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293)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293화(290/674)
EP.293 기수 – 6
“이류 수준이면 일할 곳이 많을 텐데 배달원을 하겠다니?”
삼류가 무공을 좀 익힌 일반인 수준이라면, 이류는 내공을 운용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경지다.
나 무림인이요. 명함이라도 하나 내밀 수 있는 경지가 이류부터라고 봐도 무방한 만큼, 배달원으로 일하겠다는 건 안정된 직장이라도 너무 하향 지원이었다.
“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건 중원 놈들이나 그렇고, 저희 검은 머리들에겐 해당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내 물음에 이류 무인이라는 청년 하나가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표국은 잘 안 받아준다고 들었다. 경비라든지 그래도 무인이 필요한 곳은 많지 않나.”
“매한가지입니다. 검은 머리라고 하면 일단 제일 위험한 자리에 세워두거나, 심하면 칼받이로 사용합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박봉이지요.”
외국인 노동자가 같은 능력이라도 더 힘든 공장이나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건, 무림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배달원 월급을 넉넉하게 주고 있는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점소이와 비교해서다. 이류 무인들을 쓸 정도는 아니야.”
내가 계획한 건 삼류 무인을 배달원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이류쯤 되면 그만두고 싶어 할 테니, 표사 자리를 미끼로 최대한 붙잡아 두었다가, 배달원아! 무림에 가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하며 내보낼 생각이었다.
근데 이류 무인들이 올 줄이야.
“저희 모두 아등바등 열심히 수련해서 어찌어찌 이류 수준에는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대우받으려면 사파 그것도 흑도 놈들이랑 어울려야 합니다.”
“거기까진 원치 않나 보군.”
사실상 칼 든 강도 무리. 중원을 떠돌 때도 가장 엮이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저희가 비록 칼을 드는 길을 선택했지만, 아버지께 삼강오륜 정도는 배웠습니다. 빌어먹을지언정 남의 것을 빼앗아 먹고 싶진 않습니다.”
칼을 들면 남의 주머니가 내 것인 줄 아는 중원인데. 역시 우리 조선 사람답게 건실한 청년들이네.
“결국 배달원으로 시작해서, 소개받아 표국에 취직하고 싶다는 말 아닌가.”
사심이 대놓고 보이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회주님께서 정말 그렇게 해주신다면 각골난망,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무인들은 내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돌아가라.”
“회주님!”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무인들이 화들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구나. 나는 성실하게 일할 배달의 기수를 뽑는 것이지, 표사를 뽑는 게 아니다.”
표사 자리는 어디까지나 배달원들의 상으로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표사 자리가 목적이라면, 일하는 내내 언제 시켜주냐고 불평불만이 튀어나올 텐데, 그걸 원치는 않는다.
“몇 년간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허투루 임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내가 그 자리를 괜히 배달의 기수(旗手)라고 한 것이 아니다. 처음 표사가 된 배달원들은 모범이 되어야 해, 그래야 다음 추천을 받은 조선인들도 표사가 될 수 있다. 거기에 회주인 나의 이름도 걸려있다.”
그런 막중한 자리를 너희들이 해낼 수 있냐. 나는 질책한 듯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몇 년간 일하면서 저희를 평가해주십시오!”
“항상 회주님의 마음에 흡족하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만약 회주님의 눈에 들어 표사가 된다면, 무한 조선인들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회주님! 추천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기회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조선인 무사들은 간절한 표정으로 무릎까지 꿇어가며 간청했다.
‘절박해 보이긴 한데. ’
나는 고개 숙인 무인들에게서 시선을 옮겨, 삼구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형제들은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믿을만한 녀석들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류 무인들이라.
간신히 내공 최소 컷을 맞추기 위해 수련을 시켜야 하는 삼류들과 달리, 경공만 가르치면 바로 배달원으로 투입할 수 있긴 한데.
몇 년간 불평불만 없이 성실히 일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내 쪽에서 이득이긴 하다.
“문제가 없다면 쓰도록 하지.”
나는 고민 끝에 말을 내뱉었다.
“정말이십니까!”
무인들은 화색을 지은 채 나를 올려보았다.
“첫 심사는 내가 아니라 향우회원들이 할 거다. 문제없이 통과한다면 그때는 쓰도록 하마.”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조선인 이류 무사들은 내 생각보다 더 평이 좋은 무인들이었다.
향우회 심사는 무난히 통과했고, 가맹점에서 일할 다른 조선인들과 함께 먼저 무공 수련을 받기로 하였다.
강윤호 회주가 배달원을 뽑는다. 무공을 가르쳐줄 거고, 뛰어난 아이에겐 영약을 줄 생각이다. 일 잘하고 성취가 깊은 아이에겐 몇 년 후에는 표국에 일자리도 소개해준다고 한다.
조선인 향우회에 소문은 계속 퍼져나갔다.
“이 아이는 가죽 만드는 공방에서 일하는 갖바치 정씨라고 있는데, 그 집에 둘째일세.”
“회주님 안녕하십니까! 어릴 때부터 삼재심법을 꾸준히 익혔습니다!”
“이 아이는 포구에서 일하는 하역꾼 주씨네 막내인데, 최이구가 한 수 가르쳐줬다는군.”
“회주님! 뽑아만 주시면 분골쇄신 열심히 하겠습니다!”
향우회의 심사에 통과하여, 안 숙수의 집 마당에 모인 지원자들.
“좀 많은데?”
안 숙수님 집 마당이 넓은데도 사람들로 무슨 운동회마냥 복작거렸다.
“강 회주님! 여기 계셨군요.”
무공 교관을 맡아줄 최 표사가 반가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최 표사님. 재능 있는 아이들이 이렇게나 많았습니까?”
임하연이 최종적으로 선발을 할 예정이지만, 못해도 사람 많은 시골 분교 입학식 분위기 같네.
“그것이……. 소문이 좀 과하게 퍼진 모양입니다.”
최 표사는 곤란한 듯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과하게?”
“아무래도 모집한다고 한 게 배움이 빠른 소년들 위주로 뽑으려다 보니까. 자식이 있는 집안에 소문이 다 퍼진 모양입니다.”
“회주님! 정말 아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저희 할아버님께서 조선 땅에서 무과에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별거 없지만 우리 셋째가 아주 할아버지를 빼다 박았습니다!”
최 표사가 극성인 학부모처럼 다가오는 자들을 제지했다.
“직원을 뽑는 자리입니다. 향우회에서 걸러내지 못한 겁니까?”
많아도 너무 많잖아.
“아무나 고른 게 아닙니다. 재능이 있어 보이는 아이들 위주로 선별했습니다.”
최 표사는 향우회에 속한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다 지원하는 바람에, 엄청 곤란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더 고르고 고르셨어야죠. 몇 명 뽑지도 않을 자리인데 다들 실망해서 돌아갈 거 아닙니까.”
지원자가 많은 건 좋다.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뽑을 수 있으니까. 그래로 이건 너무 의욕이 과한 거 아니냐고.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지만,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최 표사를 타박했다.
“그것이…….”
“최 표사를 너무 타박하지 말게. 다 강 회주를 위해서 향우회가 나선 거니까.”
최 표사가 곤란한 표정으로 답하려고 하자, 이 집의 주인인 안 숙수가 나타났다.
“안 숙수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강 회주가 발 벗고 나서서 애들 무공도 가르치고 영약도 내주고 표사 자리까지 준다는데. 우리 향우회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단체로 교육해서, 가장 뛰어난 아이들을 배달의 기수로 추천할 생각일세.”
수십 년 전에 못 사는 마을에 서울로 유학 보낼 아이를 뽑으려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느낌인가.
“업장이 많지 않아 이 많은 아이에게 월급을 줄 순 없습니다. 거기에 이 많은 아이를 가르치려면 공간도 만만치 않게 필요하고요.”
“저번에 회주에게 객잔을 판 돈으로 산 이 집이 있지 않은가! 배움의 뜻이 있는 아이들을 위해 개방하도록 하지.”
나는 잠시 안 숙수가 살고 있는 집 마당을 둘러보았다. 담벼락 안에 방은 몇 개 없지만, 시골집 마당처럼 넓은 집이었다.
“하지만 월급은…….”
내가 말을 끌자, 뒤에서 듣고 있던 학부모들이 화들짝 놀라며 나섰다.
“회주님!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 어떤 학당도 스승에게 돈을 받는 곳은 없습니다!”
“맞습니다. 오히려 저희끼리 십시일반으로 각출해서 아이들을 돕겠습니다!”
“학문을 배우는 게 아니라 무공을 배우는 곳입니다.”
“무공도 결국 공부가 아닙니까. 사람이 배워야 어디 쓸데라도 생기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회주님.”
“최 표사?”
“글줄 좀 배운 친구들을 보아 일종의 학당을 만들려고 합니다. 무공도 가르치고 공부도 시키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제일 뛰어난 아이를 배달원으로 추천하겠습니다.”
“맞네. 다들 삶이 팍팍해서, 무한에서 자식 교육은 꿈도 못 꾸던 조선인들이 회주 덕에 뭉칠 기회를 얻었네. 자네가 승낙만 해주면 우리끼리 알아서 한번 해보겠네.”
나는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 승낙만을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을 바라보았다.
무한에서 대부분 하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조선인들. 얼굴에는 세월과 고생을 정통으로 맞았지만, 눈에는 내 자식만큼은 그렇게 살게 하지 않겠다는 열망으로 들어차 있었다.
“그럼 그러도록 하지요.”
내 돈이 안 들면 전혀 손해 볼 게 전혀 없으니까.
오히려 뛰어난 인재를 계속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앞으로 사업 확장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아이고 회주님. 감사합니다!”
“잘 생각했네!”
내 승낙에 학부모들의 얼굴에는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
“흐응. 흐으응.”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 임하연의 음색이 좋은 콧노래 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기분 좋은 것 같소.”
“조선 사람들을 보니까 어릴 때 생각나서요.”
“어릴 때? 교방에 있었을 때 말이오?”
어릴 때 운동회마냥 즐거운 추억이라도 생각난 걸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교방에 들어가기 전이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고 들었소만.”
“맞아요. 배는 고프지 의지할 사람은 없지. 결국 들어간 게 기녀가 되기 위한 교방이었죠.”
“…….”
어쩐지 지뢰를 밟은 것 같다.
임하연은 내 표정을 보더니,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너무 심각한 얼굴로 보지 말아요. 언니 동생들 다 좋은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도 머리가 조금 굳으니까. 교방이 구덩이처럼 보이더라고요.”
“구덩이?”
“나올 수 없는 구덩이. 위에서 던져주는 먹이를 허겁지겁 먹기 위해 어떻게든 예쁘게 보여야 하는 구덩이 속 말이에요.”
사뭇 진지한 이야기네.
다행인 건 그리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지, 임하연의 눈빛은 진지해도,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먹이를 독점해서 그렇게 잘 컸나 보군.”
아주 위아래로 호리병이야 호리병. 나는 살짝 코웃음을 치며 농담하듯 답했다.
“흥. 뭐라는 거예요.”
임하연은 장난스레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치더니, 가벼운 걸음으로 한 걸음 앞서 나갔다.
“근데 그거랑 조선 사람이랑 무슨 상관이오.”
“비슷해 보였거든요. 사람들은 착하지만, 신세를 벗어날 방법이 없죠. 다들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지만, 그렇다고 내일이 나아지는 건 아니에요.”
“우리는 만리타향에서 외인일 뿐이니까.”
천대받는 오랑캐가 중원에서 자리를 잡기에는 요원했다.
“당신이 없었다면 그랬겠죠.”
한발 앞서 걷던 임하연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말이오?”
“당신은 관심 없는 것 같지만, 조선 사람들이랑 있다 보면 귀가 따갑게 듣는 게 당신 칭찬이에요. 회주님덕에 먹고 살길이 생겼다. 회주님이 있으니까 든든하다. 회주님이 있으니까 희망이 생겼다.”
“귀가 간지러워서 더 못 들을 것 같군.”
내가 질색인 듯한 표정을 짓자, 임하연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들 힘들게 살고 있는데. 숙수 일에, 점소이, 배달원에, 하역꾼 일자리에, 객잔 주인. 이제는 표사나 경비 일자리까지 보장해주었죠. 구덩이였는데.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생긴 거예요.”
임하연은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옆에 있던 담벼락에 불쑥 올라갔다.
“위험하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경공의 천재. 그 어떤 부잣집도 두려워하게 되는 별호로 불리게 될 여인. 무영신투.
근데 위험하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닌데.
“하하…….”
담벼락이 너무 높아서 치마 안쪽이 보일랑 말랑하거든요.
일부러 거리를 벌려 민망한 상황을 피해야겠다.
사람이 없는 골목. 임하연과 나는 서로 높이가 다른 곳에서 발걸음을 맞춰 걸어갔다.
떨어져서 보는데도 조금 민망하네. 상반신의 특정 부위는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아찔한 뒤태는 또 다른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빨려들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지, 그녀는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거 보니까 옛날 생각 나더라고요. 나와 같진 않지만, 비슷해서 괜히 기분 좋아졌어요.”
어딘가 기분 좋으면서 먹먹한 목소리.
“하연 소저.”
나는 걸음을 멈춰 임하연을 불렀다.
“…….”
고개를 돌린 임하연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선인들에 대한 부러움? 과거의 자신? 아니면 지금의 처지?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내가 지금 가장 구덩이에서 건지고 싶은 건 조선인이 아니오.”
내가 무한에서 가장 구하고 싶은 건 너야. 임하연.
나는 진중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으. 정말 당신은……. 가요.”
어느새 해 질 녘. 붉은 석양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붉어 보였다.
“계속 어딜 보는 거예요!”
“신발 봤소. 신발. 열심히 일을 해서 그런가 많이 닳았군.”
결국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