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83)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84화(83/125)
그맘때 제국을 비롯한 왕국들은 저곳을 거점으로 썼지만, 마왕성이 함락된 이후로는 경계가 확 풀려 소홀해졌었으니까.
“오텔로이드.”
“네?”
“오텔로이드부터 조사를 다시 해 봐. 오텔로이드를 통해서 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통로를 통해서다.”
키리엘의 말에 레본이 움직임을 뚝 멈췄다.
실상 오텔로이드를 모르는 자는 없다.
선과 악의 경계.
성과 마의 기준선.
아주 오래전엔 악마와 인간이 화합하던 도시라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다.
“…설마.”
“의문은 갖지 마. 그냥 알아보라는 걸 알아보고 알아낸 거나 가져와. 갓난아기 정도였을 거다. 제대로 걷지 못했을 확률이 높고, 아마도 여자와 함께 있었을 확률 역시 높아.”
종종 버니가 말하는 ‘루리’라는 여자가 버니와 계속 함께 했을 확률이 높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최대한 비밀리에 진행해.”
“네.”
키리엘의 말에 레본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할 일은 키리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탁.
레본이 문을 닫고 나가자, 키리엘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유리구슬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것을 챙겨 들곤 옆에 있는 시계를 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공작과의 회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버니가 말한 광산 건만 아니었다면 굳이 나가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정화석’이라는 명칭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명칭이었으니까.
생각에 잠긴 채 옷을 챙겨 자연스레 집무실을 나가려던 키리엘이 멈칫했다.
‘…나도 참 성실해졌군.’
언제부터 약속을 지키고, 언제부터 이렇게 매일같이 집무실에 출근했다고.
참 우습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겼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나니 자연스럽게 부지런해지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이 생겼다.
“버니… 아직 기특하구 쓸모 이찌여? 아빠랑 미어하면 버니 눙물 나여.”
버니는 기묘하게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상당히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어떤 고난과 역경도 겪지 않은 채 오로지 사랑 속에서만 자랐을 것 같은, 말랑말랑하고 천진하며 순수하면서도 묘하게 어른스러운 아이.
생각해 보면 아이는 항상 키리엘을 만나러 올 때마다 ‘며칠 뒤에는 여기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거나 ‘이 상회에서 나오는 뭐가 대박이 난다’거나 하는 정보를 가지고 오곤 했다.
혹시나 정보가 없는 날엔 동화가 가득 든 낡은 천 주머니를 가지고 왔고.
‘빈손으로 오는 날이 없었지.’
아마도 버니는 그것을 ‘쓸모’라고 생각한 게 분명했다.
쓸모가 있고 귀찮지 않고 기특해야만 버림받지 않는다고 말이다.
“버니 똑똑해여! 그리구 훈륭한 달걀두 이써여. 그리구 왕 큰 대마…법싸두 댈 거예여! 그래서 버니 있으면 킹 왕창 이득! 혼자서 다 하니까 전혀 기찮지두 않구 용돈두 줘여!”
첫 만남에 그런 말을 해서 특이하고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래야만 누군가가 필요로 해 줄 거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지끈.
순간 든 찌릿한 감각에 그는 손으로 심장께를 눌렀다.
이상하게 아이를 생각하면 항상 가슴 어딘가가 찌릿한 느낌이었다.
키리엘은 마침내 도착한 회의실 문을 가볍게 밀며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 애는 내버려 두라고 했잖습니까!”
콰드득, 콰앙!
물론, 키리엘이 회의실에 발을 들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회의실 문이 반파되어 대리석 벽에 꽂힌 것은 그다지 숨길 일은 아니었다.
* * *
“…….”
“…….”
“…….”
도르륵, 도르륵.
침묵 속에 눈동자가 굴러가는 소리만 연신 들렸다.
버니가 슬쩍 앨런을 봤다.
앨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슬쩍 칼바드를 보았다.
마찬가지로 칼바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빠 뾰족뾰족. 따끔따끔.’
키리엘에게서 퍼져 나오는 기운이 무척이나 따끔따끔했던 버니가 슬쩍 입을 열었다.
“아빠, 화나여?”
“음?”
버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키리엘은 포크와 나이프를 쥔 채 굳어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아이를 보았다.
세 아이의 시선이 제게 닿아 있는 것을 본 키리엘은 그제야 속으로 혀를 차며 식기를 내려 두곤 미간을 문질렀다.
“아니, 생각할 게 좀 있었어.”
“거진말.”
키리엘이 적당히 둘러댄 말에 버니가 조금도 지체 없이 거짓말 도장을 쾅쾅 찍었다.
그에 키리엘이 멈칫했다.
“아빠, 따끔따끔 뾰족뾰족해여.”
“…따끔따끔 뾰족뾰족은 뭐니?”
“우음… 아빠가여 자꾸 따끔따끔하구 뾰족뾰족해서 찌릿찌릿해여!”
버니의 말 중에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키리엘이 대충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자신의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분명했으니까.
그는 열이 올라 어지러운 머릿속을 애써 억누른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버니.”
“네엥.”
“아빠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부탁?
키리엘의 말에 버니의 눈이 반짝했다.
“시련이에여?!”
“시련……?”
이건 또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키리엘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몸을 들썩거리는 버니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버니는 예전에 루리엘이 들려준 동화책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주인공에게는 ‘부탁’으로 시작되는 시련이 온다는 이야기를!
보통은 주인공의 왕 큰 아빠나, 주인공 친구의 부모님이나, 아니면 주인공을 싫어했던 어떤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어떤 ‘부탁’을 하면서 시련이 벌어지곤 했다.
“내 아들을 살려다오!! 내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건 슈퍼 킹왕짱 마법의 힘을 가진 너밖에 없다!! 그간 무시해서 미안했단다!!”
“왕왕 큰 마왕님!! 당신을 사생아라고 무시해서 죄송했습니다. 당신은 진정한 마왕이십니다. 부디, 부디 우리 마왕 제국을 구해 주세요!!”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다. 나는 너보다 왕 작은 황제인 걸 인정하지. 그러니 함께 힘을 합쳐서 세계 멸망의 대위기를 극복해 보지 않겠나. 왕 큰 대마왕.”
버니도 드디어 세상을 구하는 시련 시작?!
그 시련을 끝내면 모두가 주인공을 인정하고 다르게 보곤 했다.
더불어 모두들 주인공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말이다.
“그간 널 무시해서 미안하다. 너도 우리 가문의 일원이다!!”
“당신을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왕왕 큰 대마왕님이시어.”
“나와 함께 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며 살아가 보지 않겠나? 나의 왕 큰 대마왕이여.”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와중 잔뜩 기대감에 차오른 버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버니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가 1등 버니, 이제 쿠콰콰쾅! 멋진 모습을 보여서 세상을 지배해.’
시련을 극복한 버니, 한층 더 어른이 되겠지.
“모에여?”
버니가 의욕에 차서 묻자, 어쩐지 키리엘은 살짝 굳은 낯으로 버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돌에서 나오던 목소리가 어떤 말인지 얘기해 줬던 거 기억하니? 버니.”
“돌?”
버니가 고개를 기울이더니 “아!” 소리를 지르곤 머리를 위아래로 연신 끄덕였다.
가열하게 흔들리는 머리를 보던 키리엘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툭, 붙잡았다.
“넹! 살려 조!”
“그래, 그거. 혹시 한 번 더 부탁해도 되겠니? 버니가 말한 곳에 갔다가 엘프들을 발견했거든. 그런데 아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더구나.”
“쿠콰쾅 안 해여?”
“쿠콰쾅?”
“버니, 제국 안 구해여?”
엄청난 시련을 받을 줄 알았던 버니가 살짝 실망한 낯으로 물었다.
‘제국을 구하고 싶은 건가?’
하긴, 꿈이 대마왕이라고 말하는 녀석이니 어쩌면 세계 정복 같은 꿈을 꾸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계 정복이 아니라 제국을 구한다는 면에서 점수를 높게 쳐 줘야 하는 걸까?
“……넓게 보면 제국도 구하는 길이지. 엘프들이 마물이 되어 버리면 세상이 위험에 처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유디아 공작가의 인력이 전원 투입되어서 그 일대를 전부 정화하고 폭파해 없애 버리겠지만, 그런 얘기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