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78)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79화(78/125)
‘이놈도 정상은 아니지.’
최연소 마탑주.
거대한 마탑 하나와 그곳을 둘러싼 땅을 나라로 선포하고, 반발하는 나라 중 하나를 몇몇 마법사만 데리고 움직여서 하룻밤 만에 멸망시킨 미친놈.
애초에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그냥 “아아, 그랬구나~” 하고 웃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면 끝.
상대가 죽든, 사지가 불구가 되든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이다.
“있지, 있지. 유디아 공작. 내가 지금부터 공자를 찾아가서 공자가 어쩌다 떨어뜨린 물건을 고쳐서 돌려주고 파티에 참석하면 공자가 환영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그의 손가락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건 투명한 유리구슬이었다. 바닥에 포장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가 뜯은 게 분명했다.
“…쯧.”
떨어뜨렸을 리가 있나. 저만한 걸. 마법을 써서 훔친 게 분명했다.
루드브리드는 마뜩잖은 낯으로 제드리안을 흘겨보다가 황제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아아, 그러게.”
“뭐야아~! 왜 내 말엔 대답 안 해 줘! 유디아 공작! 공자가 날 환영해 줄 확률이 몇 퍼센트나……!”
우뚝.
둥둥 떠 있던 제드리안이 루드브리드의 서늘한 시선에 우뚝 굳으며 입술 끝을 느긋하게 끌어 올렸다.
생긋, 부드럽게 눈매를 휜 제드리안이 몸을 바로 세웠다.
“에헤이, 무섭게 또 뭘 그렇게 노려본담.”
“설령 내 아들 녀석이 머리에 검을 맞아 미쳐 버려서 네놈을 환영한다고 해도, 내가 환영하는 일은 없을 거다. 나는 네놈이 내 아들에게 한 짓을 아직 잊지 않았으니까.”
“……!”
제드리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더니 키득키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인다.
“어릴 때 했던 귀여운 말을 말하는 거야?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공자는 마족의 저주를 받아 인간다운 감정은 느끼지 못할 테니, 망가진 채로 평생 살아야 한다고.”
제드리안이 허공에서 빙글 한 바퀴 돌았다.
“실제로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잖아?”
“…….”
“아, 설마 그 뒤에 실험하고 싶은 게 있다고 공자에게 마법을 써서 마족의 기운을 폭주시켰던 거? 에이, 그건 뭐 무사히 잘 끝났으니…….”
그날 이후 키리엘이 주변 사람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작가에서도 일을 못 하겠다고 그만둔 이들이 속출할 정도였으니.
그 뒤로도 제드리안은 혹시 실험체가 될 생각은 없냐며 졸졸 쫓아다니고, 온갖 위험한 짓을 해 대서 키리엘과 크게 싸우기도 했다.
“넌…….”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른 루드브리드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놈이 할 말과 행동으로 보이더냐.”
멈칫.
제드리안이 움직임을 멈췄다.
“여기서 인간이 아닌 건 네놈뿐이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녀석.”
우뚝 굳은 제드리안을 두고 루드브리드가 회의실을 벗어났다.
뚝, 얼어붙어 있던 제드리안이 돌연 화사하게 웃으며 황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폐하, 얘 내가 심문 좀 해 봐도 돼? 고대어라면 알지도 모르고.”
천진한 남자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은 여전히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는, 마기를 품은 엘프였다.
* * *
‘버니… 외톨이.’
마곰이를 끌어안은 채 침대에 드러누운 버니는 우울함에 잠겨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늘 온종일 할아버지랑 아빠도 없고, 칼바드와 앨런도 버니를 엄청나게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온종일 누구도 보이지 않아서 심심했던 버니가 놀러 가니 화들짝 놀란 앨런이 바쁘다며 멀어졌고, 칼바드는 아예 눈에 띄지도 않았다.
멀리서 꽁무니라도 보일 것 같으면 후다닥 사라지곤 했단 말이다.
제시한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며 웃기만 하고, 오랜만에 만난 로뎅한테도 달려갔더니 오늘은 급한 훈련이 있다면서 버니를 멀리했다.
모두가 버니를 피했다.
‘마족이라는 거 밝혀져서……?’
버니 이러다가 설마 쫓겨나?!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진 불쌍한 버니?!
“…힝.”
루리가 절대로 들키지 말라고 했었는데.
루리 말 못 지켰어.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납치되었을 때 힘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다음엔 꼭꼭 지켜야지.’
버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먹을 꼭 쥐곤 토토의 배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수첩을 꺼내 팔랑팔랑 종이를 넘겼다.
‘아빠랑 앨런이랑 칼바다에게 쓸모 있는 정보…….’
마족이지만 버니는 나쁜 마족이 아니고, 도움이 되는 얘기를 많이 가져다주는 착한 마족이 되면 모두 좋아할 거다.
돈을 많이 벌게 해 주는 거라든가 그런 것들.
‘버니 들었어.’
사람들이 버니 ‘예언가’라고 속닥거리는 거.
가끔 버니에게 다가와서 어떤 게 잘될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버니, 사실 가짜 예언가라서 다 고개를 저었지만.’
그러니까 아빠랑 앨런도 그런 걸 좋아할 거다.
루리엘의 비밀 수첩은 신기했다. 버니가 생각하는 것을 항상 알려 주고는 했으니까.
아기니이이임!! 납치를 당했다가 돌아오셨군요!! 어디 다친 곳은 없으세요?! 아픈 곳은! 망할 새끼들 다 죽여 버려야 되는데!
글자 가득 드러나는 염려에 버니가 눈을 깜빡였다. 입가 역시 흐물흐물 풀렸다.
루리는 좋다. 항상 버니를 걱정해 주니까.
발을 동동 구른 버니가 히죽 웃었다.
그나저나 마족이라는 걸 들키셨군요. 하지만 괜찮아요!! 일단, 당장 쫓겨나진 않으실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부터는 절대로 키리엘 유디아를 귀찮게 하시면 안 돼요. 사실 이제부턴 웬만하면 눈에 안 띄는 게 중요해요!!
“…눈에 안 뗘?”
작은 입을 동그랗게 벌린 버니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두근거림이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애교애교 작전도 금지! 다시 말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게 중요해요. 머잖아 새로운 아이가 올 텐데 그 아이한테도 접근하면 안 되고요. 그냥…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어른이 될 준비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
들썩거리던 몸도 우뚝 멈췄다.
버니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글자를 더듬거려 가며, 몇 번이고 꾹꾹 내용을 읽었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다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없이 페이지를 다음으로 넘겼다.
마족인 걸 들킨 이상, 아기님이 나쁘지 않아도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쓸모 있는 아이가 되셔야 해요. 속상하시더라도 조금만 힘내 봐요. 아시죠?! 대마왕이 되기 위한 수련!!
“웅……. 수련!”
버니 대마왕이 되기 위한 수련 중.
‘인간 아빠 이용만 해.’
그러니까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아.
버니는 어른이 되면 이 집을 나갈 거고, 그러면 아빠와도 물 빵야빵야로 싸워야 할지도 모르고.
‘버니 사랑을 바라지 않는 기특한 어린이 마족.’
혼자서도 뭐든지 다 잘할 수 있으니까, 이제 아빠가 없어도 괜찮았다.
“웅. 버니 왕 갠차나!”
힘주어 말한 버니는 그 후로도 같은 페이지를 한참이나 바라본 뒤에야 다음 장으로 수첩을 넘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