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161)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161)화(162/674)
Chapter 161 – 필연 – 5
태양이 지는 쪽을 하염없이 바라본 적이 있었다.
고열과 전신을 망치로 두들기는 것과 같은 고통. 다른 사람이 보면 전염병인 줄 아는 피부. 온종일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다가 고통이 좀 가라앉으면 주변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애비 모르는 년, 전염병 걸린 년, 고약한 년, 문둥이 년. 어떤 식으로 불렸는지 셀 수도 없었다.
고통으로 멍해진 몸을 일으켜 혐오와 멸시의 시선을 피해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피울 수도 없었다.
一 네년만, 네년만 아니었어도! 꺼져 이년아!
날아오는 술병을 피하는 것은 익숙했다.
엄마는 나에게 왜 저러는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걸까. 혹시 계속 다가가면 사랑해주지 않을까. 돌아봐 주지 않을까.
어릴 적 헛된 바람이었다.
강간당해 낳은 아이. 그 아이로 인해 막혀버린 혼삿길. 망가져 버린 인생. 뒤에서 아이 때문에 들려오는 험담.
그녀는 어머니였지만, 제대로 된 인격자는 아니었기에 모든 원한을 자신에게 돌렸을 것이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이유지만, 이유 따윈 모르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차라리 이유도 모른 채 살았다면, 오늘 자신 때문에 죽지 않았다면, 평생 미워하기만 했을 텐데.
어머니에 관한 생각이 가슴을 오목하게 눌렀다.
어머니조차 사랑해주지 않는 어린 시절. 나는 결국 하염없이 태양이 지는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느 때. 어느 날에.
一 하하. 기다리고 있었느냐.
당거호 아저씨가 올 줄 몰랐으니까.
一 내가 사천에서 재미있는 장난감을 사 왔단다.
一 무엇이 먹고 싶니. 내가 무엇이든 사 와주마.
대흥현 서쪽. 사천성에서 석양을 등지고 온 당거호 아저씨는 나의 어린 날에 유일한 한 줄기 빛이었다.
아버지 같다. 혹시 진짜 아빠가 아닐까. 헛된 상상을 했을 만큼 그의 존재는 어린 날의 버팀목이었다.
一 다음에도 또 오마. 대신 준 약은 매일 먹어야 한다.
당거호는 다정한 미소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항상 재회를 약속하고 떠나갔다.
그가 가르쳐준 무공은 힘들었고, 그가 먹으라는 약은 썼다. 그러나 먹지 않으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매일같이 그 약을 먹었다.
그 약이 모든 고통의 원인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당화린……!”
항상 재회를 약속하던 남자가 지금 눈앞에 있다. 여명이 다 밝아온 아침. 1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내 앞에 서 있다.
견딜 수 없는 시련을 버텨주게 한 빛이 아니라 모든 일의 배후로서.
추한 남자는 빛이 두려운 듯 가장 어두운 그늘 사이로 도망치려다 나에게 제지당했다.
이 감정이 무엇일까. 배신감, 원한, 분노, 어떤 한 감정으로 이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오늘 서로에게 얽힌 매듭을 풀어낼 것이다.
***************
“살려다오.”
당거호는 타들어 간 팔에 박힌 비도를 뽑아내며 당화린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내가 10여 년 전에 그 말을 했을 땐 무슨 생각을 했어?”
아저씨 살려주세요. 저 좀 치료해주세요. 너무 아파요. 당화린이 어린 시절 고통에 시달리며 당거호에게 했던 말들. 당화린은 울분 섞인 목소리로 당거호에게 말했다.
“너에게 백번 사죄해도 모자란 것은 알고 있다. 대의를 위해서였다고 하나 어린 너에게 끔찍한 실험을 했으니까. 그러나 나라고 어린 너를 바라보며 내가 설마 가슴이 아프지 않았겠느냐.”
당거호는 고개를 숙인 채 가슴을 부여잡으며 자신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던 척 표정을 지었다.
“…….”
당화린은 그 모습에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연기가 통한 걸까. 당거호는 10여 년 전 그 시절, 어린 당화린을 바라보면서 지었던 다정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했단다. 네가 아프더라도 항상 죽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단다. 견딜 수 있는 시련만을 주었지. 그래서 네가 지금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하지 않았느냐.”
남자는 언뜻 옳은 말처럼 생각될 수 있는 감언이설로 당화린에게 말했다.
“지랄. 네가 죽인 다른 사생아들은 자식처럼 생각 안 했나 봐?”
허나, 감언이설에 속을 당화린이 아니었다.
“……칫.”
당화린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가면이 벗겨진 남자에겐 추한 욕망만이 번들거릴 뿐이었다.
“병신.”
당화린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당거호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10여 년 전에 해가 지는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아이였다면 못내 속아줬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이 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거호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건, 한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인생의 가장 어두운 암흑 속에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굴러떨어진 자신에게 손을 뻗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저기 굴러다니는 시체 중의 하나가 자신이 되었을 것이다.
당화린은 손에 독기를 맺은 채 묶인 매듭을 풀기 위해 당거호의 눈앞에 섰다.
당거호는 죽음을 직감했는지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에게 너는 그 아이들과 달랐다! 너에게는 특별했단 말이다! 너의 인생에 내가 추억을 남겨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느냐? 어릴 때 인형을 사 오고 당과를 먹이던 나를! 당화린 네가 아버지처럼 여기던 나를! 네가 죽일 셈이냐?”
당화린의 손이 남자의 간청에 일순간 멈췄다.
당화린이 남자의 말에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소중했던 어린 시절 추억 하나하나가, 추악한 남자의 음모였다는 사실이 슬퍼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감상에 젖었을 뿐 결과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당거호는 그러나 그 약간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죽어랏!”
당거호는 품에서 통 하나를 꺼내 당화린에게 내밀었다.
뚜껑이 터져나가며 발출되는 세 개의 암기. 당화린은 물러나 피하려고 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세 개의 암기는 모두 당화린의 팔뚝에 박혀 들어갔다.
암기의 위력은 충분치 않아 당화린의 살거죽만 뚫고 큰 상처를 내진 못했지만, 암기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암기에 들어있던 독이 순식간에 당화린의 팔을 타고 들어갔다.
독인에게 독을 사용하다니. 당화린은 팔에 박힌 암기를 대수롭지 않게 뽑아내며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당거호를 바라보았다.
“이딴 게 통할 것 같아? 독인에게 독이라니 병ㅅ……. 어?”
당화린의 몸이 휘청거렸다.
“하하하하!”
“무, 무슨 짓을?”
“네년에게 독은 통하지 않겠지! 그러나 천년오공의 독은 다를 터! 네년이 간신히 독단을 안정화했다고 하더라도, 네년이 먹은 독의 2배에 달하는 쳔년오공의 독을 제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가진 천년오공의 독을 전부 다 털어 넣었다. 무림의 누구라도 즉사할 것이다. 당거호는 승리를 확신했다.
“으으윽!”
당거호의 예상대로, 당화린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네년의 시신이라도 가져가겠다! 해부해서 네년의 내장 한 조각, 피 한 방울까지 모조리 연구해서! 새로운 독인을 만들어주지!”
제아무리 독인이 되었다고는 하나 제어할 수 있는 독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곧 정신을 잃을 것이고 고열에 시달리겠지. 버티면 좋겠지만 버티지 못할 것이다.
당거호는 희열을 참으며 그녀가 쓰러지길 기다렸다.
“아아…….”
당화린은 그대로 눈을 감고 쓰러졌다.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마지막에 서 있는 자가 승리자다. 당거호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는 쓰러진 당화린에게 다가갔다.
“컥!”
당화린이 일어나 당거호의 목덜미를 잡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즐거웠어?”
당화린은 자신의 연기에 속아 당황하는 남자를 보며, 역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당거호. 너는 최후의 최후까지 쓰레기 같은 새끼구나.”
“어, 어떻게? 신체가 절대 버티지 못할 텐데?”
당거호는 놀란 눈으로 당화린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설계한 몸은 절대 그 독기를 버티지 못한다. 방금 독인이 된 것은 우연이었지만, 이번엔 불가능하다.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사람 덕에 가능해.”
“그게 무슨?”
“몰라도 돼.”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당거호가 1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당화린의 몸에 축적시켜놨던 독. 그 모든 독이 당거호의 몸속으로 쏟아졌다.
발열, 호흡곤란, 피부 발진, 간지러움, 근육통, 골수가 저리는 통증, 당화린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고통을 당거호는 짧은 순간에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아파? 그게 내가 겪었던 고통이야.”
“사, 살려……. 당가에 도움이…….”
당거호가 살아있으면 당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잃어버린 무공을 당가에 돌려줄 수도, 독인을 양성할 수도 있을 수 있다.
“어쩌라고.”
당화린은 코웃음을 쳤다. 독인 실험은 자신으로 끝나야 한다.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 수 없다. 환부를 도려내듯, 고름을 짜내듯 이제 모든 고통의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내가 너를……. 만들었……거늘.”
당화린은 힘겹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당거호를 향해 분노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인제 그만 내 인생에서 꺼져.”
당화린은 당거호의 목을 붙잡고 있던 손에 원한과 분노를 담아 가장 악독한 독을 밀어 넣었다.
“커, 커컥.”
당거호에게 최후를 안겨주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그가 먹였던 천년오공의 독을 조금만 주입했을 뿐인데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명이 끊어졌다.
당화린은 10여 년간 기다려왔던 사람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원한이 너무 깊은 탓일까. 분노가 너무 타오른 탓일까.
당화린은 감정의 재만 남은 채 고통스러웠던 인생의 근원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인생 최악의 인간이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잘한 점이 있다면,
“윤호.”
자신의 인생에 최고의 남자를 만나게 해준 것뿐.
당화린은 고개를 돌려 강윤호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윤……호?”
당화린이 바라본 곳. 강윤호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는 피 묻은 옷가지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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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
당화린은 황급히 강윤호가 쓰러져있던 마구간 자리로 달려갔다.
어디로 간 걸까. 어디로 사라진 걸까. 분명 기회가 있을 때 도망치라고 했다. 당화린은 옆에 있는 말들을 바라보았지만, 사라진 말은 없었다.
“윤호!”
몰래 도주한 걸까. 아니면 혹시 마교도에게 납치?
“강윤호!!!”
어두운 밤하늘. 바람 하나 불지 않아 불안한 배 위에서 별빛을 잃어버린 선원처럼 당화린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강윤호를 불렀다.
어디 갔단 말인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기고 있는 것을 못 봤을까. 설마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건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몸을 침범한 독기에도, 눈앞에서 번쩍이던 칼에서 주저앉고 싶지 않았던 그녀의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끝끝내 버텨온 그녀의 다리힘이 풀리려고 하자, 그녀를 향해 눈부신 일출이 비추었다.
“여기 있으니까 찾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좀 도와!”
“어?”
당화린은 빛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다 끝났으면 멍때릴 생각 말고 거들라고!”
강윤호는 저 멀리, 포박된 의각 사람들의 줄을 하나하나 풀고 있었다.
“뭐야 진짜! 괜히 사람 놀래키고 있어!”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는 평소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던 것뿐이었다.
당화린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의각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는 강윤호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화린아! 여기 부상이 너무 심각해!”
“기다려! 갈게!”
당화린은 윤호에게 가기 전 잠깐 뒤를 돌아 죽은 과거를 바라보았다.
이제 서쪽을 바라보며 무력하게 기다리던 아이는 없다.
아이는 어느새 자신을 위해 손을 내밀어주는 남자를 위해, 기꺼이 웃으며 도와주러 가는 여인이 되었다.
당화린은 고개를 돌려 과거와 결별하고는 남자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