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6)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6화(6/125)
* * *
소환 의식 날의 아침이 밝았다.
버니는 밤새 닳도록 책을 읽다가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까무룩 잠이 든 탓에 탱탱 부은 두 눈을 손등으로 비비적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비몽사몽 한 낯으로 토토를 끌어안은 채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잠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버니가 꾸물꾸물 침대 아래로 내려왔다.
토토를 침대 위 헤드에 기대어 앉혀 두고, 의자를 끌어와 낑낑대며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려 덮고 자느라 엉망이 된 이불을 앙증맞은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쭉쭉 잡아당겨 반듯하게 정리했다.
아침부터 침대의 네 귀퉁이를 오가며 쭉쭉 잡아당긴 덕분에 이부자리는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흐아암…….”
찔끔 나는 눈물을 어른스럽게 소맷자락으로 닦은 버니는 세면대에 어린이용 계단을 놓고 서서 루리엘마저도 귀찮아했던 치카치카까지 훌륭하게 해냈다.
온몸이 찌르르할 정도로 시원한 물로 어푸어푸를 야무지게 한 뒤 복복복복 머리까지 감은 버니는 바닥에 수건을 쭉 펼치곤 그 위에 툭 드러누워 수건의 끄트머리를 붙잡은 채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수건을 몸에 도르르 감은 버니는 새 수건을 꺼내 머리에 툭 얹고 조물조물 주물러 머리를 말린 뒤 옷장을 활짝 열었다.
“움…….”
오늘은… 멋쟁이가 되고 싶은 기분!
보육원 원장님이 선물로 줬던 연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보육원 친구에게 받았던 머리핀을 머리에 꽂은 버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을 따라 질질 늘어진 수건 두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버니는 그것을 툭툭 발로 차 일단 구석에 슬쩍 밀어 뒀다.
마지막으로 용기를 주는 대마왕 곰돌이 인형을 가지고 온 끈을 이용해 제 등에 묶으니 완벽했다.
“버니, 완벽.”
흐흥.
기분 좋게 웃은 버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대로 말리지 않은 머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어깨를 축축하게 적시고, 엉성하게 동여맨 곰돌이 인형은 허리가 뒤로 꺾여 머리가 바닥에 질질 끌리기 직전이었지만, 아무튼 버니가 보기에는 완벽했다.
“역시 버니 천재.”
너무 천재라서 아빠 후보가 줄 서면 어쩌지?
버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밤새 읽었던 노트를 다시 토토의 주머니에 집어넣어 숨기곤, 토토와 코끼리를 눕혀 이불까지 덮어 주었다.
“가자. 마고마!”
버니는 용기를 주는 (악)마 곰(돌)이, 일명 마곰이와 함께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며 어젯밤을 떠올렸다.
“허걱! 어떠케 아라찌?”
헉, 버니가 여기 올 거 루리는 알고 있었어?!
‘역시 루리. 천재 버니가 인정한 엄청난 천재!’
침대에 엎드려 유려한 글씨체로 또박또박 적힌 글을 바라보며 양발을 동동 구르던 버니가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흐흥.”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
배역이가 중요다!
1층으로 내려가자 이번에 같이 소환 의식을 치르는 듯 보이는 아이들이 보였다. 대부분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개중에는 버니가 가장 작고 어리다는 뜻이다.
“버니 아가씨.”
“어, 로뎅!”
뒤에서 들려온 인사에 눈을 동그랗게 뜬 버니가 손바닥을 편 채 한쪽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안냥하세여.”
“네, 좋은 아침이십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넹! 버니, 개폭망 안 하구 폭풍 가튼 공자까에 적응 완료여. 곧 잉끼 만점 댈 예정이져.”
흐흥, 웃어 보인 버니가 엄지를 척 치켜들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로덴 하이너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사가 웃는데?”
“그 철벽의 로덴 하이너가?”
“…에이, 잘못 본 거겠지.”
“단체로 뭘 어떻게 해야 잘못 보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리자, 로덴 하이너가 금세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는 버니의 젖은 어깨와 허리가 뒤로 꺾여 반으로 접힌 곰돌이 인형까지 힐긋 보곤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곰돌이 인형이군요.”
“네엥. 버니에게 용기를 주는 마고미에여!”
“마고미군요. 떨어질 것 같아서 그런데 다시 묶어도 되겠습니까?”
“헉, 마고미 떠리면 안 대.”
다급하게 소리치느라 괴상한 말을 내뱉은 버니가 휙 몸을 뒤집으며 뒤로 돌았다.
들썩거리느라 힘없이 흔들거리는 곰 인형을 보며 로덴 하이너는 간신히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억눌렀다. 그가 끈을 다시 묶어 주었다.
“다 됐습니다.”
“감삼미다.”
버니가 로덴 하이너를 마주 보곤 고개를 앞으로 푹 숙였다. 머리가 바닥에 닿을 기세로 인사하는 버니의 모습에 로덴 하이너의 눈이 동그래졌다.
“푸핫.”
“저게 뭐야…….”
“쟤 기사한테 머리 숙였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웃음 소리보다 잔뜩 숙여져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버니의 모습이 더 당혹스러웠다.
로덴 하이너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몸을 반으로 접듯 숙였던 버니는 기우뚱 기울어지는 몸을 인지한 듯 알아서 한참이나 두 팔을 파닥거리며 제자리에서 통통거리더니 멀쩡하게 바로 섰다.
“…….”
어정쩡하게 뻗어진 로덴 하이너의 손만이 갈 곳을 잃은 채 허공을 맴돌았다.
엉거주춤 뻗어진 로덴 하이너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버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뭔가를 깨달은 듯, 도도도 달려간 버니가 로덴 하이너의 갈 곳 잃은 손에 손수 까치발을 들어 제 정수리를 툭 가져다 댔다.
‘쓰담쓰담!’
버니 벌써 인기 만점!
분홍빛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마치 다 안다는 으쓱한 얼굴로 바라보는 버니의 시선에 로덴 하이너는 저도 모르게 손을 움직여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실까요?”
“넹!”
힘차게 대답한 버니는 이제야 바로 묶인 마곰이와 함께 본 저택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 * *
“오랜만에 얼굴들을 비추는구나. 신전에서 사는 놈이나, 방에 박혀서 안 나오는 놈이나. 아주 아비 속 썩이려 작정했구나.”
“거참, 행사 땐 그래도 오잖습니까. 애들 장기 자랑 같은 소환 의식이 뭐 재밌다고 그것도 보러 오는데 평소에 소홀한 건 좀 봐주십쇼.”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근육질의 남자가 피식 웃으며 껄렁하게 말했다.
앞섶을 풀어 헤친 파격적인 복장을 한 남자의 모습에 유디아 공작,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그를 마뜩잖다는 듯 흘겨보았다.
“아버지도 참, 너무 그러진 마세요. 오빠도 도박하고 노느라 바쁜 모양이죠~”
“야, 너 주둥이 또 함부로 놀리지?”
“뭐……? 도바악?! 이놈의 새끼가……! 클라인, 네놈이 그러고도 신성한 유디아 공작가의 일원이냐!!”
“아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정보 수집 차원에서 다니는 것뿐이지, 딱히 뭐 도박을 즐긴다거나 하는 건……. 쯧, 그나저나 넌 웬일로 나왔냐, 막내야! 신전에 처박혀서 얼굴도 안 보여 주더니.”
불리하다고 생각한 듯 남자가 냉큼 말머리를 돌렸다.
왁자지껄한 티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침묵한 채 찻잔을 기울이다가 머리채가 잡힌 ‘막내’가 한 차례 눈썹을 꿈틀 움직이더니 느긋하게 찻잔을 내려놨다.
검은 머리카락이 사르르 흘러내린다.
“아버지가 이번에도 안 오면 장기 출장을 보내신다기에.”
건조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목소리만큼은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지독한 권태감과 나른함에 루드브리드 유디아가 혀를 찼다.
“그보다 빨리 시작하고 끝내시죠. 시간이 아깝네요.”
“지금 애들 오고 있답니다.”
어두운 피부의 사내가 머리카락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훑으며 말했다.
그르릉.
어딘가에서 짐승의 나직한 울음소리가 났다.
“그나저나 예의 그 이탈자 꼬맹이들이 오늘 참가한다면서요? 반인반수에 유기묘까지.”
“애들 앞에서 말조심해라.”
“꽝인지 당첨인지 좀 궁금하네.”
공작의 지적에도 가볍게 낄낄 웃은 어두운 피부의 남자가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별 기대는 없지만… 슬슬 가 보죠.”
나른하기 짝이 없는 막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난 네 사람이 황금으로 장식된 새하얀 저택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