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25)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26화(125/125)
문을 열고 들어온 샬로네는 나를 보더니 울컥한 표정으로 눈가를 한껏 찌푸리며 뺨을 씰룩거렸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자, 은은하고 인자하며 어른스럽게 잘 웃고 있는 내가 있었다.
별로 이상할 건 없어 보이는데…….
‘질투인가……?’
하! 역시 샬로네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아니,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됐으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때 호문쿨루스였지만, 점점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되어 마침내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너… 내가 숨겨 둔 책 가져가서 봤지!”
샬로네의 말에 나는 그냥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갸웃했다.
“언니, 왜 그렇게 흥분했어. 일단 진정하는 게 어때?”
“내 책 내놔.”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어. 근데 언니, 앞으로는 제대로 노크를 하고 문을 열어 줬으면 좋겠어. 어른이라면 응당 지켜야 할 예의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당장 안 내놔?!”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드레스 자락을 양손에 쥐어 들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샬로네가 갑자기 나를 붙잡고 온몸을 짤짤 흔들기 시작했다.
“언니,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언니의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해서래. 일단 이쪽으로 와서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게 어때?”
멱살이 잡혀 흔들리는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른이란 언제 어디서나 품위를 지켜야 하는 존재.
결코 적에게 흔들림이나 약한 점을 보여 주지 않아야 하는 존재다.
‘그래, 저 눈발을 맞으며 고고하게 서 있는 나무처럼.’
나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샬로네에게 기꺼이 상체를 내맡긴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내가 앉은 채 옴짝달싹도 하지 않으니, 샬로네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투둑.
샬로네의 손등에 힘줄이 돋았다.
“일어나!”
“언니, 무리하지 마. 손목 부러져.”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올해 11살이 된 나는 마음가짐 또한 훌륭한 어른이다.
심지어 8살의 어린이였을 때보다 한층 더 짱 세지고 왕 커진 어른.
‘내 숨겨진 힘으로 인해서 누군가 크게 다칠지 몰라. 나는… 결국 왼팔에 흑염룡을 가지게 되고 말았어.’
최근에 루리엘이 나를 보더니 ‘드디어 왼팔에 흑염룡을 가지게 되셨군요. 아기님.’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확실히 루리엘이 말한 대로, 최근 나는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당장 자리에서 안 일어나?!”
우드득.
바로 지금처럼.
손잡이를 붙잡고 버티느라 나무 의자 팔걸이에 금이 가 버리고 말았다.
내 멱살을 붙잡은 샬로네가 있는 힘껏 나를 일으키려고 한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언니, 나는 무슨 책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음흉한 늑대와 백작가의 아가씨’ 내놓으라고!”
속삭이듯 자그마하게 제목을 소리치는 샬로네의 모습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얌전히 눈을 깜빡였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팔걸이를 내려다보던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샬로네를 보았다.
툭, 데구루루.
샬로네가 덜렁거리다 못해 기어코 부서져 바닥에 떨어진 의자 팔걸이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나고 싶지만, 내가 일어나면 의자가 완전히 부서지고 샬로네가 크게 다칠지도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나를 의자에서 일어나게 하려고 애를 쓰는 샬로네가 안타까워, 나는 짐짓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예전에 본 걸 기억하는데, 내 천재적인 기억력에 따르면 백작가가 아니고 공작가였어.”
“봐! 네가 가져갔잖아!”
온몸에 힘을 주고 있는 샬로네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헉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샬로네를 보던 나는 눈꼬리를 쓱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너 지금 내 늑대와 아가씨 소설 보고 거기서 버림받은 늑대처럼 굴고 있는 거잖아! 그거 멋지다고 생각해서!”
“아냐, 나는 언니 방에서 책을 가져온 적 없어. 그냥 언니 방에 갔는데 침대 밑에 쓰레기가 있길래 그걸 치워 준 것뿐이지…….”
“아악!! 제발 내 침대 밑에 좀 손대지 말라고오!”
“앗.”
툭.
언성을 높인 샬로네가 온 힘을 다해 힘을 준 탓인지, 결국 몸이 앞으로 쑤욱 기울었다.
갑작스러운 힘에 결국 주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내가 앉아 있던 의자가 쿠당탕, 무너지더니 무언가가 툭 굴러떨어졌다.
빨간 표지의 책이었다.
『음흉하고 흉포한 늑대와 공작가 아가씨』
황금색으로 적힌 글씨를 본 샬로네가 급히 허리를 숙이더니, 그걸 냉큼 가져가 제 옷자락 안에 넣어 숨겼다.
주변을 휙휙 둘러본 샬로네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더니 숨을 길게 내쉬었다.
“너 자꾸 내 방 들어와서 책 가져갈래?!”
“그냥 버려져 있던 걸 주워 온 것뿐인데…….”
입술을 툭 내밀며 불만스럽게 말하자, 샬로네가 이마를 짚었다.
“아직 네가 볼 거 아니라고 했지? 애들은 보는 거 아니야.”
“언니, 나도 이제 다 컸어.”
짐짓 눈에 힘을 주며 말하자, 샬로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방에 멋대로 들어와서 이런 책을 훔쳐 가는 것부터 일단 어른이라고 할 수 없어.”
“하지만, 내가 책 사면 아빠가 전부 확인한단 말이야.”
“네가 예전에 내 책 훔쳐 가서 보다가 들킨 탓이잖아!”
입술을 비죽거리며 대답하자, 샬로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슬쩍 거울을 보니 은은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어린애처럼 입술을 툭 내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예전처럼 어린아이 같은 빵빵한 볼살도 없고.
멜리사를 조르고 졸라 머리 끝부분뿐이지만 웨이브를 넣은 물빛 머리카락이 퐁실퐁실하게 넘실거렸다.
그뿐이랴, 부쩍 큰 키는 또 어떻고.
거울에는 무척 훌륭하게 어른의 두 번째 계단을 오른 내가 있었다.
‘마성의 나.’
왼팔의 흑염룡까지 갖춘 나는 제법 훌륭해 보였다.
가만히 거울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걱정거리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이러다 아빠보다 두 배는 더 크면 어쩌지?’
조금 고민이 되기는 했다.
아무튼 한 명의 훌륭한 어른이 되어 사교계의 어린 레이디가 된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무튼…….
“『어른이 된 영애의 은밀한 이야기』 말이지?”
“제발 책 제목 좀 말하지 마!”
버니의 말에 샬로네가 창백하게 질리더니, 두 손을 내저으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어차피 전부 읽지도 못했는데…….”
툭 내민 입술 사이로 채 삼키지 못한 불만을 내뱉자, 샬로네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아무튼, 맞아. 네가 성년식을 치르지 않으면 어른이 아니라는 문장을 보고 내 방에 와서 세상에 크나큰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울었던 그때.”
샬로네의 말에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뜨거워졌다.
“아, 그건 잊기로 했잖아!”
“아무튼, 자꾸 내 책 가져가서 거기 주인공에게 이입하고 그러지 좀 마. 장담하는데 나중에 후회할걸.”
샬로네가 경고하듯 말하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불만스레 샬로네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돌렸다.
“휴우……. 언니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언니랑 다른걸. 세계 평화를 위해서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아.”
“…….”
“있잖아. 삶은 말이야, 한순간에 지나가는 덧없는 거야. 특히 청소년 시절은 더더욱.”
“…….”
내가 조금 감성에 젖어 말하자, 감동이라도 했는지 샬로네가 부르르 몸을 떨더니 어딘가 좀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곤 고개를 돌렸다.
평소랑은 다르게 웬일로 바로 뒤돌아 나가지 않길래 의아해하고 있는데, 샬로네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응?”
“다음 주에 어머니가 오실 거야.”
샬로네의 말에 나는 창가에 걸터앉아 다리를 가볍게 동동 굴렀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난 괜찮아.”
“누… 누가 네 걱정해서 말해 준대?! 그러니까 너도 얼른 독립하든가, 뭔가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 준 거뿐이거든?”
샬로네의 말에 나는 웃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샬로네랑 힘 싸움을 하느라 산산조각 난 의자의 잔해들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마치 퍼즐이 조립되듯 허공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산산조각 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의자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샬로네의 말간 눈에 붉은 안광이 비쳤다.
“괜찮아. 내가 더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