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22)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22화(22/125)
“안 버려. 왜 버린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 따님은…….”
키리엘 유디아가 드물게도 단호하게 말하며 버니를 덜렁 안아 제 무릎에 앉혔다.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놀란 표정을 한 아이의 뺨을 한 차례 문지른 키리엘 유디아가 피식 웃었다.
“그야…….”
버니는 눈동자를 끔뻑였다.
버니는 마족이고 키리엘 유디아는 마족을 싫어하니까.
루리엘의 수첩 내용을 떠올린 버니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렸다.
하지만, 어른이 되려면 공작가 아가씨로 있어야 해.
이유는 모르지만, 루리엘이 그러라고 했으니까. 그러려면 쓸모 있어야 하는데…….
“버니 지금은 쓸모엄쓰니까…….”
드물게도 풀이 죽은 버니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리자, 키리엘 유디아는 아이의 젖은 뺨을 두어 차례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별로 쓸모 있지 않아도 되는데. 이 집안에서 쓸모 있어 봐야…….”
느리게 말을 이어 가던 키리엘 유디아가 돌연 말끝을 흐리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안 버려. 이미 거뒀으니 책임질 거야.”
“버니가 어른 댈 때까지여?”
“그래.”
키리엘 유디아의 말에 버니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키리엘 유디아가 설핏 웃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앨런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 앨런이 어깨를 움찔 떨더니 시선을 슬쩍 피했다.
“너도 마찬가지고, 앨런.”
“……!”
덧붙여지는 말에 눈을 크게 뜬 앨런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마차는 침묵 속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 * *
똑똑.
곧 사그라들 것 같은 아주 작은 노크 소리에도 빠르게 반응한 루드브리드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안냥쎄여.”
“오냐, 왔느냐?”
꾸벅.
예의 바르게 비상할 듯 인사를 하는 버니를 바라보는 루드브리드의 입가가 흐물흐물하게 풀리더니 흐뭇한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누가 믿겠는가.
저 철옹성 같은 노인이 헤실거리며 웃고 있단 걸.
버니가 움직일 때마다 짤랑짤랑 싸구려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버니, 성려기 사러 와써여.”
“그래? 와서 골라 보거라. 이쪽에 많으니까 말이다.”
짤랑짤랑 흔들거리는 코끼리를 품에 안은 채 버니가 타박타박 걸어 루드브리드가 안내하는 소파에 앉았다.
단돈 1500 로스트로 잘 가공된 성력석을 구했던 버니는 똑똑하게도 성력석을 구매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키리엘의 소개 덕분이었다.
“자, 오늘은 어떤 녀석을 사러 왔느냐.”
루드브리드는 버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가지각색의 성력석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입꼬리에 힘을 준 채로 구경했다.
귀염성이라곤 없는 막내아들인 키리엘이 전해 주길 뻔뻔하게도 감히 유디아령에서 제 손녀를 속여 먹은 놈이 있다고 들었다. 감히 가짜 성력석을 팔아먹었다나.
그것도 저 어린 것이 한 푼, 두 푼 제 손으로 번 코 묻은 돈을 홀라당 뜯겼다고 하질 않나.
물론, 루드브리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기는 했다.
유디아령에 떠밀려 온 떠돌이 중 하나였다. 감히 유디아령에서 허튼짓을 벌인 것부터가 그놈의 패인이었다.
유디아령은 가장 강력한 신성으로 보호받는 영지.
수도도 이곳보다는 안전하지 않다.
수도가 뚫렸을 때 황제가 최후의 피난처로 삼는 곳이 유디아령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특히 루드브리드가 태어난 뒤로는 범죄율이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루드브리드가 소환한 파트너이자 그의 신수 페가수스는 주인이 원하는 것을 추적하고 숨겨진 것을 탐색하는 능력을 가진 신수였다.
유디아의 핏줄을 찾아내는 것도, 죄를 저지른 인간을 찾아내는 것도, 흔적만 남아 있다면 페가수스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할부지, 요곤 얼마예여?”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버니의 모습에 루드브리드가 “크흠.” 헛기침을 하더니 슬쩍 성력석을 보았다.
“어디 보자, 크기가 크니까 2500 로스트쯤 하겠구나. 동전 25개란다.”
5,800만 로스트.
머릿속으로 실제 가격이 스쳐 지나갔지만, 루드브리드는 가볍게 그것을 무시했다.
‘다 신수를 부화시키기 위함이지.’
루드브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버니가 소환한 알은 성력석을 먹이로 삼아 쑥쑥 자라고 있었다. 얘기를 들으니, 알이 버니만큼 커다래졌다고 한다.
‘알 형태의 신수는 처음인데…….’
살아 있는 것을 보아하니 성물이라기보단 신수에 가까울 것이다. 성력석을 이 정도로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것을 보아하니, 무엇이 나올지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성력석은 사실 부르는 게 값이나 마찬가지였다.
성력석만 가지고 있어도 자잘한 병에도 걸리지 않고, 탁한 기운으로부터 정화를 해 주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성력석은 보통 마족이나 마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 무기를 만들 때 사용되기도 했다.
가공이 대단히 까다로운 탓에 유디아 공작가에서 거의 대부분의 성력석 광산을 독점하고 있기도 했고.
“요고로 할게여!”
“오냐, 그러려무나.”
“네엥!”
냉큼 고개를 끄덕인 버니가 코끼리 저금통의 코를 뚝 떼더니 짤짤짤 동전을 꺼냈다.
“일, 이… 사암…….”
손가락을 접어 가며 열심히 세는 버니를 보는 루드브리드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십오!”
“옳지, 잘했다. 벌써 25까지 외웠구나.”
훗. 버니 천재!
버니가 히죽 웃은 그때였다.
똑똑.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아이가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공작 각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집사, 펠의 등장에 루드브리드는 언제 웃었냐는 듯 입가와 눈가에 힘을 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이냐.”
순식간에 근엄해진 목소리로 말하는 루드브리드의 모습을 펠은 물끄러미 보았다.
정확히는 동전 25개를 손에 쥔 채 버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던 루드브리드의 모습을 말이다.
“새로운 리본을 하셨네요. 노란 리본도 퍽 잘 어울리십니다. 오늘도 버니 아가씨께선 귀여우시군요.”
흐흥.
펠의 칭찬에 버니의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칭찬은 버니를 춤추게 했다. 그리고 펠은 칭찬에 아주아주 후한 사람이었다.
‘좋은 인간.’
나중에 왕 큰 대마왕 되면 부자 되게 해 줘야지.
펠에게 마음의 합격 도장을 쾅! 찍은 버니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키리엘 공자님의 부관이 버니 아가씨를 찾고 있습니다.”
펠의 말에 루드브리드가 마뜩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 준비 하실까요?”
“네엥.”
고개를 끄덕인 버니가 코끼리 코를 다시 닫고 남은 동전을 다시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펠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아, 그리고…….”
뭔가를 말하려던 펠이 멈칫하더니 버니의 눈치를 살폈다.
그에 루드브리드가 눈을 가늘게 뜨곤 입을 열었다.
“뭐냐, 말해라.”
“음, 그게…… 최근 패배해서 도망치다 숨은 마족들 사이에서 기묘한 소문이 돌고 있는 듯합니다.”
“기묘한 소문? 뭔가?”
“아직 소문뿐입니다만… 마족의 아이가 생존해 있다고 합니다.”
“아이?”
“네, 정확히는 죽은 마왕에게 아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차기 마왕으로 각성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짤랑짤랑.
순간, 버니의 몸이 파드득 떨리더니 손에 쥐고 있던 동전이 땡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버니 아가씨.”
“…네엥. 감삼미다.”
펠이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 다시 버니의 손에 쥐여 주었다.
‘버니, 심장 쿵덕쿵덕…….’
마왕의 아이…….
아무리 봐도 버니의 얘기가 분명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 소리에 버니가 코끼리 저금통을 조금 더 힘껏 품에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