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292)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292화(289/674)
EP.292 기수 – 5
배달의 기수(旗手).
배달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음식이 식지도 불지도 않은 채 따뜻한 채로 빠르게 도착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결국 속도가 필요했다.
현대였다면 오토바이를 활용했겠지만, 이곳은 무협 세계. 오토바이가 없다면 오토바이보다 빠른 발을 만들어낼 방법이 필요했다.
배달원들에게 경공을 익히게 하여, 더 먼 거리를 더 빠르게 배달시킨다. 배달 사업의 범위는 확장될 것이고, 무공을 익힌 배달원들은 자잘한 객잔 내 싸움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일이었지만,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말씀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회주님. 경공은 못해도 이류의 내공을 가지고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하루 이틀로는 불가능합니다.”
내공. 결국 내공이 문제였다.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운기조식해서 모은 5년 치 내공. 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경공을 쓸 수 있다는 문제 말이다.
물론 나에겐 문제를 해결할 몇 가지 답이 있었다.
“배달용 경공을 익히게 할 생각입니다.”
“배달용 경공이라니. 그게 무슨 경공입니까?”
“다른 무공보다 필요로 하는 내공이 적고, 대신 내공 소모가 빠른 무공이에요. 제대로만 익히면 이류 초입이 아니라 삼류 끝자락 수준의 내공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임하연이 옆에서 첨언해주었다.
가끔 망각하곤 하지만 그녀 또한 무공의 천재. 무영신투다. 시중에 떠도는 보급형 경공을 개량하는 것쯤 쉬웠다.
“허어.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경공을 그런 식으로 개량한 무공이 있군요. 허나 3류 끝자락이라도 3, 4년의 내공은 필요할 겁니다.”
그 또한 내게 방법이 있었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약을 제공할 생각입니다.”
나도 나에게 점핑 만렙권 아니, 경험치 부스터가 있거든.
“영약이요?! 그 귀한 걸 어떻게?!”
홍삼 사탕이라고 삼류가 먹으면 내공 증진에 도움 되는 영약이 있어요. 물론 가맹비로 공제하고 제공할 생각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열심히 수련하여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고 열심히 일한 배달원들에겐, 추후에 표국같은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줄 생각입니다.”
배달원들에게 무공을 익힐 동기 부여까지 가져왔다고.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최표사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회주님. 중원 표국놈들은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조선인을 원치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신뢰가 생명인 직업이니까요. 물론 어중이떠중이 군소 표국에 저처럼 취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럼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아십니까?”
“어떤 일을 당합니까?”
“버리는 패 취급을 당합니다. 제가 표사일을 시작할 적에, 조선인 친구 둘이 더 있었습니다. 1년 차에 친구가 죽었고 십 년 차에 남은 친구도 죽었지요. 20년 차에는 저도 이렇게 불가능한 임무를 성공한 대가로 절름발이가 되었고 말입니다.”
“…….”
“회주님. 저희의 머리색이 검은색인 한. 저희는 영원히 이 중원 땅에서 외인입니다. 검은 머리가 무공을 배운다고 하여 좋은 일자리가 그리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최 표사의 말끝에 회한이 뚝뚝 묻어나왔다.
하지만 그조차 이미 생각해둔 상황이었다.
“서천표국은 어떻습니까.”
문제가 생길 일이 없는 확실한 표국을 소개해주면 그만이지.
“서천표국이라면 사천당가가 운영하는 표국 말씀이십니까?”
“제가 당가에 귀빈 대우를 받고 있어 승낙받아놨습니다. 거기에 제 사업은 서천표국과 앞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니, 서천표국도 앞으로 제 눈치를 보게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허허허.”
“기수란 건 전쟁터에서 선두에 깃발을 든 사람을 말하지요. 기수들이 단순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된다면 분명 향후에 조선인 향우회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을 겁니다.”
모두가 다 같이 잘 사는 사회. 나는 마치 큰 그림을 그리는 대인과 같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물론 실상은 내가 좀 더 잘사는 거지만.
“허어……. 무한 조선인 향우회의 지난 수십 년간 가장 큰 흥복은 바로 강윤호 회주님인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해보겠습니다.”
결국 최표사를 배달원들의 무공 스승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
최 표사와의 논의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임하연과의 저녁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 온종일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정작 그녀의 기분을 구슬리려고 꺼낸 제안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먹고 싶은 것이 있소?”
“생각해둔 곳이 있어요. 따라와요.”
임하연은 내 말에 선뜻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려는 거지. 고급 음식점인가. 크게 상관없다. 요새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 사서 하는 그녀였으니까. 그 정도는 살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녀가 데려간 곳은 내 예상과 전혀 반대되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도 음식점이?”
번화가에서 떨어져나와 후미진 곳. 음식점처럼 보이는 작은 가게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엇! 회주님! 안녕하세요!”
가게에 들어가자 이제 인중에 거뭇거뭇 수염기가 보이기 시작한 검은 머리의 점소이가 우리를 맞이했다.
“여기 설마…….”
“당신 같은 조선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에요. 여기 앉으면 될까?”
누구에게 듣고 온 거지. 임하연은 점소이에게 빈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회주님! 어머니, 주방에 계시는데 불러드릴까요?”
“괜찮다. 음식만 내오거라.”
“네. 뭐 드시겠어요!”
뭘 파는 곳인데. 내가 조금 난색을 보이며 임하연을 바라보자, 그녀는 생긋 웃더니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돼지국밥 두 그릇 주세요.”
“네!”
“정구지 좀 많이 주시고요.”
“와! 예쁜 누나가 먹을 줄도 아시네요! 가져다드릴게요.”
돼지국밥집이었나. 기억 한구석에서 향우회원들이 국밥 한 그릇만 있으면 술 한 병이 술술 넘어간다는 음식점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기가 거기였구나.
“수육 추가해줘.”
나는 빠르게 점소이를 불러 주문을 추가했다.
“넵. 회주님!”
“이걸로 괜찮겠소?”
나는 자리에 앉아 허름한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임하연에게 물었다.
좀 더 좋은 가게에 가도 되었을 텐데.
“우리 형편에 그럼 좋은 음식점에서 고급 음식이라도 시키게요?”
“하하하…….”
만금전주와 시문의 시험. 양쪽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쥐어짜서 사업 확장을 해야 하는 처지긴 하지.
“그래서. 맛있었어요?”
불쑥 창으로 찌르는듯한 질문이 꽂혀 들어온다. 이렇게 갑자기 찌르기 있냐.
주어와 목적어가 전부 생략된 말이지만, 무슨 뜻으로 물어보는 것인지 판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음식이라는 게 고급이라도 다 맛이 있는 건 아니지 않소.”
맛있긴 했어.
“미인과 함께하는 식사라면 맛있는 법 아니겠어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필터를 거치지 않고 말하면 바로 국밥 샤워를 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임하연을 향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기다리고 있지 않소.”
“…….”
허름한 국밥집. 드넓은 무한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드는 미모를 가진 여인의 볼이 살짝 떨렸다.
“나는 이렇게 편한 자리에서 친한 사람과 먹을 수 있는 식사가 훨씬 맛있소.”
다행히 반응이 좋은 것 같네.
나는 다시 한번 능글맞은 표정으로, 굳은 표정이 깨지기 직전의 임하연을 살살 건드렸다.
“하아. 정말 말이나 못 하면…….”
임하연은 작게 한숨을 쉬더니, 이내 굳어졌던 표정에서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다행히 무사통과인가. 말 잘못 했으면 국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갈지 모를 뻔했다.
“돼지국밥 나왔습니다!”
“듭시다.”
제대로 된 국밥집인가 보네. 토렴 되어 나오는 거 처음 본다.
내가 국밥에 소금과 후추를 치고 바로 먹으려 하니, 임하연이 갑자기 눈치를 줬다. 왜 그러지?
“돼지국밥을 소금만 쳐서 먹으면 어떡해요? 자. 정구지도 같이 넣어 먹어요.”
임하연은 부추김치를 젓가락으로 뜨더니 밥이 담겨있는 내 수저 위에 올려주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정통 부산식을 어떻게 중원 여자가 알아.
“당신 직원들이 열심히 가르쳐준 덕이죠.”
“그런 것도 가르쳐주오?”
“형수님, 형수님 하면서 조선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열심히 가르쳐 주는걸요. 그러다가 저번에는 무슨 순대에 쌈장이니, 초고추장이니 소금이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싸우더라니까요.”
임하연은 그때 상황이 떠올랐는지,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다 소저를 한식구로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겠소.”
원래 타국에서 모인 동향 민족 집단이라는 게, 폐쇄성이 짙은 모임이 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오랑캐라고 멸시받는 중원이 아닌가. 서로 뭉치고 보듬어 주느라 더욱더 폐쇄성이 짙어질 수밖에.
그런데 임하연은 나와의 관계 덕분인지, 특유의 친화성 덕분인지, 다들 한식구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흐응……. 뭐 나쁘진 않긴 해요.”
임하연은 비음까지 섞어가며 미소 지으며 국밥을 휘휘 저었다.
처음에는 형수님 소리에 매번 화를 냈는데 말이야. 이제는 매번 부정하기도 지쳐서 그런가. 아무튼 장족의 발전이네.
“점점 일이 많아지는데 이번 일로 하연 소저가 더 바빠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소.”
나는 정신없이 식사하고는 임하연에게 물었다.
“배달원들에게 경공 가르쳐주는 거요?”
“그렇소.”
“만드는 게 귀찮았지, 배우는 건 다들 금방 배울걸요? 상승의 경신법도 아니고 그냥 보급형 경공 수준밖에 안 되니까요. 그것보단 재능있는 아이들을 선별하는 게 더 문제겠죠.”
“그건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소.”
“네?”
“신분 확실하고 성격 좋고 재능 있어 보이는 아이들은 향우회 계 모임에서 알아서 고르고 골라줄 거요.”
“자기 직원으로 쓸 아이들이니까요?”
“그렇지. 하연 소저는 고르고 고른 아이 중에 선택하면 그만이요.”
그녀를 번거롭게 할 생각은 없다.
사람을 다루는 자리에 올랐으면, 귀찮은 건 밑에서 해결하게 할 수 있으니까.
“그건 듣던 중 다행이네요.”
임하연은 내가 국밥을 다 먹은 걸 깨달았는지, 구슬땀을 흘리며 남은 식사를 마무리했다.
현대였으면 미슐랭에 나오는 고급 음식점만 갈 것처럼 생긴 여인과 국밥을 먹고 있으니, 생경한 기분이 드네.
“항상 고맙소.”
나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진중한 어투로 말했다.
“나야 말……. 읏. 국밥은 맛있었어요?”
임하연은 의외의 공격이라도 당한 듯, 고개를 돌리며 내게 물었다.
“조선 동래 포구가 생각나는 맛이었소.”
마음이 푸근해지는 맛이었다.
“흐응. 그래요? 그러면 오늘은 내가 살게요.”
“무슨 소리요, 당연히 내가……. 응?”
내가 일어나서 계산하려고 하자, 임하연이 내 소매를 꼭 붙잡았다.
돈도 없는데 무슨 계산이야. 제대로 월급이나 받으면서 그런 말을 해라.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임하연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걸까.
임하연은 내가 자리에 앉자, 소매에서 손을 놓지 않은 채 다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큰돈 안 써도 이런 걸로 충분히 즐겁고 행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 더 같이 고생해요.”
임하연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섞여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때때로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처럼, 그녀도 이번에는 나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그럼 내가 할 말은 하나밖에 없지.
“잘 먹었소.”
“나도요.”
——————
계 모임에게 첫 번째 순번을 고지하고, 배달의 기수 이야기도 같이 설명한 지 며칠.
삼류 무사가 경공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가르치려면 꽤 장기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심사도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당신!”
그러던 중 임하연이 집무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요?”
“응? 뭐 하고 있었어요?”
“정리 중이요.”
나는 책상 위에 엉망으로 쌓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소에 정리 좀 하라니까요. 맨날 내가 한소리하고, 내가 정리하잖아요. 응? 그건 못 보던 상자인데 뭐예요?”
임하연은 내가 서랍에 황급히 넣고 있는 고급스러운 상자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상자 안에는 고급스러운 상자보다 훨씬 비싼 것이 있었지만, 굳이 언급할 일은 아니었다.
“별거 아니오.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거요?”
“나와봐요. 당신이 해결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길래.
————
“다들 뭐하냐! 회주님 나오신다!”
“안녕하십니까!”
“이게 무슨?”
객잔을 내려가자, 삼구 형제들과 건장한 조선인 청년들 몇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회주님! 정말 무공을 배우고 배달원 일을 하면, 서천표국의 표사로 추천을 해주시는 겁니까?”
“지금 향우회에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인사를 하자마자, 어딘가 간절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허어! 이놈이 회주님 앞에서 건방지게! 어디서 회주님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나서!”
“죄송합니다!”
청년들은 최일구의 일갈에 다 같이 엎드렸다.
왜 왔나 했더니만 배달원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준다는 소문 때문에 왔나 보네.
“재능있는 아이 몇 명을 선발해서 표사로 추천해줄 생각인 건 맞다. 근데 최일구 이게 무슨 일이지.”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쩔쩔매고 있는 최일구를 노려 보였다.
“여기 녀석들이 무한 조선인 향우회에서 무공을 좀 배운 녀석들입니다. 못해도 이류 초입은 되는 녀석들이지요.”
“이류 무사들이라고?”
무공을 배운 녀석들이 왜 여길 와.
배달의 기수는 삼류 무인들을 키워서 경공을 배우게 하고, 종래에는 이류 무사로 만들자는 취지로 진행하고 있는 계획인데.
이미 경공도 쓸 수 있고 무공도 할 수 있는 이류 무사들이 굳이 여기에 올 이유는 없잖아.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내 눈치만을 보고 있던 청년들이 이내 다시 한번 큰절하며 내게 외쳤다.
“회주님! 부디 저희를 배달의 기수로 써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