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 world demon king's survival story RAW novel - Chapter (13)
〈 13화 〉 강림의식 x 1
* * *
“큘스오빠. 가엾기도 하지. 배낭에 이것저것 많이도 넣었어.”
“아. 이거?”
현재 나는 거의 뭐 군장을 메고 있는 상태였다.
당장 강림 의식이 끝나면 중간계로 떡 하고 떨어진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어디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랜덤성이 너무 짙다고 했으니까.
그러니 챙길 수 있는 것들은 죄다 챙기도록 했다.
생존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지.
철저한 준비만이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거의 군장만 한 배낭 안에는 각종 도구와 책. 의복들과 간단한 식량들이 들어있는 상태다.
이거면 거의 뭐 혼자서 정글의 법칙 찍을 수 있다. 그거 안되면 살짝 아마존의 눈물 같은 느낌? 근데 막상 실전 들어가면 큘스가 뒤지는 법칙이나 큘스의 눈물이 되어버리겠지.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울지마 톤즈처럼 감동적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울지마 큘스.
“흐흐흐, 제대로 준비를 해야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질 거 아냐. 그래서 이것저것 다 챙겼다고. 무겁긴 해도 버텨야지.”
“그래서 가엾다고 말한 거야.”
“왜?”
“그런 걸 가지고 의식에 참여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기껏 준비한 게 쓸모없어져 버렸으니까.”
순간.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뭐라고…?”
“그렇게 커다란 배낭을 챙겨가는 모습, 마계 귀족들 중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 추하다고 생각할 게 분명해. 아마도 압수당하겠지.”
카르티가 슬프다는 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가를 훑었다…!
“이, 이걸 못 챙겨간다고?!”
이게 말이 돼?!
“응. 당연한 거야. 위대한 의식에, 그것도 대마왕님을 기리는 의식인데. 그런 걸 메고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 돼.”
순간 군대 있을 때 시행했던 열병식이 떠올랐다.
제대로 복장을 쫙 갖춰 입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행사. 힘들다고. 불편하다고. 덥다고. 복장을 풀어헤치고, 빵탄을 벗어던지고, 총을 내려놓고, 전투조끼를 풀어헤친 채 냉조끼를 입고 있을 수는 없다. 결코 그럴 수가 없단 말이다.
이건 그것과 비슷한 개념이었나!
“그런 기초적인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니…!”
“그러니까 카르티 생각에는 필요한 것만 코트 속에 감추는 게 좋을 것 같아. 티 안 나게.”
“으아아아악!”
진짜 빡치는 일밖에 없다!
“아오!”
하지만 어쩌겠나! 그렇다는데! 나는 바로 배낭을 벗고 안에 있던 것들을 골라서 코트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일단 숲이나 정글에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했으니 손도끼 넣고… 물병 챙기고! 끈도 조금 챙기고!
“카르티 명작선도 챙겨야 해!”
그리 소리친 카르티가 내 코트 안에 자신의 책을 넣으려고 했다!
“아냐! 흑마법서 넣을 거야!”
“그치만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못 볼 거야!”
“아니! 반드시 돌아와서 보도록 하마! 약속할게!”
“흐응… 그래?”
아무튼 그것으로 코트가 묵직해졌다. 티 안 나게 챙겨야 해서 많이 넣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카르티와 함께 걷는다.
ㅡ…
ㅡ…
ㅡ…
근데 카르티랑 걷고 있으니 역시 시비 털리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궁전의 다른 상위혈족들이 카르티를 보자마자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큘스오빠! 다들 큘스오빠한테 인사하고 있어!”
“어? 아니? 너한테 하는 거 아냐?”
“오늘은 강림의식에 참가하는 날이잖아. 오늘만큼은 경의를 표하는 거야.”
“그, 그런가?”
그런 거였군.
그래서 나는 바로 내게 허리를 숙인 놈들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흐흐흐, 그래. 잘들 지내라.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거들먹거리겠나.
“큘스오빠? 뭐 하는 거야?”
“나한테 경의 표하는 거라매. 그러니까 인사하는 거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거들먹거리겠어?”
“쿡…! 후, 후후후. 응. 그러네. 잘했어!”
카르티한테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군.
그리 움직이다 보니 궁전에 딸린 비행장에 도착했다.
“어?”
와이번 타고 가나 했는데 아니었다.
ㅡ크르르.
비행장에는 뭔 기이한 비행마수 비스무레 한 것이 대기하고 있었다.
머리는 마치 모기 비스무레하다. 긴 주둥이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상체는 근육질의 인간과 닮았고, 하체는 또 무슨 뱀 비슷했다. 그런 놈에게 박쥐 같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결정적으로, 놈들의 모가지에는 목줄이 걸려 있었고, 그 목줄은 뒤에 있는 시꺼먼 마차에 연결되어 있었다.
신데렐라에 나오는 호박마차?
그것이 악몽적으로 뒤틀린다면 지금 이것과 비슷한 비주얼이 나오겠지.
“저거 뭐야?”
“저것도 사역마야. 그럼 타자.”
ㅡ끼익.
카르티가 걸어가자 마차의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참… 역시 마계는 마계란 말이지. 이상한 거 참 많네. 바로 카르티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ㅡ파앗!
곧 마차가 붕 떠오른다.
“오오…”
비행기 처음 탔을 때 느낌이 떠오르는군. 부유감이 느껴진다. 그러고 있으니 옆에서 카르티가 말했다.
“큘스오빠는 이제 의식 준비를 하게 될 거야.”
“준비라.”
조금 들은 게 있다. 의식 전에 준비할 게 좀 여러 개 있다는 모양. 무슨 축복도 받고, 마신한테 기도도 올리고. 나야 뭐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흐름 따라 몸 맡기면 된다.
“제대로 준비를 한 뒤에는 강림 의식이 진행되는 홀로 가게 될 거고, 그러면 끝이야. 바로 중간계로 내려가는 거지. 다른 가문들의 마족들과 함께.”
다른 마족들.
“그놈들도 다들 나처럼 떨거지들인가?”
“그렇겠지? 어떤 가문에서는 강림제를 교육에 이용하기도 해. 너희들 중 가장 무능한 녀석을 의식에 참가시키겠다고. 그렇게 하면 전부 필사적으로 힘을 기를 테니까.”
마족놈들 존나 잔인하다, 진짜.
“그런 행사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전통 있는 의식이니 마계의 귀족들 대부분이 참석해. 아마 어머니 여공작님도 참관할걸?”
“와.”
얼굴 한번 보고 가는 건가?
딱히 보고 싶지는 않았다.
“보기 싫은데…”
“응? 왜? 어째서?”
“당연히 싫지. 좋을 리가 있겠냐. 그렇게 대놓고 날 버리겠다고 말했는데.”
“흐응… 역시 신기하네. 보통은 어머니 여공작님께서 시킨 일이라면 아주 기쁘게 받아들일 텐데. 혈족이라면.”
“개인차지. 개인차. 다들 개인차가 있어.”
“그런 건가?”
아무튼 하늘마차는 내 마음 따위는 알 필요도 없다는 듯이 존나 빠르게 날았다.
브레이크 좀 밟으면서 가라고, 이 새끼야!
* * *
결국 의식장에 도착했다.
무슨 콜로세움 위에 원형 돔을 얹은 형태의 건물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지붕이 삐죽삐죽한 건물들이 다수 세워져 있었는데, 일단 이곳은 오즈발카 공작가의 영지라는 모양.
“오즈발카? 그 대마왕 이름 아닌가?”
“후손들이야. 대마왕만큼의 힘은 없어. 의식장은 그들이 관리해.”
“흐음… 근데 마계 공작끼리 사이가 좋나? 이런 의식 다 같이 하는 거 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내 말에 카르티가 고개를 살살 끄덕였다.
“뭐, 마계의 주적은 천사들이니까. 마족들끼리는 동맹하는 일도 많지. 물론.”
그리 말하면서 검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전쟁을 하는 일도 많지만 말이야. 그래도 강림제기간 동안에는 싸우지 않아. 만약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강림제가 영원히 중단된다면… 그렇잖아? 앞으로 마족 유력자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한자리에 모여서 얼굴 볼 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거니까.”
정치적인 이유도 있는 거군.
“싸울 때 싸우더라도 이렇게 대화할 자리는 필요할 테지.”
“바로 그거야.”
대화의 장은 일단 마련되어 있는 편이 좋다.
“실질적으로, 이 강림제는 마계 공작들과 귀족들끼리 대화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어. 어쩌면 큘스오빠 같은 산제물들은 그냥 만날 핑곗거리에 불과할 뿐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라.”
“메인으로 여기라고! 적어도 메인으로 여겨!”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나를 밀어 넣다니! 이 개새끼들 진짜! 우리 산제물들을 아주 좆으로 여기고 있다! 존나 사악한 개새끼들!
우리의 목숨이 그냥 만날 핑곗거리에 불과하다니!
“크으…! 아무튼 카르티. 정말 다 죽었을까? 중간계로 간 마족들이? 한 놈도 빠짐없이 모조리 다?”
“글쎄? 어쩌면 다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근근이 살아가는 생존자가 있을지도?”
“역시 그렇지?”
“하지만 유의미한 세력을 일군 경우는 없어. 있다면 우리들 귀에 들어왔을 테니까.”
카르티는 다시 평소처럼 불쌍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날 보았다.
“그러니까 카르티는… 큘스오빠가 운이 좋다면 짐승처럼 숨어서 살아갈 것이고, 운이 나쁘다면 그대로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해. 정말 슬퍼.”
끝까지 부정적이로군. 아니. 오히려 현실적이고 냉정하고 냉철한 판단이다. 카르티는 그래서 날 가엾게 여기고 있는 거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래. 나는 어른이다. 카르티가 뭐라고 말하건, 나는 어른으로서 마지막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일 테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슬퍼하지 마라, 카르티.”
이제 곧 시간이 된다.
미소를 짓고.
“약속했잖아. 책 읽으러 온다고. 반드시 돌아와서… 카르티가 추천해준 책들. 다 읽을 테니까.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
카르티의 어깨를 잡으면서.
자신감 있게 말한다.
난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나빠!”
근데 카르티가 그렇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냥 좋은 얘기 해달라고! 나 이제 간다니까?!”
“카르티는 마냥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마족이 아니야. 카르티는 언제나 냉정해.”
“쑤바아아아아알!”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ㅡ저벅저벅.
ㅡ저벅저벅.
뒤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
무언가 거적때기 비슷한 것을 머리에 뒤집어쓴 마족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뿔이 있는 곳과 눈 부분에만 구멍이 뚫려 있어서 몹시 기괴해 보인다. 그뿐만이 아니다. 머리는 저런데 옷은 무슨 깔끔한 정장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시간이 됐어. 큘스오빠.”
“아.”
“이제 가.”
그리 말하는 카르티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마치 어른 같은 얼굴.
“큘스오빠가 쓴 독후감은 간직할게.”
“…”
“책 이야기 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으니까. 응. 카르티는 큘스오빠를 잊지 못할 거야.”
그래도 마지막에는 웃어줬다.
“나도 그럴 거다.”
그래.
마지막으로 카르티의 미소를 보았다.
그거면 된 거지.
“갑시다, 나으리들.”
날 데리러 온 마족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즉시 놈들이 자연스럽게 내 양옆으로 따라붙는다.
이제 가자.
의식 준비건 뭐건 알아서들 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