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18)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18화(18/125)
* * *
“안냥하세여! 하라부지 가주님. 4살, 버니입미다.”
꾸벅.
또다시 비상하기 직전의 새처럼 두 팔을 바짝 세운 채로 고개를 숙인 버니가 파닥파닥 일어나 자리에 곧게 섰다.
인사를 건넨 버니는 새침한 낯으로 뽀짝뽀짝 걸어와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앉아 있는 소파의 맞은편에 야무지게도 털썩 앉았다.
두 팔을 이용해서 기어 올라가 앉는 폼이 꽤 능숙했다.
얌전하게 앉아 손을 무릎에 올린 버니가 말간 눈으로 루드브리드를 바라봤다.
그 모습을 딱딱하게 굳은 낯으로 바라보던 루드브리드 유디아는 뭐에 홀린 것처럼 조용히 손을 뻗었다. 버니가 뻗어진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윽고 히죽 웃고는 머리를 쭉 들이밀었다.
자연스레 손아귀에 들어온 머리통을 슥슥 쓰다듬어 준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크흠, 헛기침을 크게 했다.
“그래, 버니라고.”
“네엥.”
“이번에 알을 소환했었지.”
루드브리드 유디아는 근엄하게 말하면서 버니의 앞으로 쿠키가 담긴 접시를 쭉 밀어 주었다.
아이가 온다고 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물론, 압박 속에서 면담을 했던 다른 이들이 봤으면 기함을 토하다 못해 목덜미를 잡고 억울함에 쓰러질 일이었다.
“그뿐이야? 저번엔 앞에 놓인 과자 허락 없이 먹었다고 엄청나게 혼났대.”
아까 아이들이 떠들던 대화를 떠올린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거, 시험! 함정!’
훌륭하게 함정을 찾아낸 버니가 훗, 하고 웃었다.
‘버니, 이런 거에 낚이는 아가 물고기 아니지.’
물론 루드브리드 유디아로선 오로지 순수한 마음으로 준비한 다과였다.
이유는? 편애였다.
왜? 귀여우니까.
오동통한 볼살, 발랄한 말투, 사람들의 편견 섞인 시선에도 위축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담대함까지.
그랬다.
루드브리드는 귀여운 걸 좋아했다.
어릴 때는 공작가의 후계자로, 커서는 공작으로 사느라 단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낸 적은 없었지만, 칼바람 부는 공작가에 굴러들어 온 순수하고 무해한 생명체에게까지 눈길을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이건 합법적으로 면담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도 했고.
‘과자를 싫어하는 건가?’
손도 대지 않는 버니를 보며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입을 열었다.
“한번 보여 주겠나?”
“넹!”
버니가 힘주어 대답하더니 폴짝 뛰어내려 꼬물꼬물 토끼 가방을 벗어 옆에 두었다.
토끼 가방 안에 들어갈 기세로 얼굴까지 파묻고서 뒤적거리던 버니가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흐겸룡이 알이에여.”
“흐겸… 뭐?”
“요기서 아기 흐겸룡이가 태어나여.”
버니가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루리엘이 버니가 아주 대단한 걸 소환할 거라고 했으니까, 이 알에서는 분명히 왕 큰 드래곤이 태어날 것이 분명했다.
흐겸룡이가 있으면 무슨 일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해낼 수 있다고 루리엘이 말했었으니까.
그러니까 흐겸룡이 생기면 버니는 드디어 엄청나게 기특한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럼 버니 아빠 뿌듯해.’
분명 버니에게 감동해서 쓰담쓰담도 해 주고 흐물흐물해질 것이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부 내 딸에게 선물하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버니, 사악하게 아빠 이용해.’
“한번 살펴보마.”
“넹!”
버니가 히죽히죽 웃으며 달걀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둔 때였다.
“으잉……?”
달걀… 아니, 메추리알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돌연 루드브리드 유디아의 반지 위에 톡 내려앉았다.
파삭—
“…….”
“…….”
루드브리드가 찬 반지에 있던 반짝거리는 푸른 보석에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파스스 부서져 메추리알에 흡수됐다.
쑤욱.
메추리알이 아주 조금 커졌다.
버니가 입을 떡 벌렸다.
‘헉, 달걀이가 반지 부쉈어?! 버니, 면접 백 점 받아야 하는데!’
우르릉 쾅쾅!
버니의 머리 위로 천둥이 쳤다. 이윽고 버니가 떨리는 눈으로 루드브리드를 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
한껏 가늘어진 차가운 시선.
‘의지가 있군……. 이건 살아 있는 건가?’
당장이라도 버니의 흐겸룡 알을 깨 버릴 것 같은 사나운 눈빛.
루드브리드 유디아의 모든 곳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푸른 눈동자가 괴물처럼 번뜩였다.
—버니의 생각이다—
버니는 바들바들 떨며 급히 가방에서 오늘 쓰기 위해서 가지고 나온 고구마 살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루드브리드의 시선이 그제야 버니에게 닿았다.
‘천 주머니?’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자, 버니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저, 저희 달걀이가 아직 애기라 재송합미다……. 펴, 편소엔 아무도 안 무는 착한 아긴데… 배가 고팠나 바여…….”
버니가 꿀꺽 침을 삼키며 천 주머니를 루드브리드 유디아 쪽으로 조금 더 쭉 밀어 주었다. 루드브리드의 표정이 한층 의아해졌다.
“요, 요걸로… 구거, 버니가 사, 살 쑤 있나여……?”
예전에 시장에서 버니가 생각 없이 집어 먹었던 초콜릿값을 루리엘이 사과하며 대신 치른 것을 떠올린 버니가 더듬더듬 말했다.
“이걸 사겠다고? 이건 성력석이 달린 반지다.”
안 되나 봐, 어떡하지?
“코끼리 가지구 오면 더 드릴 쑤 이써여…….”
루드브리드가 울먹울먹한 버니의 눈동자를 보며 멈칫했다.
“부족해여……?”
루드브리드는 조용히 손에 끼고 있던 성력석이 깨진 금반지를 빼서 버니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아니, 사고도 이만큼이 남는다.”
경매에 내놓으면 최소 수천만 로스트는 할 성력석이 달린 플래티늄 골드로 된 금반지가 단돈 1500 로스트에 팔린 순간이었다.
크흠. 크흠. 크흠!
연신 헛기침을 한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굳은살이 박인 커다란 손으로 제 얼굴을 벅벅 문지르더니, 표정을 간신히 갈무리하곤 입을 열었다.
“…그래. 아무튼 면담 말이다.”
“네에!”
“시험 성적이랑 등수는…….”
루드브리드 유디아는 서류를 넘겨 보다가 멈칫했다.
0점으로 가득 찬 점수지를 바라보던 그가 조금 흔들리는 시선으로 버니를 보았다. 등수는 당연히 뒤에서 1등을 달리고 있었다.
시험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일그러져선 울먹울먹해진 버니의 눈을 바라보던 루드브리드 유디아는 조용히 서류를 덮었다.
“음. 잘하고 있구나.”
“버니… 잘해여……?”
“그래. 10세 미만 아이 중에는 버니가 1등이구나.”
버니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덤덤하게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험의 저택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예외를 제외하곤 10세 이상의 방계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10세 미만에서는 버니가 1등이 맞았다.
“버니 일뜽이에여?”
눈을 동그랗게 뜬 버니의 모습에 루드브리드가 애꿎은 서류를 팔랑팔랑 넘겨 보는 척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열심히 한다고 나와 있군.”
물론 그런 말은 보고서에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각 과목별 점수와 간단한 평가가 적혀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루드브리드 유디아는 보고서에 사족이 들어가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 보거라.”
“버니는 왕 큰 대마왕!”
“…음?”
아차.
여기 악당 인간 소굴! 버니, 가루 돼.
“…보다 왕 쎈 대마법싸가 되구 시픕니다!”
버니가 재빨리 순발력을 발휘했다. 훌륭하게 거짓말을 내뱉은 버니의 말을 들은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게 유디아 가문에선 가문이 세워진 이래 단 한 번도 마법사의 ‘마’ 자를 가진 인간이 태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대마법사가 되고 싶은 거냐.”
“넹!”
“크흠. 혹시 대신관이나 성녀는 관심 없고……?”
“대신간이나 선녀여?”
“그래. 유디아 가문에서도 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엄청 대단하고 가장 높은 사람들이지.”
버니가 눈을 깜빡깜빡하더니 더없이 활짝 웃었다.
왜냐하면 그건 버니가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꿈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루가 되어 버릴 테니까.
버니의 해맑은 웃음에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멈칫했다.
“넹. 버니, 대마법싸가 조아여!”
애초에 버니는 왕 큰 대마왕이 될 예정이기 때문에, 나쁜 인간들의 우두머리는 될 수 없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이 했다면 크게 혼이 나거나, 아니면 루드브리드 유디아의 기나긴 연설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 할 수 있을 거다. 대마법사.”
차마 그 말간 눈을 모른 척하지 못한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는 이가 들었다면 코웃음을 칠 정도로 되먹지도 않은 소리였다.
사각사각.
[장래 희망: 대마법사]그렇게 유디아 공작가가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상담 일지에 대마법사라는 기괴한 명칭이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