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275)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275화(272/674)
EP.275 계약 – 1
“계약 연애요? 그, 그게 뭐죠?”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제갈세가 가주의 막내딸. 제갈향.
가만히 있으면 청초한 분위기가 나는 미모와는 다르게, 대화할수록 엉망이 되는 표정과 반응이 재미있는 여인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무협 미연시의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계약 연애.
원작의 히로인이었다면 기를 쓰고 인연을 만들려고 했겠지만, 그녀는 다르다. 적당히 서로의 이해관계로 계약 연애를 시작하고 끝내면 그만이다.
물론, 내가 완벽히 클리어하지 못한 반대쪽 루트에서 등장하는 인물일 순 있겠지만, 그런 가능성까지 고려했다간 너무 경우의 수가 늘어나 계획이 힘들어진다.
일단 설명이 필요하겠네.
“소저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결국 시간을 끄는 행위밖에 더 되지 않습니다. 만금전주님께 돌아가시든, 본가인 제갈세가로 돌아가든, 맞선을 보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그녀의 상황을 다시 한번 인식시키자.
“그렇겠죠오오. 저도 알아요.”
제갈향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의기소침한 듯 탄식했다.
밑밥을 깔았으니 바로 낚싯줄을 던지자.
“하지만 소저가 더 이상 힘들게 맞선을 보지도, 도망가지도 않을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계약 연애라는 건가요?”
“네. 사적으로는 연애를 하는 게 아니지만, 공적으로는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겁니다. 일종의 위장이지요. 그리고 서로 정한 때가 되면 이유를 들어서 헤어지면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새로운 여인의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시간은 없다.
나에게도 좋은 선택지였다.
“위장…….”
“계약 연애를 하는 한, 소저는 더 이상 맞선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또 저와 실제로 연애를 하는 건 아니니, 저와의 관계로 심적으로 고통받을 필요도 없지요.”
“그, 그럼 가. 강. 강…….”
왜 나를 한번 보더니 고장 난 재생 기계처럼 반복하냐. 설마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고장 난 건가.
“편히 불러주십시오. 강 공자, 강 점장, 강윤호. 다 괜찮습니다.”
“그럼! 강 공자님이라고 할게요. 강 공자님은 괜찮으실까요?”
그녀는 전문가의 손길에 고쳐진 기계처럼 이제야 겨우 말을 재생할 수 있었다.
“저도 소저처럼 이번 맞선은 강제로 끌려 나온 겁니다.”
“강제로요?”
“소저의 외할아버지께서 다서각을 빼앗으시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갈향 소저와 맞선을 보고, 내준 시험을 통과하면 돌려주겠다고요.”
내가 또 이런 소극적인 성격은 좀 알지.
이런 성격은 일방적인 배려도 타인에게 피해 끼친 것 같아서 부담스러워하거든. 이럴 땐 너와 동류라서 그런 거야. 나도 맞선 보기 싫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
“저, 저 때문에 죄죄죄죄죄송합니다!”
이것도 아니었나.
제갈향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제갈 소저 때문에 빼앗긴 건 아닙니다. 단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 저도, 제갈 소저처럼 계약 연애를 할 이유가 있는 거지요.”
“계약 연애, 계약 연애…….”
제갈향은 제안이 마음에 안 들지는 않았는지, 나를 연신 힐끔힐끔 보면서 중얼거렸다.
좋은 제안인데 망설이나?
그럼 나도 방법이 있지.
“압니다. 제가 천한 오랑캐라, 분명 좋은 맞선 감은 아니지요.”
이럴 땐 계약 연애 안 해주면 상처받는 척해야지. 다시 한번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거다.
“그, 그렇게 생각 안 해요오오오.”
“빈말이라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 소저의 문제와 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정말 아닌데에에에요오오. ……어?”
말을 강조하면서 한 걸음씩. 나는 일부러 제갈향에게 다가간다.
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제갈향은 내 보폭에 맞춰 한 걸음씩 뒤로 걷기 시작했다.
“제 제안을 승낙하면, 사칭 문제와 당가풍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소저도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싶을 테고, 소저를 평생 사랑해줄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정한 맞선 상대 말고요.”
그녀가 물러나도 상관없다. 조심히 경계심 많은 먹이를 몰이사냥 하듯.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면.
“힉! 저, 저, 저, 저기 너무 가깝…….”
그녀를 벽에 몰 수 있으니까.
“제갈향 소저.”
한 손을 벽에 가져다 제갈향의 퇴로를 차단한다. 소위 벽치기 자세가 된 것 같지만 상관없다.
“네, 넵!”
제갈향은 잔뜩 언 표정으로 답했다.
”저와 계약 연애해주시겠습니까.“
표정과 목소리는 부드럽게. 몰아붙이는 자세는 조금 위압적으로.
이유도. 분위기도 잘 조성했으니까. 이제 승낙하고 나가자.
“으, 아, 어! 아니, 저 그게……. 잠시만요오오오오!“
아니! 이 상황에서 빠져나간다고?
제갈향은 갑자기 무릎을 쑥 굽히더니, 그대로 몸을 말아 콩벌레처럼 굴러 멀리 있는 기둥 뒤편까지 가버렸다.
방금 본 거, 무림의 금기 나려타곤(懶驢打滾) 아닌가?
一 저 체면도 없는 놈! 차라리 죽으면 죽지, 어디서 추하게 지질맞은 당나귀처럼 땅 구르기를 해?
一 저놈은 무림인이라고 할 자격도 없네! 무림을 등진 놈이니 배인(背人)이라고 하세.
그럴 정도로 쓰지 않는 무공인데 말이야.
제갈향도 무림인일 텐데, 소극적인 성격이 다른 의미로 예측 불가의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건가.
“소저? 혹시 무례했다면 죄송합니다.”
나는 기둥 뒤에서 빼꼼 나를 보며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 제갈향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그, 그런 게 아니에요. 하, 할게요.”
“네?”
“계, 계약연애 할게요오오오.”
———-
“이제 만금전주님께 갑시다.”
나는 상기된 얼굴의 제갈향 숨소리가 가라앉자마자, 떠날 것을 종용했다.
“저, 저기. 아직 목각인형을 다 안 깎아서…….”
그녀는 방 한구석에 놓여있는 나뭇조각을 향해 눈길을 잠시 주더니, 곤란한 듯 말했다.
목각인형이라는 게, 설마 수제였냐.
“평범하게 외할아버지댁으로 가시겠다고 하시면 됩니다.”
이모 집 나가는데 목각인형까지 필요할 리가 있겠냐.
나는 망설이는 제갈향과 함께 방을 나섰다.
“아가씨 어디 가십니까?”
그녀가 방에서 나오자, 무사 하나가 바로 앞길을 막았다.
“외, 외할아버지 댁에 가요.”
“나가실 때는 이모님이나 허송 도련님께 허락받고 나가셔야지요.”
“아……. 저. 그…….”
설마 상대의 단호한 거절을 상대하기도 어렵냐.
무사는 제갈향의 모습에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미소를 보이더니, 제갈향에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모님께서는 집안 업무를 하시는 중이고, 허송 도련님은 부재중이시니 들어가시지요. 음?”
어떻게 설득했는데 포기할 수 없지.
나는 제갈향을 잡으려는 무사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외손녀께서 근처 외할아버지댁에 가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오?”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무사에게 물었다.
“네놈! 누구냐?”
역시 얌전히 나가는 건 무리였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천천히 머리카락을 가린 삿갓에 손을 가져다 댄다. 내가 누구일까. 무사에 높아진 목소리에 쏠린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다서각의 강윤호라고 하오.”
나는 주위 시선을 느끼며 삿갓을 벗고는, 칼 한 자루로 대 문파를 쳐들어온 무사처럼 자신감 넘친 얼굴로 나를 소개했다.
“침입자?! 침입자다!”
저택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부인을 모셔 오도록!”
“향이가 나가겠다고? 아들 녀석은 어디 갔어?”
“어제 주루에 가신 이후로 안 보이십니다!”
“어디 주루에서 취해서 곯아떨어졌나 보네! 향이야! 이게 무슨 일이니!”
제갈향의 이모. 만금전주의 딸인 중년의 여인은 잔뜩 심술이 난 얼굴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십…….”
“내가 어디서 천한 오랑캐 따위에게 말을 허락했지?”
중년의 여인은 이를 드러내고는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구만.
“아, 이모, 그게 저…….”
제갈향은 당황하여 나서려고 했지만, 쉽게 나설 수 있다면 오늘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전해 들었는데 이런 태도라니. 나를 배제해서 제갈향과 일대일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 같은데.
그럴 순 없지.
“그 천한 오랑캐가 제갈향 소저의 맞선 상대요.”
나는 여유로운 태도로 제갈향을 내 뒤로 물리며, 허송의 어머니 앞에 섰다.
“뭐?! 그게 사실이니?”
허송의 어머니는 당황한 얼굴로 확인을 요하듯 제갈향에게 물었다.
“네에에. 외할아버지가 보라고 하셨어요오오.”
제갈향은 내 등 뒤에 숨은 채 머리만 쏙 내밀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노망이 나셨나. 어떻게 외손녀 사윗감으로 검은 머리 오랑캐를 소개해줘?”
“알아들었으면 나가겠소. 길을 비켜주시오.”
“안돼.”
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허송의 어머니는 우리를 저지했다.
“왜 못 나가게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군. 그것도 경비 병력을 다 대동하고 말이요.”
“…….”
“무고한 제갈 소저를 호필로 사칭했다는 사실이 걸리면, 문책당할까 봐 두렵소?”
“건방진 오랑캐 새끼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아줌마. 발뺌하려고 역정을 내는 거 같은데, 속내가 다 보여요.
“제갈 소저. 저 당황하는 반응을 보십시오.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아, 네!”
나는 제갈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폭발 직전의 아줌마를 바라보았다.
“이제 끝났소.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걸 원치 않으면 그만 비키시오.”
“향이야! 이모가 네 외할아버지 설득해서 맞선 안 보게 해줄게! 당분간 집안에만 있게 해줄게!”
이건 좀 큰데.
순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제갈향을 바라보았다.
제갈향은 그런 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아……. 저기, 그게……. 저 맞선 볼거예요오오오.”
“이익! 저 오랑캐 자식을 막아!”
결국 무력행사냐. 무기에 손을 올리려는 무사들이 보인다. 빠르게 소윤심상결을 운용해 성량을 끌어올리자.
“어딜 칼에 손이 가나!!!”
제갈향을 빼앗기면 안 된다. 나는 그녀를 내 뒤편 벽으로 몰아 보호한 다음, 저택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로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신중히 생각하시오! 당신들이 지금 칼을 뽑으면! 만금전주님께서 외손녀 사윗감으로 본 남자에게 칼을 뽑는 것이고! 제갈세가 가주님의 막내딸을 가두려고 칼을 뽑는 것이오!”
너희들 감당 가능해?
“평범한 제갈씨가 아니라 가주의 막내딸이었어?”
“그, 그런.”
“경거망동하지 마라!”
아니 해야지.
경비의 대장 같은 사람이 상황을 진정시키게 놔둘 생각은 없다. 불난 상황에 빠르게 기름을 던지자.
“내가 나가지 않아도 달라지는 건 없소. 아니, 오히려 심각해지지. 내가 나오지 못할 경우, 제갈세가와 만금전장에 사람을 보내두라고 했소.”
“뭣?!”
“천하의 제갈세가와 무한의 만금전장이요, 당신들은 주인의 명을 따른 것이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핏줄은 몰라도 관련자의 문책은 피할 수 없겠지.”
제갈세가가 막내딸에게 칼 뽑은 놈을 살려둘 거 같냐. 자매인 안주인은 몰라도 너흰 아니야. 감당할 수 있어?
나는 방금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했던 사람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뭣들 하는 거야!”
무사들은 상황을 파악했는지, 안주인의 말에도 움직이려는 놈 하나 없었다.
“충이란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옳은 명령에 따르는 것이오. 지금 비키면 당신들의 안주인을 구하고, 당신들을 구할 수 있소. 신중히 생각하시오.”
여기서 보내주면 작은 사건이지만, 막으면 한두 놈 죽는 걸로 안 끝난다. 나는 말에 뼈를 담아 주변을 향해 경고했다.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침묵이 휩싸인 저택 안.
잠시간의 침묵 끝에 대장으로 보였던 이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일에 대해 함구해줄 수도 있소?”
결국 항복 선언이 튀어나왔다.
“너! 지금 뭐라고?!”
이 아줌마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했네.
“문을 나가면 기억도 같이 내 머리에서 날아갈 것 같소.”
“……비켜 드려라.”
배달원으로 위장해서 들어간 저택.
나는 내 소매를 조심히 붙잡은 제갈향과 함께 저택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
“정말. 같이 가자니까.”
임하연은 강윤호가 없는 빈 집무실에서 한시도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별일 없을 거다. 괜히 저택 안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가, 무한에 분홍 머리 경공 고수의 소문이 퍼지면 안 된다. 늦게 오면 편지만 만금전장으로 가져가 달라.
임하연은 강윤호의 말을 아무리 되뇌어봐도, 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떠올라 너무나도 불안했다.
‘제발 무사해요.’
임하연은 창문을 열어 저택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창문으로 튀어 나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할 때쯤, 익숙한 정수리가 객잔의 문을 여는 것이 보였다.
“나 왔……. 깜짝이야!”
임하연은 집무실을 박차고 튀어 나가 3층에서 한순간에 뛰어내려, 강윤호를 맞이했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데 없어요?”
임하연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팔다리를 매만졌다.
누군가가 형수님이 오늘따라 극성이라고 말해도, 임하연은 평소처럼 부정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강윤호의 상태를 살폈다.
“보이는 대로 무사하오.”
“하아아. 다행이에요.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임하연의 안 그래도 큰 흉부가 안도의 한숨을 쉬느라 잔뜩 부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다.
“억류되어있던 제갈향 소저를 구출했소. 만금전주의 저택 문 앞까지 배웅해주었지. 전길산에게도 말해두었소.”
“그러면 당가풍운 사건은 이제 해결되는 거예요?”
“한 가지만 더 하면 해결될 것 같소.”
“한 가지?”
“그게……. 하하.”
왜 자신의 시선을 피할까. 임하연은 곤란한 듯한 강윤호의 얼굴에, 왜인지 모르게, 본능적으로 이상한 위기감을 느꼈다.
“뭐예요. 말해봐요.”
“아무래도 나, 제갈향 소저랑 맞선을 봐야 할 것 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