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277)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277화(274/674)
EP.277 계약 – 3
가짜 호필 사건은 얼추 해결했지만,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제갈향 소저와의 맞선. 계약 연애에 대해 성공적인 합의에 도달했어도, 형식적인 자리는 가져야 하니까.
만금전장에서 날짜를 정하자고 사람이 오자, 가장 빠른 날로 골랐다. 내가 미룰 거라고 예상하고 왔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자 만금전장에서 온 사람도 놀란 눈치였다.
실상을 알면 저들도 당했다고 생각했겠지.
나는 검은 머리 오랑캐. 잘 쳐줘봤자 서점 주인이자 소설가밖에 되지 않는다. 반면 상대는 결혼 생각 하나 없는 아가씨. 거기에 호북성 제일의 무림세가인 제갈세가 막내딸.
만금전주는 계약 연애에 속아 잘되어 간다고 착각하겠지만, 우리 두 사람은 이어질 리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차려입은 거예요?”
제갈향과의 맞선을 보기 위해 잘 차려입고 방을 나오자마자, 임하연이 뚱한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놀래라.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냐.
“만만히 보이는 것보단 낫지 않겠소.”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선 차려입어야지. 편하게 입고 오면 된다고 해서 믿었더니, 나만 이상한 놈이 되는 건 어릴 때면 충분하다.
“……금방 돌아오는 거예요?”
임하연은 잠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계속 뚱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모르겠소.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맞선을 봐봤어야 알지.
“…….”
“할 일이 천지인데 자리를 비워서 미안하오.”
내가 운영하는 객잔. 내가 자리를 비우는 건 괜찮지만, 임하연이 자리를 비우는 건 업무에 큰 문제가 생길 정도로, 그녀의 업무는 막중했다.
“……당신이 원해서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어르고 달래는 투로 말하자, 임하연은 조금 풀린 목소리로 답했다. 역시 일이 많은데 자리를 비워서 불만이었냐.
근데 생각해보니, 어쩔 수 없는 거잖아. 그러면 기회네.
“그럼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오수구 손망실 정리 보고서랑 식기와 식자재들 재고 파악이랑, 혹시 시간 나면 전길산 업장 가서 이 녀석 매출 속이고 있는 건 아닌지, 심어둔 조선 애들에게…….”
“자리 비우는 사이에 귀찮은 일 너무 대놓고 시키려는 거 아니에요?”
“하하! 들켰소?”
나는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사람 좋은 미소로 웃었다.
“하아……. 시킨 일 하고 있을 테니까 빨리나 돌아와요.”
임하연은 웃는 나를 향해 못 말린다는 듯 작게 한숨 쉬었다. 농담이었는데 정말 해주게? 나야 고맙지.
“그럼 다녀오겠소.”
“잠깐.”
“응?”
“내 얼굴 좀 봐요.”
얼굴은 이미 보고 있는데. 임하연은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한순간에 거리를 좁혀 내게 다가왔다.
“왜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오?”
“신경 쓰지 말고 내 얼굴 똑바로 봐요.”
신경 쓰이는데.
임하연은 내 부담된다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까치발까지 하면서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연인 사이였다면 내 고개를 숙이면 입맞춤도 가능한 거리. 임하연도 의식되는지, 고개를 살짝 옆으로 틀어 나를 올려 보았다.
무슨 일이지. 얼굴에 뭐가 있나.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평소보다 입술이 더 붉네. 가까이 있으니 기분 좋은 분내도 느껴진다. 아하.
“화장했소?”
“흐응…….”
만족스러운 콧소리가 들린다. 정답인가.
화장이 잘되어서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 안 해도 예쁘던데. 평소엔 의식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무협 미연시답게 정말 살 떨리게 이쁜 여인이다.
근데 정답을 맞혔는데 왜 안 비켜주지.
임하연은 더 듣고 싶은 게 있는지, 묘하게 무언가를 바라는 눈치로 나를 계속 올려 보았다.
무슨 말을 하라는 거지. 임하연의 얼굴을 주시하니, 평소와는 다른 특이한 게 보였다.
“하연 소저.”
다정한 목소리로 부르니, 임하연의 눈망울이 작게 떨렸다.
“…….”
“……요새 잠을 못 잤소?”
다크 서클이 짙네.
“하아. 내가 누구 때문에…….”
임하연은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응?”
내가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
“됐어요. 내 얼굴 새겨넣었으면, 이제 가도 돼요.”
임하연은 내 어깨를 뒤에서 붙잡더니, 이제 끝났다는 듯 출구로 나를 보냈다.
뭐였지?
————-
“강윤호 공자님 드십니다!”
맞선 장소는 물 좋고 공기 맑은 명승지가 보이는 전각이나 넓디넓은 장강이 한눈에 보이는 누각이 아니라, 만금전주의 저택이었다.
어째 몇 번 왔을 때보다 보안이 삼엄하네. 아무래도 제갈향이 도주의 전문가인 만큼, 재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저택으로 잡은 것 같다.
그나저나 맞선이라.
결혼, 약혼, 맞선. 뭔가 강윤호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느낌이네.
“제갈향 아가씨께서는 아직 방 안에 계십니다.”
“준비된 장소로 가있으면 됩니까?”
“먼저 두 분이 만금전주님께 인사해야 해서, 같이 모시고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소개팅이 아니라 맞선 자리다 보니, 주선자인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예의인가보네.
“아가씨! 향 아가씨!”
제갈향이 묵고 있는 방 앞에 당도하니, 분주한 시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또 상자에 숨으셨어!”
“상자 같은 건 다 뺐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후미진 곳을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니! 상자를 쓰고 왜 이렇게 빠르신 거예요. 그만 숨으세요!”
“부, 부끄러워서 그래요오오오오오오오.”
며칠전 들었던 목소리와 함께 방의 문이 열리고, 사람이 아니라 상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막아!”
“제가 가겠습니다.”
나는 주변을 봉쇄하려는 무사들을 향해 말하고는, 갈피를 못 잡는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비켜 드려라.”
“제갈 소저.”
내가 부르자, 상자의 움직임이 갑작스레 정지했다.
“어? 이 목소리는?”
“만금전주님께 같이 가시지요.”
계약 연애를 하기로 했으면서 왜 도망가려고 하는 거야.
“아, 저, 그, ……그날 나려타곤 했는데.”
부끄럽다는 게 앞구르기 때문이었나.
아무래도 제갈향 소저는 할 때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했다가, 집에 가서 이불킥하는 성격인가 보네.
그런 이유라면 괜찮다.
“전 상인이지 무림인이 아닙니다. 굳이 생각하면 소저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한 긍정해주면 그만이니까.
“볼썽사납다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요오오오오.”
“그럴 리가요. 그러니 상자를 열게 해주시겠습니까?”
“…….”
대답이 없자, 조심히 제갈향 소저가 안에 있는 상자로 가서, 상자를 열었다.
“허.”
나도 모르게 감탄이 튀어나왔다.
상자 안에는 이보다 더 잘 포장될 수 없을 것 같은 선물이 들어있었다. 조금 울상인 얼굴로 나를 조심히 바라보는 여인. 어쩐지 주인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작은 동물 같네.
정성껏 차려입은 옷에 화장까지 정성스레 한 얼굴. 출발 전 임하연을 볼 때도 느꼈지만, 미인이 꾸미면 더 미인이 되나 보다.
“하하. 몰라볼 정도군요.”
“읗흫, 그런가요? 아니, 그게, 핫!”
제갈향은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한순간에 상자 위로 튀어 올랐다. 나무통에 칼을 꽂으면 튀어 오르는 해적 선장 장난감처럼 엄청난 추진력이네.
이어지는 그림 같은 공중 돌기 3회전에 이은 착지.
“오오오오.”
멋있어.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읗흫흫흫.”
제갈향은 내 박수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크, 크흠. 이만 만금전주님께 가시지요.”
무사는 어색한 헛기침을 한 후에 우리를 안내했다.
————–
안내에 따라, 만금전주가 기거하는 내원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무슨 소리지.
만금전주가 있는 곳으로 가니, 잔뜩 화가 난 만금전주와, 정원에서 무릎 꿇고 있는 허송의 어머니. 만금전주의 딸이 보였다.
“지금 아버지 소리가 나와?! 아! 왔군.”
“어르신, 지금 이게.”
저 아줌마가 왜 여깄어.
“너희 둘! 이것들이 그날 나에게 망신을 줘!”
이 아줌마가 오랑캐 발언은 생각도 안 나나. 하긴 자기 잘못을 생각했으면 아들내미랑 그런 일을 꾸미지도 않았겠지.
“네년이 정말 머리 박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적반하장이 따로 없구나!”
만금전주는 날을 잡았다는 듯, 딸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아버지! 이게 그냥 오해라니까요!”
“오해라면서 허송 이 녀석은 이번 일로 부르는데 오지도 않아!”
“수, 술 마시고 며칠씩 안 들어오는 일이 잦아서 그래요. 지난주에도 그랬으니까. 어디서 다시 기어들어 올 거예요.”
“사업하라고 시험을 내줬더니, 술 처마시고 사업도 안 했었다고?!”
장노야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는지, 머리를 부여잡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니. 그게 아버지. 그게 아니라요!”
점입가경이었다.
만금전주는 당가풍운 사건에 대해 크게 질책했고, 허송의 어머니는 되지도 않는 변명을 계속 지껄여 만금전주의 화를 계속 돋웠다.
“네 아들놈에게 내준 시험은 오늘로 끝이다. 전표 내놓고 돌아가거라!”
“그럴 수가! ……그래요! 향이를 조금 이용하긴 했어요. 그건 사과할 일이 맞아요. 근데 저 검은 머리 오랑캐 놈 일은 아니잖아요. 사업할 때 이런 건 비일비재한 거 아니에요?”
“내가 네 아들놈에게 사업을 하라고 했지. 협잡 능력을 보이라고 했더냐!”
“윽! 그, 그래도 의창도 아니고 무한에서 책 판 게 죄예요? 무한은 아버지가 관리해서 그렇지, 다른 도시에선 이미 알음알음 팔리고 있다니까요. 심지어 다서각도 이제 우리 집안 거잖아요!”
“나는 아직 다서각을 빼앗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게 어찌 네 것이냐! 결혼하고 출가외인이 되어 수십 년이 흘렀거늘 네가 아직도 아비 품에 있는 걸로 생각하는 게냐!”
“아, 아버지.”
“듣기 싫다! 네가 왜 남편과 사별하고 내게 계속 손을 벌리는지 잘 알겠구나! 이젠 너에 대한 모든 지원을 끊겠다! 네 아들놈에게 내린 시험도 오늘로 끝이다!”
“아, 아버지!”
“꼴도 보기 싫다! 데리고 나가!”
“아버지! 아버지이이이이!”
만금전주는 허송의 어머니가 쫓겨나는 모습을 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착잡함이 역력해 보였다.
—–
“못 볼 꼴을 보였군.”
“다시 뵙습니다. 어르신.”
나는 장노야에게 정중히 다시 한번 인사했다.
못 볼 꼴은 무슨. 일부러 보여주려고 데려온 거면서. 제갈향 눈에 확실히 보여줘야, 집으로 돌아갔을 때 크게 문제 삼진 않을 테니까.
덕분에 크게 혼나는 모습을 보니 꽤 기쁘네.
“둘 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
“아주 잠도 못 이룰 정도였지요.”
나는 조금 퉁명스럽게 만금전주에게 답했다.
“흘흘.”
요놈 봐라하는 만금전주의 시선이 꽂힌다. 그래서 어쩔 건데. 내가 이번 사건 해결하고, 맞선도 보러왔거든.
이 정도 분노 표현은 할 만하지.
“아, 으, 저는…….”
만금전주는 외손녀의 성격을 아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한두 번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두 젊은이가 좋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날에 늙은이가 계속 붙잡기 뭐하니, 본론만 말하마. 외손자놈이 하던 만금서고. 다서각을 흉내 낸다고, 대로변에 그럴듯한 건물을 매입했더구나.”
나도 보았다. 좋은 장소에 차린 서점이었지.
물론 준 전표로는 내용물까지 꾸리긴 어려웠는지, 사실상 당가풍운 하나만 파는 서점이었지만.
만금전주는 말을 하다말고,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왜 나를 보는 거지.
생각해보니 서점 이야기는 왜 꺼내지? 어? 설마?
‘허송 그놈 시험 탈락이면, 그 서점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이번 사건의 보상으로 서점을 주는 건가?
호필 사칭 사건, 거기에 당가풍운 무단 판매. 만금전주가 백가장주와의 우정을 잊지 않았다면서, 미안하다고 무한에 있는 서점을 나에게 주는 거야?
다서각 2호점을 차릴 수 있는 건가.
“회수한 서점을……. 향이, 너에게 주마.”
개꿈이었다.
“제, 제가요?”
“거기에 네 이모에게 사과의 대가를 받아, 서점 내부도 그럴듯하게 꾸며주마. 할애비의 늦은 세뱃돈이라고 생각하고 받거라.”
갑자기 만금전주의 손자가 되고 싶어지네.
누군 기를 쓰고 서점 하나 지키려고 인생을 걸고 있는데, 누군 서점을 세뱃돈으로 받다니.
“그리고 강윤호 자네. ……흘흘. 조금 실망한 눈치군.”
내색하지 않았는데 보였나.
만금전주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눈치챘는지, 수염을 매만지며 웃었다.
“외손주분의 경우 없는 행동에 어떻게 답하실까 궁금할 뿐입니다.”
기대 안 해.
순간 설렜지만, 저작권이 없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당가풍운을 무한에서 못 파는 건 만금전주의 호의.
사칭 사건이 조금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건물 하나를 주는 건 매일 아침 금화로 다이빙하는 부자라도 안 할 짓이겠지.
뭐라도 준다고 하면, 다서각 이야기를 꺼내거나. 사업 확장하게 돈이라도 더 달라고 해 볼까.
“아비로서, 외할아버지로서 모른 척할 생각은 없네. 자네에겐 그래 보상으로……. 운영권은 어떤가?”
“네?”
“서점의 운영권 말일세. 내 외손녀와 무한에서 다서각을 운영해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