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racle of the Villainous Baby RAW novel - chapter (85)
악당 아기님이 예언을 함 86화(85/125)
“넹! 맨날 맨날 글씨가 달라지는 곳두 있구여, 아닌 곳두 있어여.”
도통 상상이 되질 않았다. 매번 글이 달라지는 수첩이라니.
마족들은 흑마법에 정통했다고 하니, 어쩌면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보여 주까여?”
“그래도 된다면.”
“네엥!”
폴짝 뛰어내린 버니가 호다닥 방을 뛰어나갔다.
키리엘이 팔짱을 낀 채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버니가 다시 키리엘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키리엘의 옆방이 버니의 방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버니의 손에는 작은 가죽 수첩이 들려 있었다. 일반적인 책 크기의 반의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작은 버니의 손에는 조금 크게 보일 정도였다.
검은색 가죽으로 된 수첩의 앞부분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문양과 글씨가 가득 쓰여 있었다.
“요고에여!”
폴짝폴짝 뛰어 들어온 버니가 키리엘의 손에 수첩을 넘긴 순간이었다.
파지직—
파지직—
키리엘의 손이 닿자마자 키리엘의 손과 수첩 사이에서 사납게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직—!
키리엘이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놓지 않자 한층 더 스파크가 격렬해지더니, 이윽고 그의 손을 순식간에 새까만 기운이 좀먹기 시작했다.
키리엘은 인상을 찡그리며 신성력을 사용해 제 손을 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꾸드득, 꾸드득!
“으엥……?”
수첩이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수첩에서부터 검붉은 무언가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키리엘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그것을 보던 버니의 눈이 동그래졌다.
“앙 대!!”
제자리에서 펄쩍 뛴 버니가 급히 폴짝 뛰어 키리엘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마치 돼지를 나무에 매달아 통바비큐 구이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버니가 키리엘의 팔을 끌어안음과 동시에 사납게 요동치던 수첩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들더니,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얌전해졌다.
“휴우…….”
버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키리엘의 팔에서 폴짝 뛰어내린 순간이었다.
파지지지직—!
“흐잉!”
또다시 수첩이 사납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버니가 다시 매달리려는데 키리엘이 수첩을 침대 위에 툭 떨어뜨렸다.
‘…이건.’
수첩을 내려다보는 키리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키리엘이 침묵한 채 수첩을 바라보고 있으니, 버니가 슬쩍 떨어진 수첩을 손에 쥐곤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안 가져가지여……?”
“…그래.”
버니의 표정을 잠시 눈에 담은 키리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기에 중독된 듯 시커멓게 물들어 그을린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볍게 손을 털어 내며 신성력을 사용했다. 새하얀 빛이 순식간에 몸 안에 스며든 마기를 밀어내며 정화했다.
“이건 언제 받았니?”
“루리가 왕 큰 임무 가기 전에 버니 선물이래써여. 루리 대신이래여.”
“그래…….”
키리엘이 말없이 수첩을 내려다봤다.
흑마법의 기본은 등가교환이다. 즉, 대가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뭔가의 생명, 누군가의 목숨, 계약에 의해 얻어 낸 영혼, 자연에서 얻어 오는 힘이 아니라 타인의 악의, 불온, 고통 등 부정적인 감정에서 끌어오는 힘.
그것이 흑마법이다.
부정적인 감정에서부터 끌어오는 힘이자, 때때로 생명을 대가로 바치는 만큼 흑마법의 힘은 아주 강력하다.
마법의 가장 상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물.’
이건 마족들의 유물이다.
마족들의 유물은 하나같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유물’로 분류되는 조건은 하나였다.
지성체의 영혼을 사용할 것.
흔히 알려진 마족들의 유물 중에는 마검도 있었다.
손에 쥐기만 해도 끊임없는 힘과 살육 충동을 불러일으켜서 오래전, 제국을 크게 뒤흔들었다던 유물.
몇 대 전의 유디아 가문의 가주가 회수해서, 지금은 유디아 공작가 내의 신전 안쪽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었다.
오래전, 새로운 무기를 창조해 내는 것에 미쳐 있던 마족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물 대신 피를 사용해 검을 벼려 내고, 검을 완성한 뒤엔 그 검으로 자신을 찔러 검에 자신의 영혼을 녹여 냈다고 한다.
이 수첩도 비슷했다.
그가 마법에 정통하지는 않지만, 이 수첩의 겉 부분을 휘감고 있는 가죽에는 수많은 마법진을 비롯해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뭣보다…….
‘어릴 때 호기심에 마검을 쥐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어.’
그 말은 최소한 유물, 그와 비슷한 동급의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즉, 이것도 영혼을 녹여 내 만든 수첩일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키리엘은 말없이 수첩을 노려보듯 바라보다가 거칠게 얼굴을 문질렀다.
‘이런 위험한 걸 아이한테 쥐여 줬다고?’
마족들의 생각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빼앗기에는 버니가 이미 수첩을 끌어안은 채 불안한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나써여……?”
“아니, 화나지 않았어.”
“거진말…….”
버니가 눈을 깜빡이며 작게 반박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은 버니에게 그 마음을 숨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부정적인 냄새를 누구보다 빠르게 맡는 것이 바로 마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니는 그 꼭대기에 설 존재고.
“…버니 이걸루 나뿐 거 안 해여. 루리두 버니한테 조은 얘기만 해여.”
버니의 말에 키리엘은 애써 굳은 표정을 펴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앞에선 도통 선의의 거짓말도 통하질 않았다. 버니는 날카롭게 그의 부정적이고 좋지 않은 감정을 눈치채곤 했다.
“어떤 좋은 얘기?”
“버니가 훌륭한 어른이가 대는 얘기여!”
“그래? 무슨 얘기를 주로 하니?”
키리엘이 버니를 품에 끌어안고 등을 도닥거리며 물었다.
다시 부드러워진 키리엘의 분위기에 버니가 확 밝아진 얼굴로 냉큼 입을 열었다.
“아빠가 버니 안 미워하구 훌륭한 어른이 대는 거나, 도움대는 버니여서 나중에 어른이 대두 모두 버니 조아하게 하는 거나, 그리구 버니는 사랑 안 바라는 기특한 어린이니까 아빠 눈에 안 띠구여…….”
“…….”
“그리구 버니가 쓸모가 있게여, 막 대박이두 알려 주고여. 안 대박이는 하지 말라구 하구여. 사람이 다치는 것두 미리 알려 조요.”
버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어질 때마다 어째서인지 심장 한편이 아려 왔다.
목까지 무언가가 울컥 차오르는 듯하고, 굳은 얼굴 역시 차마 펴지질 않았다.
키리엘은 버니를 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아이는 그조차도 좋다는 듯 히히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왜…….”
그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넹?”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 그 루리라는 사람은.”
“우음.”
키리엘의 질문에 버니가 어설프게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툭 기울였다.
한참이나 “우으으음~!” 이상한 소리를 내던 버니가 활짝 웃었다.
“버니는 아빠랑 다르니까여. 마족이구여. 마족이는 인간이한테 미움받아여. 막 죽으라구 하구여, 때리구여, 막 쓰레기두 던져여.”
쿵!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감각에 순간 키리엘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곤 숨을 멈췄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질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적이 있니?”
“버니가 아주아주 아가 때여. 루리가 두건이가 날아가서 뿔이 들켰는데여. 그래써여. 그래서 쓸데가 있는 아이여야 대여. 쓸데가 이쓰면 인간은 아가를 잘 안 버린대여.”
“…….”
“이용이가 하기 좋대여.”
어린아이처럼 그의 품에 안긴 채 다리를 동동 구르던 버니가 활짝 웃었다.
키리엘은 우뚝 굳은 채 차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아이를 바라봤다.
“그니까여, 버니가 말 잘 들을 테니까여, 어른이가 댈 때까지만 버리지 마여.”
“…….”
“그러면 버니가 왕왕 와앙! 큰 대마앙이 대서 부자 대게 해 주께여!! 그리구 부자 대는 것도 마니마니 알려 주고여!”
버니가 두 팔을 쭉쭉 뻗어 가며 커다란 원을 그리더니 그렇게 소리쳤다.
키리엘은 그저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차마 아이의 입에서 나온 거라 믿을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그리고 버니 왕왕 천재니까, 고대 엘푸어도 해 주구여. 고대어두 읽어여. 그리구 마족어두 해여! 버니 이제 인간 말두 다 외웠구여, 숫자도 100까지 알아여!”
그러니까…….
버니는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양손으로 꼬옥 누르며 헤헤, 웃음을 터뜨렸다.
“버니 어른이가 대면 나가니까여. 왜냐면여, 버니는 특이한 아이라서 아가 때는 요기에 이써야 한대여. 그리구 또, 어… 새 아빠 찾기 힘이가 드니까…….”
옷자락을 작은 손아귀가 희게 질릴 정도로 꽉 쥔 버니가 작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이곤 키리엘의 가슴팍에 이마를 툭, 가져다 댔다.
“그러니까… 버니가 시러져도 쪼끔만 참아 주면 안 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