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44)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44화(44/125)
“…엄마?”
황제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당혹스러운 것은 키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잠깐, 버니. 거기까지만 말해도 된…….”
“넹! 아빠는 선택바찌 못한 남자에여. 그래서 엄마 엄써. 하지만 아빠는 엄마가 이써야 대여!”
“큽…….”
황제가 몸을 살짝 돌린 채 어깨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차마 어린애 앞에서 대놓고 웃지는 못하고, 몸을 돌린 채 최선을 다해 숨죽여 웃음을 터뜨렸다.
‘선택받지 못한 남자라는 게 울 정도로 슬픈 일이었구나.’
버니는 안쓰러운 시선으로 키리엘을 보았다.
키리엘의 눈동자도 떨리고 있는 걸 보니, 아마도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게 분명했다.
‘버니가 어떻게든 아빠의 엄마를 만들어 주겠어.’
버니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냐하면 버니도 훌륭하게 보호자 후보를 찾아서 흐물흐물하게 해 아빠로까지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버니… 흑염룡 소환에 실패해서 아무도 버니의 뒤에 줄을 서지 않았지.’
하지만, 버니는 포기하지 않고 용돈을 들고 가서 직접 마음에 드는 아빠 후보에게 다가가 자신을 ‘떠리 판매’로 팔았다.
‘아빠도 포기 안 대.’
그리고 보호자에게 애교애교 작전을 펼쳐 아빠로 만들었다.
‘게다가 아빠, 너무 방에만 있어.’
밖에 나가서 아빠의 대단함을 보여 줘야 하는데…….
‘우움.’
근데, 아빠는 뭐가 대단하지?
짱 센 검은색 머리랑 짱 멋진 빨간 눈동자.
0이 7개나 붙은 옷을 산더미처럼 사 줄 수 있는 왕 큰 부자.
또 인간 대빵이랑 비슷하게 잘생겼어. 하지만, 인간 대빵이가 좀 더 반짝반짝.
“크흡. 그, 그래서… 버니는 인형처럼 예쁜 엄마가 가지고 싶구나.”
“넹! 아빠한테 줄 거에여.”
“그래, 그래……. 그래야지. 유디아 공자도 아이가 둘이나 생겼으니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때가 됐지. 내, 내 한번 알아보마. 크흡.”
“네엥! 감삼미다.”
버니가 키리엘에게 안긴 채 고개만 꾸벅 숙였다.
흐흥.
콧대가 높이 솟은 버니가 고개를 들어 키리엘을 보았다.
어때, 잘했지?
그렇게 묻는 듯한 버니의 표정에 키리엘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별의별 일이 다 있기는 했지만, 버니는 항상 키리엘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이만 가자꾸나.”
“네엥.”
“버니, 조만간 엄마 후보를 네 아빠에게 보내 두마.”
“쓸데없…….”
“넹!”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말을 건네는 황제에게 한마디 일갈하려던 키리엘은 버니가 말간 눈동자로 힘차게 대답하는 걸 듣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키리엘이 입을 다물자 황제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는 턱을 문지르며 붕붕 손을 흔드는 버니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버니! 조만간 또 보자.”
“웅. 안냥.”
키리엘에게 답삭 안겨 있던 버니는 어깨 너머로 로엘이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소년에게도 똑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키리엘의 품에 안긴 버니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로엘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이 자취를 감췄다.
황제가 가만히 턱을 문지르다가 입을 열었다.
“아들.”
“네, 아바마마.”
“여동생 가지고 싶지 않니?”
“어마마마 설득은 아바마마께서 직접 하세요. 전 이만 수업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아들놈은 영 귀여운 맛이 없군.”
어깨를 으쓱인 황제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멀어지는 황태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오랜 시간 앓다 겨우 건강해진 아이는 어릴 때와는 다르게 귀여운 맛이 많이 없어졌다.
병상 생활이 그를 피폐하게 만들었겠지. 당연한 일이다.
‘…나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
아이가 저주에 걸려 하루하루 약해져 가자, 악독하다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예민했던 황후도 조금씩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사사건건 그에게 시비를 걸고 드세게 굴던 여자는 어디에 갔는지, 사람들과의 교류도 줄이고 침묵한 채 숨만 쉬듯 살아갔다.
표독함은 어디로 갔는지, 죽어 버린 낯짝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는데……. 아이가 건강해졌다는 소식을 전해 준 날, 그녀는 수년 만에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더랬다.
‘이상한 일이지.’
그저 계약관계에 의해, 이해관계에 의해 만난 후작 영애와의 정략결혼.
후계자 생산 후에는 같은 침대에서 잠든 일도 없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빠르게 생겨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몇 번이고 그녀와 같은 침대를 쓰며 불편한 시간을 보냈어야 했을 것이다.
황후로서의 너른 마음은커녕, 세간에서 악녀라고 불릴 정도로 오만하고 콧대 높으며 영악한 후작 영애.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날 그렇게 환하게 웃던 날만큼은… 조금 그녀가 달리 보였다.
‘…딸이라.’
버니처럼 조막만 한 것이 아빠, 아빠 하고 매달리면 확실히 귀엽긴 하겠지.
문제는 혼자서 박수 쳐 봐야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거지만.
‘황후가 버니를 만날 수 있게 자리를 주선해 볼까.’
말을 꺼내더라도 황후 역시 딸의 좋은 점을 느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리 생각하며 황제는 느긋하게 목덜미를 문질렀다.
“당장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지.”
독살이라.
누가 어떤 목적에서 감히 자신을 노린 걸까?
“마족……. 그 잔재가 아직 남아 있다는 건가?”
황제가 혀를 찼다.
“다시 찾아내서 뿌리까지 뽑아 완전히 박멸하지 않으면 곤란하겠군.”
작게 중얼거린 황제가 천천히 응접실을 벗어났다.
* * *
“아빠.”
“왜.”
“긍데여, 요리사 혼나써여?”
버니를 안은 채 황성을 나와 마차를 향해 걸어가던 키리엘이 버니의 말에 멈칫하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혼 안 냈다.”
“정말여?”
“그래, 정말. 따님 말대로 요리사가 나빴던 게 아니라 나쁜 것에 홀렸던 건데, 그걸로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홀리홀리가 머에여?”
홀리홀리?
키리엘은 어떻게 제 말이 저렇게 해석됐는지를 잠시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버니의 생각은 정말 이상한 데로 자주 튀었기 때문이다.
“정신 못 차리고 해롱해롱해졌다는 거야.”
“해롱해롱!”
“그래.”
하지만, 더는 황성에서 일할 수 없겠지.
마족에게 틈을 내줬다는 건 평소에 황성에 불만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용한 건 마족이지만, 거기에 이용할 틈을 준 건 그 요리사다.
마족이 이용하는 건 악의다.
아주 작은 불만, 어쩌면 생각으로만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악의를 파고들어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용기를 준다.
물론, 이번에는 마족의 뜻대로 농락당했을 확률이 좀 더 높기는 하지만 말이다.
물론, 키리엘은 굳이 거기까지 버니에게 전하진 않았다.
“그럼 나쁜 거는 머에여?”
“마족.”
흠칫.
‘마족!’
버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버니 요리사한테 홀리홀리 안 했는데?!’
“그 나쁜 마족을 찾으려고 흔적을 쫓다가 놓쳤어.”
“앗.”
버니가 아닌가 보네. 안심.
버니는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빠.”
“왜?”
“아빠는 마족이가 시러여?”
버니의 질문에 키리엘은 한 차례 눈을 깜빡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싫어.”
“얼만큼이여?”
“가능하면 세상에서 전부 없애 버리고 싶을 만큼.”
키리엘의 서늘한 대답에 버니의 눈이 확 커졌다가, 금방 풀이 죽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말, 조금 따끔.’
“그래도 네가 지내는 공작가는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마라.”
풀 죽은 버니가 무서워한다고 생각한 건지, 키리엘은 버니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