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38)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38화(38/125)
* * *
순위 결정전.
신수를 소환했다면 나이를 불문하고 참석해야 하는 유디아 공작가의 큰 행사 중 하나였다.
일 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순위 결정전에서는 말 그대로 신수끼리 대결을 펼쳐서 종합적으로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것이라고 했다.
“넌 원하지 않으면 안 나가도 된단다, 버니.”
설명을 해 준 키리엘이 무릎에 앉은 버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여? 버니 일 뜽 해야 아빠 왕 커지는데.”
“버니가 1등 안 해도 나는 왕 커.”
왕 크다는 말이 엄청나다거나 대단하다는 말과 비슷한 뜻이라는 걸 학습한 키리엘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뜬 버니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더 왕 커지는데여?”
“이미 더 왕 커.”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아무리 봐도 신빙성이 영 없었던 탓이다.
왕 큰 건 이해하겠지만 더 왕 크다는 건 조금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거진말은 안 대여.”
“거짓말 아닌데.”
작게 웃은 키리엘이 아이의 뺨을 가볍게 문질렀다.
아이는 솔직하다. 그의 손길 한 번, 쓰다듬 한 번에 기쁘다는 듯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곤 만면에 미소를 띠었으니까.
‘이래서 애를 키우나.’
부지런한 버니와 앨런 덕분에 키리엘도 요즘은 제때 일어나서 아이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도 했다.
“오늘도 요리를 팔 거니?”
“넹!”
“왜 그걸 파는 거야?”
“버니는 혼자 다 할 수 이써야 해여. 사람 일 어떠케 댈지도 모르니까 미리미리 중비를 해 나야 한대써여.”
버니의 말에 키리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이내 서서히 줄어들었다.
혼자 해내야 했던 일이 많았던 탓인지, 아이는 항상 뭔가를 혼자서 해내려고 애를 쓰곤 했다.
“글자 공부는 잘되어 가고?”
“넹. 8개 외워써여.”
“도와줄까?”
“버니, 천재라 혼자도 짱짱 가능이여.”
훗.
웃은 버니가 엄지를 척 내밀어 보였다. 뭐든지 혼자 할 줄 아는 아이는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었고 그를 귀찮게 하지 않는 기특한 아이였지만,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기대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버니.”
“넹.”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 힘든 거 있어도 언제든 말하고.”
눈을 깜빡인 버니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넌 맨날 비슷한 옷만 입네.”
“보육언 언장님이 선물해 준 옷이에여. 버니가 조아하는 일 번 옷.”
광대가 불룩 솟아선 예쁘죠? 하고 물어보는 듯한 표정에 심장 한편이 묘하게 지끈거렸다.
더 좋은 것들이 많을 텐데, 저걸로 만족할 건 또 뭔가.
그러고 보면 버니는 그에게 뭔갈 요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저번에 기사를 혼내 달라고 했던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
손을 뻗은 키리엘이 버니의 머리를 두어 차례 문질렀다.
“버니, 우리 쇼핑 갈까?”
“헉, 버니두여?”
“응. 네 오빠도 같이.”
버니가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조아여. 애런 부를게여! 마고미랑 코끼리두 데리구 오께여!”
“코끼리?”
“넹. 버니 보물 상자!”
그러고 보니 코끼리 모양의 저금통이 있었다.
키리엘이 멈칫하더니 어딘가 미묘한 낯으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코끼리는 안 데리고 와도 돼. 내가 사 줄 테니까. 아빠잖아.”
버니가 눈을 두어 차례 깜빡이더니 “아!” 소리치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넹!”
이윽고 소식을 들은 앨런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본 저택으로 달려왔다.
세 사람이 함께하는 첫 나들이였다.
* * *
딸랑—
세 사람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화려한 거리에 우뚝 솟은 커다란 건물이었다.
2층짜리 커다란 건물은 건물 전체가 의상실로, 귀족들이 오가는 거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라 했다.
“어서 오십시오, 키리엘 유디아 공자님.”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일렬로 쭉 늘어선 점원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공작가 아가씨!’
번쩍번쩍!
사람도 잔뜩! 옷도 가득!
버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앨런도 이런 곳에 오는 것이 처음인 모양인지 입을 한껏 벌린 채 버니와 똑같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있었다.
“와아…….”
“우와앙…….”
안고 있던 버니를 내려 주자 버니는 대리석으로 된 건물을 뽈뽈뽈 내달리며 그들의 주변을 크게 빙 돌았다.
“아빠, 옷 잔뜩 이써여!”
“그래. 의상실이니까. 원하는 만큼 골라 봐라, 버니.”
“넹!”
“앨런 너도. 미리 신경 써 줬어야 했는데 미안하구나.”
“……벼, 별로.”
키리엘의 말에 앨런이 눈을 크게 떴다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던 버니가 슬쩍 까치발을 들고 옷에 붙은 가격표를 보더니 우뚝 굳었다.
불현듯 버니의 머릿속에 루리엘과의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루리, 머가 비싸야, 머가 싸야?”
“음, 뒤에 0이 5개보다 많으면 비싼 거예요. 6개가 되면 어어엄청 비싼 거고요.”
“어어엄청 비싸면 어떠케?”
“음. 가계(家計)가 무너져요.”
버니는 가격표의 0을 뒤에서부터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일, 이, 사암, 사아…… 오, 육……, 칠?!’
버니의 눈이 땡그래졌다.
0이 다섯 개면 많은 거, 여섯 개면 어어엄청 비싼 거.
‘그럼 일곱 개면……?’
세상 무너지게 비싼 거?!
루리 7개는 얼마나 비싼 건지 왜 안 알려 줬어!
‘아빠 가게가 무너져!’
아빠 가게 무너지면 거지 돼.
아빠 거지 되면… 버니두 거지 돼?!
버니의 눈이 훅 커졌다.
버니가 살금살금 다시 돌아와 키리엘의 다리를 붙잡았다. 키리엘이 시선을 내리자, 버니가 쭉쭉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왜?”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춰 주자 버니가 그의 귓가에 바짝 입술을 가져다 댔다.
“요기 0이 일곱 개라 아빠 가게가 무너져여.”
“가게……? 난 가게 안 하는데.”
“잉?”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이상하다?
가게를 안 하면 돈은 어디서 나오지? 루리엘이 말하길 짱 센 아빠들은 모두 돈이 펑펑 나오는 분수를 키우는 커다란 가게가 있다고 했는데.
“가게가 업쓰면 어떠케 계산해여? 버니, 빚더미 아빠는 시러여. 무서운 사람들 쫓아오니까…….”
버니의 말에 키리엘이 멈칫했다.
가끔, 아이는 뜻 모를 말을 할 때가 있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에서 느껴지는 과거의 조각이 유독 신경 쓰이는 날이 있다.
“아빠 돈 많아. 옛날에 많이 벌어 뒀거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주세요도 가능해.”
키리엘이 시선을 맞춘 채 피식 웃으며 대꾸해 주자,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니까 사고 싶은 거 사고 싶은 만큼 사렴. 가게는 없어도 돈은 많다.”
피식, 웃는 목소리에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자, 얼른 다녀와.”
“넹!”
그리고 그날, 버니가 한 번이라도 눈독을 들인 옷들은 전부 공작가로 배송되었다.
“부자 아빠!”
“응.”
키리엘의 망설임 없는 목소리에 버니의 신뢰가 한층 두터워진 날이었다.
* * *
“안녕히 가십시오! 다음번에 또 이용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한참이나 옷 쇼핑을 끝낸 버니가 우렁차게 인사를 건네는 점원들 사이를 키리엘의 품에 안겨 지나다 말고 귀를 쫑긋했다.
돌연 버니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버니? 왜 그러니.”
키리엘의 질문에 버니가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찌이잉.”
이상한 시선.
버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자, 이번엔 초콜릿 사러 갈까?”
헉.
쪼꼬!
“네엥!”
버니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들이 마차를 타고 멀어지자, 점원들 틈에서 누군가가 슬쩍 모자를 들어 올리며 입꼬리를 느른하게 끌어올렸다.
“잠시 긴 임무를 다녀왔더니 그사이 도착해 계셨을 줄이야.”
남자의 입가가 사납게 찢어지고, 모자 아래의 눈동자가 붉게 번뜩였다.
“지옥의 왕이시여.”
이윽고 남자는 짙게 드리운 그림자 속 어둠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