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 world demon king's survival story RAW novel - Chapter (293)
〈 293화 〉 정치란 게 뭐냐 x 1
* * *
오겠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어쩌겠나?
“그럼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녀님 말마따나 이야기를 들어본 뒤에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야 할 테니까요.”
“알겠느니라. 하지만 명심하거라. 이런 상황에서 온 사자가 결코 좋은 말을 할 리가 없느니라.”
“물론입니다. 아마도 뭐 복종을 요구하거나 그런 것이겠지요. 그쪽도 세력을 더 키워야 할 테니.”
“그리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구나.”
뭐가 됐든 중앙에서 천사들과 박터지게 싸우고 있는 사이딘 백작이 친히 이쪽으로 사자를 보내 준 것이다.
제대로 맞이를 해야겠지.
당장은 이길 수 없는 존재다. 내가 소국이라면 거긴 대국인 것이다. 크게 거슬리는 제안을 하는 게 아니라면… 대충 대답을 좀 유보하다가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수락을 하거나, 최대한 협상을 해봐야겠지.
어려운 문제다.
“그래도 우리에겐 성녀님이라는 카드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제안을 받더라도 할 이야기는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에 대한 것은 이 성녀에게 맡겨두거라. 최대한 잘 풀어 볼 테니.”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성녀님. 확실히 외교 관련해서는 아주 믿음직스럽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아는 요물이니까.
“흐흐흐, 알겠습니다. 그럼 뭐. 회의는 여기까지만 하고. 업무나 보러 가죠.”
내 말에 성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이나 착실히 하고 있으면 될 겁니다.”
“물론 그래야 할 것이니라. 계속해서 힘을 키워야 하느니라. 오직 그것만이 생존을 보장할 테니.”
맞는 말이다.
그럼 업무나 보러 가자.
“흠.”
사이딘 백작가의 사자라.
과연 어떤 녀석이 올까?
사이딘 쪽이 갑인 이상 갑질을 하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뭐, 조금 불길하긴 하지만, 녀석들도 반천사파의 귀족이다. 설마 큰일이 있으려고.
어느 정도의 갑질은 용인할 수 있다.
내가 힘을 키우기 전까진.
* * *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사이딘 백작의 사자가 왔다는 전별을 듣게 되었다. 그는 성 근처에 있는 여관에 묵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아마 조만간 들어오지 싶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흠.”
녀석은 여관에 3일 동안 묵으면서 별다른 접촉을 해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이에 대해 상의를 해보니 그가 이 남작령을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협상을 하기에 앞서 정보를 모을 생각인 것 같구나.”
“흐음. 이거 막을 수는 없겠고.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겁니까?”
“그를 암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느냐? 어쩔 수 없느니라.”
당장은 접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마침내 사자가 찾아왔다.
나는 준비해둔 대로 병사들을 숨기고 내성의 문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수행원 둘과 함께 올 거라는데… 저건가? 기다리고 있으니 저쪽에서 웬 돼지가 걸어오는 것이 관측되었다.
뭐? 돼지?
ㅡ출렁.
그보다 출렁?
이 소리는 여자 가슴에서나 나는 소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 소리는 사자의 뱃살에서 나는 소리였다.
ㅡ쿠웅.
몸무게가 족히 150kg는 될 법한 거구의 돼지가 고급스러운 옷을 두른 채 여성 수행원을 양옆에 끼고 지축을 뒤흔들며 걸어왔다… 저 새끼가 백작이 보낸 사자라고?
“…”
다가오는 그를 보면서 기운을 느껴본다. 마나의 힘이… 느껴지긴 하지만, 딱히 강한 수준은 아니다. 어째서 백작씩이나 되는 인물이 저런 녀석을 사자로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살만 봐도 정상적인 녀석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힘이다. 결국엔 힘이 있어야 타인 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런 지방질의 몸매라니. 전투에 적합하지 않다.
놈이 정상이 아닐 거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무튼. 그렇게 내 앞까지 다가온 녀석이 멈춰서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으음? 너는 누구지?”
“성녀님의 기사인 큐르스라고 하오.”
“기사? 그것도 남성 기사? 여신교의 성녀가 남성 기사를? 근위기사인 레아는 어디로 가고?”
레아에 대해서 아는 건가? 하긴. 성녀의 명성은 높다. 당연히 그녀의 옆을 지키는 기사에 대한 정보도 있겠지.
“근위기사 레아는 현재 다른 일을 하는 중이오. 아무튼 백작의 사자라고 하셨소?”
“그런데 이놈이?”
“뭐라?”
“당장 예의를 갖추지 못할까! 나는 사이딘 백작님의 명령을 받고 온 켈스론 자작이다! 어디 무명기사 따위가 내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는가!”
어.
처음 겪는 상황에 순간 당황을 하고 말았다.
“이게 무슨?”
아니. 아무리 귀족이고 백작의 명령을 받았다지만… 남의 나와바리에서 이딴식으로 굴 수가 있나? 그것도 기사한테? 머리통이 쪼개질 걱정이라던가, 하지 않는 건가?
“…”
의문이 듦과 동시에 가슴이 차가워진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어쩌면 이것은 기선 제압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것일 수가 있다.
이 녀석도 귀족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은 귀족. 전시에 세력 관련해서 협상을 하려고 온 것이다. 그런 놈이 결코 이딴 바보 같은 행동을 할 리가 없다.
이것은 정치적인 계산이 깔린, 말하자면 꾸며진 태도일 터.
나는 빠르게 판단했다.
여기서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서 녀석은 행동의 방침을 정할 것이 분명하다. 내가 항의하면 무례하다면서 뭔가의 조건을 더 추가하려고 할 수 있겠지.
근데 그렇다고 고개를 숙이면?
“나는 기사로서 내 고용주 외의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뭐, 뭐?”
좆밥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귀족의 세상! 그것은 약육강식이다! 상대가 나보다 약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막 대할 수 있을 터! 여기선 모욕에 대한 항의를 해야 한다!
“켈스론 자작…! 기사인 내게 감히 그딴 개소리를 하다니!”
사이딘 백작이 어떤 남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중요한 곳에 병신을 보낼 녀석이라면 백작이라는 자리에 올라가지도 못했겠지. 이건 계산된 행동이다. 그렇다면 그 계산을 깨뜨려 줘야해!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보게 될 거요! 그 지방질의 육체가 땅에 처박히는 경험을 하게 해주지!”
나는 설정상 기사다. 기사라면 모욕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고 바네사에게 배웠다. 그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내가 이딴 수작에 걸려들까 보냐? 기선제압을 하고 싶다면 번지수가 틀렸다. 내 전투 특기가 바로 기선제압이니까.
“당장 사과하시오!”
“뭐, 뭐라? 이, 이런 미친새끼가 다 있나! 내가 누군 줄 알고…!”
놈이 당황한 척을 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이 연기가 다 보인다. 일부러 병신같은 척을 해도 소용 없어. 우리는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다. 그걸 각인시켜주지.
“마지막 경고요! 모욕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으면 저기 푸줏간에 내걸리게 될 것이오! 살이 많이 나오겠군! 뱃살만 떼어내도 영지민들이 배불리 먹겠어!”
“푸줏가아안?! 거, 거기에 이 무슨 개 같은 소리를…! 이 못 배워 처먹은 망나니 같은 녀석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구나!”
ㅡ번쩍!
순간 놈이 지방질의 팔뚝을 들어 올렸다! 그 탓에 녀석의 풍부한 턱살이 고칼로리를 자랑하면서 출렁였다!
동시에.
녀석의 거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그래. 그런 건가? 이런 꼴이라지만 귀족은 귀족이다. 폭력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침이 없지. 여기서 물러서면 바로 호구잡히는 거다.
“이 죄는 네 주인에게 물을 것이다!”
ㅡ홰액!
켈스론이 내게 손바닥을 휘둘러왔다. 그러나, 내겐 그것이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그동안 성장을 거듭한 나다. 이런 골렘의 움직임쯤은 눈에 훤하지.
ㅡ스윽.
바로 스텝을 밟아 녀석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자세를 낮춰 놈의 오른쪽 다리를 끌어안는다.
“아닛?!”
그상 태로 내 마력과 몸무게를 실어서 놈을.
ㅡ콰앙!
뒤로 자빠뜨렸다!
“궈학!”
이거 지축이 울릴 정도로군.
“아앗!”
자작의 두 수행원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발을 구른다. 저 비처녀들은 지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여기서 얕잡아 보일 수는 없지. 모욕조차 갚아주지 못한다면 백작은 우리를 호구로 보고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것이다.
“다, 당장”
그래서 녀석의 얼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ㅡ콰앙!
“커학!”
“켈스론 자작! 다시 한번 말하겠는데, 나와 내 고용주를 모욕하려 든다면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요! 성녀님께 예의를 지키시오!”
“자, 잠깐! 그 전에! 크학!”
ㅡ콰앙!
나는 다섯 번정도 주먹을 휘둘러 놈의 얼굴을 강타했다. 남의 나와바리에서 깽판을 쳤으면 맞아야지. 이것은 권력자들의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자기 집에서조차 짖지 못하는 개는 결코 집을 지킬 수 없어. 권력자란 개새끼고, 권력이란 것은 개집이다. 자기 집조차 지키지 못하는 개새끼는 그냥 보신탕이 될 뿐이다.
“끄으윽…!”
그렇게 켈스론을 무력화시켰을 때쯤.
“아앗! 이게 대체 무슨!”
“꺄아아아악!”
성안에 있던 수녀들이 튀어나와서 싸움을 멈추려는 듯이 우리를 떼어놓았다.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그리 자리에서 일어나니.
“큭, 이, 이게 대체 무슨…! 내가 누군 줄 알고…!”
켈스론 역시 수행원의 도움을 받고 일어섰다. 지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것도 모자라 코피까지 흘리고 있는 중이다. 놈은 진짜 아주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열연을 펼쳤다. 배우 해도 되겠어. 저거.
“켈스론 자작. 예의를 지켜야 할 것은 당신이오. 더 쓴맛을 보고 싶지 않다면 얌전히 들어오시오.”
아무튼 이야기는 해야 한다.
이제 들여보내 주자.
처맞은 마당에 무리한 요구는 못 하겠지.
“쳇! 두고 보겠다!”
“이 새끼가?”
“뭐, 뭐!”
“…”
잠시 켈스론을 노려봤지만, 녀석은 위축된 기색 없이 당당하게 내성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녀석이다. 역시 귀족은 귀족이라는 건가.
“안내하지.”
바로 그의 옆으로 따라붙어서 길을 안내했다. 지금 응접실에서 성녀님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보자고.
지금 생각한 건데, 사이딘 백작이 정말로 우리를 집어삼킬 생각이라면 협상 자체가 필요 없을 것이다… 어렵구나. 정치라는 것이. 강대국 사이에 낀 소국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회오리치는 중이다.
“제길, 제길…! 내가 이딴 꼴을 당하다니! 이 내가 친히 변방까지 와줬는데 이런 대접을 해…!”
걸어가는 내내 켈스론 자작이 투덜댔다.
“먼저 시비를 건 것은 그쪽이었소, 켈스론 자작. 추하게 투덜거리지 마시오.”
지들이 투덜거려봤자 어쩌겠어? 백작은 중앙에서 천사들과 박터지게 싸우는 중이고, 변방까지 군대를 보내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여기선 내가 강하게 나가도 괜찮다.
“하! 이건 네 주인과 이야기할 것이다! 과연 그때도 그렇게 건방지게 굴 수 있는지 보자고!”
그런데 네 주인이라.
내가 성녀의 주인인데.
이 녀석이 대체 뭘 요구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협상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
왜냐하면 녀석이 웃고 있었거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