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58)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59화(58/125)
대체 무슨 존재이기에 마족의 기운을 품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는 미묘하게 긴가민가한 것이었다면, 아까는 확실하게 느꼈다. 신성력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마치 균형이 깨진 것처럼 마기가 느껴지는 것을.
어느 정도 실력이 있다면 누구든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키리엘이 상태를 묻는 루드브리드와 클라인을 전부 뒤로한 채 거의 반사적으로 아이에게 제 신성력을 뒤집어씌워 바로 제 방으로 돌아왔을까.
특히나 아까 신성력을 사용한 뒤로는 마족의 기운이 한층 더 강해졌다. 마치 몸에서 신성력을 전부 빼내 버려서 마족의 기운만 남은 것처럼.
왜?
그는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마족의 기운이 새어 나온다는 건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왜 그것을 밝히는 대신,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나.
‘마족과 연관이 있다면 어떻게 신성력을 쓸 수 있지?’
마력과 신성력은 물과 기름이다.
하물며 마족들이 운용하는 흑마법은 폐기물과 같다. 신성력과 섞일 수도 없고 섞여서도 안 되는 것.
애초에 함께 공존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대체 어떻게 아이는 마족의 기운이 느껴지는 몸으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심지어 신수까지 뽑았다. 그것도 일반적인 신수가 아니라 불사조를.
불사조는 신성함의 상징.
신의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생명체였다. 공존할 수 없는 게 공존한다는 것이 도통 믿기질 않았다.
머릿속이 한없이 복잡해지는 기분에 키리엘은 말없이 얼굴을 문질렀다.
‘가까이하지 않는 게 나으려나?’
만약, 아이가 정말 마족과 연관이 있다면… 키리엘은 버니를 죽여야만 한다.
혹은 적절한 조처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이 저택에서 내보내야겠지.
유디아 공작가는 제국 최후의 보루.
어떤 일이 있어도 신성함을 더럽히는 무언가가 침범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유디아 공작가의 선대들이 왜 굳이 자신의 핏줄로만 군대를 만들겠다는 멍청한 발상을 했겠는가. 아주 작은 악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주 만약의 일이지만, 단단하게 방비된 수도가 무너졌을 때 거대한 결계를 칠 수 있는 유디아령보다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툭.
아이의 뺨을 검지로 꾹 누르자, 말랑하고 부드러운 뺨이 쏙 들어갔다. 아직 젖살이 남은 얼굴은 오동통하고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마족일 리는 없겠지.”
마족이라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어릴 때 자신과 비슷하게 마족의 저주라도 받은 적이 있는 걸까?
그렇다기엔 눈도 붉은색이 아니고, 머리 색도 검은색이 아니기는 하지만.
아니면 마족의 계약자라도 되는 건가?
이렇게 작고 여린 것이?
그럴 리가.
스스로 한 생각이 우스워서 키리엘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제일 신빙성이 높은 건 마족의 저주 쪽이다.
결론을 내린 키리엘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올리더니 이내 침대에 비스듬히 누웠다.
온기를 찾아 꼬물꼬물 품을 파고드는 버니의 등을 토닥거리며 키리엘은 눈을 감았다.
아이의 체온이 어쩐지 조금 미지근했다.
* * *
“…미안.”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지는 온실에서 아빠의 품에 안겨 훌륭하게 식사를 마치고, 상으로 달콤한 초코 푸딩을 받은 버니는 한 입을 채 넣기도 전에 찾아온 칼바드 유디아가 툭 내뱉은 말에 고개를 기울였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몸이나 얼굴에 거즈나 붕대를 감은 채 칼바드 유디아는 사과를 건네고 있지만, 표정만큼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제 앞에 선 칼바드를 훑는 키리엘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칼바드, 네 아버지와 또 대련이라도 했나?”
“…네.”
키리엘의 질문에 버니를 바라보던 칼바드 유디아가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얌전히 대답했다.
무척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에 버니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뭐가 미안한데?”
가족들 사이에서 평온한 낯으로 간식을 먹고 있던 앨런이 던진 무뚝뚝한 질문에, 칼바드가 울컥한 듯 뺨을 씰룩였다.
“너……!”
입매를 비튼 칼바드가 주먹을 꽉 쥐고 한 걸음 툭 내딛는 순간이었다.
“칼바드.”
흠칫.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칼바드의 몸이 크게 떨렸다.
순식간에 겁에 질린 낯이 된 칼바드가 주먹을 꽉 쥐었다.
“너 아직도 사과를 안 한 거냐.”
“…했어요.”
방금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어느새 온 것인지 정복 차림을 하고 있는 클라인 유디아가 의심스러운 듯 눈을 가늘게 뜨곤 고개를 돌려 앨런을 보았다.
“이 멍청한 놈이 제대로 사과했나?”
앨런이 힐긋 칼바드를 보곤 잠시 침묵한 끝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별말 없이 그 질문에 긍정의 대답을 내준 앨런의 말에 칼바드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주먹을 꽉 쥐고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에 버니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클라인은 침묵한 채 앨런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
“네.”
“너도 아빠 놀이가 꽤 재밌는 모양이구나. 막냉아.”
클라인의 말에 버니의 입술이 불퉁하게 튀어나왔다.
슬쩍 시선을 옮겼다가 버니의 툭 튀어나온 입술을 발견한 앨런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넌 이만 나와서 방에 가 공부라도 해라. 한심한 놈. 똑바로 좀 살지 못하겠느냐. 직계라는 놈이 어째 저 애들보다도 못하군.”
“…….”
칼바드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폴짝.
키리엘의 무릎에서 뛰어내린 버니가 도도도 뛰어가 척! 클라인의 앞을 막아섰다.
“이찌, 아저씨.”
“…아저, 뭐……?”
“아저씨! 버니 삼초니 시러. 안 친해니까 아저씨!”
버니가 작은 손가락을 척 들어 클라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작달막한 것이 내뱉는 말에 클라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왜 아저씨 아가한테 나뿐 말 해여?”
“나쁜 짓을 했으니까 혼이 나야지.”
“아가두 놀랐는데 왜 갠차나, 쓰담쓰담 안 해여?”
“잘한 게 없으니까.”
“그거 아저씨 아가 탓 아니야. 아가보다 기리니가 더 왕 커써. 왕 크니까 아빠가 도와조야 하는데 왜 안 해여?”
작은 몸뚱어리로 문 앞을 툭 가로막은 채 내뱉는 버니의 말에 클라인 유디아의 미간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처음에야 귀여웠지, 물고 늘어지는 게 조금 짜증스럽기도 하다.
“너처럼 어린애는 모르는 게 있다. 쯧. 막냉아, 네 놀이 상대 좀 치워라.”
“왜 자꾸 놀이라구 해여?”
버니가 뺨을 부루퉁하게 부풀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
“아빠 놀이 아니야. 아빠, 맨날 버니랑 애런이랑 밥두 가치 먹구, 쓰담쓰담도 해 주구, 토닥토닥두 해 줘여. 버니가 일뜽 못 해두 갠찬타구 해써.”
아이에게서부터 들려온 말에 키리엘이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
클라인 유디아가 입매를 굳혔다. 자그마한 녀석이 마치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빠는 버니 아빠에여. 아저씨는 아빠 아냐.”
버니가 고개를 한껏 젖혀 클라인 유디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분홍빛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하는 느낌에 어쩐지 속내를 전부 들킨 것 같은 감각까지 받은 클라인 유디아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루리가 그랬는데 아가는 사랑받아야 대여. 사랑받아야 무럭무럭 쑥쑥 자라서 왕 큰 사람 된대써. 나뿐 말 듣고 큰 감자는 왕 작댔어여.”
버니가 눈을 크게 뜬 채 굳어 있는 칼바드의 손을 턱 붙잡더니 소년의 손을 쭉 끌어 잡아당겼다.
“뭐, 뭐 하는 거야?”
칼바드가 버니의 손에 이끌려 엉거주춤 걸음을 옮겼다.
버니가 칼바드를 데리고 도착한 곳은 식탁 의자에 앉아 있던 키리엘의 뒤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