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51)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51화(51/125)
“히히, 부들부들.”
버니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키리엘이 앨런의 앞으로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앨런과 눈을 마주했다.
앨런이 멈칫하더니 키리엘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았다.
“기특한 따님과 아드님 덕분에 내가 멋진 척을 할 자리가 없어졌어. 뒤늦게라도 한마디 하자면…….”
키리엘이 손을 뻗어 아직 어린데도 높이가 버니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축 처져 있던 앨런의 귀가 쫑긋했다.
“앨런.”
“네…….”
“네게 괴물이라고 하는 놈이 있다면…….”
무뚝뚝한 낯의 키리엘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서렸다.
“패 버려.”
“…네?”
“뒤는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쥐어패렴. 얌전히 참아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원래 그런 놈들은 맞아야 말을 듣는단다.”
키리엘의 말에 앨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었다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언사였다.
“애초에 교육이란 그런 거란다. 보렴. 나도 시험의 저택에 다닐 때 괴물이니, 저주받은 놈이니, 심지어 악마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개소리를 입에 담지도 않잖니.”
“…아.”
“따님, 아드님. 너희가 명심할 건 딱 하나란다.”
키리엘이 다정하게 말하며 커다란 손으로 버니와 앨런의 머리를 동시에 쓰다듬었다.
“너희를 무시하는 놈들이 있다? 때리고 밟아서 이기렴. 그리고 시간이 흘러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그 새끼들을 내려다보게 되면 그게 승리란다.”
앨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 될 것 같으면 내게 와서 말하렴. 손수 짓밟아 줄 테니. 권력은 그렇게 쓰는 거란다.”
“넹!”
힘차게 대답하는 버니 앞에서 앨런은 차마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지 못했다.
“대답.”
“네.”
작게 대답하는 앨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서렸다.
심장이 어쩐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 * *
척.
토끼 가방을 메고, 옆구리에는 마곰이를 끼고, 아빠가 일전에 사 준 푹신푹신한 털실이 달린 토끼 모자를 쓴 버니가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훗, 하고 웃었다.
10월 31일.
오늘은 버니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순위 결정전이 일주일 남은 날.
버니가 무려 인간의 문자 57개 중 50개를 외운 날.
그리고 버니의 특별한 날!
그래서 버니는 해가 제대로 뜨지 않은 아침부터 일어나서 혼자 풍덩풍덩 후에 복복복복을 하고 어푸어푸까지 마친 뒤 몰래 밖으로 나왔다.
물론, 편지를 남겨 두었다.
[버] [니] [가] [여]서툴지만 버니가 처음으로 인간의 글씨로 쓴 잠시 다녀오겠다는 훌륭한 편지였다.
물론, 단어는 외우지 못해서 간신히 아는 문자로 글을 만들었고, 겨우 네 글자에 편지지 한 장이 꽉 차긴 했지만.
처음 쓴 편지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또박또박 쓴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들어오는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문 앞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러면 들어오자마자 바로 볼 수 있겠지?’
버니는 잠에서 깨지 않은 흑염룡을 가방에 챙겨 넣고 저택을 나섰다.
“조아, 가자.”
버니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늦은 밤의 저택은 경비가 삼엄했다.
하지만, 버니는 오늘 들키지 않고 무사히 저택을 나가야만 한다.
‘어린이는 밤에 혼자 돌아다니면 납치대.’
하지만 지금은 새벽이고, 오늘만큼은 반드시 몰래 나갈 필요가 있었다.
버니가 휙휙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어디 가십니까? 버니 아가씨.”
“베리?”
“네.”
“안 자?”
“저희에게 밤은 가장 안락한 시간인 것을. 아깝게 잠 따위로 날려 버릴 수 있겠습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아랫입술을 핥은 벨리알이 느긋하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나의 아가씨께선 어디로 가시는 건지?”
“몰래 나가구 시퍼.”
우드득.
버니의 말에 벨리알이 방긋 웃었다.
“하아…….”
숨을 길게 내뱉은 벨리알이 나직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였다.
“경비를 서는 놈들을 전부 죽여 드릴까요?”
“아닝. 점프!”
버니가 높게 솟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벨리알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두어 차례 다시더니 허리를 숙여 버니를 가볍게 품에 안아 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웅.”
그는 가볍게 땅을 박차 높게 솟은 옹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었다.
벨리알은 제 품에 안긴 채 킥킥 웃음을 터뜨리는 천진한 낯의 버니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어디까지 모셔다드리면 되겠습니까?”
“수도! 시장!”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벨리알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몇 시간 뒤.
똑똑.
똑똑.
이른 아침부터 다급한 듯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파에 반쯤 드러누운 채 레본의 고저 없는 보고를 받던 키리엘이 미간을 찡그렸다.
“키, 키리엘 공자님! 큰일 났습니다!!”
버니의 전담 하녀, 멜리사는 안에서 대답이 들려오지도 않았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키리엘이 인상을 찡그리곤 몸을 바로 세웠다.
“들어와.”
달려오기라도 했는지 머리는 산발에, 뺨이며 귓불까지 전부 새빨개져선 거칠게 숨을 토하고 있는 꼴에 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무슨 일입니까? 멜리사 씨.”
키리엘을 대신한 레본의 질문에 멜리사가 주먹을 꽉 쥐더니 손에 들고 있던 구겨진 종이를 내밀었다.
“아, 아가씨께서 집을 나가신 것 같습니다.”
창백하게 질린 멜리사를 보며 레본이 급히 편지를 받았다.
그것을 빼앗아 펼친 키리엘이 멈칫했다.
가기는 어딜 간다는 건지, 뭘 하러 간다는 건지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편지였다.
“이것뿐이었나?”
“아, 네. 네……. 제가 갔을 땐 이것만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어쩌죠? 지금이라도 제가 나가서 찾아보거나…….”
멜리사가 손끝을 덜덜 떨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키리엘은 입을 꾹 다문 채 종이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본.”
“네. 곧바로 밤부터 새벽까지 경비를 선 병사 중에 버니 아가씨를 본 사람은 없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너. 버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어제인가?”
“네, 버니 아가씨께서 잠드시는 걸 보고 제 방으로 돌아갔었어요…….”
일그러진 멜리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키리엘이 굳은 낯으로 얼굴을 한 차례 문지르더니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상대할 기분 아니니 나가라. 처벌은 이후에 하지.”
멜리사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방을 나가는 멜리사를 보던 키리엘이 굳은 낯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공자님.”
고저 없는 목소리가 코트를 걸치는 키리엘을 붙잡았다.
“그 애는 엉뚱한 구석이 있으니, 또 쓸데없이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가출하신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리가.”
키리엘이 평소와는 다르게 늘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녀석이 나를 두고 나갔을 리가 없지.”
“…와아, 죄송한데 꼴값이라고 말해도 됩니까?”
“월급 반으로 줄어들고 싶나?”
“죄송합니다.”
레본이 빠르고 조용하게 꼬리를 말았다. 레본에게도 월급은 소중했다.
“일단 알아내는 대로 보고를…….”
고개를 돌리며 말하던 레본이 멈칫하더니 눈을 깜빡였다. 이미 키리엘은 자리에 없었다.
레본의 입가에 설핏, 아주 흐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하셨으면서.”
말과 행동의 앞뒤가 영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레본도 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