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4)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4화(14/125)
“시장 다녀옵미다.”
마침내 버니가 출구에 도착해 인사를 건네고 유유히 스쳐 지나가자, 그제야 경비병들이 화들짝 놀라 버니를 보았다.
“시장……? 자, 잠깐만. 무슨 시장을…….”
“재료 사러 가여.”
“재료? 아… 누구 심부름을 가는 거니? 아니 근데 누가 이렇게 작은 애한테…….”
두 경비병은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눴지만, 버니가 히죽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곤 더 막지 못했다.
물론, 버니는 길을 알지 못했다.
“안냥하세여, 예뿐 아조씨. 시장은 어디에여?”
“머찐 언니, 시장에 어떠케 가여?”
“이찌여, 시장은 이 길루 가여?”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
버니는 귀여웠고, 어른들은 모두 버니에게 나름대로 친절했다.
혼자서 심부름을 간다고 하니 직접 길을 안내해 주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버니, 역시 천재.’
훌륭한 천재 버니는 혼자서도 무사히 시장에 도착했다.
* * *
끙차!
버니가 등에 멘 토끼 가방은 시장에 올 때와는 다르게 우락부락한 모양새였다.
뭘 그렇게 가득 밀어 넣은 건지 꽉꽉 들어찬 토끼 가방의 다리가 바짝 서선 곧 바닥에 닿을 기세였다.
볼일을 다 본 버니는 마지막으로 책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간판의 가게로 들어갔다.
딸랑—
“어서 오세요.”
문이 여닫히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주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멈칫했다.
“으잉?”
주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카운터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가 흠칫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새까맣고 우락부락한 토끼 한 마리가 고개를 한껏 치켜세운 채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뒤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 몬스터……?’
가게 주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각목을 손에 쥐곤 침을 꿀꺽 삼켰다. 경비대에 신고하기 위해선 일단 카운터를 한 바퀴 돌아 문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주인이 바짝 긴장한 채 걸음을 막 떼려는 순간이었다.
“요고 아닝데…….”
혀짧고 앳된 목소리에 그가 멈칫했다.
“버니… 글자 몬 읽어찌…….”
책을 살 쑤가 업써…….
서러움에 젖은 목소리에 가게 주인이 멈칫했다. 그제야 살벌하기 짝이 없게 보였던 토끼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고 그저 한 번씩 위아래로 덜렁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토끼 다리 사이로 보이는 작은 다리와 토끼 귀 사이로 보이는 작은 머리통까지.
가게 주인이 멋쩍은 낯으로 각목을 슬쩍 내려놨다.
“아가, 엄마 심부름 왔니?”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새까만 토끼가 휙 몸을 돌렸다.
뽀샤시한 피부에 뺨을 발갛게 물들인 아이가 울상인 낯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차오르는 부끄러움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쥐고 있던 각목을 카운터 뒤쪽으로 던져 버리곤 최대한 상냥하게 웃었다.
“뭘 찾고 있어?”
“누구세여?”
“어… 가게 주인이지?”
“아! 애기두 보는 책 이써여? 버니… 사람 글자를 하나두 몰라여…….”
“글자? 아아, 글공부를 하려고? 물론 있지. 근데 돈은 가지고 있니?”
“넹! 버니 왕 큰 부자.”
피식, 웃은 버니가 남자를 향해 엄지를 척 내밀며 우락부락한 토끼 가방을 뒤적여 짤랑거리는 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보였다.
남자가 피식 웃더니 글자 공부를 할 수 있는 책 하나와 어린 아이용 동화책을 하나 꺼내 주었다.
버니가 천 주머니에서 동화를 한 움큼 꺼내 당당하게 내려 두었다.
눈대중으로 동전을 세어 본 남자가 난감한 낯으로 웃었다.
“아가, 어쩌지? 1500 로스트로는 책을 살 수가 없단다…….”
쿠르릉—
번쩍!
쿵!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치고 거대한 돌덩이가 버니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디까지나 버니의 상상이다.—
버니가 서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버니… 개폭망…….”
돈 없으면 공부도 못 해…….
그날, 버니는 인생을 깨달았다.
* * *
탁탁탁탁.
식칼이 빠르게 움직였다. 산처럼 쌓인 식재료들을 다듬고 다지고 있던 공작가의 수습 요리사, 루카는 양파를 썰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훌쩍.”
눈물이 줄줄 흐르는 고통 속에서도 아직 썰어야 할 양파가 아주 많이 남았다는 걸 깨달은 루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공작가의 요리사까지 되기는 했는데, 수습 요리사이자 주방 막내의 일은 너무나도 고되고 힘들었다.
본 저택은 꿈도 꿀 수 없었고, 매일같이 시험의 저택에 있는 주방에서 대량의 요리를 하고, 식재료를 손질해서 본저택으로 보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새벽부터 나와서 식재료를 전부 손질하고, 남들 다 퇴근했을 때도 식재료를 전부 손질해야 하니, 최근에는 하루에 6시간도 채 자지 못했다.
양파도 매운데 제 처지도 서러워서 눈에서 흐르는 게 설움의 눈물인지, 따가움의 눈물인지도 알 수 없게 됐다.
훌쩍.
“훌쩍.”
훌쩍.
“훌쩍.”
열심히 흐르는 콧물을 훔치며 흐려진 눈으로 열심히 양파를 썰고 있던 루카는 저도 모르게 칼질을 멈추고 말았다.
어딘가에서부터 공명하듯 들려온 훌쩍거림 때문이었다.
“훌쩍.”
훌쩍. 훌쩍.
“……?”
루카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뭐지? 무슨 소리지?’
여기는 시험의 저택에 있는 주방이라 루카 이외의 사람은 없어야만 하는데, 소리가 들리는 것이 기이했다.
당혹스러운 낯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루카는 뭔가를 한 바가지 끌어안고 훌쩍거리는 뽀얀 생명체 하나를 발견했다.
오밀조밀하게 생긴 것이 잘 빚어진 인형같이 귀여운 아이였다.
눈물이 가득 담긴 분홍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후두두.
후두둑.
그러자 주륵주륵 흐르기 시작한 눈물에 루카의 입이 떡 벌어졌다.
“흐어어… 버니 앞이 안 보여여…….”
“으아악!”
멈추지 않고 줄줄 흐르는 버니의 눈물에 당황한 낯으로 비명을 지른 루카가 다급히 물 묻힌 수건과 함께 버니를 옆구리에 끼고 주방을 벗어났다.
훌쩍, 훌쩍.
콧물이 줄줄 흐르고 눈물로 얼굴을 가득 적신 버니는 한참이나 원치 않게 울고 나서야 고개를 빼꼼 들었다.
“괘, 괜찮으세요……? 아가씨.”
“네엥…….”
코를 발갛게 물들인 버니가 의젓하게 대답했다.
그 귀엽기 짝이 없는 모습에 루카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가 냉큼 다물었다.
“요리사 아조씨. 루리가여. 양파를 통통통 할 때는여, 초뿔을 키구 식칼에 물을 묻히래써여……. 아니면 대빵 슬퍼여…….”
벌겋게 달아오른 퉁퉁 부은 눈으로 훌쩍거리며 버니가 말했다.
“어… 그래요?”
버니의 옆에 쪼그려 앉은 루카가 훌쩍거리며 대답했다.
“네엥.”
마찬가지로 버니도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한참이나 서로 하울링 하듯 훌쩍거리던 두 사람이 퉁퉁 부은 서로의 눈을 보곤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히히힝.”
루카는 힐긋 버니를 보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주방까진 어쩐 일이세요? 길이라도 잃으셨나요?”
“아녀, 버니 부탁이가 이써여.”
“부탁이요?”
“넹.”
버니가 퉁퉁 부은 눈으로 루카의 앞에 서서 피식 웃었다.
루카는 어린아이가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제 앞에서 우쭐거리는 것이 퍽 귀여워 슬쩍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그러자 “엣헴!” 소리를 낸 버니가 허리에 척, 양손을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언데까지 양파만 통통통 할 건가, 제군.”
“예……?”
“부자 대구 싶지 안나? 왕 큰 요리사가 대구 싶지 안나?!”
버니가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쩐지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오만한 태도에 루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버니와 함께 짱짱 센 왕 큰 요리사가 대 보는 건 어떠치?!”
“짱짱 센… 왕 큰 요리사……?”
역시! 왕 큰 요리사가 되고 싶겠지.
버니랑 함께라면 초간단!
‘역시 버니 천재……?’
흐흥.
버니의 콧대가 우쭐해졌다. 어깨가 불룩 솟더니 가슴 역시 보란 듯이 앞으로 쭉 내밀어졌다.
“그게 뭔데요……?”
“잉?”
어리둥절한 루카의 물음에 빵빵하게 부풀었던 버니의 어깨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푸시식 가라앉았다.
높아졌던 콧대도 돌아오고, 쭉 내밀어졌던 가슴은 몸과 함께 흐물흐물 아래로 녹아내렸다.
“으음……. 제가 뭐 도와드려야 하는 일이 있는 거죠?”
“네엥…….”
순식간에 바람 빠진 버니가 품에 끌어안고 있던 뭔가를 루카에게 내밀었다.
“버니, 요고 튀겨 주세여.”
그랬다.
버니는 어린이용 식칼과 도마로 식재료를 자를 순 있었지만, 튀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루리엘이 말하길, 어린이가 불을 쓰면 불 속에 숨어 있던 레드 드래곤이 나와서 어린이를 잡아먹기 때문에 불을 쓸 때는 항상 어른이 있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