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3)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3화(13/125)
* * *
촤르르륵.
코끼리의 코를 뜯어 배 속에 있는 걸 전부 바닥에 주르륵 늘어놓고 하나둘 세어 가며 탑을 쌓은 버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짤막한 팔을 교차해 팔짱을 꼈다.
“큰일 나따.”
이틀 전, 대견한 버니를 소개하기 위해 너무 큰 돈을 선물한 탓에 코끼리의 배가 홀쭉해졌다.
휴우.
한숨을 폭 내쉰 버니가 폴짝 뛰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는 수 없지.’
훗. 코를 쓱 문지른 버니는 코끼리 배에서 나온 수많은 동화를 가방에 우르르 쏟아 넣은 뒤, 짤랑거리는 토끼 가방을 등에 멨다.
“아기님, 아기님. 이 루리엘이 엄청난 비법을 알려드릴게요. 아기님은 보기만 하면 금방 따라 하시니까 잘 기억해 두셨다가 필요할 때 쓰세요.”
돈이 없으면 벌면 되는 법.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재료를 사야 했다.
흐흥.
버니, 혼자서도 장을 보는 훌륭한 아이. 귀찮지 않지. 공자님도 분명히 버니를 기특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으쓱해진 버니가 막 방을 나선 때였다.
“버니 아가씨!”
“웅? 제씨!”
“네. 이제 가시는 건가요?”
“우웅.”
버니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버니가 지금부터 시장에 가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헉, 사실 제시도 엄청난 천재?!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셨다고 해서 걱정되어 모시러 왔습니다. 아픈 곳은 없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수업이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쪽이에요.”
“으잉……?”
“실례하겠습니다.”
제시가 버니를 달랑 들어 품에 안았다.
짤랑짤랑.
짤랑짤랑.
제시의 품에 안긴 버니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가 청량하게도 울려 퍼졌다.
“어쩌다가 오늘은 지각을 하셨나요? 아가씨.”
“아…….”
수업 완전히 까먹었어.
“미…미래에 대한 고미인?”
코끼리의 빵빵한 주머니를 위하여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려고 했던 버니가 말했다.
‘돈도 미래 고민 맞아.’
버니, 거짓말 안 했어.
어깨에 턱을 툭 올린 버니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며 생각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보기엔 버니 아가씨는 글만 떼시면 쭉쭉 순위가 올라가실 테니까요.”
“…우웅.”
버니 원래 천잰데.
마족어는 전부 다 외웠는데!
‘인간 말 어려워…….’
버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시의 품에 연행되어 수업에 들어갔다.
당연하게도 여전히 버니가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한 글자도 없었다.
* * *
“그래서, 그게 진짜라는 거냐?”
루드브리드 유디아 공작의 딱딱한 질문에도 시종일관 부드러운 낯을 한 노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제 자로 황성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5월 18일 루비아령에서 이름 모를 괴병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관할 영지에서 쉬쉬하면서 어떻게 수습하려고 했으나, 의원이고 연구원이고 전부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정말로 그 메추리알이 예지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건가?”
하찮기 짝이 없었던 새하얀 메추리알을 떠올린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 키리엘.”
“……모릅니다.”
관심 없다는 듯 느릿느릿하게 대답을 내놓은 키리엘 유디아는 손에 쥔 짤랑거리는 천 주머니를 손끝으로 문지르는 데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였다.
그에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혹시 모르니 내부 입단속들 시키고, 이쪽에서 사람 몇 파견해 봐라. 그 수액도 함께 가지고.”
“네.”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내린 명령을 들은 연미복의 남자가 허리를 숙이며 천천히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그래서 왜 불렀습니까…?”
키리엘 유디아가 느릿하고도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부르긴 왜 불렀겠냐! 신성한 의식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거냐!”
“아버지가 계속 손주들 보여 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들 하나, 딸 하나 딱이네요…….”
피곤한 표정으로 나른하게 대답한 키리엘 유디아가 작게 하품을 했다.
그러자 루드브리드 유디아의 표정이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느냐는 것처럼 와작 일그러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근본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을 네 밑으로 들이느냔 말이다!”
“뭔가 책임감 있게 키워 보라고 한 것도 아버지잖아요……?”
“동물을 기르랬지, 누가 어린애를 기르랬느냐! 애초에 네가 무슨 애를 키워?! 네 밥 챙겨 먹질 않아서 아사하기 직전에 발견된 게 몇 번인데!”
키리엘 유디아가 미간을 좁히며 자리에서 느긋하게 일어났다. 성질 급한 사람이 보면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그게 또 남자를 둔해 보이게 만드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느릿함이 키리엘 유디아를 조금 더 기품 있고 여유로운 남자로 보이게 했으니까.
“아무튼, 더 할 말 없으면 가 보겠습니다…….”
“정말 그 애들을 자식 삼을 생각은 아니겠지? 후견인으로 끝내라.”
루드브리드 유디아의 말에 키리엘 유디아가 피식 웃었다.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어지네…….”
작게 중얼거린 키리엘 유디아는 뒤에서 들려오는 왁왁거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무심하게 응접실을 나섰다.
‘귀찮아, 졸려…….’
키리엘 유디아는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실상 키리엘 역시 자신이 좋은 부모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작의 말대로 그는 귀찮음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제 밥을 굶는 일조차 일상다반사였으니까.
“그럼 감사함미다. 담에 또 올게여! 안냥히 오세여!”
뭐, 그쪽도 딱히 부모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제대로 된 부모가 될 생각은 아니었지만, 보호자로서의 이름이 필요하다면 빌려줄 의향이 있는 것에 가까웠다.
‘보호자는 뭘 해 줘야 하더라…….’
나른하게 생각한 키리엘 유디아는 제 방처럼 쓰는 신전으로 들어가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일어나서 생각해 볼까…….’
그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키리엘 유디아는 몰랐다.
호기심이 왕성한 4살의 어린아이는 생각보다 더 획기적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자신이 끊임없이 불려 가게 될 줄은.
* * *
“푸흐……. 글자 하나두 모르게써…….”
힝.
울상인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린 버니가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버니만큼 어린아이는 없었고, 함께 수업받는 아이들은 모두 글자를 읽을 줄 알았다. 글을 모르는 건 버니뿐이었다.
용기를 낸 버니가 옆자리에 앉은 아이에게 슬쩍 물어봤더니, 어릴 때 집에서 엄마나 아빠에게 배우거나 가정교사에게 배웠다는 대답이나 돌아왔다.
방으로 들어와 숙제와 책더미를 한쪽에 내려 둔 버니는 마곰이를 챙기고 다시 동전이 가득 들어서 짤랑거리는 토끼 가방을 멨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톡 뛰어내려 걸음을 옮겼다.
버니에게는 아주아주 사악한 계획이 있었다. 보육원을 함락시켜 버린 마성의 계획!
루리엘의 말에 따르면 이것만 있으면 최소한 어디에 가서든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버니는 늘 루리엘이 옆에서 이것을 만드는 걸 봐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착한 보육원 원장님은 일주일에 한 번 보육원 아이들에게 갈색 동전 5개를 용돈으로 주었는데, 대충 빵집에 가서 작은 공갈빵을 1개 사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흐흥.
‘버니는 맨날 그걸 모아서 쪼꼬를 사 먹었지.’
버니는 무려 갈색 동전 30개가 있어야 사 먹을 수 있는 쪼꼬를 이 방법으로 부자가 되어서 한 달에 한 번이나 먹을 수 있었다.
‘버니 모두에게 인기 만점.’
공작가도 모두 버니의 함정에 풍덩 빠뜨려 주겠어.
아주 작은 버니는 짐을 들거나 옷감을 잔뜩 든 채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를 유유히 스쳐 지났다.
버니가 움직일 때마다 짤랑짤랑 규칙적인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