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59)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60화(59/125)
빼꼼.
키리엘의 뒤에서 고개를 쭉 내민 버니가 입을 열었다.
“칼바다는 아빠가 키어여. 아저씨랑 이쓰면 칼바다 왕 작아져. 칼바다, 불쌍해…….”
“하? 칼바다가 뭔데?! 난 칼바드거든! 그리고 애초에 누가…….”
“칼바다, 애런 부러워써.”
말을 끊고 들어온 버니의 한마디에 칼바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수치심인지, 부끄러움인지 그것도 아니면 속내를 들켰다는 당혹스러움인지 알 수 없었다.
“버니두 부러워. 아빠가 쓰담쓰담 안 해 주고 때리니까. 그래서 속상해써. 맞지? 루리가 그래써. 아가한테 폭력이는 쓰레기래.”
“아니, 이건 그냥 대련을…….”
다만, 어쩐지 목이 꽉 메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심장을 거세게 조이고, 목구멍을 주먹으로 틀어막은 듯한 그런 감각.
“부럽긴 뭐가…….”
작게 중얼거리던 칼바드가 고개를 툭 떨구었다.
후드득.
고개를 숙인 순간, 카펫 위로 짙은 자국이 나며 번져 갔다.
후드득, 후드득, 소리 없이 쏟아지는 물방울을 보고서야 뺨이 축축하게 젖었음을 깨달았다.
“아…….”
깨닫고 나니 오히려 둑이 터진 듯 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칼바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뭔가 아주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뜬 채로.
“아빠.”
“그래, 아가.”
“칼바다 우리가 키우면 안 대여?”
눈물을 채 닦지도 못하고 있는데 들려온 목소리에 칼바드가 고개를 떨구었다.
키리엘은 물끄러미 칼바드를 내려다보다가, 느긋하게 고개를 돌려 클라인 유디아를 힐긋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렴. 내 따님이 키우고 싶고, 그 애가 원한다면 그래도 괜찮겠지.”
키리엘이 느긋하게 시선을 옮겨 클라인 유디아를 보았다. 늘 무심하고 무뚝뚝하며 무표정한 낯을 고수하던 키리엘은 오늘따라 퍽 얄미운 웃음을 입가에 띠고 있었다.
“진짜 놀이를 하고 있던 건 누구지?”
“칼바드, 쓸데없는 놀이에 그만 장단 맞추고 이만 가자.”
칼바드가 멍하니 고개를 들어 클라인 유디아를 보았다. 눈물이 줄줄 흐르는 상황임에도 제 아버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아버지는 약하고 쓸모없는 것을 싫어했고, 칼바드는 그의 눈에 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기린을 뽑았을 때도 기뻤다.
하지만, 아버지는 칭찬을 하는 대신 그에게 수준에 맞지 않는 신수를 휘두르려 들면 주변 사람을 죽일 거라는 기괴한 말만 하고 멀어졌다.
시험 점수를 백 점 받아도 그랬다.
시험의 저택에서 1위를 하고 그 자리를 유지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날 싫어해.’
‘아버지는 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야.’
‘왜, 왜, 왜? 왜 아버지는 날 싫어하지? 뭐가 부족한 거야?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잖아. 여기서 어떻게 더 잘해야 하지? 얼마나 더…….’
인정받지 못하는 나날들.
그 사이에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는데, 굴러들어 온 부모가 누군지도 모를 사생아 하나가 당당하게 직계의 후원을 받게 됐다. 그것도 영웅이라고 불리는 그의 숙부의 후원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숙부 역시 칼바드에게 관심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말이라도 걸어 보려고 하면 표정이라곤 하나 없는 유령 같은 낯으로 보지 못한 것처럼 스쳐 지나 버렸으니까.
그런데…….
“훗. 아빠! 버니, 이번에 4점 바다써여!”
“엄청나군. 흠, 이러다 내 딸 조만간 아카데미에 조기 입학할지도 모르겠어. 그럼 앨런, 너도 시험 점수가 나왔겠구나.”
“아, 음. 그게… 조금 많이 틀렸는데…….”
“94점? 이 정도면 훌륭하구나. 상급반에 있지 않았던가? 이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다. 위축될 필요 없어.”
“…네!”
왜…….
왜, 저보다 한참 부족한 녀석들이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4점이 점수 축에나 낄 수 있냐고.
94점? 자신은 만점을 받았는데.
“칼바드, 네 아빠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렴.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
뭐야, 당신 원래 이런 다정한 말 하는 사람 아니었잖아.
“갠차나!”
이 꼬마가 뭘 얼마나 바꾼 건데.
이 어린애가 대체 뭔데.
칼바드의 머릿속에 온갖 불만이 그득하게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바드는 그 수많은 잡념을 입 밖으로 내는 대신, 제 손을 붙잡고 있는 버니의 작은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키리엘의 옷자락을 꾹 붙잡는다.
“…아버지는 나 싫어해요. 그러니까 안 갈래요.”
젖은 얼굴을 한 소년의 선고에 클라인 유디아의 눈이 한껏 커졌다.
그날, 클라인 유디아는 결국 혼자서 돌아갔다.
* * *
“엣헴.”
버니는 어깨에 힘을 주곤 주먹을 꼭 쥐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지난 시험의 성적 발표에 더해 할아버지와의 면담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버니… 신수랑 으쌰으쌰 싸우는 건 꼴찌였지만, 시험 점수는 30점까지 올랐지.’
그것도 모두 버니가 열심히 공부해서 인간의 문자를 전부 외운 덕분이었다.
그렇다.
버니는 무려 인간의 문자를 전부 외워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버니의 입꼬리가 흐물흐물 올라갔다. 57개의 문자는 버니를 무척 힘들고 괴롭게 했지만, 버니는 결국 승리했다.
이제 버니도 글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뿐이랴.
흑염룡이 흑염룡이 아니라 불사조였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아가 불사조이지만, 언젠가 왕 큰 불사조가 될 게 분명했다.
루리가 엄청나게 대단한 거라고 했으니,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루리 역시 천재!’
흐겸룡은 아니지만 불사조도 왕 커서 왕 멋있었다.
‘왕 큰 불사조와 왕 큰 대마왕?’
화륵화륵 멋진 새 타고 다니는 대마왕도 분명히 멋있을 거다.
타박타박 복도를 걸어가던 버니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셨습니까, 버니 아가씨.”
“넹. 안냥…….”
아니, 안냥 아니야.
놀랍게도 공부를 한 후 알게 된 인사말의 제대로 된 발음은 ‘안냥하세요’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였던 것이다!
“안…녕하세여!”
“……!”
버니의 어깨가 불룩 올라가고 가슴이 앞으로 쭉 내밀어지자, 펠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때? 놀랍지? 대단하지? 하는 표정이 전부 눈에 보였다는 뜻이다.
“세상에, 한층 더 어른이 되셨군요. 훌륭한 발음이십니다.”
그리고 펠은 노련한 집사였으며, 모시는 아가씨의 기대를 배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흐뭇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넹!”
버니가 주먹을 꼭 쥐며 대답했다.
“안에서 공작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엥.”
펠이 문을 열어 주자, 버니는 안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묵직한 소파 테이블에는 아기자기한 먹거리가 한가득 놓여 있었다.
“우아…….”
버니가 입을 떡 벌렸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버니, 절대로 시험에 걸리지 않아.’
눈에 힘을 준 버니가 주먹을 꼭 쥐며 생각했다. 그러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 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