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327)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329화(324/674)
EP.330 개문 – 8
“혹시 나에게 숨기는 거 있어요?”
저택에 마련된 강윤호의 집무실 겸 방.
혹시 물어보면 대답할지 모른다. 임하연은 벽에 있는 서랍을 뒤지면서, 지나가는 투로 은근히 그를 떠보기로 했다.
“결국 들켰군.”
강윤호는 일말의 고민조차 안 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이렇게나 쉽게 답해준다고? 임하연은 놀라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강윤호를 돌아보았다.
“미안하오. 서랍에 있던 선물 받은 과자. 내가 겉 부분 빼고 상자 안쪽에 있던 건 다 먹었소. 입이 좀 심심해서 손댔는데 멈출 수가 있어야지.”
임하연이 서랍으로 시선을 돌리니, 서랍 안에는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과자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거 말고요.”
“표정을 보아하니 화난 기색인데……. 설마?! 구구 이 배신자 자식! 결국 밀고했군! 기다리시오. 오늘 저녁은 비둘기 꼬치구이로 할 테니.”
“뭘 했는데요?”
“구구가 이야기 안 했소? 그게……. 기오수구들에게 모래 뿌리기랑 몸통 박치기 연습을 좀 시켰소.”
강윤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
“사실 다른 연습도 시키긴 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말이오……. 미안하오.”
강윤호는 표정이 굳어져 가는 임하연을 향해 쩔쩔매며 말했다.
“하아. 정말.”
어떨 때는 한없이 어른스러우면서 어느 때는 한없이 어린애 같은지. 누군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허탈한 듯 웃었다.
“역시 이걸로 하라고 해야겠군.”
강윤호는 임하연의 웃음에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고는, 종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뭐 보고 있어요?”
“제갈 소저가 그린 사천제일미 구숙정이요. 이걸 크게 그려서 당가풍운 1권 판매하는 곳에 걸어두는 곳이 좋겠소.”
임하연 또한 당가풍운의 애독자. 사천제일미라는 말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한 떨기 꽃 같은 외모. 숨 막히는 듯한 분위기가 이러할까. 두응향 파인 임하연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
문제는 그 그림이 제갈향의 그림이었다는 것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렇소. 혹시 이따가 시간 좀 있소?”
“왜요?”
“같이 나들이나 한번 갔다 올까 해서 말이오.”
“……못 나가는 거 알잖아요.”
“새 마차가 온다고 하오. 도문 놈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차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지 않소. 시운전 삼아서 무한 시내 한 바퀴 돌아봅시다.”
“괜찮을까요?”
“하연 소저를 위해 보안이 철저한 마차로 구매했소. 요새 너무 일만 하는 것 같아 내가 다 미안해서 그러오. 같이 갑시다.”
강윤호는 요 며칠 임하연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건 진즉 눈치채고 있었다.
그 이유가 임하연이 자신의 정체를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몰랐지만, 강윤호 나름대로 임하연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어 했다.
“준비할게요.”
어쩌면 중요한 비밀을 고백하기 위해 나가는 걸지도 모른다. 임하연도 강윤호의 제안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제갈 소저도 불러야겠군.”
“둘이서 가는 것이 아니에요?”
임하연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하. 시운전을 하는데 마차를 사준 제갈 소저를 어찌 빠트릴 수 있겠소. 거기에 제갈 소저까지 같이 가면 말을 탄 호위들이 누가 따라오나 같이 감시해줄 거요.”
“…….”
임하연은 입을 다물고는 강윤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고 만금전장에 말해둔 상황. 확실히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인다면 자신의 안전도 보장될 것이다.
안전은 말이다.
“제갈 소저는 당가풍운 2권 배경이 무한이니 그림 자료 조사 겸 둘러보고, 하연 소저는 기분 전환 겸 갑시다.”
그는 자신이 정체를 눈치챘다는 사실은 모른다. 분명 선의로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제안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임하연은 요새 제갈향의 묘한 우쭐거리는 웃음을 떠올렸다.
“둘이서 다녀와요. 먼저 출근할게요.”
강윤호가 제갈향이 사준 마차를 보며 좋아하고, 제갈향이 그 모습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자신은 없었다.
둘만이 중요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면 더더욱.
—————
“지금 뭘 하는 거죠.”
강윤호와 제갈향이 마차를 타고 떠난 저택. 임하연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는 기오수구들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구구? 구구구구!”
구구는 저기압인 임하연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가만히 있던 기오수구들을 보채기 시작했다.
뭣들 하는 거냐. 여자 주인님이 지금 우리보고 비둘기 판이 아니라 개판이라고 하시지 않냐.
대장인 구구의 말에 기오수구들이 일제히 날갯짓했다.
“구구!”
“단체로 모래는 왜 뿌려요? 하아. 하여간 별 이상한 걸 가르쳐서.”
“구구…….”
이게 아니었다니. 구구는 충격에 임하연의 어깨에 앉아, 애교를 부리며 묻은 모래를 털어주었다.
“구구는 낮의 무한 시내도 많이 돌아봤죠?”
“구구?”
“나는 그와 한가로이 나들이 다녀본 적 없는데…….”
임하연은 어깨에 앉은 구구를 쓰다듬으며 쓸쓸히 중얼거렸다.
항상 긴장을 놓치고 살 수 없는 무한에서의 생활. 그와의 추억은 만들었을지라도, 그와 방금 떠난 여인처럼 평범하게 낮에 나들이하러 다닐 수는 없었다.
“너무 비교되잖아요.”
낮에 평범하게 좋은 음식점에서 식사하고, 평범하게 나들이를 갈 수 있는 여인.
반면 자신은 밤에나 움직일 수 있는 도주 기녀.
사소한 것 하나에도 차이가 난다. 임하연은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평소대로의 그녀라면 이 정도로 울적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윤호와 같이 시련을 헤쳐나가고 있다며 기운차게 나아가는 여인이었으니까.
강윤호의 비밀을 맞선 상대인 여인과만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제갈세가의 막내딸이라니. 너무 차이 나잖아요.”
엇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림 좀 잘 그리고 소극적인 여인이라면 오히려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애정이 자신에게 향해있으니까.
제갈향이 아무리 좋은 선물을 하더라도, 그의 시선을 자신이 붙잡고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의 애정이 제갈향으로 옮겨가고 있다면.’
도주 기녀와 제갈세가의 막내딸이라는 사실만 남아버린다.
“아직 그런 건 아닌 거겠죠?”
“구구?”
임하연은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오늘도 자신을 생각해주었다. 나들이도 자신에게 먼저 권유하고 나중에 제갈향을 부른다고 하였다.
“그러면 왜 나에겐 숨기고 그 여자에겐 알려준 걸까요?”
아직 그의 애정이 제갈향에게 완전히 옮겨간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의문과 의심이 계속 무겁게 옥죄고 있다.
그가 고급 붓을 선물 받았을 때처럼 혼자 마음 졸이고 싶지 않다.
“역시 직접적으로 물어봐야겠어요.”
임하연은 강윤호의 귀환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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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비싼 마차가 좋긴 좋네. 완충장치도 달려있고 말이야.
임하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
나는 오늘 하루 제갈향이 그린 그림을 짊어지고는 그녀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왔다.
“흐읗……. 버텨냈어요오오.”
제갈향도 진이 다 빠진 얼굴이네.
그녀를 배려해 사람이 붐비는 곳을 피하긴 했지만, 밖에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갈향의 정신력이 점차 깎여가는 것이 보였다.
“괜히 저 때문에 힘든 일을 하신 것 같군요.”
“다, 당가풍운의 공식 그림을 그리는 일인걸요오. 한치도 소홀히 할 수 없어요오.”
“저도 제갈 소저 덕분에 즐겁게 나들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참! 그리고 말입니다.”
“무슨 다른 할 말이 있으신가요?”
“만금전주님이 하신 말씀 말입니다.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다른 여인과 맞선을 보게 하겠다니. 곤란한 상황이 되었군요.”
나는 오늘 나들이 중에 제갈향이 조심스레 말했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아……. 네.”
“하연 소저를 저택에 들인 것도 나쁜 소문을 막기 위함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겠군요.”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오.”
제갈향은 난처한 듯 고개를 숙였다.
“제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묘수가 하나 있습니다.”
“묘수요? 어떤 생각이신가요오?”
만금전주가 생각하는 관계 진전이 어떤 것일까.
제갈향과 나는 계약 연애.
신체적인 애정 표현은 금물이며, 실제 관계에 있어서 현상 유지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가.
아니, 하나 있었다.
“제갈 소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진심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계책에 불과하니, 놀라지 마시고 들어주십시오.”
“네?”
나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제갈향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놀라지 말아야 할 텐데.
“절 가가라고 불러주시겠습니까?”
“……네에에에에에에에?”
역시 안 놀라는 게 이상하지.
가가. 혼약자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 연인이 부르는 호칭이다.
나를 강 공자라고 부르는 제갈향에게, 오늘부터 ‘자기야.’라고 불러달라고 한 격이었다.
“저희가 동거 중인 이상, 형식적으로 거리감을 좁히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호칭에서 변화를 줄 수 있지요.”
동거하고 있는 이상, 더 이상의 관계 진전은 약혼 말곤 없다.
호칭 말곤 말이다.
“그그그그그 그렇지만요오오.”
제갈향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혹시 원치 않으시면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그그그건 또 아닌데요오오.”
“평소에는 강 공자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경비나 시비가 근처에 있을 때 한두 번씩 가가라고 하여, 어르신의 귀에 들리도록 하는 겁니다. 용기 내서 지금 한번 천천히 해보시지요.”
지금 바로 보채야지. 그녀 성격상 나중에 부르라고 하면 절대 안 부를 것 같다.
제갈향은 내 말에 몸을 떨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가……. 가ㄱ가가가가가가.”
용기를 내서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박자만 맞추면 용기의 힘이 중요한 노래도 될 것 같은데.
“제갈 소저,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불러달라고 한 거니까. 한번 심호흡하고 해보시지요.”
“지, 진정하려면 우, 운기조식 정돈 필요할 것 같은데요오오오.”
그 정도냐.
“긴장이 풀리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혹시 하기 싫으시다면 언제든지 그만하셔도 됩니다.”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롤 조성하자. 그녀가 실수하든, 잘못하든 웃으며 용서할 것 같은 사람처럼 구는 거다.
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른 쪽을 바라보자, 제갈향은 나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포기하려나. 아니면 불러주려나.
결국 제갈향은 마침내 크게 심호흡하더니, 두 손을 가슴께에 모은 채 나를 불렀다.
“……가가.”
부끄러움과 친애와 용기가 담겨있는 목소리.
노래 한 소절.
사진 속 풍경.
추억이 섞인 단어.
사람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뜩 잠을 자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곤 한다.
예상치 못한 기억이, 벌써 2년 전 기억이, 나를 덮쳤다.
내가 처음, 여인에게 가가라는 호칭으로 불린 건.
一 가가.
一 소저, 방금 뭐라고 나를 불렀소?
一 이제 곧 성혼할 터인데, 공자가 아니라 가가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 싶었습니다. 이상하십니까?
무림제일미. 갈색 머리의 여인이 부끄러움과 사랑을 담아 부르던 목소리.
잊을 수 없는 기억. 언젠가는 다시 만나야 하는 운명의 여인.
“강 공자님? 앟!”
비명에 놀라 기억 속에서 현실로 다시 돌아왔다.
눈앞에 보이는 건, 걱정스러운 표정의 제갈향이 나에게 다가오다가, 자기 치맛단에 넘어지는 장면.
빠르게 무영신법을 운용하자.
그녀의 허리를 잡아 자연스레 옆에 있는 침대로 이동. 그러나 1성의 무영신법으로는 변수 상황에 대처하지 못했다.
제갈향의 발에 다리가 얽힌다. 균형을 잃고 둘이 동시에 침대로 떨어졌다.
“힣?!”
소년만화도 아니고 덮치는 구도라니.
침대에 누운 제갈향과 포개져 그녀를 덮치는 구도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요오오오.”
왜 눈을 감으세요.
“허리를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침대와 그녀의 허리 사이에 낀 팔부터 빼내자.
“허, 허리부터 들면 되나요오.”
왜부터인데. 마지막은 뭐고.
곤란하다. 이러다가 방에 누군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큰 오해를 사고 만다.
아닌가. 호칭부터 오해를 사기 위해 부르는 건데 오해를 사는 게 맞나.
一 드르륵.
잠깐 고민하는 사이, 등 뒤에 있던 방의 문이 열렸다.
청소하러 들어온 시비인가? 나쁘지 않다. 들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해야 하나.
잠깐.
시비는 문을 열 때 말하고 문을 여는데?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마주한 것은 시비가 아니라.
“당신, 꼭 물어볼게…….”
“……하연 소저.”
망했다.