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35)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35화(35/125)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울음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건 뭐냐? 신수인가?”
“아이의 신수인 모양입니다.”
“그 솜털 같은 게?”
“네.”
키리엘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흑염룡이 아니구나. 실망이 크겠는데.”
루드브리드의 말에 키리엘이 황당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삐—익!”
붉은 뱁새가 키리엘의 어깨를 작은 다리로 박차고 날아오르며 작은 날개를 파닥거렸다.
툭.
데구루루.
그리고 그대로 수직으로 하강해 버니의 배 위로 툭 떨어졌다. 파닥거리는 날갯짓이 애처롭다.
“…….”
“…….”
“…삑.”
데구루루 한 바퀴를 돈 붉은 뱁새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서 우뚝 일어났다.
침묵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붉은 뱁새가 돌연 버니의 가슴팍에 툭 주저앉았다.
“그 커다란 알에서 태어난 거라고? 이게 말이냐?”
“네. 아들 녀석이 가져다줬습니다. 버니에게 전달해 달라고요. 그나저나 입단속 참 잘되더군요. 수업받던 애가 사색이 되어서 달려올 정도로.”
무표정한 낯으로 내뱉는 키리엘의 고저 없는 나른한 목소리에는 옅은 책망이 담겨 있었다.
루드브리드는 그것을 눈치채곤 잠시 멈칫하다 눈을 크게 떴다.
“…날 탓하는 거냐?”
“그럼 입단속 못 한 걸 누굴 탓합니까.”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네가 웬일로 화를 내는구나.”
“…….”
루드브리드의 말에 키리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루드브리드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처럼 살아가던 막내아들이었다.
장남의 죽음 이후로 마치 모든 의욕을 잃은 듯, 세상에서 등을 돌린 채 숨만 쉬며 간신히 주어진 일만을 해내며 살아가던 아이.
키리엘은 옛날부터 감정 표현이 서툰 아이였다.
마치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좋고 싫음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고, 타인의 아픔에도 무감한 편이었다.
공감할 줄 몰랐고,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는 했다.
그런 와중에도 전투 센스는 천부적이었고, 머리 역시 타고난 천재였다.
그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딱 어딘가 공장에서 만들어 낸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인간 같지 않았다는 말이다.
짐작되는 이유는 하나였다.
검은 머리.
붉은 눈.
그건 마족의 색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이 그 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족의 저주를 받았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일반적으로 마족의 저주를 받은 자는 눈동자가 붉어진다.
다만, 키리엘은 조금 특이하게도 그의 어머니가 태중에 그를 품고 있을 때 일찍이 마족의 저주를 받은 탓에 머리색까지 새까맣게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버티던 그녀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태어난 키리엘 유디아는 마족의 증거라고 하는 새까만 머리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유디아 공작가 직계라면 누구나 둘 중 하나는 가지고 있는 푸른 눈동자나 은빛 머리카락을 전혀 이어받지 못한 채로.
그래서 어린 날, 키리엘을 마주한 이들은 하나같이 그를 기분 나쁘고 꺼림칙하며 불쾌한 인간이라고 했다.
다행히 형제였던 클라인이나 살라메는 원래 저런 싸가지 없는 성격이구나 싶었는지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굴었고, 스치듯 흘려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한 사람, 키리엘을 붙잡고 아픈 건 아프다, 나쁜 건 나쁘다, 슬픈 건 슬프다고 알려 준 사람이 있었다.
디오스 유디아였다.
지금처럼 어느 정도 사람과 교류하며 사람처럼 굴고 있는 것은 전부 디오스의 노력 덕분이었다.
루드브리드 유디아조차 하지 않은 노력이었다.
그는 키리엘에게 끊임없이 다가갔고, 키리엘을 기어코 사람처럼 만들어 냈다.
전쟁이나 전투에도 전혀 흥미가 없던 키리엘이 성마 전쟁에 참전한 것도, 장남이었던 디오스 유디아가 마족과 싸우다 실종된 이후의 일이었다.
목적은 오로지 디오스를 찾기 위함이었다.
키리엘이 참전하고 성마 전쟁의 기세가 뒤바뀌었다.
그리고 키리엘은 기어코 마왕의 목을 베어 냈다. 마왕의 실체를 마주하고, 그와 대화를 나눈 것도 키리엘이 유일했다.
“넌… 정말로 그 가족 놀이를 할 생각이냐? 나는 네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다고요.”
루드브리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키리엘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루드브리드가 멈칫했다.
“왜요? 제가 어머니를 죽이고 태어난 불길한 놈이라서요? 아니면 마족의 저주를 받고 태어나서 감정 따윈 모르는 괴물 같은 놈이라?”
“허……. 나는 그게 아니라 네놈이 네놈 앞가림도 제대로 못 하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은 걸 원망하고 계시잖아요. 제가 아니었으면 치료를 받으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
“키리엘! 너 진짜…….”
키리엘이 무감정한 눈으로 루드브리드를 보았다.
루드브리드가 멈칫했다.
이 눈이다. 어릴 때부터 질리도록 보아 왔던 눈.
타인에게도 관심 없고, 스스로에게도 흥미가 없으며, 무엇도 원하지 않는 인간 같지 않은 눈.
“원망하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절 은연중에 두렵다고 생각하시고. 언제 폭주해서 마족처럼 괴물이 될지 모르는 괴물이니까.”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단 한 번도……!”
키리엘 유디아가 정확히 루드브리드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에 루드브리드는 멈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키리엘의 눈이 그에게 책망을 내비치고 있었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죠. 일단, 지금 문제는 버니니까요.”
키리엘의 말에 루드브리드가 시선을 내린 순간이었다.
뽁!
묘한 소리에 시선을 내리자, 버니의 가슴팍에 팔랑팔랑 불꽃처럼 일렁이는 붉은 깃털 하나가 내려앉아 있었다.
붉은 뱁새보다 훨씬 더 큰 깃털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붉은 뱁새는 어느새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모양인지, 버니의 얼굴 옆에 둥지를 틀고 작은 날개 사이에 얼굴을 푹 파묻은 후였다.
“깃털?”
스르륵.
깃털이 한 차례 반짝 빛나더니 이윽고 녹아내리듯 흩어져 버니의 가슴에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잠깐, 이건!”
키리엘이 드물게도 당황한 낯으로 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깃털은 완전히 버니의 몸에 스며든 후였다.
그와 동시에 거칠었던 버니의 호흡이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아이에게서 느껴졌던 사납게 요동치는 마기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자리에 있던 세 사람도 그것을 느낀 듯 눈을 크게 떴다.
“…마기가.”
루드브리드가 작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키리엘이 아이의 손을 붙잡고 급히 제 신성력을 다시 밀어 넣었다.
“버니 아가씨는 괜찮으십니까? 공자님.”
곁으로 다가온 레본이 물었다.
“…없다.”
“없다니 뭐가…….”
“마기가 조금씩 흩어지고 있단 말이다.”
방금 스며든 깃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무언가 작용을 한 것이 분명했다.
‘붉은 깃털?’
살짝 눈을 크게 뜬 키리엘이 버니의 옆에서 날개를 둥글게 말아 둥지를 튼 채 버니와 똑같이 새근새근 잠을 자는 붉은 뱁새를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붉은 깃털.
그리고 하필 버니에게로 떨어졌던 붉은 뱁새.
깃털이 뱁새에 비해서 두세 배는 더 크기가 큰 것 같지만, 붉은 깃털이라는 것에서 저 새의, 혹은 저 새가 가져온 깃털일 확률이 높았다.
‘꼭 신수의 크기가 능력에 비례하는 건 아니긴 하지.’
이렇게 작은 신수를 보는 것도 처음이긴 했지만 말이다.
키리엘은 아이의 호흡이 안정되고 열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보다가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일단 괜찮아진 것 같으니 아이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황제는 뭐랍니까?”
“버니의 일이 일단락되면 한번 다시 보자고 하더군.”
“미리 경고합니다만, 아이에게 뭔갈 강요하지 마십시오.”
키리엘이 무심한 낯으로 덤덤하게 대답하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레본 역시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네곤 키리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이를 키우는 건 쉽지 않다. 염려해서 하는 말이니 잘 고민해 보도록 해라.”
루드브리드의 말에 키리엘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신전을 벗어났다.
“레본.”
“네.”
“방을 옮겨야겠어.”
“예???”
레본이 뭔 소리냐는 듯 고저 없는 낯으로 목소리만 높여 반문했다.
“별저를 써야겠으니 정리해 둬.”
“별저라면…….”
“어머니께서 내게 남겨 주신 저택. 거길 열라는 말이야.”
키리엘의 말에 레본의 눈이 놀란 듯 살짝 커지더니 이윽고 천천히 제자리를 찾았다.
그는 키리엘의 품에 안긴 버니를 잠시 보더니 이내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레본의 입가에 아주 짧게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