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258)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258화(256/674)
EP.258 무한 – 2
“만금전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십시오.”
무한에 짐을 풀자마자 만금전장에서 올 줄이야. 언제 오는지 기다리고 있던 것도 아닐 텐데. 역시 만금전주의 친우가 운영했던 다서각에서 왔다는 게 크게 먹혔나.
나는 만금전장의 총관이라고 소개한 사람을 따라나섰다.
“만금전장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만금전장은 번화가에 있었는데, 지금 가는 길은 반대 방향이잖아.
“만금전주님이 기거하시는 저택으로 모실 예정입니다. 그런데 다서각에서 오신 거라면 강씨 성을 가진 공자가 아니라, 당씨 성을 가진 소저가 와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화린이는 사천당가에서 요양 중입니다.”
원래라면 내가 아니라 화린이가 와야 하는 일이다. 총관의 의심은 당연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나이가 있으니 깜빡하는군요. 혹시 병환으로 오래 사천당가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총관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민망한 어투로 몸을 살짝 숙이며 내게 물었다.
“하하!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지 않습니까.”
10년이라고 했지만, 내 명성치와 화린이의 수련으로 달라질 수 있다. 나는 마치 완치될 가능성이 높은 중환자를 언급하는 가족과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흐음. 역시……. 네.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를 일이지요.”
총관의 목소리에는 역시나 하는 말투가 섞여 있었다. 뭐지?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 눈치인데.
생각해보니 화린이가 당가에 오래 머문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거지?
나는 해소될 길이 없는 의문을 가진 채 총관의 뒤를 따라갔다.
——–
“만금전주님께 소식을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잠시 정원에서 기다려주십시오.”
나는 총관이 만금전주에게 내가 도착했다는 걸 알리는 동안, 조용히 정원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원에 얼마나 쓴 거야.
흔히 정원을 꾸미는 일을 청빈한 사치라고 부른다. 돈을 투자하려면 한없이 투자할 수 있지만, 전문가가 눈치채지 않는 한 다른 정원보다 예쁘다 수준밖에 안 되니까.
만금전주가 기거하는 정원은 마치 일반인이 보기엔 고급스러울 뿐이지만, 명함 광인이 보면 들인 돈에 기겁하는 명함처럼, 비전문가가 보았다면 단아해 보이지만, 전문가가 보면 억만금을 썼을 것 같은 정원이었다.
조선의 대부호, 망나니 강윤호의 아버지도 이런 정원을 꾸몄으니. 내가 몰라볼 리 없었다.
“들어가시면 만금전주께서 계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총관이 열어준 문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나는 총관과 멀어지자, 들리지 않도록 작게 심호흡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할 수 있을까.
하지 못하면 다서각을 잃어야 한다. 할 수 있을까라고 되뇌지 말고, 해야만 한다. 꼭 해내고야 만다.
나는 다짐을 하고는 만금전주가 기다리는 방에 당도했다.
“왔는가.”
내가 인기척을 내자 반응하는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
만금전주는 작년과 똑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분재를 손질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노야.”
나는 조심히 앞으로 다가가 정중히 만금전주에게 인사했다.
“내 외손자 놈에게 재미있는 짓을 벌였더군.”
시작부터 정곡이냐.
만금전주는 여전히 내 쪽을 바라보지 않으며 내게 말했다.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제발 채무만은 탕감해주십시오. 그 돈 절대 못 갚아요.
아니, 그렇게 나갈 생각 없다.
“미친개에게 물렸으면 그대로 주저앉아 울거나 도망갈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개새끼에게 다시 물릴 각오를 하고 몽둥이를 들어야 하는 법이지요.”
잘못했다고 빈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내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면 잘해봐야 압류를 유보하는 대신 채무 전체를 갚도록 종용당할 것이다.
나는 갚지 않아도 될 채무를 갚겠다고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거기에 정말로 외손자 일로 화가 났다면 만나자마자 화두로 꺼낼 리가 없어.’
분노에 찬 어투로 길길이 날뛰었으면 다른 계책을 꺼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관심한 어투로 시작부터 말하다니. 대놓고 시작부터 내 기를 죽이기 위한 게 보이잖아.
당해줄 생각 없어.
난 잘했다고 뻔뻔해야 한다. 너희 집 망나니 새끼가 교육이 덜 됐더라. 나를 문 개를 손 좀 봐줬다. 강하게 나서자.
“개새끼라. 나보고 들으라는 말 같군.”
웃어?
만금전주 가소롭다는 듯 난초를 만지며 피식 웃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뜻보단 이놈봐라의 미소.
내가 자극했는데 안 넘어갔다면 좋은 신호다.
“부모의 사랑이 과하면 자식이 엇나가는 것도 모르는 법이지요(莫知其子之惡). 호랑이 같은 부모 밑에도 개새끼가 튀어나오는 법이니, 부디 호랑이가 되도록 좋은 교훈이 되었으면 합니다.”
너희 집 자식 교육 좀 잘해라. 남에게 얻어터져서 피 보고 깨닫기 전에.
“흘흘흘! 그래. 나도 이번 일에 전말은 들었네. 그놈이 망나니짓하다가 크게 혼날 줄은 알았지!”
만금전주는 내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호방하게 웃으며 드디어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셨습니까.”
나는 속으로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첫 난관은 통과했…….
“하지만 그렇다고 채무를 봐주어야 하는 이유는 되지 않네.”
만금전주는 웃음을 거두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
외손자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이런 짓을 꾸민 게 아니라는 건데. 정말 돈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건가.
“내가 왜 자네를 봐주어야 하는지 말해보게.”
만금전주는 네가 왜 여기 왔는지 다 알고 있다는 시선을 보내며 내게 말했다.
나는 마른침을 조용히 삼키며, 나를 꿰뚫을 것 같은 시선을 마주 보았다.
갚지 않아도 되는 채무까지 지는 건 부당하다. 이런 돈을 어떻게 갚냐. 말도 안 된다. 모든 말을 사전 차단하는 시선.
‘여기서 말을 잘해야 한다.’
내가 진 채무가 정당하냐고 따지는 건 좋은 방책이 아니다. 이미 알고 실행한 일이다. 상대는 만금전장. 그 어떤 불합리한 채무도 정당하게 만들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지?
빠르게 생각하자. 가지고 있는 정보를 조합해.
만금전주의 정보. 내가 알고 있는 사실. 조합해. 방금 얻은 정보도 있다. 청빈한 사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쓴다. 내가 쓸 수 있는 패. 준비한 패를 늘여놔 봐.
그중에 최고의 패는 뭐지?
“제가 백가장주님의 정신을 잇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당한 어투로 만금전주를 향해 선언했다.
“네가 백가 놈의 정신을 잇고 있다고?”
만금전주의 미간이 순간 꿈틀거렸다.
만금전주. 세간의 평가는 찌르면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사람. 그렇다면 포기해야 할까. 아니. 유일하게 찌르면 피가 나올 부분을 찌르면 그만이다.
그것도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패를 사용해서.
“제가 의창에 다시 돌아왔을 때 한 일에 대해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문인들을 직원으로 들였다는 말을 들었네.”
만금전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알고 있네.
“제가 당가의 문제를 해결하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였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했다고?”
나에게 궁금증을 가진다. 내가 꺼낸 패가 좋은 패라는 청신호였다.
“단순히 저 하나 행복해지자고 생각했다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는 백가장주님의 의지를 이어받고 싶었습니다.”
백가장주가 죽기 전까지 했던 선행. 그 선행을 내가 이어서 하고자 했다.
사실 내 명성치를 올려줄 직원이 필요했을 뿐이지만. 뭐든지 포장이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결국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법이다.
“그런 것은 빚을 갚고 생각할 문제가 아니던가.”
“상인이 어찌 빚내기를 두려워하여 큰일을 도모하기를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돈은 큰 뜻을 따라 행하면 자연히 들어오는 법입니다.”
만금전장은 현대로 따지면 은행과 사채업 그 사이에 있는 업종이다.
만금전주가 좋게 보는 상인이란, 결국 빚을 내서 큰 사업에 성공하고, 더 큰 빚을 만들어서 계속 갚아주는 고객일 것이다.
그럼 나는 만금전주가 보기에 흡족한 상인이 되자.
“그 큰 뜻이 무엇인가.”
“장사란 이문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는 신념입니다.”
나는 가슴에 커다란 신념의 기둥이 박힌 올곧은 상인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백가 그놈이 나에게 곧잘 떠들던 말과 비슷하군.”
“의창 문인회 회주님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더니, 놀라시며 말씀해주시더군요.”
말 한마디를 더해, 내 신념이지만 우연히도 백가장주의 신념과 같았다고 어필하자.
‘나는 만금전주 눈앞에서 검은 머리 오랑캐가 아니라, 백가장주의 화신이 된다.’
만금전주의 가장 약한 부분을 노린다. 검은 머리 오랑캐의 돈을 강탈하는 게 아니라, 친우의 뜻을 잇는 자를 짓밟는 구도로 만든다.
만금전주도 말문이 막히는 듯 입을 벌렸다가, 이내 나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통한 건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큰돈이야. 내가 채무를 봐줄 이유는 되지 않네.”
만금전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 이렇게 말해도 안 통한다. 이건가.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정녕 그 채무 전부를 갚기를 원하신다면, 차라리 다서각을 포기하겠습니다.”
배수의 진을 치자.
“다서각을 포기하겠다고?”
만금전주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물었다.
“네. 다서각은 제 뜻을 펼칠 날개입니다. 하지만 날개가 아니라 족쇄가 되어버린다면, 차라리 무일푼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비록 무일푼일지언정 백가장주님의 정신을 이어받고 다시 성공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어차피 다서각의 채무니까. 다서각 하나 주면 끝날 일 아니야? 그 돈 갚을 바엔 차라리 다서각을 포기하고 말지.
다서각을 처음 운영하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금의 나에겐 사람도, 인맥도, 가진 돈도 있다.
거기에 호필의 명성까지.
다서각을 포기하면 힘들겠지만, 내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나는 오히려 채무를 포기하면 손해 보는 건 만금전장 아니야? 라는 말투로 당당히 만금전주에게 말했다.
“흘흘. 천하의 호필이 겸양을 떠는군.”
“알고 계셨습니까…….”
상인회주 아저씨.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만금전주에게 말했구나.
“내 외손자정돈 갓난아기 손 비틀 듯이 이겨 먹고, 세상을 울릴 글을 쓰며, 의창을 요동시키는 상술을 부린다. 거기에 당가에 가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담력과 지혜를 가진 자가, 빚 하나 갚기 싫어서 다서각을 포기하겠다니. 그 말을 믿을 것 같나?”
상인회주 아저씨가 나를 너무 포장해준 거 같은데.
“그러기 위해 여기 서 있는 겁니다.”
“그러지 못했기에 자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괜히 만금전주가 아니구나.
장노야는 내 말 수작 따윈 눈치챘다는 듯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승리의 웃음. 어서 인정하고 편해지라는 표정이네.
하지만 장노야.
나는 고작 그정도만 준비한 게 아니라고.
“아니요. 저는 백가장주님의 의지를 잇는 자로써 마지막 도의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마지막 도의?”
“백가장주님의 유일한 혈육. 그분의 외손녀 사위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보고 포기하기 위해 서 있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했는데 장노야가 포기하게 했다. 나는 그런 과정의 마무리를 위해 서 있는 거라고 표현한다.
만금전주가 상상하는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나는 백가장주님의 의지를 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억지에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는 놈이 되고, 만금전주는 친구의 재산까지 강탈한 천하의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만금전주도 이해했을까?
외통수라고 생각했는지. 만금전주도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하하하! 이거 백가 놈이 내 옆에 있었으면 외손녀가 사윗감 하나는 잘 물어왔다고 했겠군. 그래. 정말 무일푼으로 성공할 자신이 있나.”
“해야 한다면 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되었군. 가져가게.”
만금전주는 준비되었다는 듯, 품에서 종이 뭉치 하나를 내게 던졌다.
“전표?”
만금전주가 건네준 종이는 큰 액수가 적혀있는 전표였다.
“전표가 아니라 내 시험일세.”
시험이라니. 전표를 천천히 읽어나가자 강윤호. 내 이름 석 자가 적혀있는 것이 보였다.
해당 전표를 사용하고, 채무상환일자가 지나면 다서각의 채무도 전부 나에게 이전된다는 조항과 함께.
“이게 무슨?”
“자네의 인생을 저당 잡게. 그 전표를 가지고 의창이 아니라, 이 무한에서 돈을 불려 와보게.”
만금전주는 이 이상의 양보는 할 생각 없다는 듯 최후 통첩하듯 나에게 말했다.
이제야 알겠다. 강제 스카우트였나.
다서각 압류는 날 여기로 데려오는 것에 불과했다.
만금서점 전길산의 호필 스카웃 제의와 일맥상통한다. 이번에는 상인 강윤호의 면모도 쳐주겠다는 게 조금 다른 걸까.
결국 채무를 나로 옮겨서 날 옭아매겠다는 뜻인데.
“제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걸 받아들일 이유가 없잖아.
이럴 바엔 인쇄소 하나 믿고 다시 시작하는 게 더 낫다고.
내 속뜻을 눈치채었을까.
만금전주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게 전표를 건넨 연유에 대해 말했다.
“내 시험을 통과하여 나를 만족시킨다면, 다서각의 모든 채무를 전부 탕감해주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