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29)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29화(29/125)
“하하……. 키리엘 공자님께서 많이 예민하셨던 모양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각하.”
“그, 그렇습니다! 왜… 키리엘 공자님은 돌아가신 디오스 소공작님을 굉장히 잘 따르시지 않았습니까.”
“암, 훌륭하신 분이셨죠. 진정한 영웅은 분명히 디오스 소공작 각하입니다.”
싸늘해진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가신들이 하나하나 내뱉는 말에 루드브리드 유디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대단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인상을 찡그린 채 혀를 차며 고개를 까딱였다.
“쯧. 마족에게 패해서 이미 죽은 놈을 뭐 하러 또 탁상에 올리는 게야?”
“아니… 저희는 그저 단지 죽은 소공작 각하의 대단함을…….”
“시끄럽게 혀를 놀릴 거면 다 나가라. 아니면 정신머리 교육이라도 다시 받고 싶은 게냐?”
“예……? 아, 아뇨.”
가신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팔짱을 낀 클라인까지 서늘한 시선으로 쳐다보자, 결국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물렸다.
“너희도 눈앞에서 꺼져라, 이놈들아.”
“또또 말 안 예쁘게 하시네.”
클라인 유디아가 피식 웃으며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근육질의 남자는 말없이 꼬장꼬장한 노인네처럼 굳은 낯으로 사납게 자신을 노려보는 루드브리드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형이 죽은 건 딱히 아버지 탓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막냉이야 어려서 저러는 거죠.”
“시끄럽고 안 꺼져?”
“기껏 낳은 자식 뒀다 뭐 합니까? 약한 모습 좀 보여도 그러려니 하는 거지. 아버지가 눈물 좀 흘린다고 그거 소문낼 인간 없습니다.”
턱을 괸 채 퍽 껄렁하게 덧붙이는 클라인 유디아의 덤덤한 말에, 핏줄이 불거진 루드브리드의 눈이 한층 가늘어졌다.
“형이 죽은 건 슬픈 일이었잖습니까. 형을 지키지 못한 건 우리 모두의 일이고. 그러니 딱히 자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얀 놈들이 아주 아비를 우습게 알지. 시끄럽고 나가!”
“하여튼… 솔직하지 못하시긴.”
쯧쯧, 혀를 차는 클라인을 루드브리드가 사납게 노려봤다.
“뭐, 이번 건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내 조카 후보님의 말이 맞는지도 궁금하고……. 그 말이 진짜라면 던전이 어떤 식으로 생성되는 건지 원리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귀찮기는 하지만.
덧붙이며 뒷머리를 긁적인 클라인이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수정을 손에 쥐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가볍게 손을 흔들고 회의실을 나갔다.
“넌 왜 안 나가냐.”
“그냥요. 원래 이런 거 달래 주는 건 딸밖에 없다고 하잖아요.”
“지랄 말고 얼른 시집이나 갈 생각을 해라. 아주 평생 손주 보여 줄 생각이 없지.”
“손주라면 오빠한테 있잖아요. 서열 1위고, 오빠랑 다르게 성격도 좋고.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휘휘 손을 저은 살라메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또각.
회의실 문을 향해 걸어가던 살라메가 멈칫하더니 힐긋 고개를 돌렸다.
“혼자 너무 울지 마세요~”
가볍게 말을 덧붙인 살라메가 휘휘 손을 내젓곤 회의실을 나가 문을 툭 닫았다.
“하여튼 하나같이 고얀 놈들이……. 울기는 누가 운다고.”
마뜩잖다는 듯 끌끌 혀를 찬 루드브리드는 굳은살이 박인 커다란 손을 들어 천천히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버지는 항상 그런 식이죠. 제 의견은 중요하지도 않은 것처럼. 차라리 제가 아버지 아들이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울 자격도 없는 인간이 울어서 뭘 하겠나.
떠오르는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는 지독히도 무겁게 잠식되어 있어서, 뒤늦은 대답이나 속죄는 수년째 속에서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 * *
긴 복도를 걸어 방으로 돌아가려던 키리엘은 몸을 돌려 저택 내에 있는 신전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도중 챱. 작고 따뜻한 것이 키리엘의 뺨에 툭 닿았다.
놀란 키리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
키리엘이 슬쩍 시선을 내리자, 언제 깼는지 모를 버니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반짝거리는 분홍빛 눈동자. 사르르 흘러내리는 물빛 머리카락.
“이런, 깨웠니?”
“공자님, 딱딱이 얼굴.”
버니의 말에 키리엘이 멈칫했다.
아이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그가 피식 웃으며 아이를 안지 않은 팔로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내 얼굴이 딱딱해? 화난 건 아니야.”
“응. 화 아냐. 공자님 슬퍼여. 우러여?”
표정을 애써 갈무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던 키리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공자님 슬프면… 버니 슬퍼.”
작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그는 걸음을 완전히 멈추고 말았다.
“왜 내가 슬프다고 생각해? 아버지가 조금 화날 말을 해서 화를 낸 것뿐이야.”
“…거진말.”
버니가 말했다.
“버니 다 알아여. 아가 아녜여.”
버니가 짧디짧은 손을 뻗어 키리엘의 목을 조금 세게 끌어안았다.
키리엘은 제게 바투 안겨 오는 아이의 몸에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루리가 그래써. 슬푼 걸 슬푸다구 안 하면 막, 으음. 막 썩는대써여. 그러니까 슬플 땐… 우러야 한대써.”
“…이상하네. 딱히 슬프지 않은데.”
키리엘은 피식 웃으며 제게 들러붙은 아이의 등을 조심히 쓸어내리면서 천천히 신전 앞에 서서 멀거니 고개를 젖혔다.
신전은 키리엘 유디아의 도피처였다.
기도실에 틀어박혀 있으면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누구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디오스의 죽음 이후 키리엘이 신전의 기도실에 박혀 무기력하게 지내던 때, 그것을 보다 못한 루드브리드가 키리엘에게 신전 출입 금지를 명했던 적이 있었다.
신전에서 쫓겨난 키리엘은 몇 번이고 제 방에서 아사 직전에 발견되고는 했다.
두세 번 그렇게 발견된 이후 루드브리드는 신전 출입 금지 명령을 풀었다.
그 이후, 신전에는 암묵적인 규칙이 생겨났다.
키리엘 유디아가 기도실에 들어가면 건드리지 말 것.
최소한 키리엘이 신전에서 죽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어머니가 사랑하고 형이 자주 오갔던 신전에서는.
키리엘은 시선을 내려 제 품에 안긴 아이가 말간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
“이찌여, 우는 거는 아가만 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두 해야 댄대여.”
“…그래?”
“네엥! 안 우는 게 왕 큰 게 아니라 엉엉 울구 나서 다시 일어나서 내일 맘마를 먹구 복복복복이랑 어푸어푸를 하구 치카치카두 하는 게 진짜 왕 큰 거래써여.”
“그렇구나.”
조몰락조몰락 손가락을 움직여 엄지를 척 내미는 버니를 보며 키리엘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버니두 슬푸면 우러여. 그리구 내일에는 열심히 어푸어푸 해여. 복복복복두 해여!”
“기특하네. 우리 딸이 나보다 나아.”
“…히히.”
버니가 키리엘의 옷자락에 얼굴을 슬쩍 문질렀다.
키리엘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두어 차례 쓰다듬었다.
“그래두여, 엄청 엄청 눈물이 퐁퐁할 때는여……. 토토를 머리맡에 두구 마고미를 꼬옥 끌어안구 자여. 토토가 악몽을 와구와구 먹구 마고미가 갠차나, 갠차나 해 주니까…….”
버니가 작은 손으로 제 가슴을 팡팡 치며 으쓱했다.
“버니는 이제 어른이니까 공자님 빌려주께여.”
대단하지?
불룩 솟은 아이의 콧대가 그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키리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따님도 슬픈 일이 있었어?”
“넹!”
“무슨 일?”
메추리알이 나왔을 때 펑펑 울던 것을 떠올리면, 퍽 귀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키리엘이 가볍게 말을 던졌다.
“버니, 루리랑 헤어져써……. 아빠두 엄마두 엄써……. 혼자 댔을 때 쪼끔 슬퍼써여…….”
생각지도 못한 말에 키리엘의 눈이 훅 커졌다.
혹시나 우는 건가 싶어서 시선을 내렸지만, 버니는 울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지.
“그래서 훌륭한 어른이 대려면 짱 쎈 아빠 피료했는데 공자님이 그럼 버니 보호자 하까? 할 때 기뻐써여.”
몸을 배배 꼬며 말하더니 제 목을 확 끌어안는 버니의 행동에 키리엘은 말없이 그 등을 쓸어내리다가 고개를 젖혔다.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제 형과 어머니의 머리카락 색과 닮은 새파란 하늘.
그러고 보니 아이의 머리카락 색도 비슷한 물빛이다.
어쩌면 이 아이를 제가 받아들인 건 이 머리카락 색이 그 축복의 방에서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을까?
“딸, 역시 방으로 돌아갈까.”
“넹!”
아이의 발랄한 대답에 신전 앞에 우뚝 서 있던 키리엘이 천천히 몸을 돌려 다시 저택으로 향했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앨런과 함께 온종일 방에서 셋이 먹고 자고 게임이나 하면서 뒹굴뒹굴한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