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82)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83화(82/125)
“피요오오!!”
한쪽에서 꾸벅꾸벅 졸던 불사조가 돌연 눈을 뜨더니 머리 위를 한 바퀴 크게 선회하며 날았다.
화르륵!
불사조의 몸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마치 반짝이는 별빛처럼 아래로 후두두 쏟아져 내렸다.
마치 지금 이 모든 순간을 축복하듯이.
키리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가슴 한편에서부터 퍼져 가는 따뜻함이 퍽 낯설었다.
그는 손을 들어 제 가슴께를 가볍게 꾹 눌렀다.
그의 세계는 늘 서늘하고 차가우며 동시에 무채색으로 가득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이에 아이가 끼어들기만 하면 세상은 색을 입는다. 무채색의 세상이 다채로워지고, 죽어 있던 감정 속에서 무언가 싹이 트는 기분이 들었다.
마족에게 저주받아 잃어버린 감정이 되돌아오는 느낌.
‘저 아이도 결국 마족일 텐데…….’
웃기게도 조금도 밀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히.”
모두가 더럽다며 피하고 꺼렸던 그의 손길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본 키리엘이 저도 모르게 버니를 달랑 품에 안아 들었다.
“생일 축하한다, 버니.”
“…넹!!”
있는 힘껏 대답한 버니가 키리엘을 확 끌어안았다.
‘버니가 왕 큰 대마왕이 되어도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게 해 주세요.’
작은 소원만이 맴도는 평화로운 한때였다.
* * *
늦은 저녁부터 자정까지 초콜릿이 가득한 방에서 모두와 즐겁게 파티를 한 버니는 타박타박 걸어가며 이리 꾸벅, 저리 꾸벅 졸다 휘청거렸다.
“버니!”
“야!”
앨런과 칼바드가 버니의 휘청거리는 몸을 붙잡았다.
버니는 품에 가득 선물을 끌어안은 채 비몽사몽인 낯으로 걸음을 멈췄다.
“흐이잉…….”
졸린 듯 투정을 부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키리엘이 아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앨런, 칼바드. 선물 좀 나눠서 들어 줄 수 있겠니?”
“네.”
“뭐… 내가 오, 오빠니까 어쩔 수 없지.”
앨런이 순순히 대답하고, 칼바드가 칭얼거리는 버니를 힐긋 보곤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둘 다 착실하게 버니가 제 선물이니 직접 들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 물건들을 조금씩 나누어 들었다.
“흐이잉, 버니 거어…….”
눈을 반쯤 감은 버니가 팔을 버둥거렸다. 키리엘이 버니를 품에 안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방에 전부 잘 가져다 둘 테니 잠시 네 오빠들한테 맡기렴.”
꾸벅꾸벅 조는 버니의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하니, 이윽고 아이가 끔뻑끔뻑 눈을 깜빡이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아빠아…….”
“그래.”
자리에서 일어난 키리엘이 앨런과 칼바드를 한 번 보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버니 안 시르져?”
“그래.”
“이찌여, 지르엘 강산이여. 패배한 강산인데여, 바닥이를 파면 정하석이가 이써서여, 왕왕 큰 대박이래여.”
비몽사몽이라 평소보다 한층 더 혀가 풀린 듯한 버니의 말에 키리엘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졌다.
아무도 모를 법한, 그것도 아이는 절대 알 수 없는 정보들.
그것을 당연하게 말하는 버니가 조금 신경 쓰였다.
불사조를 신수로 소환한 사람은 초대 가주밖에 없기에 그 정보를 알아봤지만, 어디에서도 미래를 예지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버니가 어디서 이 정보를 얻는 건지 확인하기 위해서 막 입을 뗀 순간이었다.
“버니… 아직 기특하구 쓸모 이찌여? 아빠랑 미어하면 버니 눙물 나여.”
작은 중얼거림에 키리엘이 걸음을 뚝 멈췄다. 그의 시선이 제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반쯤 잠에 빠진 아이에게 닿았다.
“안 싫어한다. 이만 자렴.”
키리엘은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애써 억누른 채, 짧은 숨을 내뱉으며 버니의 등을 토닥거렸다.
몇 번인가 더 웅얼거리던 아이는 이내 툭, 고개를 떨군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요하고 조용하며 평화로운 밤이었다.
* * *
훗.
며칠 전 ‘생일 축하 파티’라는 것을 받은 버니는 어른의 계단을 한 걸음 더 올랐다.
새로운 경험을 통해서 어제와는 다른 한 걸음 더 나아간 ‘어른 버니’가 된 것이다.
“오렌지 주스랑 포도 주스 중에 뭐로 드릴까요? 아가씨.”
“버니, 오늘은 어른의 개당이를 올라써.”
콧대가 불룩 솟은 버니가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우와, 그러셨구나. 그럼 포도랑 오렌지 말고 다른 음료로 드릴까요?”
“웅. 버니, 오늘은 어른 우유의 기부니.”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둥근 식탁에 모여 앉은 사이로 오가는 하녀와 버니의 대화에 키리엘의 입가가 씰룩 움직였다.
“네! 그럼 어른의 우유에 꿀을 좀 타서 가져다드릴게요.”
“웅.”
멜리사의 자연스러운 권유에 버니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앨런의 입가가 사르르 녹아내리고, 칼바드의 뺨이 살짝 씰룩거렸다.
그날, 아침 식사 내내 누구도 버니의 ‘어른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 * *
“유리구슬…….”
눈을 가늘게 뜬 키리엘이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버니에게 받았던 선물을 바라보았다.
제드리안이 가져갔던 선물을 뜯자 나온 것은 유리구슬이었다.
투명하고 깨끗하지만 딱 그것뿐인 유리구슬.
딱히 이리저리 훑어봐도 전혀 특별한 것도, 또 대단한 것도 없어 보였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유리구슬이었다는 말이다.
‘이게 예뻐 보였나?’
그 어린아이의 마음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키리엘의 입가에 설핏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버니에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선물을 보여 주자, 그야말로 만면에 미소를 띠며 환하게 웃었기 때문이다.
별 의미 없는 유리구슬이면 뭐 어떤가 싶었다.
제 따님이 자신을 생각해서 산 물건인 것을.
따님.
“…….”
그래, 그 애는 제 딸이었다.
자신이 입양하고 자신이 들인 아이.
가벼운 마음이 어느샌가 꽤 진지해져 있었다.
“레본.”
“네, 드디어 유리구슬이 아니라 제가 보이시는 모양이군요.”
레본이 무표정하고도 무심한 낯으로 내뱉는 말에 키리엘이 낮게 혀를 차며 고개를 들었다.
키리엘은 레본과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비꼬지 마.”
“비꼰 적 없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린 것뿐이니까요. 그래서 왜 부르셨습니까?”
“버니에 관한 건 정보를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었지.”
“네. 제국 내 웬만한 이름 없는 시골 마을까지 전부 알아보고 있지만, 마땅한 정보를 찾지 못했습니다. 백영 쪽도 마찬가지인 듯하고요.”
톡, 톡, 톡.
키리엘이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마족…….’
하지만, 완전한 마족은 아닐 확률이 높다.
일단 유디아 공작가의 핏줄이 이어져 있다는 건 확실하니까.
반인반마.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마족은 온몸에 독기와 탁기를 품은 존재다. 마족과 인연을 맺은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몸을 섞는 순간, 그 탁기를 몸에 받아들인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니까.
마족 중에는 사람을 유혹해서 하룻밤의 쾌락을 선사하고 그 정기를 빨아먹는 굉장히 특이한 소수 종족이 있다고 듣기도 했고 말이다.
꿈 같은 하룻밤을 보낸 상대는 길어야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일반인은 독기나 탁기를 정화하는 능력이 없으니까.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 상쇄할 순 있겠지만.’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강한 쪽의 기운에 영향을 받게 되니까.
신성력을 가진 인간에 비해 마족이 약하다면 마족이 쇠약해져 죽을 것이고, 반대로 신성력을 가진 인간이 마족보다 약하다면 인간이 쇠약해서 죽을 것이다.
마족과 인간은 결코 닿을 수 없는, 닿아서는 안 되는 세계에 속해 있다.
신성이나 마기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육체를 보호해 주는 물건이 있지 않는 이상, 그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 방법은 어디에도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았다는 건…….’
마족과 연을 맺은 그 누군지 모를 방계의 정화 능력이 꽤 뛰어났거나.
‘아니면 마족과 방계의 능력이 서로 균형을 이룰 정도로 엇비슷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오히려 마족이 방계보다 약했을 수도 있고.
‘그래도 결국 페가수스가 찾아내지 못했다는 건…….’
이미 둘 다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겠지.
애초에 제국에서부터 마족이 있는 땅은 꽤 멀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제국이 아니야. 제국을 나서서…….”
키리엘은 고개를 돌려 집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거대한 대륙의 지도를 바라봤다.
마족들이 사는 땅은 몇몇 나라들을 경계선에 위치해 있었다.
무엇이 있는지 모를 거대한 어둠의 숲 안쪽 어딘가에 존재하는 땅.
마왕이 죽은 뒤 어둠의 숲은 마치 숨이 끊긴 것처럼, 모든 연료의 공급이 사라진 것처럼 전부 누렇게 죽어 그 색과 빛을 잃었다.
그 근처에서는 도통 생물이 살 수 없게 되어 오죽하면 썩은 내가 진동할 정도였다.
대륙 최북단 마을.
오텔로이드.
어둠의 숲과 가장 경계가 가까운 곳.
마족과 마물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도시이기에, 두 개의 제국을 비롯해 세 개의 왕국이 함께 경계를 서는 비무장지대이자 치외법권이기도 한 곳이었다.
‘만약, 성마 전쟁 때 버니가 휩쓸려 나온 거라면…….’
아마도 저 마을에 가장 먼저 들렀을 확률이 높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