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49)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49화(49/125)
* * *
“일, 이, 삼, 사아, 오…….”
“뭘 하십니까? 주인님.”
침대에 다리를 쭉 벌리고 앉아 코끼리 배에서 꺼낸 동전을 하나둘 세고 있던 버니가 불쑥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멈칫하곤 마저 입을 열었다.
벨리알이었다.
“나중에 쪼꼬 살 돈 세구 이써.”
쪼꼬 가격은 성력석보다 훨씬 비싸니까.
물론 버니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돌멩이보다는 달콤한 쪼꼬가 더 비싼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당연히 버니도 완전 알고 있었다.
“쪼꼬? 아~ 가지고 싶은 초콜릿이 있으십니까?”
“웅.”
“말씀만 하시면 이 벨리알, 바로 가서 공수를…….”
“안 대. 요건 버니가 사야 대는 거.”
버니가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벨리알이 물끄러미 버니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러십니까. 제가 결례를 범했군요.”
“웅. 긍데 베리.”
“네, 주인님의 베리 여기에 있습니다.”
“앞으로는 요기 올 때 똑똑 해야 대.”
버니가 앙증맞게 쥔 작은 손으로 허공을 툭툭 두드려 보이는 시늉을 하자, 벨리알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이죠. 앞으로는 반드시!! 까먹지 않고 노크하겠습니다.”
주먹을 꽉 쥔 벨리알이 크게 말하자 버니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베리, 좀 시끄러워.’
버니는 그리 생각하며 마저 숫자를 셌다.
10로스트씩 동전을 세서 만든 뭉치를 주르륵 세워 둔 버니는 한 번 더 그 뭉치를 세곤 코끼리에 정리해 넣은 뒤 자리에서 폴짝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애런.”
방을 나선 버니가 넓고 커다란 저택을 익숙하게 가로질렀다.
오른쪽으로 돌았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고, 이어서 모퉁이를 한 바퀴 크게 돌았다.
시험의 저택 맨 꼭대기 층.
아래층의 목조와는 다르게 번쩍번쩍한 대리석이 복도에 쫙 깔려 있었고,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요기 네 번째 방.’
버니는 ‘앨런’이라고 쓰인 방문 앞에 섰다.
훗.
버니, 앨런은 읽을 수 있게 됐어.
앨런이 자기 이름이라며 그것을 가져와서 버니의 앞에서 열심히 흔들어 보인 덕이었다.
‘오늘 쿠키 준 앨런 어두웠어.’
뭔가 ‘찌릿찌릿’은 아니고 ‘찌이잉’도 아니지만, ‘파아앗’이라는 느낌이었다.
쿵쿵.
주먹을 쥔 버니가 문을 힘차게 두드렸다.
그런데 평소라면 대답이 들려왔을 텐데, 오늘은 대답이 없었다.
“애런!”
쿵쿵!
버니가 양 주먹을 꽉 쥐고 두 번 더 문을 세게 두드렸다.
여전히 안은 조용했다. 버니의 입술이 불만스럽게 부풀어 오른 순간이었다.
벨리알의 눈이 한 차례 붉게 빛났다.
“아무래도 안에 아무도 없는 모양입니다, 주인님.”
내부를 살펴본 벨리알이 안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말을 덧붙였다.
버니가 살짝 문고리를 돌리자, 잠겨 있지 않은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앨런 방, 버니보다 왕 커.’
꾸링내도 안 나.
책상에 줄지어 놓여 있는 책을 바라본 버니가 폴짝 뛰어 책상 위를 살폈다.
엉망으로 바닥에 던져져 있는 옷과 책상 위에 있는 노트. 그리고 펼쳐진 노트에는 조금 젖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버니가 알고 있는 한, 앨런은 10시가 되면 잠에 든다.
지금은 9시.
그런데 앨런은 없다.
노트에는 앨런의 눈물 자국—으로 추정—이 있다.
심각했던 버니의 얼굴 위로 놀라움이 번지더니, 이윽고 눈에 힘을 확 주었다.
‘납치!’
앨런 완전 납치!
하지만, 아쉽게도 버니에게는 납치범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지금은 없었다.
왜냐하면 납치범은 엄청난 그림자 괴물을 거느리면서 순식간에 망태기(?)라는 것으로 아이를 낚아채 아주 좁은 곳에 가둬버리는 괴물 같은 사람이라고 했으니까!
‘버니 변신하지 않으면 아직 작고 연약.’
그렇다면 버니가 생각할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뿐이다.
버니가 비장하게 몸을 돌리더니 방을 나섰다. 벨리알은 성큼성큼 방을 나서는 버니를 대신해 문을 다시 닫아 놓았다.
“배리, 가자!”
“어딜 말입니까?”
“아빠!”
버니가 짧은 다리를 연신 움직였다. 도도도 뛰어가는 발길이 제법 다급해 보였다.
벨리알이 턱을 문지르곤 그 곁을 느긋하게 따라 걸으며 입을 열었다.
“그 앨런이라는 자가 마음에 드십니까?”
“웅. 애런, 버니한테 쪼꼬 쿠키 나눠 줘.”
“그렇군요. 확실히 애완동물로는 나쁘지 않을지도……. 그런 짐승에게는 그냥 목줄을 채워 버리는 편이 좋을 텐데요.”
“웅?”
혼잣말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벨리알은 버니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올려다보자 방긋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시죠. 보필하겠습니다.”
버니가 힐긋 벨리알을 보곤 본 저택으로 도도도 달려갔다. 이윽고 본 저택 앞을 지키는 경비병들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버니 아가씨?”
“넹! 안냥하세여. 아빠 이써여?”
“오늘 따로 외출하진 않으셨으니, 아마 저택 내에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네엥.”
버니가 안으로 들어가고, 벨리알은 호위 기사인 척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버니는 후다닥 달려 몇 번이고 와 본 키리엘의 방 앞에 찰싹 붙어 두 팔로 쾅쾅 문을 두드렸다.
“아빠!”
“버니……?”
안쪽에서 놀란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문이 활짝 열렸다.
막 씻고 나왔는지 상의를 탈의한 채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키리엘이 버니를 보곤 입을 열었다.
“이 시간에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온 거니……? 설마 아빠를 보러…….”
“아빠, 애런이 엄써여.”
“…아아.”
버니에게 말이 잘린 키리엘이 순간 멈칫했다.
‘그쪽이었군.’
무표정한 낯으로 시선을 돌려 잠시 창문 너머의 먼 산에 시선을 두었던 키리엘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버니가 보니까 납치댄 거 가타여.”
“납치?”
그럴 리가.
다른 곳도 아니고, 유디아 공작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그것도 공작저 내에서 말이다.
여기서 일을 벌인다는 건 반드시 잡힌다는 뜻과 일맥상통이기도 하니.
‘따로 들은 얘기도 없는데.’
키리엘이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순간, 하늘 가득 떠오른 보름달이 키리엘의 시야에 들어찼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키리엘이 멈칫했다.
“아.”
만월이 뜨는 날은 수인족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날이다. 그리고 앨런은 수인족과 인간의 피가 반반 섞인 녀석이고.
“오늘은 아마 다른 곳에서 자는 모양이다.”
“왜여?”
“앨런은 특별한 아이라서 둥글고 꽉 찬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게 되거든. 아마도 그 모습을 우리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키리엘의 말에 버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간 눈을 깜빡였다.
“들키구 싶지 아느면 홍자 이써여?”
“글쎄.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버니는 앨런을 떠올렸다.
괴물이라고 하고, 짐승이라고 누군가 쑥덕거릴 때마다 꼿꼿하게 들고 있던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움츠리는 앨런을.
모두가 그 모습을 부끄럽고 싫다고 하니까, 숨고 싶었을 수도 있다.
‘버니도 루리랑 지낼 때 부모 없는 아기라고 해서 조금 슬펐어. 마족의 자식일 수도 있다고 손가락질해서 숨고 싶었어.’
루리엘은 처음에 모자를 쓰고 다녔고, 버니도 아가일 때는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게 서툴러서 뿔을 숨기느라 머리에 두건을 두르곤 했었다.
그래서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계속 계속 떠돌아다녔다. 물론 이후에 루리엘이 가르쳐 준 덕분에 완벽해졌지만.
하지만…….
“근데여, 그러면 애런이 버니두 아빠두 자기가 개물이라 보기 시러한다구 생각하면 어떠케여?”
“…….”
버니의 말에 키리엘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니면 아빠두 인간 아닌 애런은 시러여?”
“아니. 안 싫어해.”
키리엘이 단호하게 말했다.
애초에 수인족인 게 꺼려졌으면 아들로 들이겠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키리엘은 마족 이외엔 모두 인간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가 증오하는 마족만큼은 세상에서 존재 자체를 뿌리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여, 인간 아니어두 조아한다구 해야 해여. 예뿌다 차카다 해 줘야 애런두 으쌰으쌰해여. 아니면… 애런 혼자 눙물 나…….”
버니가 축 처진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키리엘은 살짝 굳은 채 버니를 바라봤다.
그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관점의 이야기였다.
아이가 숨기고 싶어 하니, 그는 당연히 숨기게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니의 말이 맞다.
이대로 만월 때마다 자리를 피해 주고, 마주하려고 하지 않고, 말려 주지 않으면 앨런은 자기의 모습이 괴물 같다거나 짐승 같다고 계속 생각하겠지.
자신이 괴물이기 때문에 만월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그렇군.”
작게 중얼거린 키리엘이 눈을 깜빡였다.
“유디아 공작가의 막내 공자에겐 가까이 다가가지 말렴. 마족에게 저주를 받아서 병에 걸렸다는구나. 언제 죽을지 몰라.”
“키리엘! 내 동생! 오늘도 귀엽네.”
순간, 문득 떠오른 기억 속의 누군지도 모를 이의 목소리와 형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나.’
키리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앨런이 보고 싶니?”
“넹.”
“그럼 같이 찾으러 갈까?”
키리엘의 말에 버니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버니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네엥!”
버니의 힘찬 대답에 키리엘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곤 덥석 안아 들었다.
그 후, 벨리알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하곤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저택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