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137)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137)화(138/674)
Chapter 137 – 불청객 – 4
기적이라는 녀석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을 적립금 삼아 한 번에 보답해주기도 한다.
오늘이 그랬다.
“으응?”
화린이는 무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듯 보였다.
“너. 얼굴이 낫고 있어.”
“너는 지금 이 상황에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데.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 못 믿는 건가. 화린이는 마치 숨긴 자기 선물을 빨리 내놓으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추궁하듯 말했다.
“진짜로. 너. 피부의 얼룩이 사라지고 있다고.”
조명에 강조된 화린이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본 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작은 부위였지만, 원래는 변색된 얼룩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분명 깨끗한 피부가 보였다.
“아무리 너라도 얼굴 가지고 장난하는 건 가만 안 둬.”
화린이는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은은한 노기를 띠며 나를 노려보았다.
“넌 내가 그런 걸로 장난할 사람으로 보이냐. 기다려봐.”
손거울이 어디 있더라. 나는 급히 손거울이 있는 서랍을 뒤적거렸다.
“저, 정말이라고?”
화린이는 믿기지 않는 어투로 나에게 말했다.
“여기 손거울. 확인해봐.”
화린이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내민 손거울을 받아 유심히 자기 얼굴을 바라보았다.
“……. 달라진 거 없는 거 같은데.”
“낫고 있다니까. 자. 봐봐.”
이런 건 매일 무심히 거울 보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변화를 주시하던 사람이 더 빨리 눈치채는 법이다.
나는 화린이의 뒤로 가서 같이 거울을 보며, 그녀의 얼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달라진 점을 하나하나 콕콕 찍어주었다.
“여기는 얼룩이 줄어들었고, 여기는 사라졌고…….”
얼룩이 줄어든 곳, 사라진 곳. 눈에 띄게 치유된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차도를 보이는 부위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지적했다.
내가 지적하자 화린이도 그제야 눈치챘는지, 불신에 쌓인 눈빛에서 경악에 찬 눈빛으로 바뀌었다.
“얼굴은 아직 미묘하지만 상반신 쪽은 확실히 깨끗한 피부가 많이 보이더라.”
화린이의 나신을 본 적은 없지만, 당화린은 상반신 쪽도 얼굴과 상태가 비슷하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방금 화린이가 보여준 쇄골쪽 피부는 깨끗한 피부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정말?”
화린이는 화들짝 놀라 앞섶을 다시 풀어헤치고는 자기 위 가슴 쪽을 바라보았다. 뒤에 나 있는데 신경도 안 쓰냐.
오우.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뒤에서 보니까 더 절경이네. 아까는 그랜드 캐니언이었는데 뒤에서 보니 히말라야산맥이다.
“여기랑 여기. 여기도 깨끗한 피부네.”
나는 손가락으로 화린이의 새하얀 피부를 꾸욱 눌러서 탄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며, 얼룩이 없어진 부위를 가리켰다.
“저, 정말 얼룩이…….”
화린이의 목소리가 격하게 떨렸다.
“응. 사라지고 있어.”
“나……. 나 낫고 있어? 낫고 있는 거야?”
화린이의 어깨가 떨렸다. 목소리에서 조금만 건드리기만 하면 그대로 쏟아질 것 같은 물기가 느껴졌다.
“응. 화린아.”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흑! 흐윽…….”
그녀는 결국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수건이 근처에 있나.
“예쁜 얼굴이 될 얼굴인데 왜 울고 그래. ……억!”
내가 수건을 찾으려고 화린이에게서 조금 떨어지자, 화린이는 몸을 돌려 그대로 나를 덮치듯 껴안았다.
“흐으윽. 나. 나. 치료되고 있어.”
화린이는 눈물을 내 옷에 문대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나는 화린이를 토닥여 주었다.
“나 믿어보길 잘했지?”
“어엉어, 으으응! 흐으윽.”
잘했다는 거겠지?
화린이의 대성통곡은 오래 지속되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희망없이 고통에 몸부림치던 소녀가 드디어 희망을 얻은 것이다. 희망에 찬 울음은 아무리 울어도 길지 않다.
나는 화린이의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그녀를 토닥여 주었다.
“너……. 정말 아까 그 말 하려던 거 맞아?”
화린이는 감정이 진정되자, 빼꼼 고개를 들어 올려 무언가 미심쩍은 시선으로 나에게 물었다.
감정이 진정되었으면 이만 떨어지지. 나는 가슴 느낌이 너무 좋아서 떨어지기 힘들다고.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씨이. 아닌데. 분명히 아니었는데.”
화린이는 무엇이 못마땅한지 내 눈을 바라보았다. 뭐? 찔리는 거 하나 없어. 내 청명한 눈을 봐.
“뭐가.”
“됐어. 시발. 너는. 진짜. 좋은데. 싫다. 지랄 진짜. ”
“뭐라는 거야?”
힘들게 위로해준 사람에게 이러기냐.
“쿠쿡. 됐어.”
화린이는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 웃고는, 내 몸을 살며시 밀면서 떨어졌다.
“야.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털 나.”
“그건 또 뭔 소리야.”
“조선 속담인데. 급격한 감정변화는 안 좋은 일이니까. 벌로 미관상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야. 그럼 내 엉덩이에 털 나라는 거야 지금?”
“그런 뜻은 아니고. 하하.”
그런 취향은 없어.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실수했다는 것을 알렸다.
“으유! 으유! 넌 지랄이야 진짜!”
화린이는 주먹으로 그런 내 가슴을 콩콩 두들기며 언제 울었는지 모를 정도의 얼굴이 되었다.
———–
“정말 사라지는구나.”
화린이가 엉망이 된 얼굴을 정리한다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내 침대에 걸터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천자.
내가 이 세계에 와서 뒤늦게 알게 된 나의 능력으로 히로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무협 세계에 빙의했으면 무공 재능이나 줄 것이지, 무협 미연시 세계라고 히로인 공략 능력을 받을 줄이야. 이 세계답다고 해야 하나.
‘명성치 상승으로 가시적인 효과가 보이니까 놀랍네.’
기존에는 디버프 해제 능력 정도밖에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치료 효과를 볼 줄이야.
정말로 엄청난 희소식이다. 화린이의 피부 치료에 필요한 명성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최소 수치를 넘겼다는 뜻이니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계속 유명해져야 한다.
이대로 계속 일이 수월하게 흐른다면, 화린이가 그토록 바라던 깨끗한 얼굴, 남들과 같은 피부를 얻게 될 수 있다.
거기에 내가 계속 유명해진다면…….
‘천살성의 운명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순간, 머릿속에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을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표정한 얼굴. 감정이 메말라버린 것 같은 소녀. 그러나 알고 보면 그 누구보다 감정이 풍부하고 가슴에 아픈 상처가 있는 여인.
一 또 봐. 윤호 오빠.
‘소희야. 넌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니.’
아직도 마지막 날 밤의 그녀가 생생하다. 언제가 다시 만나자고 헤어진 그녀가 생생하다.
내가 그녀의 운명을 구할 수 있을까.
“무슨 생각해?”
화린이는 세수하고 왔는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나에게 물었다.
“뭐. 그냥 여러 생각.”
나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는 화린이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화린이는 그런 나를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 친구 생각……한 거야?”
내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는 질문이라 조심하는 걸까. 화린이의 목소리에서 미묘한 망설임이 느껴졌다.
“응. 그냥. 그 약을 친구가 먹을 수 있었으면 회복되었을까. 아니면 부족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
사실은 다른 독인이 아니라 천살성이지만. 나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그녀에게 답한 후에 화린이의 피부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해서 화린이는 독인이 아니다.
원작의 당화린은 당거호의 꾐에 빠져 준비된 극독을 먹고 불완전한 독인이 되어버린다.
그녀의 몸은 독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신체는 온전치 못했다. 뭉개진 피부. 항시 덮쳐오는 고통에 몸부림 쳐야 했고, 신체의 독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해 몸에서 독분(毒粉)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유일하게 믿었던 당거호에게 배신당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세상을 저주하며 악인이 되어버린다.
세상은 그녀를 욕하고 멸시하기 위해 하나의 별호를 붙인다. 나비가 가루를 흘리고 다니듯 독가루를 흘리고 다니는 독인.
독접(毒蝶) 당화린.
그것이 그녀의 멸칭이자 별호인 이유였다.
그녀는 그러나 이 세계에선 몸에 독단을 형성하지 않았다. 독인이 아닌 독인 실험체. 그 부작용으로 아픈 환자에 불과하다.
화린이의 증상이 차도를 보이는 것과 별이 내린 운명을 극복하는 것은 분명 차원이 다른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이제 한걸음 내디뎠다.
글쟁이로서도. 역천자로서도. 갈 길은 아직 멀다. 그러나 지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걸어갈 것이다.
소희야. 오빠는 약속한 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단다. 내가 언젠가 아니, 기필코 너의 운명을 구했으면 좋겠구나.
“야. 윤호.”
화린이의 뾰족한 말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응? 왜.”
화린이를 주시하니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짝 화난 표정. 장례식이 아니라 축제가 벌어진 날인데 왜 그래.
“별거 아냐. 그냥 불러봤어.”
화린이는 너에게 할 말은 있는데 내가 참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할 말 있구만. 뭐길래 그래.……이런.”
내 침대에 일어나려는데 순간, 중심을 잃고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알콜 기운이 다시 돌아왔나.
“그냥. 자.”
“이야기는 듣고 자야지.”
“너 혹시. 나 치료되면 떠……. 아냐. 아무것도 아냐.”
화린이는 무언가 큰 말실수를 한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응?”
“그냥 치료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하는데, 딴생각하는 거 같아서 그랬어.”
그런 거였냐. 확실히 화린이 입장에서는 떠나갈 듯 기쁜 일인데, 옆에서 땅 파고 있으면 기분이 안 좋을 수 있겠지.
“그래. 미안하다.”
“그런 걸로 왜 미안해? 내가 지랄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얌전히 자.”
화린이는 내 사과에 바로 즉답하고는 내 베개를 가져와 머리에 베주었다.
“그래. 아무튼 미안하다. 그리고 축하해.”
“응……. 고마워.”
기뻐서 웃는 표정인데 왜 슬픈 느낌이지.
나는 화린이의 표정을 보고 조금 의아해했지만, 몸에 노곤하게 퍼지는 알콜 기운과 피로를 거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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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화린은 강윤호의 숨소리가 일정해질 때까지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는 강윤호가 깊은 잠에 빠져들자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당화린은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본 후에 강윤호가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중얼거렸다.
“약……. 버릴까.”
당화린의 손에 쥔 것은 강윤호에게 받아 꾸준히 먹던 가짜 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