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56)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57화(56/125)
“키, 키리엘 공자님…….”
“한 번만 더 내 아들이나 딸에 대해서 함부로 입을 놀리는 놈이 있으면, 짐승 새끼가 되는 건 네놈들일 거야. 뇌까지 씹어 먹혀서 쫓겨나고 싶으면 어디 멋대로 해 보든가.”
“그게, 저, 저희는 그냥 노, 농담 삼아 나눈 대화…….”
콰드득—!
신성력이 번개처럼 쏟아져 남자의 발치에 떨어졌다.
“흐익!”
비명을 삼킨 남자가 우당탕탕! 볼썽사납게 넘어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미리 말하지만, 우리 애 싸우는 데 방해하기 싫어서 경고로 끝내는 거니까 내 아들한테 감사하는 게 좋을 거야. 쓸데없는 변명을 내뱉는 그 혀는 잘 간수하는 게 좋겠어. 자칫, 내가 잘라 버릴지도 모를 일이니.”
나른하고 늘어지는, 분노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으나, 키리엘의 붉은 눈동자가 느리게 움직여 남자를 바라보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지금 굽히지 않으면 내일이 없다는 사실을.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는 나른한 목소리나 태도와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새하얗게 질린 낯으로 고개를 숙인 남자가 비틀비틀 일어났다가 다시 자리에 앉아 주먹을 꽉 쥐었다.
키리엘이 낮게 혀를 찼다.
“오, 뭐야. 네가 진짜 무슨 아빠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구나, 막냉아.”
문득 옆에서 들려온 클라인의 말에 키리엘이 멈칫했다. 그가 한 차례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 보니 그냥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일이었는데…….’
버니에게서 때때로 느껴지는 기묘한 마족의 기운을 확인하고자 시작한 일.
애초에 아이라는 것이 이렇게 돌보기 힘든 존재인 줄 몰랐다. 의식주만 해결해 주면 되는 줄 알았지.
하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섬세하고 예민했다. 손이 많이 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게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에 무관심했던 자신이 이제 와서 방계의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소리치곤 이러고 있으니, 클라인이 그를 우습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그러면 뭐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옛날부터 형제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키리엘에겐 타격이라곤 조금도 없는 것을.
키리엘이 평소처럼 무시하며 어깨를 으쓱이곤 침묵했다.
‘그나저나…….’
키리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채앵—!
앨런의 신성력으로 만들어졌던 창이 산산이 조각났다. 밀도에서 차이가 난 탓이다.
아직 앨런은 칼바드에 비해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니, 밀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과열됐는데.’
나이에 비해 앨런이 잘 막고는 있지만, 그뿐이었다. 칼바드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딴, 공격,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하는 반편이가……!!”
신수를 다루는 자는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위급의 신수를 다루는 자일수록 악의에 무너지면 안 된다는 의미다.
신수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대단히 예민한 편이었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영향을 받은 신수는 위험하니까.
서걱—
칼바드의 검이 빠르게 바닥을 기어오는 앨런의 신수를 베어 낸 순간이었다.
그오오오—!
콰드득, 앨런의 코앞까지 달려온 기린이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뒷발로 우뚝 섰다. 말의 앞발굽이 머리 위로 높이 솟았다.
“아…….”
검도 잃고 소환했던 신수도 칼바드에게 붙잡혀 완전히 무력해진 앨런의 눈이 확 커졌다.
“칼바드, 멈춰라!!”
클라인 유디아가 소리치고, 버니를 내려 둔 키리엘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연무장으로 뛰어든 순간이었다.
콰득—!
기린의 말발굽이 사정없이 앨런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피할 새도 없이 머리통을 얻어맞은 앨런이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
당황한 듯 칼바드의 눈이 훅 커짐과 동시에,
크오오오오!!
그가 소환한 기린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눈을 새파랗게 번뜩이더니 폭주했다.
달려 나간 키리엘이 급히 앨런을 품에 안았다.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앨런. 앨런?”
“…….”
새하얀 정복 위에 시뻘건 피가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키리엘은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딱딱하게 굳었다.
“…사.”
작은 머리통이 말발굽에 찍혀 크게 패어 있었다. 움푹 들어간 머리는 도통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의사 불러! 멀뚱히 서서 뭘 하는 거냐, 다들!!”
키리엘이 지금껏 보지 못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납게 소리쳤다.
그제야 사람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리엘의 사나운 기운에 기린이 눈을 번뜩이더니 푸드득 투레질을 했다. 후욱, 후욱. 흥분한 듯 콧김이 거세게 내뿜어진다.
이윽고 기린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날뛰기 시작했다.
“아, 아냐…….”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오고,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소리 사이로 칼바드가 창백하게 질린 채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냐… 난 이렇게까지는…….”
“칼바드 유디아! 이 멍청한 새끼가!!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아버지, 아니에요! 저는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냥 이기고 싶었던 것뿐이라서……. 이렇게 될 줄은……!”
짜악—!
고개가 휙 돌아갔다.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에 칼바드의 커진 눈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칼바드는 제 뺨을 손으로 붙잡은 채 숨을 삼켰다.
“힘이 있고 주변에서 떠받들어 준다고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느냐? 이 한심한 새끼가……! 감당하지 못할 힘을 그렇게 휘두르니 이 지경이 되는 거다!”
경멸이 담긴 시선을 멍하니 바라보던 칼바드가 떨리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떨구었다.
“멍청한 녀석.”
“…그냥.”
작게 입술을 달싹이던 칼바드가 끝내 입을 다물었다.
클라인 유디아의 주변으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사나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와아앙!
새하얗고 클라인 유디아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크기의 백호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대로 기린을 향해 달려들어 흥분한 기린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제가 넣을게요! 아버지! 하지 마세요. 제바…… 아.”
당황한 칼바드가 충격이 가득한 표정으로 클라인 유디아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그 애원이 무색하게 물어 뜯겨 역소환되어 사라지는 제 기린을 보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애런……?”
사방에서 정신이 없는 와중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란 키리엘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저 멀리서 이곳까지 온 것인지, 코앞으로 다가온 버니가 눈을 깜빡이며 그의 바로 옆에 우뚝 서 있었다.
“버니, 여기 오면 안 된다. 얼른 방으로…….”
“아빠.”
평소와는 다르게 고요한 눈의 버니는 앨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감정이 거세된 것만 같은 목소리에 순간 멈칫한 키리엘이 버니를 보았다.
“버니?”
여러 명의 의원이 달려들어 앨런을 살피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머리가 움푹 패어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두개골도 완전히 박살 나 안쪽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일렁—
앨런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냄새가 풍겼다. 죽음을 맞이하는 영혼의 냄새다.
마족이 가장 좋아하고, 마족이 가장 사랑하는 순간.
울렁.
버니는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에 천천히 손을 들어 가슴께를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