
…….
“루리엘. 이럴 거였으면 너는 내게,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어야지. 영영 눈에 들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살아갔어야지.”
벨리……
탁, 글자를 채 보지도 않고 그는 수첩을 다시 닫아 토끼의 배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기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벨리알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상념에서 벗어나 천천히 숨을 뱉었다.
“대답은?”
그는 충분히 인내했음을 떠올리고 시선을 내려 재차 상대를 채근했다.
“……날 도와줘서 당신이 얻을 게 있나요?”
“물론.”
“무엇을…….”
여자의 질문에 벨리알이 빙긋 웃었다.
“남자가 눈이 돌아서 미치는 이유야 사랑하는 여자 때문 아니겠어?”
벨리알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마법진이 흐리게 떠올랐다.
마녀, 힐라가 느리게 손을 뻗어 벨리알의 손바닥에 제 손을 얹었다. 이윽고 사방으로 검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 * *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특히나 아이가 자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새라서, 잠시 잠깐이라도 그 시기를 놓쳐 버리면 불쑥 키가 크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또 다른 존재가 되어 있고는 한다.
‘…라고, 아빠는 말했지만.’
나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이미 천 밤을 자도 어른이 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은 날부터 세상이 조금 재미없게 느껴졌다.
그랬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어른이라는 건 나이가 차서 성년식을 치른 후부터라는 진실을 무려 10살 생일에 알아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벌써 11살이 되었지.’
물론 내가 옛날부터 좀 천재적인 편이긴 했지만, 세상의 이치나 어른들이 숨겨 둔 은밀한 비밀을 너무 빠르게 깨달아 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어린이 시절을 지나 청소년이 되면 어른이 되는 시간은 순식간이랬지.”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작게 중얼거리며 흘러나오는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절레절레.
창가에 둔 흔들의자에 앉아 작게 고개를 저으며 마시멜로가 동동 떠 있는 따뜻한 코코아를 호로록 마셨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소복하게 쌓이고 있는 눈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시간이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거짓이 난무하는 이런 더러운 세상이 지금만큼은 순백에 휩싸여 순결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래, 이대로 시간이 멈춰서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쾅!
“야, 버니!”
귀를 찢을 듯한 굉음에 머릿속에 가득했던 상념이 찢겨 나갔다.
방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임을 뒤늦게 깨닫고 고개를 돌리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나는 눈을 깜빡이곤 어른스럽게 빙그레 웃었다.
“무슨 일이야?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