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145)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145)화(146/674)
Chapter 145 – 위기의 다서각 – 5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에는 내 책임도 있다.
사천당가에서 당가풍운에 대해 걸고넘어지려고 할 때 준비한 방책. 그 방책이 사고를 터트린 거니까.
화린이는 고맙게도 사천당가에서 당가풍운을 걸고넘어지면,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으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상황까지 가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화린이를 방패막이로 삼는 상황을 막기 위해 생각하고 있던 다른 방책을 사용했다.
하나는 주인공 당정을 협의지사로 만들고 어쩔 수 없게 운우지락을 나누는 정통 떡협지다운 상황이고, 다른 하나는.
‘불망환을 사용하는 거였지.’
천소희의 암살 임무를 따라 성가장으로 가던 길. 우리보다 먼저 산적을 만나 죽은 남자. 그 남자가 소중히 가지고 있던 불망환.
불망환은 원작에서 당화린이 끼고 있던 것이기에, 처음에는 당화린의 불망환이 우연히 내 손에 입수된 줄 알았다.
一 불망환? 그건 왜?
一 사천당가 사람은 다 가지고 다닌다길래. 너는 안 가지고 있잖아. 그냥 궁금해서.
화린이와 여행하던 길. 나는 은근슬쩍 화린이는 왜 불망환을 끼고 다니지 않는지 물어보았다.
一 아니거든. 그거 직계 혈족만 들고 다녀. 뭐……. 당거호 그 새끼가 내 무공 실력이 일취월장하면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그 증표로 불망환을 준다고 말하긴 했었는데, 거짓말이었겠지.
원작에서는 그런 식으로 불망환을 얻은 거였구나.
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네.
一 너는 그런데 어떻게 불망환을 가지고 있는 거야? 아……. 맞다.
화린이는 자기가 묻고, 자기가 깨닫고는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알아서 오해해주니 좋네. 그래. 네 생각대로 내 독인 친구가 줬다고 생각해라.
결국, 무기명 불망환은 화린이의 손에 들어가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럼 그것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해답은 남자가 사천까지 가지고 가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책에 있었다. 피가 절어 엉망으로 훼손되어버린 책. 원래라면 읽을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一 5호 살수가 책 복원을 할 시간이 없다며 따로 기술자를 불렀는데 벌써 떠나셨군요. 혹시 책을 가지고 계시면 복원해드리겠습니다.
소희야. 떠날 때조차 작은 약속 하나 책임지고 지키는 모습. 이 오빠는 감동이란다. 나는 소희 덕에 살막의 안가에서 복원된 책의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일기였어. 조선 출신 기녀 향아의 일기.’
저자는 장차 호북제일기녀가 될 최고의 유망주로 아직 첫날밤을 치르지 않아, 뭇 남성들에게 최고로 관심을 받던 향아라는 여인이었다.
대발(戴髮). 누가 저 기녀의 첫날밤을 사서 머리를 올려줄 것인가.
적당히 예쁜 기녀조차 첫날밤을 사려면 기와집 한 채 값을 내야 한다. 그렇다면 호북제일기녀가 될 저 여인은 얼마란 말인가.
호사가들의 입에 가격이 오르내렸지만, 예측과는 다르게 향아의 머리를 올리는 값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협의 성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一 당……추(唐追)라고 하오.
극적으로 만나 서로에게 한눈에 반한 두 남녀. 비록 남자의 이름이 가명이긴 했으나 사랑에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불같이 사랑했고 처음을 나누었다. 기루에서는 노발대발 화를 냈지만, 남자는 대발 값을 내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一 내 여인의 처음을 어찌 돈으로 산단 말이오. 그럴 바엔 내 여인의 운명을 구하겠소.
오히려 더 큰 돈을 지불하여 그녀를 기적에서 빼버렸다. 첫날밤을 사는 것도 엄청 큰돈인데 기녀 신분에서 구해주려면 얼마나 큰 돈을 내야 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위기에서 구해준 왕자님. 처음을 나눈 남자. 심지어 저주받은 운명에서 구해주기까지. 여인이 남자에게 빠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불같은 사랑을 나누었고 결국 애가 들어서 버렸다.
一 지금은 임무가 급해 떠나지만, 다시 돌아오면 널 데려가 정식으로 가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
당추(唐追)라는 이름은 임무를 위한 가명. 그는 향아에게 이름이 적히지 않은 불망환을 내밀고는 떠나갔다. 그리고 그것이 향아가 본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대놓고 버림받았네.”
향아가 사천당가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달 뒤 정인의 일행이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어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당하고 정인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오갈 데 없는 신세. 부풀어 오르는 배. 절망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고향인 조선행이었다.
“이 세상에서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지.”
기녀가 사생아를 낳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 중 하나였다.
관리가 지방에 발령받아 기녀와 정분이 나서 아이를 만든다든가, 선비가 유람 중에 기녀와 노닥거리다가 애가 들어선다든가, 무림인이 기녀를 구해주고 임신시키는 그런 일들.
이런 경우, 기녀는 운이 좋으면 첩실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버려진다.
내가 읽은 일기는 그런 흔한 일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때 죽은 남자. 향아의 아들이었구나.”
향아는 조선에서 재가(再嫁)했지만, 역병에 걸려 일찍 죽고 만다.
죽어가던 그녀는 일기의 말미에 힘이 없는 글씨로 아들에게 살아남아 장성하면, 불망환을 들고 사천당가에 가보라는 말을 썼다.
남자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장성하여 중원으로 왔지만, 결국 사천성까지 가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씁쓸한 두 사람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인생은 내게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사천당가 직계의 사생아. 내가 그 사생아의 친구였다고 하자.”
나는 당가풍운을 집필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가 화린이에게 말했던 독인 친구가 그 친구인 거로 하자.
사천당가의 직계라도 전전대 가주까지 자식, 손자까지 계산하면 꽤 많다. 우리로 치면 명절에 할아버지 댁에 모이는 친척들 중의 하나가 향아라는 여자랑 사생아를 만들었을 것이다.
“죽은 친구의 유품을 전달하기 위해 당가풍운을 썼다고 하는 거야.”
사천당가의 불망환을 가져다주면 크게 보답해준다. 무림의 상식 중의 하나였다.
사천당가가 당가풍운에 내용을 지적하기 위해 다서각에 오면 일단 눈물을 일발 장전한다.
“크흐흡! 사실 당가풍운은 친우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쓴 글입니다. 당정의 모습이 제 막역지우(莫逆之友)가 상상하던 협의지사.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여기! 불망환이 있습니다. 불망환을 가져다주면 크게 은혜를 갚아준다고 들었지만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빨리 이것을 친우 아버지에게 가져다주십시오.”
대신 당가풍운 쓴 거 봐주세요. 은근슬쩍 어필해서 용서받는 걸로 끝.
주인공 당정에 대해 크게 지적할 것도 없고, 합리적인 이유로 불망환을 전달하기만 하면 당가풍운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설마 당추가 당가주였을 줄이야.’
비사라고 하길래, 짐작 가는 건 있었지만 이해는 되지 않았다.
이 시대에 직계 중에 누군가가 사생아를 만들었으면 마누라에게 등짝 한 대 맞을 일이지, 가만히 서 있는 오랑캐 모가지를 유압프레스 짜듯이 쥐어짤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의각주 입에서 비사가 나오자,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하필 정말로 색마를 쫓던 당가주를 모델로 당정을 써버렸다. 억울하기는 한데 사천당가에서 보면 누가 비사를 썼다고 할만하겠지.
‘죽은 친구의 불망환이라고 내민다면 용서해줄까.’
원래 방책은 당가풍운으로 크게 책망받을 내용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꺼낼 수 있는 방책이었다.
사천당가의 비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一 제 죽은 친우가 사실 가주의 사생아입니다. 불망환 드릴 테니 제 손모가지 좀 봐주십시오.
一 넌 당가주님의 사생아도 아니고. 친구인지 아닌지는 불명인데, 당가의 비사를 함부로 책으로 썼다는 거지?
내가 불망환의 원주인도 아닌데 과연 불망환으로 무마할 수 있을까.
내 손목이 재보급되는 로켓 펀치라든가 재생성되는 손이라든가 기생생물이었다면 도전해볼 만한 말이었겠지만, 함부로 꺼낼 수 없는 말이었다.
결국 손목을 지키기 위해 쓸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당가주의 사생아가 된다.’
————–
“뭣?”
“뭐어엇?”
“그게 무슨!”
내 사생아 발언에 다락방에 있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그런데 화린아. 너는 왜 놀라냐. 예전에 불망환이 누구 건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잖아.
나는 의각주가 화린이의 놀란 얼굴을 보지 않도록 그와 눈을 마주쳤다.
“네, 네가 가주님의 사생아라고?”
놀랍죠? 저도 살기 위해 방금 변경한 설정이라 놀라워요. 나는 내색하지 않고 당당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초에 이상하지 않소. 어떻게 향아와 가주의 일화를 화린이가 안단 말이오.”
이 사건의 지분은 1/3은 독인이 색마인 설정을 안 써둔 제작진, 1/3은 당가풍운 보험으로 향아 일화를 쓴 호필, 1/3은 실감 나는 떡협지 요소를 많이 만들어둔 떡협지 선배님들에게 있다.
생각해보니까 강윤호 잘못은 없네. 완전 억울한걸.
“매담자라고 하지 않았더냐. 누군가에게 어디선가 가주님과 정분을 나누었던 기녀에 대해 들었겠지.”
의각주는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증거를 보여줘도 의심한다면 향아밖에 모르는 이야기를 해주지.
“추운 날이 풀리고 이제 봄꽃의 꽃망울이 맺힌 날이었소. 인적이 없던 한밤중. 내 어머니는 이제 막 부풀기 시작한 배를 안고 정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말에 그곳에 문을 두드렸지. 정인을 보고 싶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오랑캐 계집 따위가 남의 아이를 배고 찾아왔냐며 차가운 길바닥에 내팽겨질 뿐이었소. 심지어 그 말을 한 사람은 자주 보던 당가의 무사였는데 말이오.”
향아는 그날 밤 먼지투성이로 돌아와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그리고는 당가 일행이 떠난 걸 알자 조선으로 향했다.
“네 놈이 그걸 어떻게?”
“하! 내가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을 수 있었겠소.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오? 혹시 그때 막아선 무사가 당신이 아니오?”
“…….”
맞아?
의각주는 순간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럼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네놈이 내 어머니를!”
나는 분노한 얼굴로 주먹을 쥐고 동작을 크게 하여 의각주의 얼굴 쪽으로 휘둘렀다.
“공자! 진정하십시오!”
부각주가 빠르게 내 팔과 어깨를 붙잡았다.
“놔라! 이 새끼 때문에 어머니가!”
나는 놀란 눈으로 얼어붙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의각주를 향해 분노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고맙다. 부각주. 이럴 줄 알고 동작을 크게 한 건데 정말 막아주네.
“……믿을 수 없다. 네놈은 검은 머리지 않느냐.”
의각주는 놀란 표정을 정리하고는 다시 나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검은 머리 태클이 들어올 줄은 알았지.
“중원에 오니 재미있는 말이 있더군. 검은 머리에게 간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남의 여자나 탐하는 천한 오랑캐를 조심하라는 말이로군.”
역시 오랑캐 차별주의자다운 해석이십니다.
“다른 재미난 말도 있었소. 검은 머리가 마누라를 빼앗는 건 쉬워도 씨도둑질은 어렵다. 왜 그런 말이 생겨난 건지 아시오?”
“검은 머리 오랑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대부분 검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지.”
“검은 눈도 말이오.”
이쪽은 확률이 조금 떨어지지만. 실제로 향아의 아들도 검은 머리, 검은 눈이었다.
“……불망환과 그 이야기. 분명 네가 향아의 아들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그게 가주님의 아이라는 증거는 되지 않아. 오히려 내 눈엔 네 놈이 팔목을 내놓기 싫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구나.”
중년탐정 의각주님 날카로우십니다.
그래. 그게 더 합리적인 생각이지. 갑자기 상대가 위기의 순간에 내가 당가주의 사생아다. 그러면 난 네 엄마다. 받아치고 손목을 자르는 게 더 합리적이겠지.
믿기 싫을 수 있다. 솔직히 어처구니없겠지.
하지만 당가주의 사생아는 실존했다. 향아와 그 아들은 죽었다. 그리고 그 모든 정보를 나만 오롯이 먹어 치워버렸다.
“나를 믿지 않아도 좋소. 하지만 당신이 당가주에게 충성한다면 나를 모셔가야 하오.”
나는 부각주에게서 팔을 조심히 빼고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거짓말쟁이를 왜 데려간단 말이냐.”
“내가 당신들의 목적이니까.”
이번 일은 호랑이 한 마리를 형님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한번 내뱉은 이상 속여야 할 호랑이가 너무도 많아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당신들. 제갈세가에 약을 구하러 온 거 아니오. 사천당가 가주의 독자가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는데 당가에서는 도저히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까.”
나는 다서회의 회원이 사실 이거 극비 정보였다면서 알려준 소식을 대수롭지 않은 소식인 척 꺼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직접 호랑이 굴에 쳐들어가야 한다. 한 호랑이를 속이는 것만으론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호랑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호랑이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먹잇감이 약해지기를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었던 새끼 호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주의 아들이 죽을 위기인데 약이 없다. 그러면 말이요……. 내가 이제 당가주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오?”
모든 호랑이가 절을 해야 하는 새끼 호랑이.
의심한다는 것만으로도 불경한 존재.
그래. 아무도 손댈 수 없는 호랑이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