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249)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249화(249/674)
EP.249 밤손님 – 6
“출근 하지 않은 사람 손들어봅시다! 없군요!”
밤 중에 강윤호를 찾아간 지 며칠.
임하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직원들 출근을 확인하고 있는 강윤호를 한쪽 구석에서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하하!”
“오늘도 열심히 해봅시다.”
조선 출신이라고 믿기지 않을 능숙한 중원 말투.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까.
임하연은 강윤호의 출신배경을 알게 되자, 크게 신경 쓰지 않던 그의 말투에도 새삼 감탄했다.
“점장님! 짐은 제가 2층으로 옮겨도 되는데요!”
“빨리 올라가서 업무 보세요.”
사실은 무공을 익힌 것도 흑도의 세계로 가려고 했던 흔적이 아닐까. 임하연은 한번 그의 출신을 알게 되니, 사소한 행동에도 의미부여를 했다.
“하연 소저?”
그에게 보낸 시선이 들켰을까. 임하연은 강윤호와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당신을 멋대로 오해했다. 밤이 지나고 보니, 밤중에 당신 찾아간 게 부끄럽다.
임하연은 그날 이후, 며칠째 강윤호와 단 한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하연 언니. 점장님이랑 또 싸웠어요?”
하소소가 보다 못해, 임하연에게 다가왔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점장님이 또 차갑게 굴어요?”
“그런 것도 아니에요.”
“점장님도 정말……. 언니도 문제예요. 언니도 못 이기는 척 다가가서 약한 척도 하고, 귀엽게 어리광도 부려봐요. 언니가 그러면 점장님도 살갑게 대해줄 거예요.”
임하연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하소소에게 어떤 대꾸도 못 했다.
강윤호가 자신을 좋아한다.
임하연이 얼마 전까지 확신하고 있던 사실. 그러나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임하연은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혹시 비슷한 처지라서 돌봐주었던 게 아닐까.’
자신이 그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처럼, 그도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도와줬던 게 아닐까. 어머니가 기녀라서, 자신을 조금 애틋하게 바라봐준 게 아닐까.
그와 비슷한 성장배경이라 도와주려고 했던 걸, 제멋대로 남자의 호의라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어쩌면 그의 과거에 대해 오해했던 것처럼, 그의 감정조차 오해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동정이었을지 몰라.’
임하연은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축 처졌다.
“괜찮아요. 퇴근해볼게요.”
임하연은 결국 도망치듯 다서각을 나왔다.
어느새 해가 진 하늘. 궂은 날씨에 머리를 올려보니, 어느새 빗방울이 하나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임하연은 경공으로 서둘러, 자신이 묵고 있는 객잔으로 향했다.
“이 새끼! 어디 갔어!”
“다 끝났다니까! 안에 있는 돈 될만한 거나 먼저 차지하자고!”
“무슨 일이에요?”
임하연이 평소 묵고 있던 허름한 객잔에 도착하니, 분노한 사람들이 객잔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여기 객잔 손님이오? 그럼 빨리 짐을 챙겨 나가시오!”
“네? 그게 무슨 소리죠?”
“여기 객잔 주인이 빚도 안 갚고 야반도주를 해버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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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당가에서 의창까지. 밤새 비가 쏟아지든 상관없이. 나는 길고 길었던 과업의 끝마무리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소성(小成)을 축하드립니다. 단전에 5년 치 내공을 쌓으셨군요.”
당패는 내 전신 기혈에 꽂힌 침들을 뽑아내며 기쁜 어조로 축하해주었다.
“덕분입니다. 마치 고수라도 된 듯한 기분이군요.”
나는 침으로 고슴도치가 된 등이 털갈이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주먹을 꼼지락거렸다.
단전에서 꼼지락거리는 주먹까지. 확실한 내공의 흐름이 느껴진다. 5년 치 내공이라니. 드디어 운용할 수 있는 내공이 두 배로 늘었다.
기존에는 스파이럴 부스터라면서 몇 번 급가속하거나, 회수가 안 되는 로켓 펀치를 사용하듯, 오랑캐 펀치를 외치면 끝이었는데.
내공은 단순히 두 배 늘어났어도 내공 활용은 더 폭넓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어떤 기분인지 이해합니다. 강 공자 체내에 있던 영약의 기운을 전부 갈무리했으니, 내공으로는 이제 이류 수준입니다.”
“내가 이류…….”
무공을 익힌 지 2년 만에 5년 치 내공을 쌓다니. 검은 머리 망나니가 사실 SSS급 무공 천재 스토리 한편이라도 찍어야 할 판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강윤호 체내에 잔류했던 인삼 기운을 겨우 갈무리했다.’
중원 사람들은 없어서 못 구한다는 영약인 조선 인삼을 삼계탕이니, 인삼 약과니 하면서 심심하면 먹었던 망나니 강윤호다.
소윤심상결로 절반. 당가의 의술에 도움을 받아 또 절반. 망나니 강윤호의 전신 세맥에 녹아 있던 인삼 기운을 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동네 작은 표국의 표사 취직까진 프리 패스할 것 같다.
“사실 정확히는 이류가 아닙니다.”
“이류가 아닌 겁니까?”
”무공 경지는 내공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긴 심법 빼곤 자신 있게 내세울 게 없으니까. 컴퓨터로 치면 사양도 되고 운영체제도 깔았지만, 인터넷 검색이나 지뢰 찾기나 하는 수준인 건가.
아쉽게도 표사의 꿈은 다시 접어야 할 것 같다.
“작가가 일류든 이류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제 몸 건사하고 무병장수에는 이 정도면 차고 넘치지요.”
옛날처럼 양아치나 삼류 흑도들에게 돈 털릴 위험도 없고 오히려 압도할 수 있으니까. 거기에 내가 사지로 걸어 들어갈 것도 아니고, 무병장수하는 데는 이 정도로도 충분해서 괜찮아.
물론 무협 세계에 와서 검기 같은 것도 써보고 싶지 않냐고 한다면 부정하진 못하겠지만, 그러려면 도산검림의 세계에서 칼밥 먹고 살아야 한다.
나는 붓이 칼보다 강하다는 격언을 항상 새기며, 칼밥 말고 먹물 밥 먹고 살고 싶다고.
“네 맞습니다. 저도 그래서 도와드린 거지요.”
당패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패 부각주님! 준비 끝났습니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군요.”
오늘은 당가의 무인들이 사천성으로 돌아가는 날. 당패가 방문을 여니. 당가로 돌아갈 채비가 끝난 마차들이 보였다.
다행히 밤새 내린 비는 어느새 그쳤나 보네. 당가 사람들 귀향길도 문제없겠고, 오늘 다서각 영업도 문제없겠어.
“정녕 가셔야 하는 겁니까!!!”
“우리도 의창에 남아 좀 더 당가풍운 이야기를 하고 싶소. 그러나 돌아가야 하오.”
“아직 당가의 무인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다서회 회원들이, 줄을 서면 다서각을 수십 바퀴를 돌 수 있을 텐데,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밖에는 귀향을 준비하는 당가의 무인들뿐만이 아니라, 이들과 친해진 다서회 사람들도 배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아직 너무 많거늘. 크흡! 4권이 나오면 꼭 다시 돌아오겠네!”
“흐엉어엉엉!”
“내가 진정한 정실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바로 그분일세. 자네만 알고 있게.”
“역시! 저도 사실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사천성에 가서도 다서회를 만들겠네.”
“부디 건강히 지내십시오!”
“인쇄소 안채에 부탁하신 걸 준비해뒀습니다.”
당패는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나만 들리도록 조심히 말했다.
“감사합니다.”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라도 연락해주십시오.”
“그동안 도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천성과 호북성같은 사이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명절 귀경길에 할머니의 과분한 사랑을 사양하는 손자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당패에게 말했다.
“사천성과 호북성?”
“먼 듯 가깝고. 가까운 듯 먼 사이 말입니다. 그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얻어낼 수 있는 건 다 얻어냈다. 이제는 더 바라는 건 과욕일 뿐이다.
“……그렇습니까.”
당패의 얼굴에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스쳤다.
난 전혀 안 안타까워.
“아! 화린이에게 이 편지 좀 전해주십시오.”
나는 의문의 밤손님 때문에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당당하게 쓴 편지를 소중히 건넸다.
소희에겐 의창에 오자마자 편지했으니, 화린이에게도 해야지.
“물론입니다. 다들 말에 오르게!”
“충!”
나와 당패의 대화가 끝나자, 당가의 무인들이 말에 오르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다들 살펴 가십시오. 화린이에겐 안부 전해주시고요. 그리고 당가주께는 고생했다고 한마디 하셔도 됩니다.”
“하하하하! 네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들 일러두었으니 업무복은 단단히 입단속 해두겠습니다.”
“……. 부탁합니다.”
치파오 이야기는 화린이에게 되도록 비밀로 하는 게 좋긴 하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당가의 무인들을 배웅하고는, 다서각으로 향했다.
——–
밤새 내린 비로 젖은 길바닥과 다르게 아직 해가 뜨지 않은 하늘은 오늘 날씨가 맑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응?”
다서각 앞에 웬 사람이? 개장 시간까진 한참 남았는데.
비에 홀딱 젖은 사람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비를 피해서 다서각 앞에 있는 건가. 아니면 당가풍운을 사러 온 손님?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니, 매우 익숙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하연 소저?”
비에 홀딱 젖은 여인의 정체는 임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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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왜 여기에…….”
이 남자는 왜 자신의 앞에 있는 걸까. 임하연은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머리를 힘겹게 들어 올렸다.
“뒤를 돌아보시오.”
“아…….”
임하연은 기운 없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니, 매일 아침 그녀가 출근하는 문이 보였다.
자신은 왜 여기 있는 걸까. 밤새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당도한 곳이 다서각이었을까.
“들어오시오.”
왜 여기 있는가. 왜 비를 맞고 있는가. 강윤호는 한마디 묻지도 않고, 임하연을 위해 다서각의 문을 열어주었다.
임하연은 말없이 그의 등 뒤를 따라, 그가 자는 다락방에 올라 의자에 앉았다.
강윤호는 능숙한 솜씨로 물을 끓이고는, 그녀 앞에 몸을 데울 수 있는 화로와 함께, 따뜻한 차를 건넸다.
임하연은 그가 준 차 한 모금을 마시자, 밤새 맞은 비로 얼어붙은 몸에 따스한 온기가 스미는 것을 느꼈다.
강윤호는 임하연을 신경 쓰지 않는 척, 거리를 벌리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녀와 같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왜 비 맞고 있었냐고 묻지 않나요?”
임하연이 말할 기운을 되찾았단 걸 눈치챘을까. 강윤호는 무슨 말이라도 들어줄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제 말해주나 기다리고 있었소.”
왜 이 남자는 이리도 자연스럽게 웃을까. 어떤 고민이든 털어놔도 상관없는 것처럼 굴까.
임하연은 잠깐 망설인 끝에, 며칠 전과 같이 입을 열었다.
“……무영신투의 후계자가 돈을 털렸어요.”
임하연은 세상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돈을?”
“객잔 주인이 야반도주를 해버렸어요. 객실료 일 년 치를 한꺼번에 주면 아침저녁도 제공해주겠다길래, 한 달 임금을 다 냈는데 말이에요,”
좋은 제안처럼 보였다. 아침저녁을 돈을 내고 먹는 것보다, 저렴한 식사라도 객잔에서 챙겨준다면 돈을 아낄 수 있을 테니까.
실상은 돈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야반도주하기 위한 객잔 주인의 수작이었지만 말이다.
돈 한 푼 없는 밤거리. 임하연은 연이은 불행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밤거리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임하연은 밤새 있었던 일을 회상하고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객잔을 나오면서 챙겨왔던 비에 젖은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종이가 다 젖었군.”
“의창 문인회에 냈던 초고인데…….”
비에 젖어 엉망이 된 지필묵들. 특히 밤새 정처 없이 걷느라, 처음으로 쓴 소설이 글자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의창으로 도망치면서 유일하게 이룬 것인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되는 게 없어요.”
임하연은 갑자기 몰려오는 서러움에 물기 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왜 자신의 인생은 이 모양일까.
그나마 가지고 있던 소중했던 것마저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이대로면 도주 기녀가 되어 압송될 것이다. 배운 건 도둑질인데 도둑질도 못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은 전부 사기당해버렸다.
유일하게 의창에 와서 이룬 업적인 소설은, 젖은 종이 뭉치가 되어버렸다.
“난 한 사람 몫도 제대로 못 하는 반푼이예요.”
교방을 도망쳐서 벌을 받는 걸까. 운명을 벗어나려고 해서 벌을 받는 걸까. 임하연은 비참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가 한 사람 몫을 못 한다는 거요? 하연 소저는 다서각 2층에서 아니, 다서각에서 가장 훌륭한 점원이오. 내가 믿고 맡기는 관리직이고, 다서각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아니요. 나는 하연 소저라서 맡겼던 일이오.”
왜 이리도 이 남자는 확신을 담아서 말하는 걸까.
강윤호의 한마디가 엉망으로 젖어 뭉치고 볼품 사나워진 임하연의 마음을 가까스로 지탱했다.
“……되는 일이 없어요.”
“그럴 땐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도 좋은 방법이오.”
누구에게 말인가. 자신에게 누가 있단 말인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교방 하오문 사람들은 죽었고, 하오문은 각자도생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인간은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임하연은 분한 마음에 물기 어린 눈으로 강윤호를 바라보았다.
있다. 한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자신을 누구보다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말없이 자신이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좀 도와줘요.”
임하연은 힘겹게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소.”
왜 이 남자는 거절을 해도 도와줄까. 언제든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어줄까.
‘왜 당신은 나를 도와주죠?’
어머니와 비슷한 기녀라서? 당신과 비슷한 처지라서? 그 인간의 딸이라서? 그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정말 동정일까.
아니면…….
“일단…….”
임하연은 강윤호의 입에서 나올 한마디를 기다렸다. 무엇이라고 말할까.
“오늘부터 나랑 같이 삽시다.”
강윤호의 한마디는, 억울함과 절망으로 가득 찼던 한 여인의 머리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