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310)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310화(307/674)
EP.310 배달사고 – 4
“범인이 누구인지 찾으신 겁니까?”
난잡한 정보 속에서 단서를 찾았다니. 제갈 소저가 사실 명탐정이었던 건가.
가는 곳보다 밀실 살인 사건을 일으키거나, 심심하면 할아버지 이름을 거는 패륜아나 수면 마취총을 쏘지 않아도 되는 명탐정이라니. 엄청난 희귀종이다.
나는 책상에 앉아있는 제갈향에게 다가갔다.
“아, 저, 그게…….”
제갈향은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단서라고 했으니 범인까진 아닌 건가?
“혹시 결정적인 증거를 찾으신 건가요?”
대화 능력이 미숙한 아가씨니, 깔끔하게 휴먼명조체 15포인트로 정리해놨을 수도 있다.
나는 책상 바로 앞에 서서, 제갈향이 보고 있는 종이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그게 아니라, 너무 가까워요오오오.”
제갈향은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죄송합니다. 순간 마음이 급했습니다.”
표물 때문에 조급했다. 너무 부담되도록 들이밀었네.
“흫. 괜찮아요오오. 주신 자료 중에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게 있어서요오오.”
“설명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제갈향에게 부탁했다.
제갈향은 펑퍼짐한 옷 위로도 확연히 드러나는 흉부 윤곽 위에 손을 얹고, 깊게 심호흡하더니, 이내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책 같은 무거운 짐을 수레로 옮겼으면,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게 없어요오.”
무거운 짐을 수레로 옮기면 생겨야 하는 게 뭐지? 잠깐 고민한 뒤에 바로 입을 열었다.
“혹시 수레바퀴 자국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에에.”
“제가 알기론 수레바퀴 자국 같은 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쉽게 없앨 수 있는 걸로 압니다.”
수레 뒤에 갈퀴나 빗자루 같은 걸 단다던가,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직접 지우는 방법도 있다.
내가 궁금한 듯 제갈향을 바라보자, 제갈향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떤 단서를 말하려는 거지.
제갈향의 답은 간단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어서 안 돼요.”
제갈향이 바라보는 창밖, 비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었다.
“아?! 확실히 비가 내렸으니 쉽게 자국을 지우지 못하겠군요. 하지만 그런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비가 왔으니 수레바퀴 자국을 지울 수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있어야 하는 수레바퀴 자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임하연이 보지 못하는 걸, 제갈향은 찾아낸 걸까.
“지, 지도가 그래서 필요했어요오오오.”
“펼쳐보겠습니다.”
제갈향이 말해줄 단서란 무엇일까. 나는 서둘러 내 자리에 구해온 지도를 펼쳐 보였다.
“네. 잠시만요오오. 이건 빼고, 이것도 빼고, 요것도 뺄게요오.”
하오문에서 얻어온 용의선상의 장소 열다섯 곳. 제갈향은 먼저 돌멩이 열다섯 개를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종이를 한씩 나에게 건네줄 때마다, 돌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허어…….”
남은 곳은 일곱 곳.
제갈향이 건넨 종이에는 제외된 곳들에 대한 이유가 소상히 적혀있었다.
“절반 이하로 줄이신 겁니까?”
내가 감탄한 듯 그녀를 바라보자, 제갈향은 무언가 부끄러운 듯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직 남았어요오오.”
“이게 끝이 아니란 말입니까?”
내 말에 제갈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진창에 수레바퀴가 끌린 자국이 없어지려면, 포장된 도로로 달려야해요. 주신 자료 중에 비교 검증해서 신빙성이 있는 곳을 줄이면 일곱 곳. 그중에 포구에서 의심되는 장소까지 포장된 도로로만 연결된 곳은…….”
호북성의 성도, 무한.
성도인 만큼 많은 도로가 관리되고 있지만, 무한의 모든 도로가 포장되어 있진 않다.
비가 오는 날, 바퀴 자국을 남기지 않고 달리려면 포장된 도로만을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일곱 곳 중 포장된 도로가 이어진 곳은.
“일가상단, 녹청표국, 장선방. 단 세 곳이군요.”
“네에에. 맞아요오오.”
제갈향은 내 놀란 얼굴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해가 저물지도 않은 시간.
하오문과 향우회에서 온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서 열다섯 곳을 일곱 곳으로 줄이고.
정보의 맹점을 파악해서 단 세 곳으로 줄이는 솜씨.
“…….”
임하연이 어처구니없는 듯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역시 제갈세가의 막내딸인가.
“일가상단, 녹청표국, 장선방이라. 잠시 사람을 시켜 이 세 곳에 대한 정보를 좀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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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상단은 서천표국으로 거래처를 이번에 옮긴 상단이래요.”
임하연은 서천표국에서 건네받은 정보를 읊어주기 시작했다.
“피해자인가.”
시작부터 한 곳을 제외하는 건가. 쉽게 일이 풀릴 것 같다.
“무한에 오래 뿌린 내렸던 상단이지만, 최근 손자가 물려받은 후에 경영이 위태로웠다고 하네요. 근데 이 상단 좀 이상해요.”
“무엇이 말이오?”
“계약을 옮기는 조건 중에 하나 이번 표행에 표물이 문제 될 경우, 10배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네요.”
임하연은 일가상단이 이번 사고로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받게 되었음을 알려주었다.
“보상금으로 경영난을 타개한다. 문제를 만들 이유로는 충분하군.”
서천 표국 지부장이 무한 지부를 키운다고 너무 큰 무리수를 두었든 건가.
전형적인 보험 사기 냄새가 나네.
임하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정보에 대해 계속 읊어나갔다.
“녹청 표국은 사파출신의 표국주가 있는 표국인데, 서천표국 무한 지부에게 거래처 대부분을 빼앗겼다고 해요.”
서천표국이 무한에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는데, 그중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녹청 표국이라고 한다.
“거래에서 밀려서 칼을 사용했다. 이것 또한 말이 되는군.”
원래 말로 안 되면 칼을 뽑는 게 무림식 해결법이다. 심지어 사파출신이니 더 거리낄 게 없었겠지.
“장선방은 수공(水功)을 주력으로 하고, 배와 선원을 빌려주는 방파에요. 원래는 서천표국에게 배와 선원을 빌려주었는데, 서천표국이 더 좋은 거래처를 찾아서 거래가 끊겼죠.”
“장강 물길 위에서 표사들을 죽일수도 있고, 배에 문제가 생겼다면 거래처가 바뀔 가능성도 있는 문파군.”
여기는 선원이 전부 사라진 이유가 납득이 되네. 자체적으로 흡수했거나, 칼로 독과점을 창출했겠지.
“다들 서천표국과 대립할 이유가 있는 곳들이네요.”
“무림에 한 걸음만 나가도 은원의 강을 이룬다는 게 이럴 때 쓰는 말 같군.”
시문 향주가 서천표국의 적은 무한 전체라고 했던 것이 한방에 이해가 되네.
“이 3곳을 중점적으로 봐보라고 할까요?”
반나절 만에 용의선상의 조직을 무한 전체에서 단 세 곳으로 줄였다.
정보를 조금 더 기다려보면 흉수를 찾아낼 수 있을까. 문제는 표물을 빠르게 현금화하는 경우인데.
“가진 정보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군. 고작 반나절이 지났을 뿐이니, 추가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순간 옆에서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저기…….”
“제갈 소저. 혹시 무슨 단서라도 찾으셨습니까.”
제갈향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조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ㅃ……. 아, 아버지께서 그럴 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고 하셨어요오오.”
부지피이지기면 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진다는 손자병법의 말인데, 흔히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 뒤로 따라오는 말이다.
제갈향의 말은 지금 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데.
“적이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적이 원하는 것이라.”
잠시 제갈향이 정리해준 정보와 지도를 번갈아 살펴보자.
놓친 게 무엇일까.
제갈향은 없는 정보에서 새로운 정보를 창출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역시 이럴 때는 출제자의 의도를 찾아야지.’
표물을 훔친 곳이 어디일까. 문제는 하루 종일 보았다.
제갈세가의 막내딸이 없는 정보까지 끌어와 주었다. 문제와 선택지만 보지 말고, 출제자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결국 좁혀진 용의선상의 세 곳.
일가상단, 녹청표국, 장선방. 오지 선택지에 단련되는 대한민국 수능을 겪은 남자에게 삼지 선택지라니.
이럴 땐 단골로 쓸 방법이…….
아하!
“찾았소.”
“네?”
“정말요오오?”
두 여인이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군.”
“뭘요?”
“우리의 입장 말이오. 범인이 원하는 것과 우리가 원하는 걸 똑같이 생각했군.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않았소.”
“숲이요?”
“우리가 서책을 잃어 표물에만 너무 눈이 팔렸소. 세상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말이오.”
“다른 곳을 보고 있다고요? 설마?!”
임하연의 얼굴에서 생각 하나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겠지?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표물이 사라진 것도, 표사가 죽은 것도 아니지. 제일 이상한 건…….”
“유령선이 포구에 정박한 사건이죠.”
역시 내가 믿고 맡기는 파트너라니까. 나와 임하연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의창에서 떠난 배 위에서 사달이 벌어졌소. 그렇다면 배를 정박할 곳은 수없이 많았겠지. 근데 왜 하필 목적지에 배를 대었을까.”
“무한에 배를 대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겠죠.”
“맞소. 무한에 배를 정박시켜서 반나절 만에 서천표국 소식을 모르는 놈이 없게 되었지. 그렇게 생각하면 답이 나올 수밖에 없소.”
“서천표국에 피해를 주어야 하는 집단.”
“서천표국 무한 지부에 악평이 생기면 생길수록 이득을 보는 집단. 용의선상의 셋 중에 단 한 곳만 이득을 보지.”
“아!”
나는 돌멩이를 천천히 옮겨 포구에서 용의선상의 한곳으로 돌을 이동했다.
포구에서 가장 짧은 거리에 있는 곳.
무력과 원한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곳.
“그렇소. 범인은 녹청표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