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73)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74화(73/125)
등허리로 쏟아지는 오싹한 감각에 사내가 검을 좀 더 세게 움켜쥐며 높이 치켜들었다.
“야, 죽이면 안 돼!! 다치게만 해야 한다고!”
“상관없잖아. 불사조는 어차피 죽어 가는 것도 살리는 엄청난 거라면서!”
남자의 검이 버니의 팔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그어진 순간이었다.
서걱.
챙그랑!
툭.
무언가가 베이고 검이 바닥을 나뒹굴더니, 이윽고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
남자의 눈이 확 커졌다.
“흐, 흐아아아악!!!”
끔찍한 통증에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한 남자가 우뚝 멈췄다. 코앞에 있는 아이의, 작은 소녀의 발밑을 굴러다니는 것은 방금까지 제가 검을 쥐고 있었던…….
“그 눈… 설마…….”
멍하니 고개를 젖힌 남자가 중얼거렸다.
“버니, 나뿐 인간 시러.”
머리 위로 아주 작은 뿔이 솟아나고, 이윽고 등 뒤로 몸 사이즈만큼이나 작고 앙증맞은 날개가 쭉 뻗어 나왔다.
“마, 마족…….”
“너, 나뿐 인간.”
버니가 팔을 들더니 작은 검지손가락으로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치 낙인을 찍듯이.
“나뿐 인간은 엄써야 대.”
“마, 마족이 어떻게 살아 있… 있는 거야? 그때 다 토벌된 게……. 아, 아니 유디아 공작가에서 토벌했는데 그러면 유디아 공작가가 마족을 숨기고 있었다는…….”
고통조차 잊은 듯 작게 중얼거리는 남자는 이미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족에 관한 소문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실상 그 모습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족은 사람을 잡아먹는다거나, 손가락 한 번 휘두르는 걸로 사람을 산산조각 내고 어린아이라도 그 흉폭성이 보통이 아니라고 했다.
성마 전쟁이 터진 후 마족이 수십 개의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린 마족이 안쓰러워서 다가갔다가 그대로 비명횡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마족은 애초에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니까!
“괴, 괴물…….”
버니는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쭉 펼쳐 총을 쏘는 자세를 만들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어린아이의 단순한 장난처럼 귀엽게 봤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저 괴물, 죽여! 죽이라고!”
버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인간 아가 버니는 약하지만, 진짜 버니는 약하지 않다.
“아빠는 마족이가 시러여?”
“싫어.”
“얼만큼이여?”
“가능하면 세상에서 전부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버니, 마족이라는 거 밝혀지면 아빠가 싫어해.
아빠랑 같이 못 있어.
훌륭한 어른 못 돼. 그건 싫어.
하지만…….
“흐윽…….”
지금 버니가 고민하다가 짱 센 버니가 되지 않으면, 로엘이 위험하다.
“…아빠 바부.”
동화책에서는 아가를 구하러 빨리 왔는데 말이다.
“노엘 개롭히는 나뿐 사람은 혼나.”
주먹을 꼭 쥔 버니가 마법을 쓰기 위해서 막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콰아앙!
바깥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쏴아아아,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기척에 버니의 눈이 동그래지는 순간, 좁은 방 안으로 쏟아진 물이 순식간에 나쁜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버니.”
흠칫.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버니의 어깨가 파드득 떨리더니 펄쩍 뛰었다. 손을 높이 들어 올렸던 버니가 멈칫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한껏 젖히자, 커다랗고 길쭉한 용이 가장 먼저 보였다.
새파란 비늘로 온몸을 뒤덮은 용은 키리엘의 몸을 가운데 두고 그 주변으로 크게 똬리를 튼 상태였다.
‘대따 큰 용…….’
조금 더 시선을 내린 버니가 제 키리엘과 눈을 마주쳤다.
높은 곳에 솟은 새빨간 눈동자가 버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찌푸려진 미간이나 커진 눈동자가 무척 놀란 것처럼 보였다.
“…아.”
도망, 가야 하는데.
아직 뿔이랑 날개를 집어넣지 못했다.
입술을 뻐끔거리던 버니가 당황한 낯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급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앨런의 로브를 발견하곤 그 안으로 꼬물꼬물 기어들어 갔다.
‘어떡하지?’
버니가 울상을 지었다.
‘버니 개폭망…….’
버니는 열심히 힘을 다시 안으로 꼭꼭 숨기려고 했다.
루리엘이 오늘은 능력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버니 혼자만 다친 거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버니는 변신하면 왕왕 크니까 괜찮지만, 로엘은 약한 인간이니까 금방 죽을지도 모르니까.
심장이 콩닥콩닥.
빠르게 뛴다.
눈동자를 잘게 떤 버니가 눈을 질끈 감고 “얼른 들어가.” 작게 웅얼거렸다.
로브 자락 안에 숨는다고 숨은 버니의 툭 튀어나온 작은 엉덩이이가 씰룩거리며 움직인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키리엘은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다소 귀엽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뒷모습과는 다르게, 아이가 뒤집어쓴 로브가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흡.”
히끅, 히끅!
바짝 긴장한 채 숨을 들이켜는 소리도 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까지 하는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한쪽에 엉망이 되어 쓰러져 있는 황태자가 보였다.
다시 조금 더 고개를 돌리자 그가 만들어 낸… 아니, 그의 신수가 만들어 낸 물에 갇힌 여러 명의 남자들이 보였다.
산소가 허락되지 않는 물의 감옥 속에서 버둥거리며 서서히 숨이 멎어 가는 남자들이.
‘…버니는 마족이었나?’
아니, 마족의 기운이 아주 가끔 미약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마족 특유의 그 기척은 없었다.
‘죽여야 하나?’
마족은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된다. 어린 마족이라 할지라도 어른이 되면 어떤 위협이 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싹을 전부 뽑아 두는 게 맞다. 예전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그랬겠지. 아이를 처음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까지도 해도 분명히.
‘한 번에 목을 자르면 아프진 않지 않을까?’
하지만 저 애가 뭘 했지?
실상 이 상황에서 죽어야 할 것은 그의 물에 갇혀 있는 이 남자들뿐이다. 나쁜 것은 그들이지, 몸을 지키려고 했던 저 아이가 아니다.
‘하지만 마족이잖아.’
그래서?
설령 마족이라고 한들, 죽일 수 있나?
“아빠, 버니 일뜽이니까 이제 왕왕 커요?”
“아니, 아직 아기라 왕왕 작지. 불사조도 아직 작잖니.”
“…흐잉. 버니 언제 왕 커요?”
“밥 잘 먹고 편식 안 하고 잘 놀고 열심히 공부해서 쑥쑥 자라서 아빠만큼 커지면 그땐 왕왕 큰 거겠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넹.”
“왜?”
“쪼끔 느리게 왕 커두 댈지두…….”
“그래, 천천히 어른이 되렴. 버니가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리면 외로워질 것 같으니까.”
떠오르는 기억에 키리엘이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그동안 죽여 왔던 마족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마족의 저주 때문에 자신을 낳고 죽은 어머니는?
마족에게 유린당하다가 죽었을 것이 뻔한 제 큰형은?
이 아이를 살리면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뚝, 뚝, 뚝.
고민이 깊어지는 만큼, 손톱이 파고든 손바닥에서 몽글몽글 샘솟은 핏방울이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나는, 저 애를 죽일 수 있나?
탐사가 끝나고 던전을 나오자, 레본이 보낸 급한 전보가 있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실종된 것 같다. 아마도 납치된 것 같다고.
그 짧은 두어 줄짜리 보고를 받고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신수를 소환해 급히 귀환한 참이었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저택에 돌아가니, 마찬가지로 당황한 듯 주인을 찾아 헤매고 있던 불사조에게 안내를 받아서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래, 그렇게 달려왔다. 앞뒤 볼 것도 없이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이 애를 죽일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