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57)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58화(57/125)
“…앨런 죽어여?”
“아니, 안 죽을 거다. 그러니 방에 가 있으렴.”
하지만, 이대로 있으면 앨런은 죽을 거다.
버니는 알 수 있었다. 죽어 가는 많은 사람을 봐 왔으니까.
버니의 눈에는 보였다. 사람이 죽을 때 몸에서부터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죽음이.
“주그면… 다시는 쪼꼬 못 머거여.”
버니의 말에 키리엘이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한 차례 쓸어 넘겼다.
그는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곤 아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버니, 보다시피 앨런이 다쳐서 많이 아프단다. 속상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레본을 따라 방으로 돌아가서…….”
“지금 가면… 애런 다시 못 바여.”
“버니.”
“응, 못 바…. 어쩌지? 주그면 안 대는데….”
못 보는 건 싫어.
앨런은 쪼꼬 쿠키도 나눠 줬고, 항상 버니의 손을 붙잡아 주고, 버니를 좋다고 해 줬다. 그러니까 못 보게 되는 건 싫다.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리던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분홍빛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더니, 버니의 동공이 서서히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버니가 멍한 낯으로 천천히 손을 뻗으려던 순간이었다.
삑!
버니의 어깨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붉은 뱁새가 폴짝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하늘을 날았다.
화르륵—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버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하늘에 작은 뱁새는 없었다. 대신 한참이나 거대하고 커다란, 불꽃을 품은 새가 한 마리 있었다.
“흐겸룡……?”
붉은 새였다.
깃털 하나하나가 불꽃을 품고 있는 아름답고 웅장한 새.
성인 남자만큼이나 커다란 크기의 새는 노란빛을 품은 꽁지깃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사납게 타오르는 그 불꽃이 언뜻 위험하게 보이면서도 전혀 뜨겁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버니의 머리 위에서 타오르는 거대한 새의 자태에 키리엘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새빨간 새가 버니의 머리 위를 한 바퀴 크게 빙 돌았다.
“불타는 새……?”
“…사조.”
몰려든 인파 사이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작게 중얼거리자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 누군가 크게 외쳤다.
“불사조다!”
그 외침에 버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싸조?!”
언제 어두운 낯이었냐는 듯 만면에 놀라움을 띤 채 버니가 눈을 반짝였다.
불사조가 날개를 접으며 천천히 땅에 내려앉더니, 버니에게 머리를 들이민 순간이었다.
버니의 손에서부터 새하얀 빛이 훅 터져 나왔다.
신성력이었다.
“으잉?!”
피요오오—!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낸 불사조가 한 차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뻗어 나온 새하얀 빛이 불사조에게 천천히 스며들었다.
당황한 버니가 눈을 크게 뜨곤 새하얀 빛이 나오는 손을 파닥파닥 움직였다.
‘버니 가루 대!!’
“으앙. 아빠아아! 버니 가루, 가루! 흐어엉.”
아무리 손을 파닥파닥 움직이고 제자리에서 콩콩콩 뛰어도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빛은 도통 멈출 줄을 몰랐다.
발을 동동동 구르는 버니를 품에 안아 준 키리엘이 등을 토닥거렸다.
“아가, 버니, 진정해라. 괜찮단다. 그냥 신성력일 뿐이야. 신수가 따님의 신성력을 필요로 하는 모양이구나.”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는 키리엘의 말에 버니의 고개가 불쑥 기울어졌다.
‘버니의 신성력……?’
버니가 눈을 깜빡깜빡했다.
“으잉……?”
버니, 신성력 있었어?!
불사조가 크게 날갯짓을 한 번 한 순간이었다.
성인 남성의 주먹만 한 불타는 깃털이 떨어져 앨런의 가슴 위에 툭 내려앉았다.
모두가 멍하니 넋을 잃은 채 그 장면을 보았다. 불에 타오르는 새빨간 깃털이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순간이 그저 성스럽게만 보였다.
떨어진 깃털이 앨런의 몸에 서서히 스며들더니 완전히 자취를 감춘 순간이었다.
파아앗—!
퍼져 나온 빛이 앨런의 몸을 감쌌다.
이윽고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신성한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라도 숨이 끊길 듯했던 앨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낯으로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위태로웠던 상처는 이미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이윽고 눈꺼풀을 파르르 떨던 앨런이 천천히 눈을 떴다.
“앗, 사라져따.”
버니의 손에서 번쩍거리던 신성력도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휴우.”
팔을 파닥거리던 버니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번쩍 든 순간이었다.
어라?
‘세상이 뱅글뱅글.’
버니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버니!”
누군가 달려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세상이 새까매졌다.
* * *
“믿기나요? 이게 우리의 평화입니다, 아스.”
“…그대가 부르짖는 평화를 본좌는 도통 알 수가 없구나. 이것은 한낱 핏덩이고, 그대가 바라는 평화의 열쇠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은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지. 이물질과 다름없는 이것은 그저 꺾이고 짓밟혀 바스러져 사라질 거다.”
“아뇨, 괜찮아요. 분명히… 잘 자라 줄 겁니다.”
새하얗고 새하얀 손길이 다정하게 오동통한 젖살이 가득한 뺨을 살살 쓸어내렸다.
“아우우.”
“이름은 생각해 둔 게 있나요? 아스.”
“딱히. 우리에게 자식이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것이니.”
그저 인간보다 한없이 더 욕망에 충실한 종족이기에, 본능적인 행위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게 자식이라는 메마른 말을 덧붙이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며 조금은 수수한 낯의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고민해 보고 알려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이 아이에게 내 성을 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아스는 이 아이에게 이름을 주면 좋겠어요.”
수수하고 유약하게만 보이는 물빛 머리카락을 머금은 순박한 남자의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에 여자의 미간이 마뜩잖다는 듯 찌푸려졌다.
긴 적막과 침묵 끝에 침대 헤드에 기대어 있던 여자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베르나데트(Bernadette).”
한참 만에 나지막하게 들려온 목소리에, 아이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베르나데트. 예쁜 이름이네요. 애칭은 버니(Berny)가 좋겠어요. 귀여운 여자아이가 될 테니까요.”
“그대의 취향은 시간이 지나도 모르겠어.”
사랑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분홍색 눈을 품은 작은 아기는 말간 눈을 깜빡이며 자신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 이를 눈에 담았다.
그것이 버니가 처음 알게 된 따뜻함이었다.
* * *
새근새근.
도롱도롱.
신성력을 갑자기 끌어다 쓴 탓인지 갑자기 쓰러지더니 편한 낯으로 잠을 자는 버니와 그 옆에서 버니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함께 색색거리며 잠든 앨런을 본 키리엘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뜬 앨런의 고집도 고집이었지만, 버니가 벌인 일에도 머리가 아팠다.
‘어린애들은 마음대로 되질 않는군.’
딸이니 아들이니 이름을 붙여 품에 들이긴 했지만, 영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마음만큼은 훌륭한 부모시군요.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뭐?”
“애들은 원래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답니다. 통제하는 부모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듯이요.”
하필이면 지금 레본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질 않았다.
마뜩잖다는 듯 혀를 찬 키리엘이 의자에 앉았다.
‘…또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피부에 예민하게 느껴지는 감각에 키리엘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래. 처음에는 단순히 이 마족의 기운 때문에 곁에 둔 것이었다. 앨런은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그냥 겸사겸사.
단순히 신경이 쓰였다면 굳이 보호자니 자식이니 하는 그런 불편한 형태가 아니어도 됐을 텐데. 후원자만 자처했어도 충분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이 기묘하고도 이상한, 누더기처럼 얼기설기 엮인 듯한, 가족이라고도 말하기 힘든 관계 속에서 키리엘은 묘한 안정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 앨런이 다쳤을 때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버니가 휘청거리며 쓰러졌을 땐 심장이 어찌나 빠르고 크게 뛰던지, 머릿속에 온통 자신의 심장 소리만 가득할 정도였고.
“…버니.”
천천히 손을 뻗은 키리엘은 아이의 몸에 천천히 신성력을 흘려 보냈다.
아니나 다를까, 몸 안에 고여 있는 새까만 기운이 느껴졌다.
“넌 도대체 누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