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74)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75화(74/125)
“…….”
꽉 쥐고 있던 검에서 힘을 푼 그가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기곤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뜬 순간이었다.
“…버니?”
어느새 로브를 푹 뒤집어쓴 버니가 키리엘의 앞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버니가 먼지투성이의 로브 자락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후드를 손으로 붙잡아 꾹 내리며 입을 열었다.
“아빠… 이제, 버니 시러여?”
잔뜩 기가 죽은 채로 내뱉는 아이의 목소리에 키리엘의 눈이 확 커졌다.
그 기죽은 목소리 한 번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상념이나 수많은 고민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버니, 버려여?”
“…….”
“아빠 시르면 버니… 다른 데 가께여.”
덜컹.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에 그가 입을 열었다.
“다른 데 어디.”
“…버니 떠리 판매해여. 버니 키울 다른 아빠 찾아여…….”
후드 자락으로 얼굴을 감춘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는 아이를 내려다보는 키리엘의 미간이 한층 좁아졌다.
“버니, 나뿐 아가 아니에여. 버니는 사실 왕 커서 버니만 아야한 건 갠차는데 노엘이 주글 것 같아서…….”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버니와 시선을 마주했다. 아니, 마주하려고 했다. 버니가 고개를 좀 더 깊게 숨기지 않았더라면.
“버니, 아빠 보렴.”
키리엘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른하면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버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버니.”
“…네엥.”
“다친 곳은 없니?”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묻고 싶은 것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든 아이가 겁에 질린 채 흐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물이 가득 찬 눈으로, 혼이 나기 일보 직전인 평범한 어린아이처럼.
그는 말없이 손을 뻗어 아이가 푹 뒤집어쓰고 있는 로브를 천천히 거두었다.
아이의 눈동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랑스러운 분홍빛으로 돌아와 있었고, 언뜻 봤던 뿔과 날개도 모습을 감춘 후였다.
“…뺨에 상처가 났구나.”
뽀얀 뺨이 살짝 부어 있고, 긁힌 듯한 작은 생채기 위로 피가 굳은 자국이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들끓는 기분에 키리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은 키리엘이 버니의 뺨을 아프지 않게 엄지로 문질렀다.
따끔한지 버니의 한쪽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아빠가 어디 갈 때는 혼자 가지 말라고 했잖니.”
“네에……. 그래서 노엘 데꾸 와써여…….”
버니의 대답에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 키리엘이 손을 들어 제 이마를 짚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간신히 삼킨 키리엘이 애써 입을 열었다.
“어른을 데리고 갔어야지. 호위 기사나 레본이라도.”
“…….”
버니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떨구었다.
깜짝 놀라게 해 줄 선물이었으니 레본도 몰랐으면 했다. 아빠가 돌아오면 냉큼 선물해 주려고 했었는데…….
고개를 돌린 버니의 눈에 망울망울 눈물이 가득 맺혔다. 산산조각이 나서 구겨져 버린 상자가 너무 속상했다. 얼마나 열심히 고른 것인데.
훌쩍.
“이 먼 수도까지는 왜 온 거니?”
다정한 물음에 결국 버니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서럽게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키리엘의 입술이 갈 곳을 잃은 채 달싹거렸다.
“아빠…….”
“나?”
“아빠 성물 사러어어… 허어어엉……. 긍데 다 깨져써여……. 허엉……. 나뿐 사람들이 막 깨뜨려써……. 흐어어엉…….”
엉엉 울음을 터뜨린 버니의 손가락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선물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사실 선물 상자라기에는 그 꼴이 너무나도 처참했다. 아마 발로 아주 세게 짓밟힌 모양이었다.
울렁.
심장 한편이 지끈거리고, 어딘가 속이 울렁거리는 기묘한 감각에 키리엘은 아주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왜 내 선물을?”
“아빠 생일이가… 시르니까, 버니가 조아하게 해 주려구여어……. 허어엉… 선물 사 주려구우……. 허어어엉…….”
생일.
엉망진창인 말 안에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지만, 대충 아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바라보던 키리엘이 말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몸을 일으켜 상자를 손에 들고 왔다.
안에서 달그락거리고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하니 유리로 된 뭔가가 깨진 모양이었다.
“내 생일 선물로 주려고 한 거니?”
“네에……. 허엉.”
“그래, 고맙다. 이건 내가 고쳐볼 테니 그만 뚝. 착하지?”
키리엘의 달래는 목소리에 버니가 눈을 끔뻑였다. 굵은 눈물방울이 데굴데굴 굴러 뺨을 타고 도르륵 도르륵 떨어졌다.
“뚜욱… 히끅.”
“옳지. 착하네.”
키리엘이 상자를 한 손에 챙겨 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한쪽에 널브러져 있는 로엘의 몸을 한 차례 살핀 뒤, 소년을 달랑 들어 자신의 신수 등에 툭 올려 두었다.
“노엘 주거여……?”
“아니, 무사할 거야. 타박상이랑 내상이 좀 있긴 하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으니 금방 치료될 거야.”
훌쩍.
버니가 손등으로 눈두덩을 북북 문질렀다.
키리엘이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그러자 익숙하다는 듯 버니는 그의 목을 휘감은 채 어깨에 뺨을 기대곤 히끅, 히끅, 딸꾹질을 해 댔다.
“저건 아빠 흐겸룡이에여?”
“흑염룡은 아니고 청룡.”
“아빠, 버니 구하러 온 거 머쪄써여.”
히히, 작게 웃음을 터뜨린 버니가 젖은 얼굴로 뭐가 좋은지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벼 댔다.
품에 안은 아이의 온기에, 술렁대던 마음도 천천히 진정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부턴 절대로 혼자 나오면 안 돼.”
“호…….”
“물론 애들끼리도 안 돼.”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이 뻔히 보였기에, 키리엘은 대번에 그 말을 끊었다.
“버니가 마족이 되는 모습을 본 건 아까 여기에 있던 놈… 아니, 나쁜 아저씨들뿐이니?”
“네에.”
“그래.”
키리엘이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들만 죽이면 증거는 없다는 거군.’
그 외에 마족의 마력이 조금 남아 있긴 했지만, 폭발시켜 버리면 남는 것은 없겠지.
사실 마음 같아선 살려서 뭘 노리려고 했는지, 어디로 데리러 가려고 했는지에 관해서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었다.
“버니, 약속해 주겠니?”
“약쏙이여……?”
“그래. 아주아주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이 모습은 누구에게도 드러내선 안 돼. 드러내면… 아빠랑도 같이 있을 수 없게 된단다.”
헙!
버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앙증맞은 손으로 제 작은 입을 쏙 가렸다.
“아주아주 위험하면여?”
“그땐 써야지. 네가 죽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해.”
“…하지만 아빠랑 같이 없어여?”
“…아마도.”
긴 침묵 끝에 아주 작게 대답한 키리엘이 조심스럽게 버니의 등을 토닥거렸다.
“버니가 마족이라서여?”
“…….”
키리엘은 대답 대신 주먹을 꽉 쥐었다.
콰드득—!
그가 만들었던 새파란 물의 감옥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더는 누구도 그 안에서 발버둥을 치지 않았다.
“버니.”
“네…….”
“혹시 이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네가 손을 내밀면 나는 언제고 그걸 잡아 줄 거란다. 언제나 그걸 잊지 말렴.”
키리엘의 말에 버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이다. 지금도 손을 내밀면 아빠는 항상 손을 꼭 잡아 주곤 했다.
“아빠 말은 어려여.”
“너는 내 딸이고, 나는 네 아빠라는 말이야.”
그 확신 어린 말 한마디에 버니가 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함이 가득한 그 끄덕임에 키리엘은 아이의 등을 토닥거렸다.
불사조.
마족.
예언을 하는 능력.
장담하건대, 아이는 앞으로 수많은 폭풍에 휘말릴 것이다. 고독해지고 외로워지고 종국엔 누구도 남지 않을지도 모르지.
“네가 원한다면…….”
그게 어떤 상황이라도, 미래에 어떤 적대 관계로 만나게 되더라도 아이가 손을 뻗으면, 울면서 도와 달라고 말한다면…….
“언제든지 도와주마.”
그게 설령 버니가 바라던 어른이 되어 그가 죽인 수많은 마족과 크게 다름없는 존재가 된 아이가 내뱉는 거짓된 함정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