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 world demon king's survival story RAW novel - Chapter (294)
〈 294화 〉 정치란 게 뭐냐 x 2
* * *
그렇게 나는 켈스론 자작과 함께 성녀님이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까지 올라갔다.
거기까지 가는 내내 자작은 아주 그냥 심통이 난 얼굴이었다.
이 새끼…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행동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성격이 이래 처먹은 건지 분간하기가 힘들다. 근데 이게 진짜로 연기라면 놈은 제법 유능한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ㅡ똑똑.
응접실의 문을 두들기자.
“들어오거라.”
입장 허가가 떨어졌다. 나는 문을 열고 켈스론 자작과 함께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반갑구나. 사이딘 백작의 사자여.”
말 그대로 외교 모드다. 단아한 모습을 연출한 성녀님이 무릎 위에 손을 모은 채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켈스론 자작이라고 하오. 반갑소. 성녀.”
놈은 성녀의 모습에 잠시 압도되었는지 흠칫했지만, 이내 맞은편으로 가서 무겁게 앉았다.
확실히 성녀님이 외교 모드로 들어가면 무섭긴 해.
“이미 알고 있겠지만… 사이딘 백작께서는 성녀 그대와의 대화를 원하시고 있소. 그래서 그 사자로서 내가 온 것이오.”
“그렇느냐?”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취급이란 말이오!”
ㅡ처억!
켈스론 자작이 내게 삿대질을 시전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볼을 부여잡으면서 소리쳤다.
“성녀께선 부하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여기서 나한테 지랄이로군.
“이 야만스러운 작자가 날 폭행했소! 사자로 온 내게 감히 이따위 행패를 부리다니…! 백작님께서 분노하실 거요!”
성녀님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켈스론 자직이 대뜸 절 보면서 고개를 조아리라며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사로서 주군 외의 존재에게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고 하니 자작이 절 공격하기 위해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혼내줬지요.”
그 말에 성녀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공격이라니! 나는 그저 널 꾸짖기 위해 손을 들었을 뿐이다! 공격할 의도는 없었지!”
이 새끼가 개소리를 해?
일단은 이야기를 더 들어주도록 하자.
뭐가 됐든 놈의 의도와 백작의 뜻을 알긴 해야 하니까.
“그것을 오해하고 날 폭행한 것은 네 잘못이다! 야만기사! 아무튼 성녀! 이 값을 치러야 할 것이오!”
“호오? 이 성녀를 협박하는 건가? 켈스론 자작?”
“협박이라니 당치도 않소! 당연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오! 바른말을 하는 게 협박일 수는 없지 않소?”
살더미 골렘 같은 녀석이 혀는 참 잘 굴린다. 그래. 그러니까 자작이라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거겠지.
뭐가 됐든 귀족들에겐 전부 특기 같은 게 있다고 봐도 좋다. 어딘가 특출한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귀족이 된 것이니까.
“먼저 나의 기사를 모욕한 것은 그대가 아닌가? 켈스론 자작.”
“예의에 대해서 말한 것이 모욕이라니? 가면 갈수록 이상한 말만 듣게 되는 것 같소? 성녀. 내 상식이 틀린 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은 몹시 이상하오.”
“나의 기사에게 고개를 조아리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건 당연한 일이오. 백작의 사자인 당연히 표해야 할 예지.”
“후후후, 그렇느냐?”
“흠.”
성녀가 나긋나긋하게 웃자 순간 자작이 몸을 움찔거렸다.
ㅡ꿈틀.
순간, 나는 몹시 불쾌한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 켈스론 자작이 욕정을 내비친 것이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흥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몹시 불쾌했지만, 이것도 인큐버스의 능력이다.
켈스론은 지금 내 성녀님에게 성욕을 느끼고 있었다. 이거 용서할 수가 없군.
“그리 따지면 자작은 왜 이 성녀의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느냐?”
“백작의 사자인 내가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 것이오.”
이 새끼 말하는 거 존나 뻔뻔하네.
죽이고 싶다.
“아무튼 이 일에 대한 것은… 경우에 따라 넘어갈 수도 있소. 큰일을 하러 왔는데 감정 따위는 사소한 것이니까. 그렇지 않소?”
놈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큰일이라. 확실히 큰일 앞에 감정은 사소하겠지.”
성녀님은 아까부터 일체의 표정 변화 없이 켈스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소. 말이 통하시니 참으로 편한 것 같소. 현재 우리들 반천사파의 귀족들은 중앙을 점거한… 그 사악한 천사들과 전쟁을 하고 있소. 그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오.”
비극은 비극이지.
“우리들은 천사들로부터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있고, 봉사를 하고 있는 중이오. 당장 그런 상황에서 내가 여기까지는 온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이 가시오? 천사들의 추적을 따돌리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소. 나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것이오.”
녀석은 여기까지 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엄청 큰 희생을 했다고 티를 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오. 헌데, 성녀께서는.”
“흐음?”
“이토록 중요한 일이 산재해 있고, 수많은 정의로운 귀족들이 천사들에게 저항을 하고 있는데. 지금 이 변방 땅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중이오. 그래서 사이딘 백작께서는… 성녀 그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시고 있으시오.”
ㅡ처억.
켈스론이 팔짱을 꼈다.
“지금 성녀는 의무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소. 이 중요한 순간에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있단 말이오. 백작께서는 당장 반천사파에 합류하길 원하시오. 병력이 분산되었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으니까. 힘을 합쳐야 하오.”
결론은 그거였다. 귀족답게 여러 가지 뱅뱅 돌려 말하긴 했지만, 성녀가 백작의 밑으로 들어오길 원한다는 것.
켈스론은 이 말을 하러 온 것이다. 그래서 좆같은 태도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사이딘 쪽이 갑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해?
“대답을 들려주시오, 성녀.”
“물론 찬성이니라.”
일단 그것 자체는 찬성이지.
다 합의된 이야기다.
천사들과는 싸워야 한다.
“오오,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천사들과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정식으로 동맹 요청을 하거라. 이 건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합의가 필요할 것이니.”
“그럴 필요 없소. 가져왔으니까.”
ㅡ촤륵.
켈스론이 문서를 내밀었다. 성녀님이 그것을 받아들고는 쭉 읽어 내려갔다.
“흐음, 남작령을 백작에게 바치고, 이 나는 백작령에 있는 수녀원으로 가서 활동을 하라?”
“이 남작령은 천사들을 압박할 수 있는 주요한 거점이 될 것이오. 당연히 사이딘 백작님께 내어주고, 성녀님께서는 백작님의 영지로 가서 인류를 통합하기 위한 활동을 해주시오. 그리하면 천사들을 몰아내고, 여신교를 재건할 수 있을 것이오. 그뿐만이 아니라 천사들로부터 인류를 구원할 수 있겠지.”
이거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새끼였다.
이딴 제안을 이렇게 뻔뻔하게 해오다니. 이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협상을 어디서부터 진행해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로군.
물론 백작 측에서는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우린 아직 약하니까. 지금 강하게 나가서 잡아먹어야지.
“그것은 성녀 그대도 원하는 것이 아니오? 사이딘 백작님과 동맹을 채결 한다면, 여신교의 교황이 될 수 있을 것이오.”
“흐음.”
“추가로 혼담에 대한 이야기도 진행할까 하는데… 사이딘 백작님의 적자께서 성녀 그대를 흠모하고 계시는 중이오. 그러니 혼인 동맹을…”
내 성녀랑 혼담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놈들은 내 여자를 노리고 있다.
인큐버스로서 억누르기 힘든 분노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이 새끼들 이거 도저히 같이 지낼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일단 적으로 상정해야겠군.
“아니, 되었다.”
“뭐라?”
“협상을 다시 진행하지.”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오? 성녀! 지금은 천사들과 전쟁을 하는 중이오! 개인의 욕심으로 큰일을 그르칠 생각이오!”
개인의 욕심 이 지랄.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폭력 충동이 휘몰아친다. 시팔. 역시 등 뒤에 강한 빽이 있으니까 이렇게 굴 수가 있는 것이다. 역시 귀족의 세계는 양육강식이로군.
“이 성녀에게도 다 생각이 있느니라. 협상은 다시 할 것이고, 이쪽의 요구사항을 정리해 줄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하지만 우리 성녀님께서는 아주 당당하셨다.
“흐음… 기다란다라. 뭐, 어쩔 수 없겠군. 기다리도록 하겠소.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겠소이다.”
의외로 켈스론 자작이 별다른 반발 없이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런데 성녀. 하고 싶은 말이 있소만.”
“무엇이더냐.”
ㅡ씨익.
순간 녀석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몬스터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흐음?”
아니.
여기서 몬스터 이야기를?
“그에 대해서 할 말은 없소?”
“무언가 문제라도 있느냐?”
“많지. 아주 많소. 마녀로 몰린 성녀가 몬스터들을 부리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오?”
켈스론 남작의 말투가 변했다. 방금까지는 그래도 귀족적이었지만, 이제는 아주 그냥 거만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말투다.
“백작께선 성녀님이 사악한 사술에 빠졌다고 의심하고 있소. 그런데 정말로 몬스터를 부리다니… 이거 아무래도 조사가 필요할 것 같구려? 다크엘프들과 동맹이라니. 몹시 수상하오.”
켈스론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니꼽다는 듯이 말했다.
“딱히 수상한 일은 아니니라. 천사들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느냐? 미개척 지대에서 살고 있던 다크엘프들 역시 천사들의 행패에 분노를 느꼈느니라. 그래서 천사들을 몰아내고자 이 성녀에게 합류한 것이지.”
“다크엘프들은 수상한 종족이오. 믿을 수 없소. 하물며 몬스터를 부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몬스터들을 전쟁에 써먹는다면 좋을 것 같지 않느냐? 쓸만한 생각 같은데?”
“그래도 그것은 이상하오. 나는 이 일에 대한 것을 사이딘 백작께 상세히 보고할 생각이오.”
“뭐, 그리하거라. 백작도 머리가 있다면 고개를 끄덕일 테니까.”
“…”
그때였다.
켈스론 남작이 턱을 쓸면서 욕정을 폭발시킨 것은.
“뭐, 그건 그리 알면 되겠고. 성녀.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는데.”
“무엇이더냐?”
“천사.”
천사?
“성녀를 따르는 천사들이 여럿 있다고 들었소. 아주 반가운 일 아니오? 전향자라니. 큰 도움이 될 것이오.”
“아아, 물론이니라. 그녀들은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느니라.”
“그 천사들을 만나보고 싶소.”
“뭐라?”
천사를 만나?
ㅡ…
켈스론의 눈이 욕정으로 불타올랐다.
“마찬가지로, 백작께서도 그 전향자들을 원하고 있는 중이오. 천사들 몇을… 사자로 보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천사를 백작령으로 보내달란 말이더냐?”
“물론이오. 전향한 천사들이 있다면 이 전쟁을 보다 수월하게 이끌 수 있을 테니까.”
“그렇느냐?”
성녀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래. 당연히 천사를 원하겠지. 전향자인 천사들에게는 정보도 있고, 프로파간다로 써먹을 가치도 있으니까.
“그런 것이오. 그래서 사자로 갈 천사들을 직접 고르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런 적이 처음인 만큼, 이 내가 직접 심문을 해보고 싶소.”
남자의 욕정이 보인다는 것은 참 좆같은 일이로구나.
켈스론은 심문이 아니라 다른 것을 원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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