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75)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76화(75/125)
“저두여!! 버니, 나중에 왕왕 커지면여! 아빠 부자 대게 해 줘여!!”
발갛게 물든 눈으로 활짝 웃으며 내뱉는 아이의 해맑은 말에 키리엘의 입가에 옅은 호선이 그려졌다.
“그거 기대되는구나. 그리고 아빠랑 한 가지만 더 약속하자.”
“넹!”
“앞으로 아빠한텐 숨기는 일 없는 거야.”
키리엘의 말에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헙.
입을 딱 틀어막았던 버니가 슬쩍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버니가 사실은 대마법싸가 아니라 대마앙이 꿈인 어린이 마족이라는 것두여……?”
은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귓가에 입술을 바짝 가져다 대고 속닥거리는 말에 키리엘의 걸음이 뚝 멈췄다.
“대마왕?”
“넹…….”
버니의 뜬금없는 말에 키리엘은 한 차례 눈을 깜빡이곤 미간을 좁혔다.
‘애들이 어릴 때 용사가 되고 싶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가?’
어린 마족을 보는 건 키리엘에게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어린 마족’이라는 것 자체가 드물었다.
사랑을 하는 종족이 아니고, 쾌락에 몸을 맡기는 종족이었던 만큼,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돌보는 경우도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아빠로서 대마왕은 어떤가 싶긴 하구나. 그리고 이런 얘기는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 하면 안 된다.”
“네엥.”
버니를 품에 안은 채 키리엘이 한숨을 내쉬었다.
“뒷정리해.”
그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명령하자, 새하얀 가면을 쓰고 검은 로브를 쓴 사람들이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
역시 왕왕 멋진 아빠.
버니가 다리를 동동 구르며 히히 웃더니 나쁜 아저씨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이르기 시작했다.
“그래, 아빠가 혼내 주마.”
맞장구를 치며 대답을 해 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품에 안긴 채 잠이 들었다.
[그리운 기척이구나.]아이의 머리가 툭 떨어져 잠들어 버린 순간, 문득 머릿속을 파고드는 목소리에 키리엘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몸체를 가진 청룡이 그의 주변을 넘실넘실 맴돌며 느긋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신수 청룡.
푸른 비늘로 온몸을 두른 채 물을 다루는 존재였다. 또한 최상위 신수인 터라 의사소통도 가능했다.
“그리운 기척?”
[그래, 아주아주 오래전에도 느낀 적 있는 기척이지. 이러한 존재를 또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마족을 말하는 건가?”
키리엘의 말에 청룡은 묘한 눈빛으로 물끄러미 키리엘을 보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키리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룡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작게 울렸다.
[마족을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훨씬 귀한 존재지. 너희 공작가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청룡이 의미심장하다 못해 이해할 수 없는 말에 키리엘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룡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더니 버니의 뒤통수에 작게 제 코끝을 살살 비비적거렸다.
냄새라도 맡는 것인지 아니면 그 온기를 느끼려는 것인지, 어리광을 부리는 짐승처럼 굴던 청룡이 한참 만에야 얼굴을 물렸다.
대단한 신수라는 것을 알리듯 늘 고고하게만 굴던 청룡의 기괴한 반응에 키리엘조차 멈칫했다.
“뭘 하는 거지?”
[불사조가 태어났구나. 또다시 도래하는가. 황금과 녹음의 시대가.]의미심장한 말을 중얼거린 청룡이 이윽고 자취를 감췄다.
미간을 좁힌 키리엘이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색색거리며 숨을 내뱉는 버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이나 긴 침묵 끝에, 그는 이윽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를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근에서 큰 화재가 난 사실이 다음 날 신문에 크게 대서특필되었다.
* * *
“이런, 방해를 하는군.”
키리엘의 품에 안겨 멀어지는 버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붉은 머리카락의 사내가 아랫입술을 핥았다.
“이렇게 계속 미적지근하게 계시는 것도 곤란하단 말이지.”
루리엘이 대체 무엇을 버니에게서 보고, 무엇을 안배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르다.
지나치게 무르다.
만약 저대로 이 유디아 공작가라는 인간들의 편에 두면, 저것은 멀쩡한 마왕이 되지 못할 것이다.
씨앗은 확실히 훌륭했다. 그러나 더 지켜보다가는 쓸데없는 물이 들 것 같았다.
“이래서야 곤란한데.”
마왕은 마계의 중심.
마족의 힘의 원천이다.
마왕으로서의 각성을 끝내야만 마족들이 다시 원래의 힘을 되찾고, 이 지긋지긋한 인간계에 또다시 혼란과 혼돈을 줌으로써 복수할 수 있을 것이다.
마계는 밤하늘이요, 마왕은 달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밤하늘을 빼곡하게 채우고 맴도는 존재들이었다.
‘조금 더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하면 좋겠는데…….’
폭주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한 상황.
마왕에게 필요한 것은 어둡고 깊은 감정이다.
원망, 증오, 고통, 분노.
그러한 감정들은 그들의 왕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왕이야말로 위대한 마계의 왕이 될 터.
아랫입술을 느긋하게 핥은 벨리알이 눈꼬리를 휘며 퍽 황홀하게 웃었다.
“루리엘, 네가 틀렸잖니. 인간들 틈새에서 자라 봐야 왕이 행복해지는 일은 없어.”
이대로 두면 그저 쓸데없는 감정을 품고 배워, 마왕이 되었을 때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마왕에겐 그런 소소한 감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저 어린 씨앗을 훌륭한 마왕으로 만들어 낼 것이다.
누구보다 강대하고 누구보다 강력한 마왕.
“저분은 가능성이 있다.”
일전에 자신에게 경고하던 그 순간 깨달았다.
왕으로서의 자질을 가진 존재다. 전 마왕이 그렇게 기를 쓰고서라도 살린 이유가 있었다.
루리엘이 필사적으로 보호한 이유도 저런 특이함 때문이겠지.
저 씨앗이 훌륭하게 꽃을 피운다면 인간계를 전복시켜 그들의 수중에 두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
약육강식의 세계.
흘러내리는 피와 쾌락이 가장 아름다운 세계.
“아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것 같군.”
등허리가 쭈뼛해지고, 척추를 타고 흐르는 쾌락에 그가 몸을 잘게 떨며 황홀한 낯으로 웃었다.
“다시는 쓰러지지 않을 완벽한 왕이 되셔야지.”
이전 마왕처럼… 멍청하게 인간에게 홀리는 일이 없도록.
인간 용사에게 홀려 인간에게 더는 검을 휘두를 수 없게 되어 버린, 아름다웠던 그들의 멍청한 마왕처럼 마족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지금은 조금 더 행복하게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절망이란, 가장 행복할 때 가장 깊게 느끼게 될 테니까.
어차피 너무 어리기도 했다. 뛰어난 자질을 가졌지만, 미숙한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란 후가 나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히죽.
눈이 한껏 풀려 황홀경에 젖은 벨리알의 입꼬리가 징그럽게 쭉 찢어졌다.
그때가 훌륭하게 농익은 과실을 수확할 때였다.
“어이, 배리안. 거기서 뭐 하는 거냐. 단장이 부른다.”
“아아~! 죄송합니다~!! 아가씨가 괜찮으신가 너무, 너무, 너무 걱정이 돼서요.”
문득 아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은 배리안이 나사 하나는 빠진 것처럼 손을 휘휘 흔들며 폴짝 뛰어내려 기사단에 합류했다.
지금은 한없이 숨을 죽일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