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77)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78화(77/125)
“뭐라?!”
쾅!
황제가 황당하다는 듯 읊조린 순간, 루드브리드가 테이블을 거칠게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런.”
“오오, 싸우려고? 싸우는 거야?”
황제가 낮게 침음하고, 제드리안이 눈을 반짝 빛내며 흥분한 낯으로 몸을 들썩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뚝뚝하고도 심드렁한 낯을 한 키리엘은 잔뜩 흥분해 분노한 기색이 역력한 루드브리드를 그야말로 무심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난 그런 얘기 못 들었다! 언제 어디서 열리는데! 그리고 그 쪼만한 것 생일인데 왜 나한테는 공유를 안 한 것이냐!”
연이은 루드브리드의 말에 기대감에 가득 차 있던 제드리안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황제의 눈 역시 살짝 커지더니 이윽고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가족 파티라 참석 권한 없으십니다.”
“…뭐?”
“내 아드님이 여는 따님의 가족 파티라 참석 권한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만 가 보겠…….”
몸을 돌리던 키리엘이 잠시 멈칫하더니, 반쯤 녹아내려 있는 제드리안을 보았다.
시선이 닿자 제드리안이 눈을 반짝 뜨며 고개를 들었다.
“왜, 왜? 나한테 할 말 있어, 공자?”
“혹시 깨지거나 부서진 물건을 복구하는 방법도 알고 있나?”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한데 파편이 그대로 있으면 보통 완벽하게 가능하지. 아니면 그 물건의 시간을 살짝 되돌려야 하는데 난 인간이라 아직 그런 능력까진……?”
윙크를 한 제드리안이 둥실 떠오르더니 키리엘의 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왜? 나한테 부탁할 거 있어?”
제드리안의 눈꼬리가 샐쭉하니 휘어진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던 맹수가 먹잇감의 틈을 발견한 것처럼, 위험하게 눈을 빛내기까지 했다.
“부탁 들어주는 건 좋은데, 대신…….”
“복구하는 종류의 마법이 있다는 걸 안 걸로 충분하다. 다른 마법사를 찾아보지.”
키리엘이 휙 몸을 돌렸다.
“저는 선약이 있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폐하.”
“으음… 고대 엘프들을 저대로 둘 수도 없고, 저러다 마물화를 하기라도 하면 곤란해지네. 아이가 염려되는 자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되네만… 아이의 의사라도 한 번 물어봐 줄 수 없겠나?”
황제의 말에 키리엘이 무뚝뚝한 낯으로 황제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해서는 안 되는 걸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 아이는 너무 어립니다. 나는 그 애가…….”
키리엘이 말끝을 흐리더니 이윽고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 * *
“나는 그 애가 평범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어리광도 부리고, 떼도 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책임감도 어떤 무게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어린아이로.”
“…….”
처음 마계에 발을 디뎠을 때 본 그 풍경.
평범하기 짝이 없던 풍경.
“나나 당신들이나 알지 않습니까. 그게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지.”
회의장에 모인 이들을 눈으로 훑은 키리엘이 무심한 낯으로 몸을 돌리며 마저 덧붙였다.
“평생을 그 무게에 짓눌려 살아온 인생들일 테니.”
마족들조차 영위했던 평범함을 평생토록 영위하지 못한 이들.
그들이 바로 이곳에 모인 자들이었다.
탁.
미련 없이 문이 닫혔다.
“아하하하!! 세상에, 세상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자는 말에 배려라는 게 전혀 없네. 뭐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아…….”
황제가 한숨을 내쉬며 난감한 낯으로 깍지 낀 손등 위에 제 턱을 툭 올렸다.
설핏 고개를 기울인 그가 난감한 낯으로 루드브리드 유디아를 보았다.
“어떻게 안 되겠나? 유디아 공작. 저 엘프가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것 같긴 한데 도통 말이 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협조적인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설핏 웃으며 난감함을 훤히 내보인 채 약한 소리를 내뱉는 황제의 모습에 루드브리드가 미간을 좁혔다.
“저놈 고집이 한두 번도 아니고 제가 어쩌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점을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 아니겠나.”
말은 부탁이지만, 목소리는 퍽 고압적이었다.
황제가 능구렁이처럼 약한 척을 하는 건 뻔히 아는 일이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공자에게 강압적으로 굴었다간 미움받을 것 같단 말일세. 차기 공작에게 미움받는 것도 난감하지 않겠나.”
루드브리드는 눈을 가늘게 뜨곤 속으로 혀를 찼다.
저건 그냥 뜻대로 안 해 주면 결국 강압적으로 굴겠다는 말이 아닌가.
거절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황제의 말을 한두 번 거절한다고 문제가 생길 정도로 약한 가문도 아니고.
다만…….
‘확실히 사안이 사안이란 말이지.’
고대 엘프들은 이미 반쯤 마물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저 정도의 지성과 지능을 가진 이들이 마물이 되어 버린다면 세상은 또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마물 토벌이 번거롭기는 하지만, 엄청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그것들이 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을 뛰어넘는 지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성을 가진 고대 엘프들이 마물이 된다면?
지금은 마기에 중독되어 이성을 잃은 상태라 이 정도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마물이 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꾸준히 정화는 하고 있지만, 언제 제정신으로 돌아올지도 확실하지 않고.
“키리엘 그 망나니 녀석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닙니다. 그 애는 아직 어립니다.”
“그래. 그래서 자네들이 끝까지 고대 엘프가 있는 장소를 밝혀 낸 방법에 관해서 계속 입을 다물지 않았나.”
황제가 느긋하게 웃음을 띤 낯으로 말했다.
루드브리드의 입꼬리가 한 차례 꿈틀 움직였다. 퍽 짜증 난다는 낯으로 그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걸 굳이 꾸역꾸역 캐내셨고 말입니다.”
“으음, 나 황제네만.”
당연히 자기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덧붙이는 표정이 무척이나 당당하다.
“유디아 공작가와 신전 내의 일은 제 소관입니다만.”
깍지 위에 턱을 괸 황제가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가 뜬 황제의 눈빛에서 이미 인자함은 자취를 감춘 후였다.
“공작, 난 굳이 정답을 앞에 두고 돌아가는 취미는 없다네. 자네들이 뭘 걱정하는진 알겠네. 그러니 적당히 자리를 마련해 주게. 인원은 최소로, 당연히 정보도 신원도 지켜 주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최대라는 점을 알아 주면 좋겠어.”
“쯧.”
황제의 경고에 루드브리드가 대놓고 혀를 찼다.
황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 혀 차는 소리가 결국 항복과 다름없음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항상 고맙군.”
“…예나 지금이나 참 짜증 나게 하는 분인 거 알고 계십니까?”
“칭찬도 고맙고 말일세.”
황제가 서글서글한 낯으로 여유롭게 말을 쳐냈다.
저렇게 능글맞고 서글서글하게 보여도, 황제가 황위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를 생각하면 그저 가증스럽기만 했다.
선황의 목을 치고, 형제들의 목을 치고.
황녀였던 제 누이를 제외한 모두를 죽인 뒤 기어코 황제가 된 사내였다.
“그러고 보니 제 손녀를 납치한 놈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황실에서 처리한다고 가져간 걸로 압니다만.”
황태자가 얽혀 있었으니, 황제의 분노 역시 사실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마 배후가 밝혀지는 순간, 나라고 가문이고 씨앗 하나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질 것이다.
“아아…….”
황제가 서늘하게 웃었다.
“리버스달 왕국의 왕이 오늘내일하는 와중에 자네 손녀가 소환한 신수에 대한 얘기를 들은 모양이야. 불사조 말일세.”
“…….”
루드브리드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황제가 가만히 웃었다.
“그러게 왜 새어 나가는 정보를 막질 못했나. 평화로운 시대에 해이해진 건가, 그도 아니면 벌써 늙은 건가?”
“너무 공개적인 곳이어서 못 막은 것뿐입니다. 쯧. 혀가 가벼운 자들은 어디든 있기 마련이죠.”
“그러게 한번 잡을 때 제대로 잡아 두지 그랬나. 자네는 너무 물러. 좀 더 강해야지. 감히 거스를 생각도 하지 못하도록 말일세.”
황제의 말에 루드브리드가 짧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자네는 거기서 뭘 하는 게야?”
허공에 대롱대롱 박쥐처럼 매달려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뭔가를 둥둥 띄우고 있는 남자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